(사진출처 : Daum 검색 자연박물관 포토)
나는 보신탕을 즐기지 않지만 친구들이 보신탕집에 가자고 하면 거절하지는 않는다. 언젠가 울진에서 며칠을 보내게 되었다. 마침 그 날이 중복이었다. 울진 친구들과 보신탕을 먹으러 갔다. 호감은 없었지만 전골을 시켜서 먹기로 했다. 전골로 나온 보신탕은 좀 특이했다. 맑은 육수에 부추만 들어 있었다. 들깻잎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가늘게 채를 썬 생강, 고추장인지 뭔지 풀어놓은 것, 그리고 잘 알지 못하는 풀을 잘게 썰어 놓은 것 등 소스 재료도 나왔다. 모든 게 낯설었다. 나는 울진 사람들이 하는 대로 상에 오른 재료를 섞어 만든 소스에 고기를 찍어 먹었다. 부드러운 개고기 맛을 더욱 강화해준 것은 다른 아닌 소스였다. 처음 먹어본 풀의 향도 매우 독특했다. 모두 향이 강한 허브류인지라 중독성이 강해 보였다.
나는 가끔 지독하게 중독될 만한 향이 그리우면 미산동 텃밭에 있는 차조기를 뜯어 코에 대로 들어마신다. 차조기도 원래 야생인데 재배를 하기 시작했고, 내년도 즈음이면 본격적으로 차조기 농사를 지을 수 있다. 차조기는 향 덕택에 음식에 넣는 방부제로 사용하기도 한다. 들깨 잎사귀 뒷면에 녹병균이라는 노란곰팡이가 껴서 이즈음의 들깻잎은 사용하기가 어렵다. 여름 장마 뒤에 날이 습해져서 그런 것인데 차조기는 아예 이런 곰팡이가 달려들지 않는다. 들깻잎보다 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차조기는 흔히 음식에 넣는 방부제로 사용되며, 화장품이나 피부에 사용하는 방부제로 사용한다. 해충을 억제하려고 고추 사이에 들깻잎을 심어보기도 했지만, 차조기를 심으면 효과가 더 좋다. 특히 차조기는 키가 별로 크지 않아 그늘을 만들지도 않는다.
그 날 내가 울진에서 먹은 것은 '방아풀'이었다. 방아풀은 차조기 향만큼 강하다. 제피와 산초는 씨를 갈아서 먹지만 방아는 풀을 먹는다. 방아풀에 개 껍데기를 싸서 먹는 이유는 혹시 모를 냄새를 가려주기 때문이다. 그 날 나는 전골 하나를 시켜놓고 방아풀을 몇 번이나 더 달라고 했다.
우리나라에도 허브가 많다. 차조기를 비롯한 들깨도 허브고 방아풀과 비슷한 꽃향유, 산초와 제피 등도 허브에 속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허브농원에는 우리의 것이 없다. 방아 정도만 겨우 있는 것 같다. 서양허브를 이용한 가공품은 많지만 역시 우리의 것을 이용한 허브 가공품은 없다. 굳이 가공까지 갈 일이야 없다 해도 방아풀을 비롯한 허브양념이 많이 개발되면 좋겠다. 특히 이런 토종허브를 벌레 기피용으로 사이짓기에 이용하면 천연농약을 사용할 일이 줄어든다. 허브는 또 방 안이나 창 안 밀폐된 곳에 놓으면 방향제로서의 역할도 한다. 특히 모기를 쫓는 데 효과적이다.
방아풀에는 예쁜 보라색 꽃이 핀ㄷ. 차조기는 짙은 자주색 잎이다. 토종허브들은 색깔만으로도 독특한 관상의 몫을 해 낸다. 밭을 예쁜정원으로 꾸며도 좋다. 사이짓기나 섞어짓기를 할 때, 색깔까지 생각해서 짓는다면 텃밭은 훌륭한 볼거리가 될 것이다. 실제로 색은 영양과도 관계가 있다. 색채는 그냥 보기 좋으라고 있는 게 아니다. 한방에서는 우리의 내장기관을 색으로 구별한다. 붉은 색은 오행의 화에 해당되어 심장과 소장, 혀와 연결된다. 붉은 색을 먹으면 심장과 혈액순환이 완활해지고 면역력이 높아진다. 검은 색은 오행의 수에 해당되어 신장, 방광, 귀, 뼈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생식기 기능을 원활하게 하며 면역력을 증강해준다. 하얀색은 오행의 금에 해당되어 폐와 대장, 코에 연결된다. 환절기 감기 예방에 좋고, 특히 호흡기가 약한 사람은 하얀색의 채소와 과일을 먹는 게 좋다. 하얀색은 대체로 양파, 무, 파와 같은 뿌리식물에 많다. 노란색은 위와 비장으로 토에 해당하고 소화력이 약한 사람에게 좋다. 녹색은 간, 담, 근육으로 오행의 목에 해당하며 시각적으로 안정감을 준다. 신경이 안정되지 못하거나 혈압이 높을 때, 녹색이 많은 숲이나 정원에 가면 도움이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텃밭을 예쁘게 한다고 굳이 관상용을 따로 까꿀 필요는 없다. 다섯가지 색깔을 참고로 해 우리가 평상시에 먹는 식물들을 고루 심으면 된다. 먹을 수 있는 잡초를 주변에 심어도 좋다. 특히 토종허브는 더욱 그렇다. 올해 나는 연두농장 텃밭상자에 '바질'이라는 프랑스 허브를 심었다. 사람들은 근처를 지날 때마다 어디서 나는 향인지 두리번거린다. 바질의 향은 마치 만리라도 퍼져나갈 것 같다. 주위를 온통 자기 향으로 채워 기분을 좋게 한다. 코를 대고 향기를 맡으면 더없이 진하다. 바질은 향이 퍼져나가지만 배초향과 꽃향유는 가까이서 맡을 때 향이 진하다.
이렇게 먹자!
방아풀 잎은 양념으로 사용하는 것 외에 김치로도 사용한다. 차조기 김치, 방아풀 김치, 들깻잎 김치처럼 보신탕, 매운탕, 추어탕 등에 양념으로 사용하거나 고기를 구워먹을 때 쌈으로 상용하면 더 없이 좋다. 생선회와 곁들여 먹을 때도 사용한다. 당귀 잎사귀도 쌈으로 사용하는 것처럼. 북한에서는 각종 장에 벌레가 꼬이지 않도록 간장과 된장의 향료로 이용한다. 방아풀은 전으로 부치거나 튀겨 먹기도 한다. 잘 말리거나 덖어서 허브차로 마셔도 좋다. 꽃이 아름다우니 집 안에서 관상용으로 가꾸기에도 안성마춤이다.
한방에서는 방아풀의 전초 말린 것을 '곽향'이라 하여 약재로 이용한다. 감기로 가슴이 답답하거나 메스꺼운 증상, 몸이 나른한 증상에 유효하다. 여름철의 구토, 설사에 신통력이 있으며, 차로 상시 복용하면 더위를 잊게 된ㄷ. 옴이나 버짐에는 달인 물에 환부를 30분간 담가 치료한다. 입 안에서 구취가 날 때에는 약물 달인 물로 양치질을 하면 냄새가 감똑 같이 사라진다.
(변현단 글 / 안경자 그림, "약이 되는 잡초음식, 숲과 들을 접시에 담다")
첫댓글 실상사작은학교 세상보기 주간에 지리산을 종주하면서... 상범이 아버님께서 노고단을 지나는 산길에서 "이게 방아다"라고 하셔서 보았더니, 들깻잎처럼 생겼었다. 그리고 실상사 근처에서 방아를 다시 본 적이 있다. 방아가 아니라 '방화'로 기억하고 있었는데, '방아'였다! ^^ 그 뭐라고 표현하기 어려운 향기가 참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