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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으므로
사사기 17장 6절『그 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회막에 들어가면 성소뜰과 성소를 마주하게 된다. 성소는 제사장이 아니면 들어갈 수 없으며, 죄인들은 성소뜰에서 짐승에게 죄를 전가하고 짐승을 죽여서 피를 제사장에게 전하면, 제사장은 그 피를 가지고 성소로 들어가서 속죄의 제사를 드린다.
회막 안에는 죄를 용서받으려고 성소뜰에 대기 하고 있는 사람들과 하나님과 죄인들 사이의 중재자 역할을 하는 제사장 그룹으로 나뉘는 것이다. 신약에서는 성도를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표현한다. 베드로전서 2장 9절에서『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왕은 그리스도를 상징하며, 제사장은 인류의 죄를 대속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을 상징한다. 따라서 왕같은 제사장은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이다. 예수님이 승천하시면서, 그 권세를 제자들에게 주셨는데, 왕 같은 제사장이 되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된 자가 되는 것이다. 연합되는 것은 하나가 된다는 의미다.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것은 곧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한 것에 하나가 되는 것이다.
로마서 6장 4-5절에서『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십자가의 죽음은 죄에 대한 죽음이요(물세례), 부활은 옷을 갈아입는 것이다(불세례). 부모로부터 받은 육의 몸을 벗고, 하늘로부터 받는 영의 몸을 입는 것이다(성령세례).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에서 죽고 함께 부활한 것을 믿는 자가 성도가 되는 것이다.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와 일체가 되는 자이다. 그래서 성도를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칭한다. 하나님을 믿는 자를 영적 이스라엘이라고 말을 할 수 있는데, 그들에게 왕이 없다는 말은 그리스도가 없다는 말이 된다. 그래서 자기 생각대로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사사기 17장 6절의 말씀은 가나안에 들어간 후 열두 사사의 시대를 지나 미가라는 사람이 등장하는데, 그 당시 이스라엘의 신앙이 얼마나 자기의 생각대로 믿었는지 보여주는 내용이다.
사사기 17장은 미가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사사가 아닌 미가의 이야기가 17장과 18장에 걸쳐 비교적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성경이 이처럼 미가의 이야기를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는 것은 당시 사회가 얼마나 영적으로 타락해 있으며 혼란스러웠는지를 강조하여 말하기 위함이었다. 미가는 예루살렘 북쪽 에브라임 산지에 살고 있었다. 그의 어머니는 상당히 많은 가치를 지녔던 은 1,100세겔을 잃어버리게 되자 자신의 재산을 훔쳐간 사람을 저주한다. 그녀가 1,100세겔이라는 엄천난 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16장에서 드릴라가 은 1,100을 받고 삼손(그리스도 예표)를 판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런데 그 돈에 손을 댄 것은 바로 그 아들 미가였다. 미가는 어머니의 저주가 자신에게 미칠 것을 두려워하여 어머니에게 돌려드렸고, 어머니는 자신의 저주가 아들에게 미치지 않도록 은 200세겔을 하나님께 드리기로 한다. 미가의 어머니는 아들을 저주의 덫에서 풀어내기 위해 생각해 낸 것이 하나님의 신상을 만들어 자신의 믿음의 열심을 표현하였다.
하나님을 어떤 형상으로 만들어 섬기려 했던 이들의 모습은 당시 이스라엘 백성이 얼마나 영적으로 무지하며 부패해 있었는지를 잘 보여 주고 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십계명 가운데 제2계명이 우상을 만들지 말라는 것이었는데 미가의 어머니는 하나님을 위한다고 하면서 아들을 위해 우상을 만들고, 아들 미가는 하나님을 위해 신당을 만들어 그 안에 온갖 신상을 만들어 놓았다. 그리고는 자신의 아들을 우선 제사장으로 세웠다. 성경은 이러한 당시 사회 모습을 한 줄로 잘 요약해서 말하고 있다. 사사기 17장 6절에서 『그 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한 사람이 더 등장하면서 당시 사회가 총체적으로 얼마나 부패해 있었는지를 입체적으로 잘 보여주고 있다. 미가는 신당 안에 각종 신상을 채워 넣은 뒤 이제 제사장까지 있으면 구색이 맞겠다 싶어서 제사장을 찾게 되었다. 그런데 때마침 한 레위인이 지나가게 되었다. 레위인은 가나안 땅을 분배받을 때 그들의 땅을 별도로 분배받지 않고 도피성 6개를 포함하여 다른 지파들의 땅에 총 48개의 성읍을 거주지로 분배받았다. 그런데 사사기 시대는 정치적, 사회적, 종교적으로 매우 무질서하였고, 원래 레위인들은 다른 지파 사람들의 도움으로 살도록 하였지만, 이것 마저도 잘 지켜지지 않았기 때문에 레위인들은 생계를 위해 본래 살도록 한 성읍을 떠나 다른 성으로 옮겨 다녀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였다. 그래서 레위인 청년도 원래는 유다 지파의 베들레헴에 살았지만 자신이 거할 적절한 장소를 찾다가 결국 에브라임 산지까지 오게 되었다.
이 레위 사람을 청년으로 기록하고 있다. 당시 제사장은 30세 이상 된 자만이 가능하였지만 그는 아직 나이가 안되었기에 청년이라고 구분하고 있다. 혼탁한 사회에서 레위지파가 아닌 사람이 제사장이 되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래도 레위인 제사장은 권위를 가지고 있었다. 그랬기 때문에 미가는 이 청년이 정상적인 제사장이 되기에는 부족하였지만 레위인인데다가 자기 아들보다는 나을 것이라는 판단 아래 아들을 대신하여 이 레위 청년으로 하여금 자기 집에서 제사장으로 있어줄 것을 제안하였다. 나이 30세도 안된 레위 청년을 제사장으로 세우기 위해 아버지와 같은 존재가 되어 달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에게 해마다 은 열과 의복 한 벌과 먹을 것을 주겠다고 제안했다. 그런데 말씀 가운데 미가의 이러한 행동의 목적이 기록되어 있다. 바로『나를 위하여』제사장을 세우고 있다.
미가의 어머니는 하나님을 위한다고 하면서도 그 행동은 결국 아들 미가를 위해 신상을 만든 것이었고, 그 아들 미가는 만들어진 신상을 신당에 모아 놓았다. 그리고 그 신당을 지킬 제사장을 선발 하였는데 이러한 그들의 행동의 목적은 자신을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모든 일에 대해 이제 하나님께서 하실 일만 남았는데 그것에 『이에 미가가 이르되 레위인이 내 제사장이 되었으니 이제 여호와께서 내게 복 주실 줄을 아노라 하니라』라고 말한다.
자신의 유익을 위해 하나님이 어떤 분이든, 무슨 말씀하셨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지 않고 자신에게 복 주는 하나님이면 된다는 식의 생각을 가지고 열심히 형상도 만들고, 그 형상을 놓을 신당과 그 신당을 관리할 제사장까지 세웠다. 자신이 열심을 다해 완벽하게 준비해 놓은 제단 위에 하나님께서 복이라는 불로 그 제물을 태우시기만 하면 하나님도 좋고 자신도 좋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철저히 하나님을 이용하여 자신을 드러내려 했던 이런 미가의 의도는 나중에 단 자손들에게 자신의 우상과 레위 청년을 모두 빼앗기게 될 때 자기 마음을 이야기하는 장면에서 아주 잘 나타나 있다.
미가는 하나님을 위한다고 하였지만 자기 만족을 위해 모든 것을 계획하고 이루어 가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모습은 비단 미가에게만 있었던 모습이 아니었기에 하나님께서는 영적으로 타락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을 아주 적나라 하게 보여주고자 하셨던 것이다.
미가가 이처럼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짓는데 크게 일조한 한 사람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그는 바로 미가의 잘못된 행동에 맞장구 쳐준 레위 청년이었다. 에브라임 산지에 정착하기 위해 내려온 이 레위 청년에게 안락한 생활을 보장해 주는 미가의 말은 참 달콤한 제안이었다. 하나님 보시기에 바른 일은 아니었지만 레위 청년은 미가의 아들처럼 대우를 받으며 편안한 삶을 살 수 있었다. 미가는 레위 청년을 아버지처럼 제사장이 되어달라고 요청을 하였지만 제사장으로 고용되어 미가로부터 실제적인 도움을 받으며 살아야 했던 이 레위 청년은 결국 미가의 아들처럼 살아갈 수 밖에 없었다. 레위 청년은 생활에 있어서는 안정되고,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그가 하나님께 제사드리는 제사장의 직무를 온전히 감당한다는 것은 불가능하였다.
사사시대 미가라는 한 사람의 종교적 타락은 당시 많은 백성들의 종교적 타락의 모습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그런데 이런 미가의 모습이 사사시대에만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에게도 나타나는 것을 보게 된다. 어떤 일을 하면서 나름 열심있는 모습을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고, 그로 인해 복을 주실 것이라 기대할 때가 많이 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방법이 아닌 인간의 방법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잘못된 열심에 대해서는 철저히 책망하시고, 그 행위를 심판하신다.
사사시대에 하나님께서는 세우신 제사장으로 하여금 실로에 나아가 예배드리도록 하였지만, 미가는 자기 방식대로 하나님을 열심히 섬기려 하였다. 하지만 그의 잘못된 열심은 너무나 위험한 것이었다. 영적으로 혼탁한 시대에 자기 생각과 소견대로 살아가며, 자기 방식대로 하나님을 섬기려 하는 사사시대의 무지한 백성이나 이러한 사람들의 잘못된 행동을 분명히 지적하기 보다 오히려 맞장구 치며 자신의 욕심과 이익의 기회만을 살피는 악한 지도자의 모습은 오늘날에도 어렵지않게 찾아볼 수 있다.
오늘날 교회 건물을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말하는 목사들도 많다. 교회 건물은 단지 성도들이 모이는 곳에 불과한 것이다. 성전은 성도의 심령 속에 세워지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 건물을 성전이라고 말을 하면서 성전 건축 헌금을 내도록 유도하거나, 신도들의 보증으로 은행에서 엄청난 돈을 빌려 교회 건물을 확장하고 치장하는 것이다. 미가시대와 다를 바가 없는 모습이다. 교회가 돈이 많아지면, 결국 주식회사처럼 자식에게 물려주기도 한다. 자기 소견대로 말을 하는 교회는 그 교회에 왕이 없다는 말이다.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는 자들의 교회인 것이다. 이런 교회는 하나님의 지혜가 없는 교회인 것이다. 이런 교회는 예수의 이름을 우상처럼 마치 복을 주는 대명사처럼 여기는 것이다. 돈을 끌어모으기 위해서 신약시대도 십일조를 의무적으로 내야 하는 것처럼 말을 하기도 하고, 세상의 복을 비는 기복신앙이 만연하는 것이다. 대학 입학 시기에 자녀의 합격을 비는 기도를 보면, 모든 종교는 하나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타 종교에서 모든 종교는 하나라고 말하는데, 기독교는 아니라고 말을 할 수 있는가?
율법 속에 있는 자와 복음을 깨닫는 자가 함께 섞여 있는데도 교인들을 자극할지도 모르므로, 교회 안에 있는 모두가 왕 같은 제사장이고 구원받은 자라고 쉽게 말을 하고 있다. 여전히, 날마다 죄를 용서받아야 한다고 믿는 자들은 성소뜰에서 왔다갔다 하는 율법에 매인 자들이다. 그들에게는 왕(그리스도)이 없으므로 자기의 소견대로 생각하고 행동한다. 그들은 여호와를 본 적이 없으므로 자기가 생각하는 하나님을 만들어서 자기를 위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다. 마치 출애굽해서 시내산에서 금 송아지를 만든 이스라엘 백성들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그들은 우상을 섬긴 것이 아니라 금 송아지를 하나님을 생각한 것이다. 하나님을 본 적이 없으므로 자기들 소견대로 행동한 것이다.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된 자를 왕 같은 제사장으로 하나님이 임명하실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고, 함께 부활하였음을 믿는 자가 그렇게 되는 것이다. 부활을 육체가 죽은 뒤에 이루어지는 것을 믿는다면 그는 율법 속에 여전히 머물고 있는 신도에 불과한 것이다. 왕 같은 제사장에서 왕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성도의 심령 속에 예수님이 재림하여 들어오지 않으면 왕이 될 수 없다. 먼 미래 예수님이 재림할 것이라고 믿는다면, 지금 이 시점에서 그는 왕 같은 제사장이 될 수 없는 것이다. 날마다 죄를 용서받아야 하는 율법 속에 있는 죄인일 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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