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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산우회 1박2일 가을나들이 (2016.10.11~12) 이종완 산우회장이 취임후 산행계획을 알리면서 회원들 협조를 답부한 일이 생각난다. "우리가 살면 얼마나 사나" "우리 다같이 잘해보자" 웃음이 나지만 정감이 가는 얘기다. 그런 그가 마음에 쏙 드는 가을나들이 계획을 세웠다. 이번 가을 나들이는 1박2일로 동해안 바다를 구경하고 경북 울진으로 가서 온천욕으로 피로를 푼 다음, 다음날 청량산을 오를 계획.귀경하면서 부석사,소수서원을 구경하고-- 필자는 종군기자로 지금껏 모든 장거리 오상회여행이나 오상산우회 산행을 단 한번도 빠짐없이 다녔기에, 물론 일찌감치 다른 일정을 조정,취소하고 참가신청을 했다. 전국 사찰중 가장 좋아하는 사찰중의 하나인 청량사는 여러차례 다녀온바 있지만 몇번을 가도 좋고 정말 아름다운 사찰이다. 아마도 전국 산사음악회의 시초가 여기서 시작된 것 아닌가 생각된다. 밤중에 하는 청량사 산사음악회도 참가한 기억이 난다. 이렇게 멋진 산행계획인데 불행히도 발목을 다쳐 과연 산행을 할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섰다. 열심히 병원과 집에서 물리치료를 했다. 발목보호대를 지참하고 산행에 참가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혹 걸음이 늦어 민폐가 되지 않을까 걱정도 하면서-- 갑자기 날씨가 싸늘해져 옷을 두껍게 입고 오라는 사무총장의 정보안내도 있었지만 더운 날씨 보다는 약간 서늘한 날씨가 산행에는 훨씬 좋다. 드디어 10월 11일 시간에 맞춰 동천역으로 향했다. 압구정에서 8시정각에 출발한 버스는 8시반경 동천역 환승정류장에 도착했다. 일행이 모두 29명이다. 김밥과 과자 물을 배급해 준다. 쉽게 받지만 준비한 분들에 감사하는 마음을 꼭 가져야 한다. 김밥은 이장원 강상회장의 협찬이란다. 고마운 일이다. 압구정의 이집 김밥은 정말 맛이 좋다. 버스 안에서 이남수 사무총장의 일정소개와 조상희 오상회장의 인사,이종완 산우회장의 인사도 있었다. 이번 여행의 일정을 영상물로 제작하여 방영해주었다. 미리 답사를 한 줄 알았다. 알고보니 우재 석풍장동문이 인터넷에서 자료를 모아 짧은 제작일정에 날밤 세워가며 만들었단다. 물론 워낙 잘 만들어 모두 감탄을 했지만 그 제작과정을 이해하는 필자는 그의 철저한 봉사정신이 고맙고 존경스럽다. 서영교 동문이 사정으로 불참함을 알고 석동문이 앙드레류의 '최고의 명장면 100선' "The 100 Greatest Moments" CD를 준비해와 오가는 중 계속 감미로운 그리고 흥겨운 음악을 감상할 수 있게 해 주었다. 다같이 그의 노고와 애정에 감사를 드려야 한다. 감사드려야 할 동문이 또 있다. 이광현 동문이다. 버스를 타고 가는 동안 지루한 시간도 메우고 이번 여행에 필요한 정보도 교육시킬 목적으로 우선 여행지 명소 마다 자세한 소개를 한다. 백암에서 온천욕을 하게 되니 꼭 알아야 된다면서 우리나라 온천수와 온천지 소개를 -- 그리고 울진에는 소나무가 유명하니 소나무에 관해 산 교육도 받았다. 동굴얘기도 전문가 수준이다. 박학한 그의 지식을 통채로 전수받은 기분이다. 이왕 고마운 동문들 소개를 하니 이어서 해야겠다. 이회장은 인복이 많은가 보다. 이봉규 전 산우회장은 이번 행사의 회계를 맡아 계산업무를 담당한다. 돈은 늘 계산이 틀리게 마련이다. 이런 어려운 업무를 전부 담당해 준다는 건 큰 복을 받은 셈이다. 또 장수웅 전 산우회장도 발벗고 나섰다. 이번 청량산 산행을 리드할 산행대장을 맡았다. 시간에 맞춘 정확한 사전계획을 세워야 한다. 거기에 하나 더--인원점검 업무를 맡았다. 버스에 탈때마다--인원을 세는 그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한명이라도 비게 되면 진행이 안되니--머리숫자가 틀릴때는 암만 세어도 자꾸 틀린다. "안탄 사람 손들어봐라" 정말 그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또 첫날 저녁 회만찬을 위해 와인을 넉넉하게 준비해준 이재환동문 역시 박수로 고마움을 표하고 싶다. 그뿐인가. 김동엽 동문과 홍순호 동문도 양주로 식사의 품격을 높여 주었다. 이런 모든 행사계획은 산우회장 혼자서 할 수 없는 일이라 조상희 오상회장이 앞장서서 전적으로 도우고 이남수 사무총장이 전일정의 진행을 해주니 모두가 일사분란하게 여행을 즐겁게 마칠 수 있었다. 이런 고마운 동문들이 있기에 오상회 행사는 늘 멋진 여행이 가능한 것이다. 정동진의 모래시계 일행을 태운 버스는 이종완회장과 과거 인연을 가졌다는 송기사의 안전운행으로 3시간이 조금 더 걸려 강원도 강릉의 정동진에 도착하였다. 경복궁에서 정동쪽에 위치한 바다로 조선시대부터 지명이 명명되었다고 한다. 정동진 지역은 정동진역,모래시계공원,정동진 조각공원,해수욕장 등 많은 관광지가 있다. 이곳은 1990년대 중반에 TV 드라마로 방영되었던 모래시계의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전국적인 관광명소가 되었다. 특히 세계에서 바다와 가장 가까운 역으로 기네스 북에 올라 있는 정동진역 구내에는 ‘고현정 소나무’라고 알려진 소나무가 있다. 정동진에서 가장 볼 만한 경치는 장엄한 일출(日出)이다. 소나무와 철길이 어우러진 해돋이는 정동진만의 자랑이다. 청량리역에서는 매일 정동진의 해돋이 시각에 맞추어 해돋이 열차가 운행되고 있다. 모래시계공원에서 상징으로 만든 크나큰 모래시계 앞에서 단체사진을 남겼다. 정동진 기차역은 여기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단다. 모처럼 밟아보는 바닷가 모래사장- 마음이 푸근해 진다. 여행 온 실감이 난다. 점심은 동해시에 있는 식당이다. 옥계와 망상해수욕장을 지나 동해시내로 들었다. 동해시는 과거 삼척의 북평읍과 명주군의 묵호읍이 통합되어 만들어진 도시이다. 기사가 추천한 식당은 볼품없는 건물에 옥호도 이상한 '동그라미식당'이라는 곳이었는데 정작 먹어보니 값도 저렴하고 맛이 아주 좋다.모듬회 한접시와 몇가지의 현지에서 잡은 생선구이 한접시--불과 14,000원이라니- 추암 촛대바위 애국가 첫소절 배경화면으로 나오는 촛대바위는 하늘을 향해 찌를듯 높이 솟아 있고 주위에 형제 바위,할미바위 등 유명한 기암괴석이 모여 장관을 이룬다.주위의 추암 근린공원은 전국 최고의 해돋이 명소로 조각전시장과 야외무대가 설치되어 있다.정조의 어명으로 김홍도가 그렸다는 금강사군첩 능파대가 시선을 끈다. 다음 행선지는 삼척의 해신당공원이다. 여담-추암 촛대바위에 관해 이남수 사무총장의 해설중 추암을 한자로 풀면 촛대추,바위암 이므로 추암 자체가 촛대바위란 뜻이다. 추암촛대바위는 마치 역전앞 이라는 풀이와 같다는 주장. 그럴듯한 말에 아무도 이의를 달지 않았는데 스마트폰으로 한자를 찾으니 추암은 湫(다할추), 바위암(岩)으로 판명되 그럴듯한 거짓말에 속았다며 재미있어 했다. 해신당(海神堂)공원 해신당공원은 삼척시내에서 동해안을 따라 30km 떨어진 원덕읍에 자리한 동해안 유일의 남근숭배민속이 전해 내려오는 남근조각공원이다.수많은 남근 조각품들이 눈을 뗄수 없이 길목에 자리하고 있어 해학과 과장에 실소를 금치 못한다. 남근의자,남근말,한조각에 두개의 남근--12지상의 머리는 모두 남근으로--2007년도 금상과 동상작품을 찾아내었다. 멀리 여성들이 남근위에 앉아 깔깔거리는 모습도 눈에 띈다. 옛날 신남마을에 결혼을 약속한 처녀총각이 살았는데 어느날 해초작업을 위해 해변에서 조금 떨어진 바위에 처녀를 태워주고 돌아온 총각.갑자기 거센파도와 강풍으로 처녀는 물에 빠져 죽게 되고 그 이후 처녀의 원혼 때문에 고기가 잡히지 않았다는 소문이 돈다. 어느날 한 어부가 바다를 향해 오줌을 쌌더니 풍어를 이루고 돌아오게 되었단다.그 이후 이마을에서는 매년 정월대보름이 되면 나무로 실물 모양의 남근을 깎아 처녀의 원혼을 달래는 제사를 지내게 되었다는 애바위 전설이 재미 있다. 해신당공원을 나오니 해변 가게에서 남근 술잔과 벌떡주를 팔고 있었다.기념으로 벌떡주 한잔씩 마셔본다. 후포항/백암온천숙소 후포항은 울진군 남쪽 끝에 입지한 동해 중부해역의 주요 어항(漁港)이며 꽁치·오징어·고등어·대게·가자미 등 동해에서 생산되는 모든 어종의 집산지이다. 특히 대게철이면 영덕군의 영덕대게와 쌍벽을 이루며 울진대게 축제가 이루어 진다. 백암온천에서 동해쪽으로 나오면 월송정으로 유명한 평해해변이 있고 평해에서 남으로 조금 내려가면 후포항이 있다. 이른 새벽 후포어시장의 대게,홍게 경매를 통해 대게를 사는 재미도 있다. 예전에 매년 2월말경 백암온천욕,백암산(1,004m)등산도 하고 대게 경매도 한 추억이 떠오른다. 추천할만 한 겨울여행이다. 대게는 음력설 무렵이 최상. 후포항에 도착하니 시간이 조금 일러 후포 등기산근린공원 산책로를 올랐다. 계단을 힘겹게 올라 마침 조명이 시작된 후포항의 경치를 감상한다. 식사시간이 되어 버스를 타고 저녁식당으로 갔다. 이번 여행의 하일라이트 만찬이다. "후포대게왕 남산횟집" 대형식당이다. 테이블마다 푸짐한 회접시와 와인이 진열되고 양주병도 돌아 다닌다. 조상희회장,이종완산우회장의 건배-- 술배,밥배 모두 만땅고가 되어서 일어선다. 숙소인 백암온천장 한화콘도로 향했다. 한방에 3명씩 방배정이 끝나고 방조장이 조원을 인솔한다. 필자도 조장 감투라--우리 방은 이남수총장,우재 석풍장과 한방을 같이 했다. 이종완회장과 동숙하는 조중헌전회장이 그냥 맹숭맹숭 보낼 수 있냐며 호출이다. 강종우 주당까지 부르고--조병훈,고덕영, 나중에는 김동엽,김광,홍순호까지 다녀갔다.결국 제발 좀 가달라며 애걸하는 방주인 조중헌--우리들 대답이 걸작이다. "가나봐라 가나봐라". 강종우 주당은 방을 열어주지 않아 결국 우리방에 합류하고.-남은 와인도 다 마시고 술이 떨어지니 4명은 다시 밖으로 나갔다. 최후의 4인으로 인증샷도 남기고-- 종군기자로서 책무를 다하기 위해 끝까지 자리를 같이 했다. 온천장에서 캔맥주를 사들고 와서 노닥거리다 새벽2시에야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6시반 온천욕을 하고 식당으로 가니 메뉴가 황태 해장국이다. 구수한 황태국이 별미다. 또 고덕영 주당이 해장술을 해야 한다며 막걸리를 사왔다. 이 나이에---정말 못말리는 주당들이다. 문막휴게소에서 정동진해수욕장 모래시계 앞에서
첫 중식은 동그라미식당에서 회와 생선구이로- 추암역
방향표지판과 해암정 기암들이 즐비하다 촛대바위 김홍도작 금강사군첩 추암도 일출의 명소이다 해신당공원
여러 남근상들 해신당 사당
벌떡주 후포항
야간조명/만찬식당 회와 와인 만찬 숙소회식
최후의 4인방 황태국 조식 구주령을 넘으며 구주령에서 작은 금강산 봉화 청량산 아침 8시20분 바빠진 스케쥴로 하루를 시작했다. 백암 한화콘도를 떠나 구주령을 넘어 영양을 거쳐 봉화로 가야 한다. 구주령은 울진군 온정면(백암온천)과 영양군 수비면의 경계에 있는 해발 620m의 험준한 고갯길이다. 구주령 표지석이 있는 곳에서 단체사진을 남겼다. 멀리 운무에 가려 첩첩이 중복된 희미한 산맥들이 너무나 아름답다. 한폭의 수묵화로 보인다. 강산과 풍월은 원래 따로 주인이 없다. 오직 한가로이 즐기는 우리가 바로 주인인 것이다. 고개를 넘어 수비면을 지난다. 영양은 고추가 유명하다. 청송고추와 합쳐 청양고추라고 불렀는데 충청도 청양군에서 청양고추로 특허까지--그래서 분쟁거리로 화제였다고. 그러고 보니 영양을 지나면서 차창 밖으로 보이는 전신주에는 빨간 고추 두개를 앙증맞게 달아놓아 애교스럽다. 봉화에 들어선다. 닭실마을을 지난다. 닭실마을이란 유곡리(酉谷)의 순 우리말이다. 안동권씨의 집성촌으로 경치가 빼어나 관광지로 이름 나 있고 이곳에서 만드는 유과는 유명하다. 마침내 이번 행사의 주목적지인 봉화 청량산입구에 도착했다. 산행팀과 청량산 관광팀으로 분류하니 반반이다. 필자는 비록 발목부상으로 불편했지만 산행팀에 참가했다. 14명이다. 공사로 인해 산행로 입구까지 10여분을 더 걸었다. 입석이라는 출발지에서 산행로를 따라 오른다. 조금 오르니 좌측으로 청량사(1.0km),우측으로 응진전(0.6km),김생굴(1.1km) 표지판이 있었다. 우리는 응진전에서 청량사쪽으로 방향을 틀기로 했다. 장수웅 대장이 앞 방향도 잡고 뒤쪽으로 와서 뒤쳐지지 않도록 후미가이드도 맡고 수고를 한다. 급한 계단길을 오르니 시야가 터이고 나뭇가지 사이로 엄청난 바위산이 보이기 시작한다. 청량산은 기암괴석의 바위산으로 유명하다. 복지관 한국화 시간에 청량산 바위를 그린 기억이 난다. 다시한번 그릴 그림소재를 찾으려고 열심히 바위산 사진을 찍었다. 총명수를 지난다. 총명수는 신라 최치원이 이 물을 마시고 총명해졌다는 것으로 유명한 샘물이다. 웅장한 금탑봉 속에 파묻힌 응진전(應眞殿)과 그리고 응진전과 가지런히 자리한 무위당(無爲堂)을 지난다. 응진전은 청량사 부속암자로 석가삼존불과 16나한을 봉안하고 있는데 특히 법당 내부에 공민왕 부인 노국대장공주의 상이 안치되어 있다. 공민왕 청량산 몽진의 역사를 엿볼 수 있다. 응진전 절벽뒤 동풍석(動風石:흔들거리기만 할뿐 떨어지지 않는다는)의 설화는 유명하다. 가장 경치가 좋다는 어풍대-금탑봉 중층에 위치하며 내청량과 외청량의 연결지점으로 고대 중국의 열어구가 바람을 타고 보름간 놀다갔다 하여 어풍대라 불린다. 어풍대는 약간 튀어나온 절벽난간 이라 여기서 보이는 경치는 가히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어풍대에서 기념사진을 남긴다. 어풍대 뒤쪽 옆으로 연화봉이 그리고 오른 뛰쪽으로 연적봉과 탁필봉이 하늘을 찌를듯이 솟아 있다. 작은 금강산이라고 부른다는 데 전혀 이의가 없다. 웅장한 바위산 아래로 청량사 가람이 아름답게 배치되어 있었다. 청량사가 눈앞에 보이며 부지런히 내려가는 길에 문득 빨간 단풍이 시선을 잡아끈다. 아하! 단풍철이 가깝구나! 실감이 난다. 아무리 바빠도 아주 귀한 술 "진" 한잔 하고 가잔다. 우재의 베낭에서 진을 꺼낸다. 와~기막힌 이 맛! 잊지못할 맛이다. 사찰관광팀이 기다릴 것 같아 속도를 내려 청량사 경내로 들어선다. 청량사 청량사는 신라 문무왕때 원효대사 의상대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해지며 송광사 16국사의 끝스님인 법장 고봉선사(1351~1428)에 의해 중창된 고찰이다. 본전은 유리보전(琉璃寶殿)이며 금탑봉 아래 응진전은 683년에 의상대사가 창건 한것으로 전해진다.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7호로 지정된 유리보전은 동방유리광세계를 다스리는 약사여래를 모신 전각이라는 뜻으로 법당 안에는 약사여래 부처님을 중심으로 좌측에 지장보살 우측에 문수보살이 모셔져 있다. 약사여래 부처님은 특이하게도 종이재질을 이용한 지불로서 이곳에서 지극정성으로 기원하면 병이 치유되고 소원 성취의 영험이 있는 약사도량이다. 등산코스에서 청량사로 가는 길에 "솟대와 시 그리고 나그네"라는 문학적 표현의 글이 담벼락에 써져 있는데 사찰과는 좀 어울리지 않는 붉은 기와가 얹힌 집앞을 지난다. "약차를 그냥 먹는 집"이라는 안내판이 있었지만 삽작문이 닫혀 있어 그냥 지나간다. 청량정사(淸凉精舍)가 나왔다. '도산서원 거경대학'이라는 세로 간판이 걸려 있다. 淸凉山淸凉寺 라는 멋진 서예글씨가 보이는 2층에는 설선당(說禪堂)이 보인다. 물이 귀한 청량사 이나 식수대에는 시원한 물이 흘러나와 고단한 나그네의 목을 추겨준다. 그냥 지날수 없어 한잔을 마신다. "원효대사가 다녀간,그 길위에 서다'라는 제목으로 원효대사에 얽힌 글이 빼곡히 적혀 있다. 범종각을 중심으로 우측 계단을 올라 주불전인 유리보전을 구경하고 오른쪽 계단으로 내려 온다. 파란 하늘에 높이 솟은 오층석탑이 유난히 아름답게 다가선다. 기도드리는 불신자들 모습도 보이고- 내려오면서 안심당(安心堂)을 지난다. 전통찻집인데 예쁜 전통등도 구경할 수 있다. 건너편 장독대가 왜 유난히 아름답게 보이는지-- 시간이 급하여 정신없이 내려오니 일주문이 반긴다. 거꾸로 내려오느라 미처 보지 못했던 청량산청량사라는 일주문 행서체 글씨가 멋있어 카메라에 담는다. 일행들과 사진도 남기고- 예정보다 늦었으니 발걸음이 바쁘다. 사찰관광팀은 벌써 버스에서 기다린다. 일행을 태운 버스는 다음행선지 영주 부석사 앞 식당으로 달린다. 청량산 등산팀 입석에서 등산코스/입석-응진전-총명수-어풍대-청량정사-청량사 권성구의 시-청량산은 금강산에 버금,소금강이라고. 최치원이 거처했던 암자터 등산로 응진전으로 최치원이 이 물을 먹고 총명해 졌다는 총명수 깍아세운 듯한 바위산 동풍석 무위당 응진전 응진전 내부
금탑봉 어풍대에서 연화봉,연적봉,탁필봉 등 험준한 기암들이 솟아 있다. 어풍대에서 보이는 청량사 사찰 빨간 단풍이 물들기 시작한다 산에서는--산처럼 나무처럼 맑고 고요하게 청량정사와 산꾼의 집 솟대와 시 그리고 나그네 약차를 그냥 먹는 집-삽작이 닫혀 있어 차를 먹지 못했다. 청량정사 청량사 경내로 들어선다. 청량한 샘물 원효가 다녀간,그 길위에 서다 범종각 유리보전 심검당이 있고 뒤로 산신각도 보인다. 오층석탑 일주문 멀리 보이는 청량산 바위의 위용
청량사 입구 계단으로 인도길을 만들어 놓았다. 영주 부석사(浮石寺) 영주로 달린다. 빨갛게 익은 사과밭이 보인다.파란 하늘과 빨간 사과 가을의 정경이다. 부석사 입구의 '자미가'라는 대형음식점이다. 산채비빔밥으로 한그릇을 뚝딱했다. 이곳 막걸리인 순흥 생 선비주가 비빔밥과 어울려 맛을 더한다. 부산의 막걸리 생탁도 나와서 경쟁에 뛰어든다. 그래도 여긴 순흥인데? 밥을 다먹고 나와서 부석사를 들리자는 사람이 부쩍 많아졌다. 당초에는 예정에 없었는데 의외로 부석사를 못봤거나 수십년만에 온다는 친구들 성화로 결국 부석사에 자유시간을 주었다. 부석사는 국보와 보물이 많은 절로 유명한 큰 절이다. 부석사로 들어가는 양 옆길에는 사과밭이 늘어서 있고 마침 사과철이라 노점에서 사과를 파는 장사치들이 늘어서 있다. 단풍철에는 빨간 단풍과 노란 은행잎이 어우러져 가을단풍을 만끽할 수 있는 절로 유명한데 아직은 철이 좀 이르다. 일주문을 지나 법당으로 들어선다. 일주문에는 太白山浮石寺란 명필의 편액이 걸려 있고 뒷면에는 東海華嚴宗刹이라 적혀 있다. 신라 문무왕때 의상대사가 창건한 부석사는 목조건축물의 백미라는 국보 제18호 무량수전(無量壽殿)부터 봐야 한다. 유홍준교수의 문화유적답사기에 나오는 무량수전의 배흘림기둥 때문에 유명해졌다. 우리가 예전 학창시절 배울 때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로 무량수전을 배웠는데 안동 봉정사가 더 오래되었다는 것이 판명되었다.무량수전 안에는 국보 제45호인 소조여래좌상을 모시고 있다. 소조란 흙으로 빚었다는 말로 고려 유일의 희귀불상이다. 무량수전앞 안양루에서 바라보는 산맥들의 풍경은 단순히 아름답다는 표현 만으로는 부족하다. 앞산은 진하고 먼 산들은 연한 겹겹이 싸인 산들을 해질무렵 바라보는 행운을 가지려면 탐방 시간을 잘 맞추어야 한다. 무량수전 앞 마당에는 또한 국보 제17호인 석등(石燈)이 고풍스럽게 서 있다. 부석사에 오면 꼭 들러야 하는데 보통은 빠트리는 경우가 많은 곳이 조사당이다. 조사당(祖師堂)은 무량수전의 동북쪽 산기슭에 위치한 고려시대의 목조건물로 국보 제19호 이다. 내부에 부석사의 창건주인 의상스님의 상(像)을 봉안하고 있다. 본래 벽면에는 사천왕과 제석천, 범천을 그린 6폭의 벽화(국보 제46호)가 있었다. 지금은 새로 지은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그 옆에는 의상대사의 지팡이가 나무가 되었다는 선비화도 볼 수 있다. 우리 일행 몇몇만이 조사당을 보고 내려오면서 박물관에 들러 조사당의 건축물 구조를 자세히 볼 수 있었고 위에 언급한 국보 제46호 조사당 벽화 원본도 보았다. 부석사 입구 식당가 점심시간 식당과 막걸리 부석사로 진입하는 길옆 사과밭
일주문과 안양문 무량수전(국보 제18호) 안양루에서 무량수전 내 소조여래좌상(국보 제45호)/선묘각 당간지주/삼층석탑 봉황산 부석사 조사당(국보 제19호) 선비화 조사당벽화(국보 제46호) 조사당 구조(박물관에서) 국보 제17호 석등 부석사 가람들 부석 소수서원 선비여행 다음 행선지는 소수서원과 선비촌이다. 선비촌부터 먼저 들렀다. 주차장에 내리니 대형 선비상이 우뚝 서 있다. 앞쪽으로 명품 소나무 한그루가 멋스럽게 춤추듯 가지를 뽐낸다. 저잣거리를 보고 군자교를 지나 선비촌으로 들어갔다. 가람댁,김규진가,만죽재,인동장씨 화기종택도 재미있게 보았다. 두암고택과 김문기가도 구경한 후 소수서원으로 넘어갔다. 소수서원은 풍기군수였던 주세붕 선생이 고려말 유현인 안향 선생의 연고지에다 중종 37년(1542) 사묘를 세워 선생의 위패를 봉안하고 다음해 학사를 건립 백운동서원을 창건한 데서 비롯되었다. 명종 5년(1550)퇴계 이황선생이 풍기군수로 재임하면서 왕으로부터 소수서원(蔬修書院)이란 사액을 받게 되면서 최초의 사액서원이자 공인된 사립고등교육기관이 되어 4천여명의 유학생을 길러 낸 곳이다.서원 주변은 수백년의 적송 수백그루가 학자수림을 이루고 있다.냇물 건너편 바위에 붉은 글씨로 敬이라 쓴 글자가 눈에 띈다. 경자바위라 부르는데 주세붕 선생이 직접 쓴 글씨로 경자 위에는 흰 글씨로 白雲洞이 씌어져 있다. 조금 떨어진 건너편에 퇴계가 명명했다는 취한대(翠寒臺)도 보인다. 죽계의 시원한 물빛에 취하여 시를 짓고 풍류를 즐긴다는 의미이다. 소수서원에는 서원에서 공부하던 유생들이 유숙하던 지락재,학구재,일신재,직방재가 있다. 강의장이던 강학당,안향선생의 위패를 모신 문성공묘를 보고 장서각,사료관,전사청,영정각을 둘러보았다.
이광현 동문의 안내로 길 건너편에 있는 금성대군신단으로 갔다. 가는 길옆에는 노란코스모스가 만발해 있어 한층 가을운치를 더했다. 금성대군 신단은 사적 제491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조선 세조 때 단종임금의 복위(復位)를 도모하다가 무참히 화를 입은 금성대군(錦城大君세종임금의 여섯째 아들)과 순흥부사 이보흠(李甫欽) 및 그 일에 연루되어 순절한 의사들을 제사 드리는 곳이다. 단종복위운동이 실패되자 순흥부는 폐부되었다. 그 후 숙종 9년(1683) 순흥부가 복원되고 순절 의사들이 신원 되자 동와 45년(1719)에 부사 이명희(이명희)가 단소를 설치하였으며, 영조18년 (1742) 경상감사 심성희가 단소를 정비하고 위를 모시고 순의비를 세워 매년 봄·가을로 향사를 지내오고 있다. 선비상 소나무
김문기가옥/누구일까요? 인동장씨 종택/일영대(해시계) 경렴정/시료관 학구재/지락재 일신재/직방재 장서각/영정각 문성공묘(안향선생의 위패를 모신다) 오백년 수령의 은행나무 두그루가 서 있다. 주세붕 선생의 친필 敬자 숙수사지 당간지주 금성대군신단으로 가는 길에 노랑코스모스가-- 단종복위운동 성지 금성대군신단 가는길 금성대군신단 마지막 식사(이천쌀밥집 청목) 모든 일정이 끝났다. 귀가길에 이천 쌀밥집에서 저녁식사가 예정되어 있다. 1박2일 여섯끼를 모두 오상산우회에서 제공하니 연 이틀 사모님이 좋아하는 영식(0食)님이 되었다. 앙드레류의 뮤직스테이지를 감상하면서 조용히 이틀간의 여행일정을 더듬는 시간이다. 진정한 친구란 동정이나 동경이 아닌 동행의 대상이다. 옛 학우들이 이제 칠십중반의 노신사가 되어 아무 이해관계 없이 여행을 동행하면서 우정을 나눔은 정말 멋진 인생의 행복한 장면이다. 이종완 산우회장의 "우리가 살면 얼마나 사노? " 단순하면서도 익살스런 표현이지만 과연 인생의 진리가 담겨져 있다. 이천 쌀밥집 청목에서 마지막 식사를 마치고 귀경차에 올랐다. 죽전간이정류장에서 일부는 내리면서 이틀간의 여정을 모두 마쳤다. 전형적인 화창한 가을날씨에 단 한건의 작은 사고도 없이 즐거운 가을나들이가 되었다. 서로 양보하고 배려하고 봉사하는 오상 동문들을 보면서 우리 모두 더욱 행복한 나날이 이어졌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모두들 수고했어요 ! 감사합니다. 긴 여행기를 지루하게 여기지 않고 읽어주신 동문들 복 받을 지이다. -e- <참가동문>강종우,고덕영,김 광,김남중,김동엽,김수철,김종대,김천기,백호익,석풍장, 이광현,이남수,이봉규,이상윤,이성주,이윤달,이윤우,이인희,이장원,이재룡, 이재환,이종완,장경길, 장수웅,조병훈,조상희,조용헌,한재석,홍순호-29명- 인물사진은 별도로 올리겠습니다. |
첫댓글 종군기자 미전께서 너무 자상하게 현장사진을 곁들인 1박2일의 여정을 올려 주시니 다시 한번 현장에 있는 듯한 감정이 듭니다. 이번에 사정(?)이 있어 참석하시지 못한 회원들도 현장기분을 한번 느껴보셔도 될 정도로 생생한 기록입니다. 미전! 수고가 많으셨음니다. 감사합니다._조 상 희올림-
산우회 행사지만 오상회 회장과 사무총장께서 오상회 일로 여겨 금전지원은 물론 전심전력 애를 쓰신 것 모두 보고 느꼈습니다.감사히 생각합니다.
우리가 남이가? 오상회는 하나다라고 평소 생각하고 있읍니다. 내일/네일이 따로 있나요? 우리가 하는 무든 행사가 오상회 회원 모두의 행사가 아닌가요? 우리 오상회원은 영원한 친구입니다.!!!-조 상 희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