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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 로군산 선계(仙界) 트레킹 보고서
- 천귀일조로(첸꾸이티아오루, 千龜一條路)
4월 내내 달빛나비 객잔에는 손님이 거의 없었다. 주인장 따슝의 의지도 없었다. 마음은 꽃피는 콩밭에 가 있었다. 콧구멍 속으로 들어온 봄바람은 어디 나갈 데를 못 찾아 따슝의 마음만 부풀리고 있었다. 게다가 카페 <여강 이야기>의 관리도 오랫동안 밀린 숙제처럼 저 마음속 깊은 곳에 끈적끈적하게 달라붙어 있었다.
뭔가 돌파구가 필요했다. 그래서 여인들이 있거나, 돈을 받거나 하지 않으면 평소에 저얼~대 안 하는 트레킹을 가기로 했다. 마침 5월말에 오시는 한국의 <발도행> 손님들을 위한 코스 답사도 겸해서.
시 간: 2015년 4월 26일 ~ 28일, 2박 3일(트레킹 시간은 달랑 6시간)
장 소: 여명 로군산 국립공원
참가자: 남자새끼들 5명
- 따슝 &
- 이우양: 리장 최고의 여행사, 고도투어의 산악 및 음주문화 전문 가이드
- 심박사: 작년 11월부터 라오스 생활을 정리하고 달빛나비로 들어와 살고 있음. S대 경제학과 출신으로서 경제적 판단 하에 계속 미혼으로 살고 있으며, 자본주의 미래장기불황에 결국 없어질 것을 대비하여 재산을 한 푼도 모아놓지 않은, 거시적 안목의 낭만주의자. 라오스에서는 정신병이 걸릴 것처럼 덥고 지루했었는데 이곳 리장과 옥호촌은 너무 시원하고 재미있다고 함. 운남 거주 10년(리장 2년 + 곤명 8년)의 여행 베테랑.
- 주성치: 2006년 자전거로 중국 청도부터 운남까지 와서 결국 이곳 리장과 인연을 맺음. 강한 체력만큼 말이 많은 청년.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는 예전 대안학교 임시 교사시절 학생들과 함께 했던 묵언수행 여행이었다고 함. 매년 두 세 차례 리장에 와서, 한국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이야기들을 쉴 새 없이 반복해서 전해줌. 가끔 본인보다 말 많은 다른 사람을 보면 깜작 놀라는, 보기 드문 청년.
- 승택형: 심박사의 오랜 친구. 미국으로 사업하러 가기 전 심신을 단련하고자 리장 여행을 온, 늘 메모리가 부족한 난사 전문 사진가.
따슝이 차를 몰고 리장을 출발했다. 리장에서 로군산 여명까지는 차로 3시간 정도의 거리지만, 남자만 태우고 운전을 할 경우 심정적 거리는 6시간 이상이다. 가는 길의 차안은 무척 지루하고 냄새나고 답답했지만, 창밖으로 보이는 금사강의 봄 풍경은 아주 근사했다. 리장에서 고속도로를 타고 40분 정도 달리고,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호도협으로 가던 옛날 국도를 탄 후, 진사강변에서 호도협 반대방향으로 틀면 바로 리밍으로 가는 길이다. 오른쪽으로는 금사강과 건너편 샹그릴라의 예쁜 산들을 볼 수 있으며, 왼쪽으로는 예쁜 운남 농촌의 분위기를 감상할 수 있는 도로이다. 석고(스구, 石鼓)-금사강이 서북쪽에서 흘러오다가 처음으로 방향을 바꿔 동북쪽으로 흘러가는 ‘장강제일만’이 있는 동네-를 지나며 만나는 보리밭은 벌써 수확이 끝났고, 탈곡한 보리는 햇볕이 좋은 도로위에 잘 깔려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가다가 중흥(중싱, 中興)이라는 동네를 만나면, 왼쪽으로 차를 돌려 산길로 들어간다. 이곳 경치도 정말 예술이다. 팬션과 가든이 하나도 없는, 상업적으로 개발이 안 된 예전 강원도 영월-정선 구간의 길 정도? 밭은 풍요롭고, 마을은 아름다우며, 길 위의 사람들의 표정은 순수하다! 그렇게 그윽한 경치에 취해 40분 정도를 더 들어가 만나는 곳이, 바로 로군산 국립공원 안에 자리 잡은 마을, 여명(리밍, 黎明)이다.
여명에 도착한 첫째 날,
석고 안에 있는 다른 마을들을 들러보느라 생각보다 도착시간이 조금 늦어졌다. 다섯 남자는 만장일치로 첫 날 트레킹은 포기하고, 이곳 여명의 숨겨진 트레킹 코스를 수소문하고자 술을 마시기로 했다. 리밍에는 정식 술집이 없다. 식당에서 술을 사다가 마시든지 아니면 딱 두 군데 있는 꼬치집에 갈 수 밖에 없다. 우리는 식당과 꼬치집을 모두 다 갔다.
둘째 날 - 천귀일조로 선계(仙界) 트레킹
어제 식당에서 만났던 귀인(貴人, 기억을 정리해보니 식당 주인이었음)이 소개해 준 동네사람을 어제 그 식당에서 아침에 만났다. 리밍도 산골인데 거기서 한 참 더 들어간 산골에서 살고 있는 소수민족 청년이었다. 검게 그을렸지만 선하게 잘 생긴 얼굴의 리수족 청년. 그 친구가 우리에게 경치도 좋고 걷기도 좋은 길을 소개하고 안내하기로 했다. 정말로 트레킹하기에 좋은 길인지를 몇 차례 확인하고 나서 우리는 그 청년과 함께 트레킹을 시작했다.
리밍 관광지 매표소를 지나면 왼쪽으로 작은 소학교가 하나 있고 그 뒤로 작은 개울이 흐른다. 어린 시절 병정놀이처럼 우리는 줄을 맞추어 그 개울을 건넜다. 그때까지는 좋았다. 개울을 건너자마자 바로 트레킹, 아니 등산이 시작되었다. 평소 양치기들이 양떼를 몰고 다니는 좁은 오솔길, 보기에는 완만해 보였는데 막상 오르기 시작하니 길도 좁고 경사도 심했다. 숨이 차오르니 중심을 잡기도 어려웠고. (두 발) 초식만으로는 도저히 오르기가 어려워 얼마 되지도 않은 (네 발) 내공을 써야만 했다. 그래도 걸음을 멈출 때 마다 눈앞에 펼쳐지는 마을의 고즈넉한 풍경과 산들이 흩어진 진기를 다시 모아주었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 올라가니 산 중턱에 자리 잡은 작은 민가가 하나 나왔다. 예쁜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할아버지, 할머니, 젊은 부부 그리고 아기. 처음 만나는, 말도 잘 통하지 않는 외국인들을 스스럼없이 맞아주시며, 쉬어가라고 의자를 내어주셨다.
그 집 본채 옆에 예쁘게 지어진 행랑채 같은 작은 집이 하나 더 있었는데, 놀랍게도 그 집은 오래전에 이곳에서 사셨던 어느 한국 스님의 거처였다. 리밍을 갈 때마다 동네사람들이 그 스님 얘기를 하곤 했었는데 바로 여기였구나! 이렇게 좋은 곳에 더 오래 계시지 왜 떠나셨을까 하는 마음에 주인 할아버지에게 여쭤보니, 몇 년 전 티베트사태 이후로 외국인들이 티베트 접경지역에 더 이상 살 수가 없어 돌아가셨다고 했다. 그 스님께서는 지금 어디에 살고 계신지는 잘 모르나, 사셨던 집은 아직도 로군산의 리수족 가족들이 잘 보존하고 있고, 또한 그들은 다시 돌아오신다던 스님의 약속을 믿고 있다. 인연이 허락할 때, 좋은 모습으로 다시 돌아오시길!
다시 산행을 시작했다. 민가를 나서서 만나는 처음 풍경은 해발 2,600미터 비탈에 만들어진 소수민족의 밭이다. 옥수수, 담배, 콩, 특용작물 등을 심는, 그들 삶의 원천이자 말 그대로 텃밭이다. 행여 그들의 생활에 누가될까 밭 끝으로 조심스럽게 걸었다.
앞에는 단샤지형으로 이루어진 적색사암의 봉우리가 높이 솟아 있고 뒤로는 지나온 민가와 저 멀리 리밍 마을과 또 다른 봉우리들이 보인다. 경이로운 경치 때문에 걸음에는 속도가 붙지 않는다. 처음만큼 힘들지도 않았다. 30분 정도를 천천히 걸어 올라가니 거대한 적색사암의 절벽을 내 손으로 만질 수 있었다. 그리고 절벽 아래로 나 있는 길은, 건너편 또 다른 절벽 아래의 숲길로 이어져 있었다.
길이 참 좋다. 숲속 원시림 속의 길이다. 나무들이 크지는 않지만 바닥에 깔린 나뭇잎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그 길에 쌓여있는 것 같았다. 여전히 오르막의 길이지만 발바닥 아래의 감촉이 부드럽고, 공기는 시원하고 신선하여 조금도 힘들지 않았다. 걷는 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하고 위대한 일인가를 깨닫게 해 주는 길이다.
많은 생각을 했었는지 아니면 아무 생각도 없었는지... 생각이 나질 않는다. 여기까지 저질체력의 우리를 독려하며 이끌었던 리수족 청년도 저기 앞에서 조용히 우리를 기다려 주었다.
저 멀리 숲길이 끝나는 곳에서 빛의 후광을 받으며 리수족 청년이 말했다.
‘이제 곧 정상이라고.’
형체만 알아 볼 수 있는 청년의 아우라와 함께 낭랑하게 울려 퍼진 목소리는 마치 신선의 계시처럼 들렸다.
‘내가 있는 곳으로 어서 오라’는.
숲길을 통과하여 오른 쪽으로 몇 발자국을 걸어 올라갔다. 역시 청년의 말은 계시였다. 불과 몇 걸음으로 우리는 새로운 세계로 들어간 것이다. 신선은 없었지만, 신선이 살고 있는 세계였다. 리장을 중심으로 주변 여러 트레킹 코스를 다녀 봤지만 이토록 신비롭고 묘한 분위기의 장소는 없었다. 바닥에는 붉은색 사암으로 만들어진 거북이 등이 구름처럼 깔려 있고, 주변은 수많은 사연을 간직했을 법한 기묘한 모양의 봉우리들로 가득 차 있었다. 360도 탁 트여진 봉우리 위에서 우리는 우주의 중심에 서 있는 기분을 느꼈다.
<우주의 중심은 사진으로 표현이 되지 않는다>
감탄사를 연발하며 자연스럽게 명상의 자세를 취했다. 아주 잠깐 동안. 경치가 너무 좋으니 오히려 명상이 잘 되지 않더라. 자꾸 보고 싶어서. 결국 따슝은 명상은 한국과의 카톡으로, 전문 가이드 우양이의 명상은 캔맥주로, 승택형의 명상은 난사 촬영으로, 차크라가 열릴 것 같다던 주성치의 명상은 수다로, 심박사의 명상은 스티븐잡생각으로 바뀌었다.
명상은 다음에 다시 올라와서 하는 걸로~!
함께 간식을 먹고, 캔맥주를 마시고, 수다를 떨고, 사진을 찍다가 다시 하산 길을 향해 움직였다. 거기에는 곧 바로 내리막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 바위산 능선 위로 걷는 길이 있었다.
오, 이런! 이 길은 또 다른 반전의 길이었고, 선계(仙界)의 길이었다. 우주의 중심이라 생각했던 봉우리에서 맥주를 마시며 수다를 떨 때만해도 바로 옆에 이런 길이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었던 길이 또 다시 나타난 것이다. 발걸음 마다 풍경이 달라지는 길, 메아리 소리가 바로 발아래서 들려오는 길, 걷는 것인지 나는 것인지 구분이 안 되는 길,
바로 이곳이 ‘천귀일조로(첸꾸이티아오루, 千龜一條路)’였다.
봉우리에서 지체한 시간이 아쉬울 정도로, 이런 길을 우리만 걷는다는 것이 미안할 정도로 근사한 길이었다. 견우와 직녀를 까마귀들이 다리(오작교)를 놓아 연결했듯이, 우리가 신선의 세계로 들어가는 길, 아니 신선의 세계에서 다시 일상의 세계로 돌아가는 길은 수많은 거북이등(천귀로, 千龜路)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이 길을 지나가면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천귀로(千歸路)이니까, 천 번을 돌아오지 않더라도 단 한 번만이라도.
결국 돌아가고 싶은 곳은 그 길이 아니라, 그 길을 걸었던 시간일 테지만.
하산 길,
역시 인간의 세계로 돌아가는 고달프다. 많이 높이 올라온 만큼, 많이 깊이 내려가야 한다. 처음 30분 정도는 선계를 경험하고 온 대가를 치르듯 가파르고 험한 길이다. 발에 힘을 주고 조심스럽게 걸어 내려와야 했다. 아주 가파른 곳에서는, 어느 고마운 양치기가 만들어 놓은 나무 손잡이도 있었기에 다행히 어렵지 않게 내려올 수 있었다.
그렇게 가파른 숲길을 30분 정도 내려와 다른 바위 절벽의 아랫길을 만났다. 이 길부터는 편안하다. 앞에 보이는 마을의 풍경도 좋고. 아까 올랐던 선계의 봉우리를 회상하기에 딱 적당한 길이었다. 중간에 반드시 볼 수밖에 없는, 정말로 묘하게 생긴 남근석(男根石)만 없다면.
그녀石을 보는 순간 선계의 기억은 사라졌다. 이제 내 세계는 잊고, 너의 세계로 돌아가 다시 잘 살라는 신선의 명령처럼 서 있는데... 어찌하랴! 다시 돌아가 잘 사겠다는 다짐으로 그녀石과 사진을 찍고 마을로 향했다.
마을은 리수족 전통마을이었다. 그냥 있는 그대로 살고 있는 사람들의 마을에 굳이 ‘전통마을’이라고 이름붙이는 것도 우습지만, 주변의 돌과 나무를 이용하여 집을 짓고,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살았던 곳에서 같은 방식으로 살고 있으니...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다. 민가를 통과할 때 주인이 없는 집에서는 개들이 열렬히 짖으며 우리를 환영했다. 우리는 손대신 작대기를 흔들며 화답했다. 그렇게 산간 마을을 통과하여 다시 로군산 계곡의 넓은 도로를 한 시간 정도 걸어서 리밍에 도착했다.
이른 저녁을 먹고 숙소로 들어가 모두 일찍 잠이 들었다. 꿈을 꾸었는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천귀일조로를 걸었던 기억과 그 위에서 마셨던 캔맥주의 맛을 그날의 꿈으로 삼는다.
셋째 날,
리밍을 출발하여 옥호촌으로 향했고, 귀로(龜路)는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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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심부장 : "자네 보고서 마무리가 이게 뭔가. 내가 이사님께 까이는 꼴을 기어이 봐야겠나!! 퇴근전까지 다시 작성하게!!!"
^______^ 글 잘 읽었어요~~~ 몇년전 홍콩의 드래건스 백 트레일을 걷고는 실망했던 마음을 '터틀스 백 트레일'에서 위안받았습니다. 정말 챠크라가 열린다니까요..^^*
오랫만에 여강스토리 맛나게 읽었네요 ㅋㅋ내 꼭 따슝님안내받으며 여행하리~~2015년 조합비 내야허나요? 이월안돠나욤?
와우~~~대단합니다.
저 곳을 우리 발도행이 첫발을 놓는다는 거지요?
설레임과 기대감으로 그 날을 기다립니다~~^*^
정말 멋진 곳이네요. 저질체력이라 앞에 던져놔도 오를수 있을진 몰라도 꼭 가보고 싶네요. 혼자 25일 날잡았다 다시 미룬게 아쉬워 집니다. ㅜㅜ
선계의 트레킹을 처음으로 했다는 자부심과 천귀일주로에서 바라본 선계의 모습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정말 좋았지요. 내려올 때의 두려움만 뺀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