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사 고객사수 협업 마케팅
직장인 김모(28)씨는 요즘 신용카드를 쓰는 횟수가 절반 가까이 줄었다. 예금 계좌 등에서 돈을 충전해 쓰는 모바일 간편결제 서비스를 사용할 수 있는 매장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온라인 쇼핑몰뿐 아니라, 단골 미용실과 요가 학원 등 오프라인 매장도 예외가 아니다. 김씨는 "결제하면 현금처럼 쓸 수 있는 포인트도 주기 때문에 그보다 혜택이 적은 체크·신용카드에 손이 가지 않더라"고 했다.
카카오·네이버 등 온라인 플랫폼 공룡들이 '테크핀(기술+금융)' 서비스를 금융 전반의 영역으로 확장해 나가면서, 금융사들의 위기감이 높아지고 있다. 금융사들은 업종 간의 벽을 허물고 다른 금융업권과 협업 마케팅도 실시하며 고객 지키기에 나섰다. 하지만 금융사와 테크핀 사이의 성장 속도 격차가 갈수록 벌어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고객 지키자' 금융사끼리 뭉쳐
최근 카드사들을 중심으로 금융사 간 합동 마케팅이 활발해지고 있다. 카드사와 은행이 연 5~6% 고금리 예·적금 상품을 '당근'으로 내밀며 함께 고객 유치에 나서고 있다. 신용카드 실적 조건 등을 채우면 예·적금에 우대 금리를 얹어주는 식인데, 최근 저금리 환경을 고려할 때 우대 금리가 낮지 않은 수준이다.
현대카드와 우리은행이 지난 4월 출시한 '우리 Magic 적금 by 현대카드'는 최고 금리가 연 5.7%에 달한다. 이 중 현대카드 이용 실적에 따라 지급되는 우대 금리가 최대 연 3.5%다. 최대 월 50만원씩 1년간 납입 가능해 금액 한도도 비교적 높은 편이다. 신한카드와 SBI저축은행이 지난 5월 출시한 '사이다뱅크 신한카드 적금'은 금리가 최고 연 6%에 이른다. 기본 금리 연 2.1%에, 신한카드 사용 조건을 충족하면 받을 수 있는 우대 금리가 최대 연 3.9%다.
삼성카드와 우리카드는 MG새마을금고와 손을 잡았다. 삼성카드와 우리카드 고객만 가입할 수 있는 'MG가득정기적금'은 최대 연 4.5%의 금리를 제공한다. 이 중 2.5%포인트가 카드 이용에 따른 우대 금리다. 신한은행과 신한카드는 '신한 11번가 정기예금'을 만들고 '11번가 신한카드' 이용 실적에 따라 최대 연 3.3% 금리를 주고 있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카드사들의 이런 결정에는 코로나 사태 여파로 카드 사용이 줄어들고, 언택트(비대면) 생활 양식 확산으로 주요 지불 수단으로서의 위치가 위협받을 수 있다는 위기감이 작용한 것 같다"고 했다.
◇테크핀은 훨훨 나는데…
그러나 이런 마케팅 노력에도 불구하고, 테크핀 기업과 기존 금융사 간 매출 성장 속도는 더욱 벌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테크핀 기업이 가진 플랫폼의 영향력도 중요한 요인이지만, 제공하는 혜택도 소비자들의 피부에 와닿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가령 9일 출시된 네이버통장은 일정 조건하에서 연 3% 금리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이 통장에서 간편결제 서비스인 네이버페이를 충전해 사용하면 결제 금액의 최대 3%를 포인트로도 적립해주는 등 혜택이 파격적이다. 반면 시중 은행의 1년 만기 예금 금리는 1% 안팎에 그치고, 카드사의 결제 시 포인트 혜택도 1~2%대 수준이다.
삼성증권 김재우·장효선 연구원은 "네이버파이낸셜·카카오 등 테크핀 기업들은 결제 수수료는 물론 플랫폼을 이용하는 상인들로부터 받는 판매자 수수료, 그리고 일부 광고 수수료 수익까지 고객에게 혜택으로 제공할 수 있어 금융사가 상상하기 어려운 수준의 혜택을 제공할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규제도 발목을 잡는다.
김 연구원은 "저금리 기조 심화에 기존 금융사들이 실적 악화를 겪고 있는 반면, 코로나 사태로 온라인 금융 비율은 빠르게 높아지고 있다"며 "테크핀과 금융사의 실적 양극화는 심화될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