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의 수구다라니 염송 및 납탑의 사상적 배경
이 절에서는 수구다라니(隨求陀羅尼)를 설한 경전의 내용을 바탕으로 한 신앙 활동이 신라시대에 이루어졌던 사례의 내용을 살펴보고 그 사상적 배경을 고찰해 보고자 한다. 수구다라니와 관련한 구체적인 자료는 조선시대 성종대 자료 중 오대진언이 있다. 오대진언은 조선 성종16년(성화21, 1485)에 인수대비 한씨가 일반 민중들의 진언 송습(誦習)을 위해 범문의 한자 대역에 다시 정음자(正音字)로 음역을 붙여서 간행한 1권 1책의 목판본이다. 여기에 수구다라니가 수록되어 있다. 쌍운암 터에서는 수구다라니의 목판이 발견되기도 하였다. 고려시대에도 흔적을 찾을 수 있다. 광주 자운사의 목조아미타불좌상과 안동 보광사 목조 관음보살 좌상의 복장유물 중에서 수구다라니만다라가 발견되었고, 동국대학교 박물관에는 『불설수구즉득다라니경』에서 설한 8개의 수구다라니를 서사한 다라니만다라가 소장되어 있다.
고려의 밀교신앙은 신라시대의 것을 계승하였다. 그렇다면 고려 이전, 우리나라에 수구다라니가 전해진 바는 없을까. 신라에서는 수구다라니 염송 사례와 납탑 사례를 찾을 수 있다. 『삼국유사』 대산(臺山) 오만진신(五萬眞身)에서 보천은 장천굴(掌天窟)에서 수구다라니를 지송하는 것을 업으로 삼았다고 한다. 또 『백성산사전대길상탑중납법침기』에 따르면 수구즉득대자재다라니를 『무구정광대다라니경』 등과 함께 납탑했다고 한다. 지금까지는 대산오만진신의 내용을 통해서 신라 오대산신앙의 성립 시기와 성격을 찾아보는 연구가 진행되었으나 보천이 염송하였다는 수구다라니에 대한 관심은 없었다. 또한 『백성산사전대길상탑중납법침기』에 기록된 납탑 법보(法寶) 중에서도 『무구정광대다라니경』에만 주목했다. 신라 당시 자료 중 수구다라니와 관련된 자료가 부족하기 때문일 것이다.
『수구다라니경』의 한역본은 2개가 있다. 하나는 보사유(寶思惟)역이며 다른 하나는 불공(不空)역이다. 이 두 경전에서 다라니를 어떤 성격으로 설명하고 있는가를 검토하고, 중국과 일본의 신앙 사례와 비교하여 보천이 수구다라니 염송을 했던 이유 및 해인사 묘길상탑에 수구다라니를 법보로 봉안했던 배경을 추론해 보겠다.
1.『수구다라니경』의 한역과 수구다라니의 성격
수구다라니를 설한 경전의 한역본 중 현존하는 경으로는 두 가지가 있다. 장수2년(693 년) 보사유가 한역한 『불설수구즉득대자재다라니신주경(이하 수구즉득다라니경)』 1권과 746~774 사이에 불공이 한역한 『보편광명청정치성여의보인심무능승대명왕대수구다라니경』 2권(이하 보편광명대수구다라니경)이다. 또 산스크리트본과 티벳역 본도 현존한다. 이상 4가지는 구성면에서 보사유역과 나머지 3종류로 크게 나눌 수 있다. 나머지 3종은 보사유역에 해당하는 내용에 더하여 1권의 내용이 덧붙여져 있는 형식이기 때문이다. 이 중 보사유역과 불공역의 내용을 살펴봄으로써 『수구다라니경』의 성격을 알아보겠다.
보사유는 북인도 출신인데, 낙양에 도착한 직후인 장수2년(693)에 『수구다라니경』을 한역한 것은 『수구다라니경』이 당에서 즉각적으로 한역할 필요가 높았던 것으로도 해석된다. 특히, 신룡원년(705) 이후에 보사유는 한역 작업을 그만두고 수행에만 힘썼던 측면에서 생각하면, 그의 관점에서 볼 때 필요성이 높은 경전만을 선택해서 번역했을 가능성이 있다. 수구다라니를 설한 4가지 경전 중 보사유역이 가장 이른 시기에 성립한 것이라는 견해를 참조한다면, 그때까지 당에 소개되지 않았던 새로운 경전이라는 점이 그 이유 중 하나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경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을까. 보사유와 불공역 본 모두 아래와 같이 크게 4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①수구다라니의 공덕을 간단히 이야기하고, 다라니를 수지한 자를 옹호하는 여러 천신을 소개
②근본다라니를 포함한 8종의 수구다라니를 나열
③수구다라니의 공덕을 관련한 설화와 함께 설명
④다라니 서사법을 설명
보사유역 『수구즉득다라니경』은 1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설법장소는 왕서성 기사굴산 으로 대범천왕의 청에 의해 수구다라니의 공덕에 대해 설하면서, 수구다라니를 지니고 있는 이를 옹호하겠다는 50명의 천신이 나열된다. 그리고 근본주[수구즉득대자재다라니신주]에 이어 일체불심주‧일체불심인주‧관정주‧관정인주‧결계주‧불심주‧심중심주가 연속하여 소개된다. 다음으로 이 수구다라니를 서사하고 수지할 때 얻을 수 있는 다양한 공덕이 관련한 설화와 함께 설명된다. 이때 각각의 공덕과 일대일로 대응시켜 관련한 8종의 설화를 들어 설명하는 것이 특징이다.
불공역 『보편광명대수구다라니경』은 상‧하 2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하권은 보사유역본과 같은 내용이 끝난 후 「수행보살수구대호대명왕다라니품」 제2가 덧붙어 있다. 설법 장소는 대금강수미노봉(大金剛須彌盧峯)의 누각으로 여러 보살들을 비롯한 80명이 넘는 다양한 존재들이 모여 부처님의 법을 듣고 있다고 묘사한다. 그리고 수구다라니의 공덕 몇 가지와 수구다라니를 지니고 있는 이를 옹호하는 여러 천들을 게송으로 설명한다. 이어 공덕을 설명하는 설화가 제시된 것은 보사유역본과 같다. 상권에서는 보편광명청정치성여의보인심무능승대명왕대수구다라니를, 하권에서는 무능승비대심진言이라고 통칭한 4개의 다라니를, 이어 보사유역본에 비해 추가된 수행보살수구대호대명왕다라니품의 구대호명왕대심다라니까지 총 6개의 다라니가 나열된다.
그런데 현재 신수대장경에 수록된 불공역본의 보편광명청정치성여의보인심무능승대명왕수구다라니는 음역 부분을 살펴보면, 3개로 나눌 수 있다. 즉, 보사유역본의 일체불심주‧일체불심인주‧관정주에 각각 해당한다. 무능승비대심진언이라 통칭된 것도 보사유역본의 관정인주‧결계주‧불심주‧심중심주에 해당한다. 따라서 불공역본에도 총8개의 다라니가 수록되어 있다고 하겠다. 수구다라니가 지닌 공덕은 불로 인한 재난에서 벗어날 수 있다거나[火不能燒] 병이 낫는다거나[治病] 아이를 원한다면 무사히 출산할 수 있다거나[求子安産] 바다에서 만난 재앙을 비롯한 여러 가지 어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除(海)難]는 등이다.
증익과 같은 적극적인 현세이익의 요소보다는 조복(調伏)‧식재(息災)와 같은 성격이 강한 것을 지적할 수 있다. 특히, 보사유역본에서는 직접적으로 성불의 공덕을 설하고 있는 부분은 없다. 비구가 결국에는 33천에 태어나게 되었다는 설화를 전하는 4번째 공덕 또한 죄업을 소멸한다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으며, 7번째 설화는 여래가 정각(正覺)할 때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정각에 이르기 전 방해가 되는 마귀를 물리칠 수 있다는 내용이 중심이다. 그런데 차이가 있다면 불공 역본에서는 8째 설화에서 다라니를 통해 신통을 얻고 피안을 얻을 수 있다는 것과 8번째 설화의 게송에서 대보리를 증득할 수 있다는 내용이 추가되어 있다는 것이다. 8개의 설화와 함께 제시된 수구다라니의 공덕 및 그 외에 설화는 없으나 제시된 공덕의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 표Ⅳ-3-1과 같다.
이러한 공덕을 얻을 수 있는 방법으로는 두 경에서 공통적으로 서사(書寫)‧억념(憶念)‧수지(受持)‧대지(帶持) 등을 말한다. 특히 아래 인용문과 같이(Ⅳ-3-1‧Ⅳ-3-2‧Ⅳ-3-3) 몸에 항상 휴대할 것을[帶持] 여러 번 이야기 하는데, 특히 몸 중에서도 목이나 팔에 걸어 두기를 권하고 있는 점이 주목된다.
(Ⅳ-3-1) 만일 어떤 사람이 이 명주(明呪)를 지니거나 목이나 팔에 지니면 원하는 바가 모두 이루어지며 바라는 바가 모두 뜻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若人持此明 或帶於頸臂 所求願悉成 一切所希願 悉皆得如意
(Ⅳ-3-2) 이 신주를 서사하여 병든 비구의 목 아래 걸어 두면 걸었을 때, 모든 병이 없어질 것이다. 書此神呪繫病比丘頸下 繫已應時一切病苦悉皆消滅
(Ⅳ-3-3) 만일 서사하여 목이나 팔에 건다면 그 사람은 모든 좋은 일을 이루어 가장 뛰어난 청정함을 얻을 것이다. 若能書寫帶在頸者若在臂者 是人能成一切善事最勝清淨.
지금도 장식의 목적뿐만 아니라 종교적 의미를 담은 장신구를 몸에 지니고자 할 때 팔찌나 목걸이 등을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한다. 경에서는 수구다라니를 몸에 항상 지니고 있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였기에, 구체적으로 손과 목에 걸고 다니면 좋다고 제 안 한 것이다. 예를 들면, 바다에서 일어나는 재해를 피하기 위해서 서사하여 배의 깃발 꼭대기에 두면 된다고 하거나(설화⑤), 아들 낳기를 원한다면 서사해서 부인의 목 밑에 걸어두면 된다고 하거나(설화⑥), 죄인이 수구다라니를 지니고 있어서 칼에 베어지지도, 야차의 먹이가 되지도, 물에 빠지지도 않았다거나(설화⑧) 심지어 본인은 모르고 있었는데 누군가가 대신 곁에 놓아 준 수구다라니의 영험으로 병이 치료되고 지은 죄업이 소멸하였다고(설화④)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내용은 실제로 반영되어 살아서는 호신(護身)을 목적으로 휴대하고, 죽어서는 시신과 함께 부장하는 등의 방법 등으로 수구다라니를 몸에 지니는 것은 당말~오대에 걸친 시기에 유행하였다.
그렇다면 다라니를 서사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두 경 모두 단공양법(壇供養法)을 제시하였다. 사각의 단을 만들고 향과 연꽃을 주로 하여 장엄하고 공양할 것을 말하는데 불공 역에서는 향의 종류나 수구다라니를 당찰(幢刹)에 안치하는 방법들을 보다 자세하게 설명하였다. 그리고 다라니 서사 방법과 관련하여 주목되는 것은 전륜왕‧승‧바라문‧찰리(剎利)‧비사(毘舍)‧수타(首陀)‧남자아이‧여자아이에 이르기까지 신분과 처해 있는 상황에 따라 서사 방법을 다르게 제시하였다는 점인데, 각각의 경우를 정리하면 다음 표Ⅳ-3-2와 같다.
수구다라니를 서사하여 지니고자 할 때, 발원자가 승려라면 금강신과 그 밑에 무릎 꿇은 승려의 모습을, 바라문과 찰제리는 대자재천과 마혜수라천을 가운데에 두어야 한다고 한 내용은 당~북송시기 수구다라니만다라의 도상에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보인다. 이 점에 관해서는 뒷 절에서 다루도록 하겠다.
이처럼 『수구다라니경』은 일반적인 생활 속에서 누구나 한 번쯤 바라게 되는 일들을 수구다라니를 서사하고, 염송하고, 몸에 지니고 있는 방법을 통해 이룰 수 있다고 하였다. 공덕들을 얻을 수 있는 방법도 자신은 알아채지 못한 채, 다른 사람의 도움에 의해 몸에 지니고 있기만 해도 가능하다고 말할 정도로 어렵지 않다는 점은 일반 사람들의 호응을 받을 수 있는 이유였다. 더욱이 수구다라니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공덕들을 설화라는 이야기 전달을 통해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친근하게 접근할 수 있는 요소도 많다.
한편 다라니로서의 수구다라니뿐 아니라 수구보살(隨求菩薩)도 하나의 도상으로 자리 잡아 현도태장계만다라 중 관음원에 위치하여 독립 존격으로서도 신앙되게 된다. 대수구보살(大隨求菩薩)은 범명 Maha-pratisarah이고, 음역하여 마가발라저살락(摩訶鉢羅底薩落), 약칭하여 수구보살이라고 한다.
관음보살의 변신이자 밀교의 보살 중 하나이다. 처음부터 구체적인 이미지를 지니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밀교의 전개와 함께 점차 다면다비화(多面多臂化)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신라시대 밀교경전의 유통과 그 영향/ 옥나영 숙명여자대학교 대학원 사학과 한국사전공 박사학위논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