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팍팍한 도시생활 속에 책을 읽는다는 것은 용기마저 필요한 일이 되었다. 숱하게 쌓여있는 일을 해내느라 내면을 성찰하고 채우는 일에 소홀해지는 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게 밀어붙이는 시류에 등 떠밀려 가다보면 나는 누구인지, 나는 왜 사는지, 나를 둘러싼 주변의 살가운 풍경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그 본질적인 질문을 잊고 살게 된다. 삶은 저절로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치열한 고민을 통한 의식적인 선택을 하며 만들어져 가는 것이리라.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진 시간을 의식적으로 잘게 구분하여 성찰하고 사유하는 일에 할애 하지 않으면, 같은 시대를 살아도 의미 없는 생명의 연장에 만족하는 존재가 되어 버릴 것이다.
시간은 사용하기 나름이다. 그래서 주어진 일을 하는 시간 이외의 시간을 틈틈이 이용하여 책을 읽는다. 휴식 시간에, 오고 가는 버스 안에서 짬짬이 읽어 내려가는 것이라 시간은 더디지만 책이 전해주는 삶에 대한 통찰과 시대를 읽는 시각과 방법들은 나에게 새로움과 즐거움을 안겨다 준다.
2. 2016년 12월 서점에 들러 책을 고르던 중 반가운 이름이 있어 무작정 집어 들었던 책이 김민웅 교수님의 <시대와 지성을 탐험하다>와 <인간을 위한 정치>였다. 이후 틈틈이 읽어 <시대와 지성을 탐험하다>를 완독하였다.
우선 책을 읽으며 들었던 느낌은 무수한 책들의 숲에 와 있는 것 같았다. 699보를 걷는 동안 다양한 분야에서 치열하게 시대를 고민하며 씨름했던 시대의 거장들을 만나면서 그들의 고뇌의 흔적들이 담긴 깊이 있는 책들을 만나는 즐거움이 있었다. 이 책에서 ‘시대’는 우주의 기원에서부터 현재, 아니 미래까지 아우르고 있으며, ‘지성’은 역사(세계사, 문명사, 인류학 등), 종교, 문학, 정치 등 인간의 문화를 총 망라하고 있다. 이것들은 개별적인 주제라기보다는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마치 고구마 줄기를 들어 올리면 굵은 알들이 술술 딸려 올라오는 것과 같다. 다루는 분야도 폭넓을 뿐 아니라 소개된 내용도 간단치가 않고 깊다. 실로 방대한 지식과 깊이 있는 통찰이 번뜩이고 있다.
이 책은 시대를 고민하면서 좋은 세상을 꿈꾸는 이들이 앞으로 어떤 자세로 삶을 대하고 시대를 대하고 이웃들을 대하며 살 것인지에 대한 통찰을 주는 좋은 안내서이다. 책을 읽어내려 가면서 만났던 이름들 가운데는 처음 접한 이름이 사실 반 이상이었다. 이 책이 아니었다면, 글쎄.. 어느 곳에서도 다시 만날 수 없는 이름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나의 인적 인프라를 폭 넓게 해준 책이라 할 수 있다. 이들이 토해내는 냉철한 현실인식과 합리적인 문제제기, 번뜩이는 미래 예견과 통찰은 개인의 삶에 매몰되어 있는 이들에게 끊임없이 전체를 조망하는 시각을 요구한다. 그들과 만나게 되면 누구든 자신이 우물 안 개구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마주하게 되고, 그러면서 자기를 한반도의 어느 구석에 근근이 살아가는 존재가 아닌 오대양 육대주를 품고 세계의 문제들을 풀어나갈 주체적이고 책임적인 존재라는 사실과 맞닥뜨리게 한다. 책을 다 읽고 나면 내 삶과 내 사회와 세계 전체에 대한 분명한 시각들 갖게 될 것이다.
3. 수많은 저작들을 섭렵하여 풀어낸 김민웅 교수님의 맛깔난 필력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이 책을 읽으며 난 제목을 자꾸 <시대와 지성을 탐하다>로 읽었다. ‘탐하다’는 욕심이 있다는 말이다. 이 제목도 그리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하나의 삶에 우리의 시선이 머물러 있는 것은 어찌 보면 이기적인 태도가 아닐까? ‘나’ 라고 하는 존재는 우리가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던 간에 수많은 관계의 그물망에 얽혀 살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언행심사는 시대에, 세계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반대로 영향을 받기도 한다. 시대를 고민하지 않고, 지성을 탐하지 않고 그저 저 좋을 대로 산다는 것은 생명에게 주어진 사명을 포기하고 사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런 면에서 시대와 지성을 탐하는 것은 어찌 보면 사람으로서 당연한 일 아니겠는가. 시대의 문제를 나와 우리의 문제로 끌어안고 씨름하며 사는 이를 통해 새로운 세상은 열리게 된다.
4. 책 한 권 읽었다고 당장의 삶이 변하고, 세상이 변하리라는 기대는 갖지 않는다. 그러나 한권의 책은 나의 소소한 일상에 지극히 작은 변화를 시작하게 할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과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가? 그렇다면 시대와 지성을 탐험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