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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아
인생아, 네가 무어냐? 살았느냐? 죽었느냐?
인생아 너는 죽은 거더라. 삶을 모르고 산 것을 좋아하는 맘도 없고 산 것을 산 채로 감당하는 뱃심도 없더라.
생명을 보느냐? 듣느냐? 만지느냐? 먹느냐? 먹어야 산다 하지만 네가 생명을 산 채로 먹을 수 있니? 네가 먹는 것은 생명은 다 빼고
남은 주검의 껍질만이 아니니?
인생아 너는 속이 죽었더라. 산 것에 대들 염을 못 내는 겁쟁이더라. 모처럼 살았던 것도 네 손에만 들면 죽고야 마는 너 아니냐? 죽은 줄을 확실히 안 다음에야 손을 대고 입을 대려 엉금엉금 기어드는 너 아니냐?
산 인생이로라고? 살아서 기쁘다 슬프다고? 기쁨이란 무엇이고 슬픔이란 무엇이니? 기쁘단 것은 기쁨은 아니요 슬프단 것은 슬픔은 아니다. 시는 시의 시체요 빎은 빎의 빈 껍질이다. 네 몸은 죽은 시체로만 살아가는 것, 네 맘은 죽은 기억으로만 이어가는 것.
인생이 뭐야? 시체 파먹는 구더기지.
인생이 뭐야? 썩어진 말똥 위에 나는 중버섯이지.
꽃이 곱거든 왜 보고만 못 있느냐? 새 소리가 좋거든 왜 듣고만 못있느냐? 왜 보다가 말고 곱다 밉다 하며 왜 듣다가 말고 좋다 언짢다 하느냐? 왜 글쎄 생명의 불은 끄는 꺼냐?
의식(意識)이란 생명의 날뛰는 수면에 한때 떠도는 떨어진 꽃의 지는 잎 아니냐?
아, 삶은 어이해 찰나 사이고 나머지 인생의 대부분은 시체 치우기에 보내는 것일까? 인생으로 하여금 삶 속에 영원히 살림을 잊고 아주 살아만 있게 못하는 것은 무엇일까?
산(山)꽃은 산꽃인데 왜 산 채로 못 보아 기어이 꺾어서 손에 들어야 하는 거며, 버러지 노래는 벌어지는 생명의 노랜데 왜 벌어진 대로 못들어 꼭 잡아서 농(籠) 속에 넣어야 하는 것인가?
못생긴 인생 아니냐? 독수리 잡아주면 날개 자르고 깃을 뽑으며, 호랑이 잡아주면 우리에 가두고 쉬를 잠그고, 잠그고도 안십 안돼 죽여서 껍질 벗겨 깔고 앉은 겁쟁이.
용사(勇士)라 뽐내지만 자갈 물리고 불알 까고야 천리마(千里馬)를 타고, 지혜 있노라 자랑은 해도 그 순한 소를 코를 꿰고야 짐을 싣는 인간.
생명의 불길 그대론 못 견대 불은 끄고 미지근한 재만을 안는 가슴. 불꽃 이는 생명의 음악, 그대로는 귀가 막힌다 알아들을 만한 말로 하라고, 생명을 반쯤 죽여 말로 해놓으면 그것도 벙벙하다 글로 적으라 하고 남은 생명 또 반이나 죽여 막대 같은 글로 그어놓건만 그것도 이빨이 안 든다고 열 토막 스무 토막에 토막을 치고.
생명의 깊은 소에 유유히 꼬리치는 석 자 잉어를 잡노라 애써서 은비늘 다 떨으고, 잡아서 바로 쳐들고 거꾸로 쳐들고, 껍질을 벗기고 뼈를 쪼개고, 초 치고 장 쳐 끓이고 볶고, 이치니 법칙이니 분석이니 통일이니, 비판을 하자 체계를 짜자, 그러다 보니 흥더분 풀어져 다 헤진 것이 쫄고 타 빼빼 말라붙은 것을 맛있다 맛있다 하며 입을 다시는 인간.
아까울손, 한번 풍운(風雲)을 타 하늘에 올라, 변화무쌍(變化無雙) 자유자재(自由自在), 용(龍)이 되자던 그 면목(面目)!
인생아, 글쎄 가엾지 않으냐? 산 것을 왜 좋아할 줄을 모르니? 산것을 왜 산 채로 감당을 못하니? 산 채로 살려 키울 줄을 모르니?
네가 만물을 부리노라 하지만 죽은 것밖에 모르는 네게 부리울 놈이 천지에 어디 있니?
인생아, 너는 시체만 들여 쌓는 무덤 아니냐? 회칠한 무덤 아니냐? 바라보면 말을 할 듯하면서도 만지면 차디찬 석상(石像)아니냐?
인생아, 이 속이 옹졸한 인생아, 독수리 주면 그 커다란 날개 한 번에 타볼 생각을 왜 못하니? 그 부리, 그 눈알, 그 발톱이 그저 무섭기만 하더니? 어디로, 알 수 없는 곳으로 날아가버릴까 봐 그저 겁만 나더니? 그 날개 자르지 말고, 그 깃 뽑지 말고, 그 구름같이 벌리는 날개 복판에 턱 자리잡고 앉아 피곤할 줄 모르는 힘에 맡겨 한 번 한없이 날아보면 어떻니?
호랑이 주거든 왜 한 번 그와 어깨 겯고 달음질을 해볼 줄 모르니? 숭글거리는 그 수염 그저 무섭고, 삿대같이 벌리는 그 입 그저 너를 통째로 삼킬 것만 같더니? 왜, 왜, 한번 네 부드러운 손 그 어룽어룽한 깊은 털 속에 넣어 담대(膽大)한 맘으로 그놈의 어깨 힘있게 거머쥐고, 그 창날 같은 발톱 소라 방등같이 꾸부러진 발통 태연(泰然)한 낯으로 네 어깨 위에 턱 받아, 비록 꼬리 없어도 그놈의 긴 꼬리 구부렸다 펼 때마다 벼락소리 나고 바람 이는, 그 공글러 뜀에 맞춰 힘껏 달려보지 못하니?
아 못생긴 너, 날개 자르고 가둘 생각밖에 못하는 너, 제가 작은 것 같이 작게 만들 줄밖에 모르는 너, 먹을 것만을 보는 너, 이해(理解)만 이해(利害)만 아는 너, 주검밖에 모르는 너.
인생아 누가 너를 보고 생각하는 갈대라 하니? 생각은 무슨 생각을 하니?
동은 무슨 동, 서는 무슨 서,
높기는 어디가 높아, 낮기는 어디가 낮아,
길은 어디 있고 헤맴은 어디 있고,
앉기는 어디 가 앉으며 떨어지긴 어기 가 떨어지며,
잃기는 무얼 잃어, 얻은 것이 없는데,
죽기는 누가 죽어 산 놈이 없는데,
방향이란 것도 주검 놓고 하는 소리.
시간이란 것도 주검 두고 하는 소리.
인생아, 동서남북을 모르고 이제 저제를 잊고, 옳고 긇고도 그만두고, 죽을지 살지도 생각 말고, 그 날개에 올라앉아, 그 발에 걸음 맞워, 무한히 높이높이, 무한하 멀리멀리, 걸음에 맡겨, 바람에 맡겨, 맘에 맡겨, 호호탕탕(浩浩蕩蕩)히 날고 뛰면 안 좋으니? 얼마나 좋을 거니? 호호(浩浩) 또 호호(浩浩), 탕탕(蕩蕩) 또 탕탕(蕩蕩).
인생아 네가 맛을 안다고? 무슨 맛을 네가 아니? 네 혀 끝이 어디까지나 들어갔으며 네 볼따구니는 얼마나 넓으니?
물 맛 네가 아니? 모든 맛의 근본인 물 맛, 죽을 듯이 목이 타 마르다가도 생명의 샘 마시고도 그 맛 어떻냐 물으면 무미(無味)하다는 네 미각.
공기 맛 네가 아니? 일 분에도 열 일곱 번, 하루에 이만 오천, 이생 백 년 사는 동안 구억 번 마셨다 토하는 저 대기 생명의 숨 맛을 있는 줄이나 네가 아니? 썩어진 맛만 알고 생명의 맛 모르는 네 미각.
인생아, 네가 빛을 안다고? 무슨 빛을 네가 아니? 정말 빛 네가 보니? 붉고 푸르단 것 화살보다 더 빠른 빛 살에 맞고 튀어나는 주검의 물결의 부스러기뿐이요, 허공에서 허공으로 닿는 빛의 참 얼굴은 네 눈에는 영원한 수수께끼니, 공중에 가득히 떠다니는 주검의 물결이 아니었던들 네 가엾은 눈동자는 캄캄한 허공에 영원히 얼어붙어 생명의 빛의 달리는 걸음을 더듬을 길조차 없었으리라.
제가 못 보는 것은 보기 싫다고, 제가 못 먹는 것은 맛이 없다고, 제가 못하는 것은 거짓이라고, 현실이니 공상이니 정통이니 이단이니 참이니 거짓이니 선이니 악이니.
산 채로는 먹을 줄을 몰라 밤낮으로 잔 칼질을 하는 인생, 생명의 날개의 깃 끄트머리를 쓸어 제 주위에 성을 두르고 그것을 안전한 세계라 믿는 인생, 그 세계란 얼마나 큰 거냐? 몇 날이 가는 거냐? 일생을 두고 제 무덤을 쌓는 인생.
주검밖에 모르는 네가, 주검밖에 다룰 능력이 없는 네가 생명의 목을 비튼 후 안심하고 부엌 뒤에 돌려놓았던 세계가 자다 깨는 검독수리처럼 하늘에 드리우는 큰 날개를 떨치고 일어나 너째, 네 성째, 탁 치고 일어날 때, 너 같은 것은 그 조그만한 칼을 든 채 어느 세계에 미진(微塵)으로 날아갈지 헤아릴 길조차 없으리라.
가엾은 살생자(殺生者)! 뼘으로 하늘을 재는 자, 저울로 북두(북두)를 다루는 자,
생명의 멱을 따다 따다 기진맥진 제가 죽고 마는 가엾은 도살수.
가엾은 연금술사(鍊金術師), 대우주의 비늘을 하나씩 뽑아 모조리 바숴서 환(丸)으로 지어 제 약병 속에 넣자고 밤낮 애를 쓰며 쉴새없이 공이질을 하건만 바숴지는 것은 생명이 아니요 가엾은 제 가슴뿐이다.
인생아,
먹겠거든 산 범을 통으로 삼키려마. 세계라도 통째로 넘길 기개를 가져보려마. 태산준령(泰山峻嶺)의 봉우리째, 폭포째, 암암위석(岩岩危石)과 낙락장송(落落長松)이 선 채로 들어갈 입을 벌리려마. 돌도 녹고 쇠도 녹는 무한대의 창자를 벌려 유유창천(悠悠蒼天)의 해 달이거나, 별이거나, 대웅(大熊)이고, 소웅(小熊)이고, 성운(星雲)일새 운석(殞石)일새, 무변애(無邊涯)의 푸른 깁에 싸 훌떡 삼킨 후 안드로메다 헤르쿨레스 사이에 왔다갔다 거닐면서 구름똥을 슬슬 누려무나.
살 거지, 살고 볼 거지.
모순(矛盾)이 그리 무서우냐? 모순이란 생명의 장미꽃에 돋는 잔 가시 뿐이어, 훑지 말어.
수수께끼가 그리 걱정되느냐? 수수께끼란 뛰노는 큰 고래의 미끄러운 잔등 뿐이어, 벗기지 말어.
두어, 산채로 두어. 바위는 울퉁불퉁, 봉우리는 삐죽삐죽, 꽃은 웃고 새는 울고, 고래는 뛰고, 범은 부르짖고, 독수리 날고, 수풀은 우거지고, 나비는 춤추고, 초부(樵夫)는 장단을 치고, 목동은 피리를 불고 처사(處士)는 낮잠자게 그대로 두어.
그대로 두어, 그대로 네 뱃속에 산 채로 두어. 옛날에 노아가 방주를 뭇듯이 네 기쁨 슬픔 즐거움의 온가지 생각의 조박조박을 날마다 다듬어 무어서 이룬, 역세고 굳센 믿음의 뱃속에 산 세계를 산 채로 그대로 두어, 마리아의 뱃속에서 영원한 산 말씀이 뛰놀 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