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분들은 남이장군님의 이름은 한번쯤 들어보셨지요?^^ 강원도 춘천에 가면 남이장군님과 같은 이름의 섬도 있으니깐요.ㅎㅎ
남이장군...귀신을 보는 눈을 가진 장군님으로도 유명하신 분이지요.^^. 남이장군님 나이 17세로 무과에 급제하신 분이시라하니 남이장군이 얼마나 무예에 천재고 뛰어나신 분인지 아시겠지요?ㅎㅎ
먼저 남이장군의 가계도를 보면 남이 장군님의 피속에는 이씨왕조의 피도 섞여있음을 알수가 있습니다..남이 장군님은 태종 이방원의 외손자 입니다...남이장군님의 부친이신 남휘님은 태종임금임의 넷째 따님인 정선공주님께 장가를 드신 부마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인지 후세사람들은 남이장군을 기세도 호탕한데다가 명문가에서 태어나니 거리낄께 없었음으로 교만과 방자함또한 있진 않았나 하고 평가를 하시더군요...남이장군님은 안동권씨 가중의 권람의 사위로 들어가셨는데...안동권씨하면 명문가다보니 많은 견재도 받았으리라 생각이 들지요.?....
남이장군님의 묘소는 현재 경기도 화성시 비봉면 남전리 산145 번지에 자리하고 있습니다...이리보니 화성이란 지역이 신과 역사와 많이 얽힌곳임을 알수가 있네요.ㅡㅡ.
남이 장군님께서 어느정도 기세가 호탕하셨냐면 남이 장군님이 남기신 시를 볼수가 있는데 이시가 후에 남이장군님의 발목을 잡아 죽임을 당하셨다고 하는군요... 잠시 그시를 읽어보겠습니다.ㅎㅎ
白頭山石 磨刀盡 豆滿江水 飮馬無 男兒二十 未平國 後世 誰稱 大丈夫
백두산석 마도진 두만강수 음마무 남아이십 미평국 후세 수칭 대장부
이뜻을 해석해보면...
백두산 돌은 칼을갈아 없애고 두만강물은 말을먹여 다하리 사나이 스무살에 나라평정 못하면 훗날에 뉘있어서 대장부라 일컽으랴
이만큼 남이 장군님의 포부와 기세가 장난이아니게 높았던 것이지요...하지만 무과를 급제하고 27세 결국 10년만에 돌아가시지요...
음...이젠 남이장군님과 백족산의 관계가 얽힌 설화를 열어볼까요?^^
아주 오랜 옛적에 장호원읍 백족산 위에는 굴바위라는 곳이있고 그옆에는 사찰이 한곳 있었다고 합니다...그시절 이절에는 수십명의 스님들이 부처님 공부를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하지만 언젠가부터 이곳에 안개가 자욱한 밤이 찾아오면 수도를하고 있는 스님중 한분씩 사라지는 괴이한 일이 발생을 했다는군요..ㅡㅡ .
이런일이 자주 반복이 되자 남아있던 스님들은 불안속에 지내다가 하나둘 미리서 사찰을 떠나기 시작하고...결국은 스님한분만 남게 되었다는군요...ㅜㅜ ..이스님은 불심이 투철했던지라 사라졌던 스님들은 부처님께서 극락으로 모셔갔다고 생각을 굳건히 했다는군요..ㅡㅡ...(설마...부처님이...) 그래서 이스님은 이제곧 부처님이 자신도 극락으로 데려가기위해 오실꺼라 생각하고 평상시에 친하게 지내던 장호원에 거주하는 글방선생을 하던 친구를 찾아가 작별인사를 하고자 찾아갔더랍니다...
전부터 이절에 괴이한일을 알고있던 글방선생은 이스님에게 "스님 지금도 늦지않았으니 다른절로 옮겨서 공부를 하하시지요?"하고 권유를 했지만...스님은 한사코 괘념치 말라고 거절을하더랍니다....(이럴때...돌...부..처...라고 하지요...?)
그러자 글방선생이 한숨을 내쉬며..."스님 그럼 제부탁하나만 들어주시구려.."글방선생이 그러면서 무명못 한벌을 내어주며.."마지막 작별선물이라 생각하고 이것은 입고 가십시요 스님...그래도 벗이주는 선물이니 냄새난다고 벗지마시구요.^^"...그렇게 당부하니 스님이 차마 그것만은 거절을 못하고 받아입고 가더랍니다...
스님이 대웅전에 들어 부처님앞에 앉았는데 글방선생이 준옷을 살펴보니 색은 검의칙칙하고 냄새는 이상했지만...그래도 벗이 당부한것이 있기에 그냥입고 부처님에 예불을 집중했답니다...이윽고 안개가 자욱히 밤을 찾아오고 천둥번개같은 요란한 소리가 나더니...커다란 지네한마리가 스님에게 덤비더니 스님을 물고 굴바위로 가더랍니다..
다음날 글방선생이 스님의 안위가 걱정되어 사찰을 찼았으나 스님은 간곳이 없고 사찰에는 아무도 없더랍니다...그래서 글방선생은 사찰을 나와서 이곳저곳 찾아보다 굴바위까지 가게 되었는데...굴바위 앞에 거대한 지네한마리가 죽어있는데 입가를보니 자신이 스님 입혀준 무명옷이 걸려있더랍니다...
이 글방서생이 무명옷에다가 담배진을 가득 뭍혀두었는데...지네가 스님을 삼켰다가 독한담배 진때문에 죽었던 것이었습니다... 글방선생이 가만히 지켜보고 있는데 그자리에있는던 지네의 몸에서 오색의 영롱한 빛이 솟아나더니 그곳에서 얼마 멀지않은 개미실(충북 음성군 감곡면)이라는곳 으로 사라지더니 남씨집으로 쑥들어 가더랍니다...그러더니 남씨가중에 태기가 전해지고 후에 사내아이가 태어나는데 이 사내아이가 남이장군님 이랍니다...
남이 장군님은 지네의 정기를 타고나 영특하다고 전해지는 설화가 내려온답니다... ㅎㅎ 재미있으셧나요?...그럼 남이장군의 귀신에 얽힌 설화를 하나를 더 풀어볼까요^^?...남이 장군님께서 이일로 귀신에게 원한을 사서 죽었다고 전해지는 설화입니다...
남이장군께서 무과에 급제하고 10년뒤 세조임금님 13년에 이시애의 난을 평정하고 백두산을 올라 위에서 언급했던 북정시를 새기시고 회군하는 도중이었습니다...그리고 남이장군은 이 시때문에 죽임을 당하게 되시는데...이 시에는 사연이 있답니다...남이장군님께서어린시절 귀신과 얽힌 설화가 있는데 지금부터 그설화의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볼께요.^^
장군이 어린시절 길거리에 지나를 가는데 어떤여인이 광주리에 감을 한소쿠리 지고를 가더랍니다...근데 그 광주리 위에 귀신이 한명앉아있기에 이상하게 생각한 장군께서 그뒤를 따라가니...그여인이 큰 소슬문대문이 있는 양반가 댁으로 들어를 가더랍니다...
명분도 없거니와 차마 따라 들어가지를 못하고 문밖에서 서성이는데...해해가 질무렵이 되자...그집에 곡소리가 난자하고 그집 대감님 따님이 다죽게 생겼다고 난리법썩으로 소란 스러워 졌답니다...장군께서 이때다 싶어 그집에 들어서서 주인대감을 만나 낮에 길거리에서 귀신을 보고 했던 사연이야기를 하자...그집 대감님이 남이장군님 손을 잡고 허겁지겁 대감님 따님이 있는 내실로 안내를 하더랍니다...
장군이 내실로 들어서서 보니 귀신이 그 대감따님 위에 올라앉아 따님의 목을 조르고 있는게 보였다고 하더군요...남이장군님께서 그걸보고 대노하여 불호통을치니 귀신이 장군님을 노려보며 눈을흘기면서 원통하다하며 달아를 나니 대감따님이 그때서야 편한숨을 몰아새며 앉더랍니다...ㅎㅎ
스토리가 묘하지요?...덕분에 대감님이 남이장군을 흡족히 여기고 "남녀칠세 부동석이라 하였는데 자네가 내딸의 침방까지 들어와 함께 하였으니 자네가 내딸을 책임지세나~!"...이렇게 남이장군님 물에빠진사람 건져주니 보따리 내놓으란식으로 사위가 되셨지요..^^ ..하지만 이 혼사가 남이장군님에게는 손해만은 아니었습니다..
여식을 살려준 대감님께서선 조상의 재상이셨던 권람 어르신 이었으니깐요...덕분에 짱짱한 처가집에 장가를 드신거지요..하지만....후에 이시애의 난을 평정하고 회군중 백두산에 적은비문...결국 그 비문때문에 장군님께서는 죽게 되셨지요...
간신들이 장군을 모함하여 역모로 몰았는데...그래도 임금님께서 어떻하든 남이장군님을 살리고자 그비문을 몇번을 사람을 보내 확인을하였지만...未平國(미평국) 나라를 평정한다는 뜻을............ 未得國(미득국)나라를 얻는다 라는뜻으로 어릴때 도망친 귀신이 보게만들어...남이장군님은 역적으로 몰리어 죽으셨다 합니다...
결국....미평국(未平國)이 미득국(未得國)으로 보이게 하여 귀신은 남이장군님에게 복수를 한것이지요...이렇듯 장군님에 설화가 내려온답니다.^^ 그리고 의령군에는 설화와 비슷하게 "자굴산" 이란곳도 있으니 의령을 가실일 있으면 한번 다녀오시는것도 좋을듯 합니다.^^ 그리고 의령에는 한우산도 있고 합천과 경계선에 미타산도 있으니 기도하기에는 좋은곳 이지요.^^
그래도 머니머니해도 남이장군께서 백족산에 정기를 받고 태어났다하니 꼭한번은 장호원 백족산 굴바위 가보시길 바라며 여기서 이만 을 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