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풍요로운 세상 *
한국인 가장 좋아하는 "기호식품" 중 하나인 라면은 1963년 9월 15일에 태어났습니다. "한국전쟁"의 상흔이 채 가시지 않아 국민들 모두가 힘들게 살아가던 1961년 어느날 당시
삼양식품(주) 전중윤 사장은 남대문시장을 지나다 배고픈 사람들이 한 그릇에 5원 하는 "꿀꿀이죽"을 사먹기 위해 길게 줄을 선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전 사장은 "저 사람들에게 싸고 배부른 음식을 먹게 할 방법은 없을까?" 고민 끝에 일본에서 라면을 제조하는 기술을 들여올 계획을 세웁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한국에 "외화"도 없고 일본과 국교가 단절된 때라 라면을 제조하는 시설을 들여오기는 하늘에서 별따기였습니다.
정부가 가진 '달러'를 민간이 '원화'로 사던 시절, 한 '라인'에 6만 '달러'인 라면 제조 시설을 수입하기엔 전 사장도 돈이 부족했고 가난한 정부도 옹색하긴 마찬가지였습니다. 하지만 궁하면 통한다고 전 사장은 당시
중앙정보부장이었던 김종필(JP) 씨를
찾아갑니다. "국민들을 배 곯리지 말자"는 전 사장의 간절한 호소에 그때 당시 "나는 새도 떨어트릴" 정도의 세도를 가진 JP는 마침 농림부가 가지고 있던 10만 '달러' 중 5만 '달러'를 전 사장이 사도록 도와주었습니다.
그러나 신용장을 열고 전 사장이 일본으로 갔지만 일본의 반응은 냉담했습니다. 일본도 어렵던 시절, 라면 제조시설을 국교도 없는 한국에 선뜻 팔려고 나서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여러 곳을 수소문하다 전 사장은 일본 "묘조(明星) 식품"의 '오쿠이'(奧井) 사장을 만나, 한국의 식량 사정을 이야기하며 도와달라고 간청하였습니다.
다음 날 대답을 들으러 다시 찾은 전 사장에게 '오쿠이' 사장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 이야기를 듣고 많이 생각했다. 나는 한국에 가본 일도 없고 아직 국교도 정상화가 안된 상황이지만 분명한건 "한국전쟁"이 일본 경제를 재건해 준 것은 사실이다. 당신들은 불행했지만 우리는 한국전쟁 덕분에 살아가고 있다. 내가 민간 '베이스'로 기술을
무상으로 제공하고 시설도 싼 가격으로 제공하겠다.“
'오쿠이' 사장은 한 '라인'에 6만 '달러'라던 라면 제조시설을 두 '라인'에 2만 5,000 '달러'로 즉석에서 발주를 해 주었습니다. 또한 이때 일본 기술자들이 끝까지 비밀로 했던 핵심기술인 "면과 수프의 배합 비율"도 '오쿠이' 사장이 기술자들 모르게 알려 주었다는 가슴 따뜻한 일화도 있습니다.
가난하고 굶주렸던 많은 국민들의 배를 채워줬던 라면은 이렇게 눈물겨운 사연을 안고 1963년에 삼양 "치킨라면"이란 이름으로 태어났으며 출시 당시 라면의 가격은 10원이었습니다. 그때 식당에서 김치찌개나 된장찌개가 30원이고, 커피 한 잔이 35원이던 시절이니 정말 저렴한 가격이었음이 분명합니다.
☆ 성경의 말씀 ☆
"그들이 청하자 메추라기를 몰고 오시고
하늘에서 내리는 빵으로 그들을 항상 배불리 먹이셨다."(시편 105:40)
"예수께서는 빵을 들고 감사를 드린 다음, 그곳에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셨고 작은 생선도 그렇게 하셨다. 사람들은 원하는 만큼 먹었다."(요한복음 6:11)
극심한 가난 때문에 해마다 많은 사람이 영양실조와 질병으로 죽습니다. 세계 일부 지역은 부유하지만 인류 가운데 상당수는 아직도 심각한 가난에 허덕이고 있습니다. "풍요 속에 빈곤"이란 말처럼 어느 시대에나 "빈부격차"는 가난을 대물림하였으며 사람들의 "삶의 질"은 너무 낮았습니다. 따라서, 근본적인 가난을 끝내려면 공의로운 통치자가 다스리는 능력을 가진 세계 정부가 필요합니다. 바로 그런 정부를 하느님께서 약속하셨습니다. 이 정부란 무엇입니까? 이 정부는 과연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무슨 일을 할 것입니까? 그점을 아래 링크를 통해 자세히 알아보시기 바랍니다.
https://www.jw.org/finder?wtlocale=KO&docid=102015163&srcid=sha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