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어잡이 / 김석수
찌는 듯한 더위가 한풀 꺾이고 서늘한 바람이 불어온다. 2학기 개학한 지 열흘쯤 지난 날이다. 여느 때처럼 영수는 나와 함께 학교에 가려고 우리 집 골목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 그는 책보자기를 어께에 메고 비닐 포대를 가지고 왔다. “뭣땜시 비료 포대냐? 은어 잡을라고. 낚시로 안 잡고? 어지께 본께 어상보 밑에 은어가 겁나게 많더라.” 그는 윗마을에 살지만 아랫마을에 우리 집 앞을 지나가면서 나와 함께 학교에 간다. 나보다 덩치가 크고 팔심이 세서 팔씨름을 하면 나를 꼭 이긴다.
우리는 마을 어귀를 돌아 나와 신작로에 들어서자 발걸음이 빨랐다. 들판에 벼는 푸른색에서 연노랑으로 변해 가고 있다. 하늘은 높고 맑다. 이슬이 길 사이에 나와 있는 풀에 얹혀 있다. 한참 걸어 신발이 축축할 무렵 강가에 이르니 어상보가 한눈에 들어왔다. 보 아래 황새 떼가 고기를 잡아먹으려고 사람이 오는 줄도 모르고 있다.
어상보는 탐진강 하류에 있다. 임금님이 상으로 내려 주었다는 보다. 아주 오래전에 나라에서 농사짓는 데 물을 사용하려고 막았다. 우리 마을에서 초등학교까지 가는 길 중간에 있다. 우리는 평소에 보 아래 징검다리를 건너서 학교에 다녔다. 비가 많이 와 물이 불어나면 상류에서 나룻배를 타고 학교에 가야 한다. 초겨울 갑자기 물이 불어나서 양말을 벗고 징검다리를 건너기도 했다. 그럴 때면 발목에 찬 기운이 가슴까지 저려왔다. 물에 빠지지 않으려고 책보자기를 움켜쥐고 어찌나 긴장했던지 등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리기도 한다. 지금 생각해도 어린 내가 대견스러웠다.
여름철에 낚시꾼이 은어를 잡으려고 밀짚모자를 쓰고 강가나 여울에서 낚싯줄을 들어 올리곤 한다. 은어는 깨끗한 물에서 살며 돌에 낀 이끼를 주로 먹는다. 자라면서 자신의 먹이 영역을 정한다. 거기에 다른 은어가 들어오면 쫓아내려고 격렬하게 달려든다. 낚시꾼은 이런 습성을 이용해서 은어를 미끼로 다른 은어를 낚는다. 미리 잡아 놓은 '씨은어'의 코에 코걸이를 걸고 배에 꼬리 바늘이 연결된 역침을 꽂아서 '떠돌이 은어'를 낚는다. 이것을 ‘놀림 낚시’라고 한다.
영수는 징검다리를 건너기 전에 어상보 아래로 가자고 했다. 물 위에 물고기가 춤을 추고 있고 보 아래 돌 틈바구니에서 은어가 몸부림을 치고 있다. 바다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봄에 상류 계곡까지 올라가는 중이다. 초가을 무렵 하구로 다시 내려와 알을 낳고 죽는다. 우리는 그런 줄도 모르고 돌 밑이나 틈바구니에서 파닥파닥 뛰고 있는 은어를 잡아서 비닐 포대에 넣었다. 바지춤을 추스리며 이리저리 피하는 은어와 씨름하지만 고사리손이라 잡았다 놓치기도 한다. 학교에 가는 것도 까맣게 잊고 고기 잡는 일에 깊이 빠졌다. 비닐 포대가 가득 찰 무렵에야 다른 아이들이 보이지 않고 강에 우리만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은어가 우리를 붙잡고 못 가게 했지만 우리는 이마에 흐르는 땀을 훔치며 책보를 둘러메고 숨차게 뛰었다.
교문에 들어서니 2교시가 끝나고 중간체조 시간이다. 선생님이 “왜 지각했느냐?”는 물음에 우리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됐다. 은어 잡다가 늦었다고 하면 혼날까 두려워서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수업 시간에도 물에서 도망 다니는 은어가 아른거렸다. 불현듯 엉뚱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혹시 고기가 도망치지는 않았을까? 누가 훔쳐가지는 않았을까?' 학교를 마치고 잽싸게 어상보로 달려왔다. 숨겨 두었던 비닐 포대를 덤불에서 꺼낸다. 대부분 은어가 죽어 있다. 집으로 가져왔지만 먹지도 못하고 돼지우리에 몽땅 쏟아부었다. 그날 이후 나는 은어를 잡지 않았다.
몇 년 지나 어상보는 콘크리트로 보수 공사를 해서 은어가 강 상류로 올라가지 못했다. 징검다리도 없애고 차가 다닐 수 있는 다리를 놓았다. 찬물에 발을 담그지 않고 강을 건널 수 있어 좋았다. 비가 많이 와도 나룻배를 타지 않는다. 아침저녁으로 보 아래서 긴 목을 물에 드리우고 두리번거리는 황새도 볼 수 없다. 여름철에 밀짚모자를 쓰고 은어 낚시를 하는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나이들어 아이들과 함께 승용차를 타고 가끔 탐진강을 건너면 어릴 적 은어잡이 생각이 난다. 여름이면 강에 고기가 득실거린다. 은어는 수박 향이 난다. 배 부분이 은빛이 나고 가끔 엷은 황금색이 날 때도 있다. 입술 주변은 하얗다. 산란기에는 힘이 없어 어린아이도 여울에서 쉽게 잡을 수 있다. 학교 가는 길에 아랫도리를 걷어올리고 물에 들어가 고기를 잡았던 시절이 그립다. 정신 바짝 차리고 고사리손을 비비며 징검다리를 종종거리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정년이다.
첫댓글 내가 보에서 은어를 잡는 착각에 빠졌습니다. 징검다리 대신 다리를 놓아 편리해졌지만 복구할 수 없는 아름다운 자연은 사라져 버렸네요.
고맙습니다.
정년하면 강태공이 되는 꿈을 꿔 보기도 합니다. 선생님의 어린 시절의 환경을 돈주고라도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글 잘 읽었습니다.
엘레나 노르베리 호지가 지은 <오래된 미래: 라다크로부터 배우다>를 읽으면서 내 어릴 적 생활이 그리웠습니다. 자연과 사람, 사람과 사람이 더불어 살아가는 가치 회복을 위하여 우리는 무엇을 해야하나? 산업화 이후 우리는 편리한 생활을 하고 있지만 모두가 '항상 행복한가?' 라는 물음에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어린 시절 환경을 돈으로 살 수는 없겠지요. 하지만, 그 추억을 함께 나누며 서로의 마음을 훈훈하게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김석수
와우, 원장님! 이렇게 길게 답글도 쓰실 수 있는 분이시군요. 하하.
'항상 행복한가?' 라는 물음이 아프게 와 닿네요.
생생한 은어잡이가 그려집니다. 범생이 원장님이 은어 잡느라 지각하고는 얼마나 난처해 했을까도 보입니다. 산업화에 휩쓸려 생활이 편해진 반면에 우리가 놓쳐 버린 것도 정말 많다는 생각이 듭니다. 글로 만나는 어린 시절의 추억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