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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동식씨를 왜 아꼈는지 알 것 같았다. 아버지도 동네 머슴이었다. 그것도 자청한 머슴이었다. 아버지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동네일에 발 벗고 나섰고, 동네 사람들도 그걸 알아서 무슨 일만 생기면 아버지를 찾았다. 어머니는 우리 일 제쳐두고 남 일 우선인 걸 못마땅해 했지만 나는 한갑자를 살고도 턱없이 사람을 믿는 순진함−솔직히 말하자면 어리석음−이 더 못마땅했다.100
사회주의자라면서 남의 일은 대충대충 하는 게 사람 본성이라 확신하는 어머니가 아버지 앞을 가로막고 나섰다.
“오죽흐먼 나헌티 전화를 했겄어, 이 밤중에!”
또 그놈의 오죽하면 타령이었다. 사람이 오죽하면 그러겠느냐,는 아버지의 십팔번이었다. 나는 아버지와 달리 오죽해서 아버지를 찾는 마음을 믿지 않았다. 사람은 힘들 때 가장 믿거나 가장 만만한 사람을 찾는다. 어느 쪽이든 결과는 마찬가지다. 힘들 때 도움 받은 그 마음을 평생 간직하는 사람은 열에 하나도 되지 않는다. 대개는 도움을 준 사람보다 도움을 받은 사람이 그 은혜를 먼저 잊어버린다. 굳이 뭘 바라고 도운 것은 아니나 잊어버린 그 마음이 서운해서 도움 준 사람들은 상처를 받는다. 대대수의 사람은 그렇다. 그러나 사회주의자 아버지는 그렇다한들 상처받지 않았다. 그들이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은 사회의 구조적 모순 탓이고, 그래서 더더욱 혁명이 필요하다고 믿기 때문이었다.102
옳다고 생각하는 일에 절대 굽히지 않는 아버지가 어머니를 밀치고 어둠 속으로 발을 디뎠다. 그날 아버지는 트럭 밑에 깔려 산산조각난 한씨 사위의 시신을, 구급대원들조차 감히 손대지 못하는 처참한 시신을, 목 잘린 동지나 총 맞아 내장이며 뇌수 튀어나온 동지의 시신을 거둔 바 있는 빨치산의 특기를 되살려 직접 수습하고, 병원이며 장례식장을 주선하느라 동분서주하다가 밤늦게야 돌아왔다. 그때까지 어머니는 논에서 돌아오지 못했다.103
어머니 예상대로 동네 사람들은 네모반듯하지 않아 비뚤비뚤한 다락논의 네 귀퉁이에는 아예 모를 심지 않고 대충 일을 마무리했다. 어머니 혼자 별을 보며 스무마지기 귀퉁이마다 모를 심었다. 아버지가 곯아떨어진 뒤에야 네발로 기어 집에 돌아온 어머니는 까진 무릎에 아까징끼를 바르며 숨죽여 울었다. 누굴 닮았는지 모진 나는 어머니의 숨죽인 울음소리를 들으며 생각했다. 만에 하나 어머니가 월북했다면 자기 농사에 심혈을 기울이다 진작에 숙청당했을 거라고. 그것이 당신들이 믿는 사회주의의 실체라고.103
오죽해서 새벽 한시에 아버지를 찾았던 한씨는 며칠 뒤, 돼지고기 두근을 사들고 찾아와 고맙다며 연신 울먹거렸다. 그러나 아버지가 대신 냈다던 택시비는 갚지 않았다.
“아버지의 민중이 그렇지 뭐.”
내 비아냥에 아버지는 내가 남인 양 아니 남의 집 골칫덩이라도 되는 양 예의 그 사팔뜨기 눈으로 쏘아보았다. 그리고 말했다.
“오죽했으면 글겄냐! 그것도 못 주는 한센 맴은 오죽허겄어!”
오죽하기는 개뿔. 한씨는 얼마 있다 홀로 된 딸을 위해 집을 팔았다. 그 집에서 한씨가 십년간 계속 사는 조건이었다. 딸에게 줄 돈은 있어도 아버지에게 갚을 택시비는 그 뒤로도 영원히 생기지 않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버지는 몇 번이나 읍내와 광주를 쫓아다니며 사망보험금 처리를 대신 해주느라 바빴다.103-104
아버지처럼 동네 머슴이라는, 그걸 자랑으로 삼는 동식씨가 아버지의 사망진단서 두장을 황사장에게 건네고 나머지는 나에게 건넸다. 사망진단서를 쓸 데가 많은 모양이었다. 빨갱이였던 아버지는 감옥살이를 마치고 나와서도 늘 특별취급을 당했다. 이사를 가면 주소지 경찰서에 미리 신고를 해야 했고, 사나흘 집을 비울 때도 무슨 일로 어디에 가서 누구를 만나는지 미주알고주알 알려야 했다. 다 늙어 이십 킬로짜리 밤 부대조차 들 수 없을 지경이 되어서도 아버지에게는 담당 형사가 딸려 있었다. 그때쯤에는 감시하는 사람도 감시받는 사람도 이골이 나서 형 동생 하며 술잔을 나누는 사이가 되긴 했지만, 어쨌든 죽어서야 아버지는 보통의 대한민국 국민다운 절차를 거칠 수 있는 모양이었다.102-103
고향 손님들은 이미 조문을 마치고 사촌들 옆 테이블에 자리를 잡는 중이었다. 반내골 사람 중에 빠진 사람이라곤 작은아버지뿐이었다. 나는 작은아버지를 기다리고 있는 건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탓하는 사람은 루저니 뭐니 그럴싸하게 작은아버지를 무시했지만 본능적으로 나는 아버지 딸인지도 몰랐다. 이데올로기의 격류에 휩쓸렸던 형과 아우가 죽음 앞에서라도 평범한 형과 아우로 화해할 수 있기를, 나는 아무래도 기대하는 모양이었다.103
동네서 말 잘하기로 소문난 아버지지만 사실은 말싸움에도 몸싸움에도 젬병이었다. 누가 먼저 쌍욕이라도 날리면 이미 아버지의 참패였다. 욕설에 대비하는 방식을 아버지는 알지 못했다.
“어이, 진정허소. 진정부텀 해야 가타부타 말을 할 것 아닌가!”
진정한 사람은 싸우지 않는다. 가타부타 말할 수 있는 사람도 싸우지 않는다. 똑똑한 아버지가 그건 몰랐다. 그래서 아버지는 분이 머리끝까지 차 싸움에 임하는 사람을 절대 이기지 못했다. 그런 아버지가 총을 들고 백운산과 지리산을 누빈 역전의 용사라는 게 나는 좀처럼 믿기지 않았다. 총을 메고 산이나 뛰어다녔겠거니, 발은 빠르니까, 그 시절의 나는 그렇게 확신했다.114-115
“머라고라?”
“지 하고 자픈 대로 하게 냅두라고.”
“짝은아배! 숙자년 꼴을 보고도 시방 그런 말이 나오요? 여호와의 증인인가 머시기는 교회보담 더한 디라는디?”
나도 묻고 싶었다.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며? 그러다 이내 이유를 깨달았다. 여호와의 증인이라면 아버지가 감옥에서 여럿 경험한 바 있었다. 그들이 이기적인 사회주의자 동료보다 낫다고 입이 마르게 칭찬하지 않았던가.
“전쟁 반대허제, 십일조 없제, 나쁠 것이 한나도 읎다. 전쟁 반대한다고 군대도 안 가고 감옥살이를 자청해서 하는 놈들이어야. 참말로 대단허드랑게. 거개는 목사도 읎다더라. 긍게 돈 뺏기고 신세 망치는 일은 읎을 것이다.”
돈 뺏기고 신세 망치는 일 없다는 말에 큰언니 기세가 한풀 꺽였다. 참말이요,라고도 묻지 않았다. 집안사람 모두 아버지가 금이라 하면 금인 줄 알고, 돌이라 하면 돌인 줄 알았다. 빨갱이가 되라는 말만 아니면 팥으로 메주를 쑨대도 믿을 터였다. 집안사람들은 틈만 나면 탄식했다.
“저리 겡우 바르고 똑똑한 양반이 왜 하필 뽈갱이가 되았을꼬.”
그래놓고는 꼭 한마디 덧붙였다.
“하기사 그 시절에 똑똑흐다 싶으면 죄 뽈갱이였제.”
“똑똑헌 사램만 뽈갱이였가니. 게나 고동이나 죄 뽈갱이였제.”116-117
경희의 신념은 아버지의 신념만큼, 혹은 그보다 더 굳건했다. 동생 둘은 물론 사촌들에게까지 제 종교를 전파하여 우리 집안에서 무려 여섯명의 증인이 탄생한 것이다. 산에서 내려온 뒤 단 한명에게도, 심지어는 자식에게조차도 사회주의를 전파하지 못한 아버지보다 실천력은 비교 불가능하게 탁월했다. 큰집 조카들 여럿이 여호와의 증인이 되었다는 말을 듣고 나는 생각했다. 우리 집안은 신념의 집안인 모양이라고. 종교든 이데올로기든 신념이 아니면 지키기 어려우니까.118
“웜마, 요것들요이.”
까르르, 웃음이 터져 나왔다. 상 끄트머리에서 인물은 언니보다 한수 위라는 큰형부가 사람 좋은 얼굴로 허허 웃고 있었다. 낯선 풍경이었다. 우리 집에서는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우리 집의 대화는 대략 세 가지 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
1. 긴요한 이야기. 이를테면 어느 대학 무슨 과를 지원할 것이냐,와 같은. (…) 2. 정세 이야기. 내 부모는 눈만 뜨면 뉴스를 보았다. 그리고 주로 어머니가 물었다. 이번에는 누가 되겄소? 아버지는 누구누구, 답했고 대체로 적중했다. (…) 3. 빨치산 시절 이야기. 이건 주로 나 모르게 빨치산끼리만 속닥거렸다. 물론 좁은 집이라 그래도 다 들렸다. 나 몰래 한 이야기가 우리 집안 대화의 반의 반의 반이었다는 얘기다. 나는 빨치산 이야기를 밤마다 엿들으며 현대사를 배웠다.121-122
이렇게 말하고 보니 우리 가족이 별로 말을 나누지 않은 것 같겠지만 천만의 말씀. 우리 가족은 어느 가족보다 말이 많았다. 다만 그 말이 공적이고 논리적이고 정치적이었을 뿐이다. 그 외의, 그러니까 보통의 가족이 주고받는, 너 요즘 무슨 고민이 있냐, 왜 공부를 안 하냐, 옷이 예쁘길래 사왔는데 입어봐라, 너는 왜 바지만 입냐, 남자친구는 있냐, 왜 연애를 안 하냐, 이런 말을 나누지 않았을 뿐이다. 세상으로 돌아왔지만 여전히 혁명가였던 내 부모에게는 연애도, 옷도, 화장도, 별 의미 없는 사치에 불과했다. 그 틈에 끼어 나는, 혁명가도 아닌 나는, 신념도 없는 나는, 일상의 평범한 대화를 맛보지 못한 채 어른이 되고 진지하지 않은 것은 참지 못하는 꼰대 같은 어른으로, 그러니까 아버지, 나는 억울하다니까요! 그래봤자 아버지는 죽었고, 죽어서도 혁명가인 양 영정사진 속에서 근엄한 얼굴로 딴청을 피우고 있었다.122-123
“고상욱이 본 사람 손 들어!”
군인의 입에서 아버지의 이름이 불린 순간 여덟살이었던 큰언니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어린 나이였지만 언니는 직감적으로 고상욱이 작은삼촌이라는 말을 하면 안 될 것 같았다. 혹 누가 쨔가 고상욱이 조칸디라, 이르기라도 할까봐 언니는 가슴 졸이며 고개를 푹 수그렸다. 그런데 키가 작아 언니보다 두줄 앞에 앉아 있던 작은아버지가 번쩍 손을 들었다.
“고상욱이 우리 짝은성인디요! 짝은성이 문척맨당위원장잉마요.”
면당위원장은 면에서 제일 높은 사람, 작은아버지는 형이 자랑스러웠던 것이다.
“요씨! 고상욱이 언제 봤어?”
“동네서 돼야지를 시마리나 잡아가꼬 군인들허고 한 대엿새 잔치를 치렀는디요. 오늘 새복에 눈 떠봉게 가불고 없든디요.”126-127
“그때게…… 막냉이 삼춘이 손만 번쩍 안 들었으면 할배가 안 죽었을랑가……”
큰언니가 옷고름으로 눈물을 찍으며 중얼거렸다.128
그런 사연이 있는지 몰랐다. 그저 빨갱이 아버지 때문에 집안 망하고 공부 못한 것이 한이라 사사건건 아버지를 원망하는 줄로만 알았다. 아홉 살 작은아버지는 잘난 형 자랑을 했을 뿐이다. 그 자랑이 자기 아버지를 죽음으로 몰아갈 줄 어찌 알았겠는가, 작은아버지는 평생 빨갱이 아버지가 아니라 자랑이었던 아홉 살 시절의 형을 원망하고 있는 게 아닐까. 술에 취하지 않으면 견뎌낼 수 없었던 작은아버지의 인생이, 오직 아버지에게만 향했던 그의 분노가, 처음으로 애처로웠다.129
아버지는 알았을까? 자기보다 한참 어린 막내가 면당위원장인 당신을 그렇게나 자랑스러워했다는 걸, 그 자랑이 당신의 아버지를 죽음으로 몰아갔다는 걸, 그게 평생의 한이 되어 자랑이었던 형을 원수로 삼았다는 걸, 어쩐지 아버지는 알고 있었을 것 같다. 그래서 아버지는 수시로 작은아버지의 악다구니를 들으면서도 돌부처처럼 묵묵히 우리 집이나 작은집 마루에 걸터앉아 담배만 뻐끔거렸을 것이다. 하지만 정확히는 몰랐을 수도 있다. 아무도 보지 않은 그날의 진실을, 그날 작은아버지 홀로 견뎠어야 할 공포와 죄책감을, 보지 않은 누군들 안다고 할 수 있으랴. 역시 작은아버지에게는 작은아버지만의 사정이 있었던 것이다. 독한 소주에 취하지 않고는 한시도 견딜 수 없었던 그러한 사정이.130-131
“뽈갱이가 죽었응 게 박수를 쳐야 마땅허제 나라 녹 묵는 사램들이 시방 머 흐는 짓거리내? 적화통일이라도 하자는 거여, 머여?”
어디 다녀오는 길인지 저만치서 황사장이 잰걸음으로 다가왔다.
“아이고, 왜 또 이래쌓소. 몰르는 사이도 아님서.”
“성님 친구람서? 성님 친구 초상에 훼방을 놔야 쓰겄소.”
“친구는 무신 친구! 우리 성님헌티 삘건 물 드레가꼬 우리 집안 말아묵은 놈이제. 아이고 시원타! 시원코 잘 죽었다!”132-133
황사장에게 조금씩 끌려가던 노인이 뒤돌아 침을 퉤 뱉었다. 빨갱이에게 손가락질하는 사람이 대한민국에 저 노인 하나뿐이겠는가. 그게 아버지가 살아온 세월이었다. 머리로는 그렇게 생각했으나 심장이 두근거렸다. 경우 바르고 똑똑한 아버지가 21세기인 지금도 누군가에게는 함부로 침 뱉어도 되는 빨갱이일 뿐인 것이다.133
“어이, 황사장. 나가 분이 나겄능가, 안 나겄능가. 자네도 쪼까 생각을 해보소. 나는 베트콩들허고 싸우다가 다리 뱅신이 됐는디, 나헌티는 땡전 한푼 안 줌시로 저런 뽈갱이놈 맹 끊어졌다고 군수에 국회의원에, 화환이 시방 말이 되능가? 쩌놈이 독립군이여, 애국자여? 반역자여, 반역자!”133
황사장은 주방 쪽으로 총총 걸음을 옮겼다. 대접할 술과 음식을 가지러 가는 모양이었다. 술과 안주를 챙긴 황사장이 사무실로 돌아간 뒤에도 나는 오래도록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공술을 먹기 위해서든 뭐든 노인의 말은 진실이었다. 대한민국의 수많은 사람에게 아버지는 그런 존재였다. 누군가는 노인처럼 잘 죽었다고 박수를 칠지도 몰랐다. 죽음 앞에서도 용서되지 않는 죄란 무엇인가. 해는 더 높아지고 볕은 더 따가워졌다.134
“아리라 했제” 성님헌티 말 많이 들었네.“
화환을 지팡이로 후려쳤던 노인네는 술이 들어가자 말끔해진 정신으로 내 이름을 불렀다.
“아까는 나가 쪼까 과했네. 우리 성은 죽고 성님만 살아 온 것이 썽이 나서 그랬그마. 성님은 요래 뽀대나게 장례도 치르는디 우리 성은 암도 모리게 가부렀잖은가. 그래도 성님 덕에 우리 성 간 날도 알고, 시신도 찾았네. 성님 아니었으먼 지사도 못 지낼 뻔봤제.”135
아버지는 왜 하필 고향으로 돌아온 것일까. 나는 늘 궁금했다. 언젠가 물었더니 의아한 얼굴로 아버지가 되물었다.
“글먼 고향 놥두고 워디로 간다냐?”
구례는 아버지의 고향이기도 하지만 아버지의 전장이기도 했다. 아버지의 친척과 친구가 있는 곳이기도 하지만 아버지를 적으로 아는 사람도 있는 곳이라는 의미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고향에서 사는 데 거리낌이 없었다. 몇 년에 한번씩 바뀌는 정보과 담당 형사들과도 허물없이 농을 주고받으며 두루두루 잘 지냈다. 감시하는 형사와 술잔을 나누고 싶냐는 내 비아냥도,
“순갱은 사램 아니다냐?”
아버지는 대수롭잖게 받아넘겼다.
“몰르는 사램잉게 총질을 해대제 구례 사램들끼리는 안 그랬어야. 뽈갱이든 퍼랭이든 노상 얼굴 보고 살았는디 총이 겨놔지가니. 구례는 해방 직후에 친일파 숙청도 지대로 못했당게.”
고씨 집안사람 하나가 친일파였다. 친일로 제법 돈을 모았고, 일본에 헌납도 한 모양이었다. 해방 직후 면의 젊은이들이 그를 당산나무 아래로 끌고 왔다. 쳐 죽이라는 고함이 터져 나왔다. 혈기왕성한 젊은이 하나가 낫을 들고 다가가자 누군가 빽 소리를 쳤다. 젊은이의 어머니였다.
“그 어른 아니었으먼 니가 시방 산 목심이 아니어야!”
젊은이가 어린 시절 이질로 죽어갈 때 고씨가 병원비를 댄 것이다. 사람들이 한마디씩 보태기 시작했다.
“우리 애기 학벵 끌레가게 생겼는디 고씨 어른이 손을 써줬그마요.”
고씨 성토장이 이내 미담장으로 변했다. 쳐 죽이자고 했던 젊은이들도 그만 머쓱해져서 흐지부지 흩어지고 말았다.
“민족이고 사상이고, 인심만 안 잃으면 난세에도 목심은 부지허는 것이여.”
자신도 고씨처럼 인심을 잃지 않았으니 빨갱이라도 고향서 살 수 있다는 의미인 듯했다. 한때 적이었던 사람들과 아무렇지 않게 어울려 살아가는 아버지도 구례 사람들도 나는 늘 신기했다. 잘 죽었다고 침을 뱉을 수 있는 사람과 아버지는 어떻게 술을 마시며 살아온 것일까? 들을 수 없는 답이지만 나는 아버지의 대답을 알 것 같았다. 긍게 사램이제,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내가 목소리를 높일 때마다 아버지는 말했다. 긍게 사램이제. 사람이니 실수를 하고 사람이니 배신을 하고 사람이니 살인도 하고 사람이니 용서도 한다는 것이다. 나는 아버지와 달리 실수투성이인 인간이 싫었다. 그래서 어지간하면 관계를 맺지 않았다. 사람에게 늘 뒤통수 맞는 아버지를 보고 자란 탓인지도 몰랐다.136-1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