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일상
지은이:벌마로(김윤식)
강릉바닷가의 기억은 새댁들에게 한층 친숙함을 느끼게 해 주었고 여자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선미 씨가 일하는 미용실로 모였다. 오늘도 새댁들은 아침부터 미용실에 모였다. 딱히 할 말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녀들은 남자들이 부대에 출근하고 나면 의례 이곳에서 보는 게 일상처럼 되었다. 점심때가 지날 때쯤 아이스크림을 사러 나갔던 선미 씨가 문을 열고 들어오기가 무섭게 호들갑을 떨었다.
냇가에서 멧돼지파티가 벌어졌다고 했다. 여자들은 일제히 그곳으로 달려갔다. 개울가에는 범수아저씨가 사냥으로 잡아온 멧돼지를 손질하고 있었다. 영우가 얼핏 보기에 어마어마하게 커 보였다. 지금껏 이렇게 큰 돼지는 처음 보는 것 같다. 영우는 돼지 잡는 모습이 징그러워 더 이상 볼 수가 없었다. 여자들도 더 이상 못
보겠다고 해서 각자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집으로 돌아온 영우가 아주머니에게 말씀드렸더니 이미 알고 계셨다.
얼마쯤 시간이 지나자 아주머니가 돼지 잡는데 같이 가자고 하셨다. 영우는 징그러워서 갈 생각이 없었지만, 지금쯤은 다 끝났을 거라며 가서 고기만 얻어오면
된다는 아주머니의 채근에 마지못해 따라나섰다. 영우가 도착했을 땐 벌써 마무리가 돼가고 있었다. 사람들은 각자 가져갈 고기를 나눠서 봉지에 담으면서 한쪽에선 불을 지펴 고기를 굽고 있었다. 뜨겁게 달궈진 장작불위에 슬레이트를 걸쳐 놓았고 그 위에서 고기가 먹음직스럽게 익어가고 있었다. 고기를 이리저리 뒤집으며 굽고 있던 어떤 아저씨가 영우를 보며 짓궂은 농담을 던졌다.
“고기 구울 때는 젊은 새댁이 사는 집 변소지붕 슬레이트를 뜯어다 써야 제 맛인데,,,”
부끄러워서 얼굴이 빨개진 영우를 방어해 주려는 듯 주인집 아주머니가 나섰다.
“노총각이 사는 집 변소지붕 뜯어서 쓰는 게 더 좋다는 말 못 들었어?”
“그런 말이 어딨어요?”
“그런 말 있어”
“나는 금시초문인데,,, 아줌마네 식구 아니랄까 봐 감싸 주는 거 보세요. 하하하”
“싱겁기는, 쯔쯔쯔,,,”
고기를 받아 들고 집으로 오면서 아주머니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아무 데서나 실없는 소리를 하니까 여태껏 장가를 못 가지”
그 소리를 듣고 영우가 물었다.
“연세가 꽤 들어 보이던데요”
“맞아! 사십이 다됐어. 그런데 선을 봐도 퇴짜만 맞고 맨날 그 모양이야. 언제나 철이 들어서 장가를 가려나,,,”
아주머니의 말에 영우가 ‘픽’하고 웃었다.
“왜 웃어? 새댁이 보기에도 한심한가 보지”
영우의 웃음은 아주머니의 그것과 달랐다. 영우는 학창 시절 똥피리 선생님이 떠올라서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온 거다. 40이 다 되도록 장가를 못 간 것도 그렇지만 외모에서 풍기는 고리타분한 이미지가 겹쳐졌기 때문이다. ‘똥피리 선생님, 지금쯤 장가는 갔으려나,,,’
아주머니가 멧돼지 고기로 맛있게 차려준 밥상을 가운데 두고 병휘와 마주 앉은
영우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오빠 나 내일 동네 아저씨들 하고 산에 버섯 따러 갈까?”
밥을 한 숟갈 입에 넣으려다 깜짝 놀란 병휘가 눈을 끄게 뜨고 영우에게 되물었다.
“산에를 간다고,,, 버섯 따러?
“왜, 안돼?,,, 걱정 마 동네 아저씨들이 다 알아서 보호해 준다고 그랬어.”
“이곳은 산이 험해서 위험할 텐데,,, 뱀도 많고 워낙 깊은 산속이어서 주변지형을
모르면 순식간에 길을 잃을 수 있어. 도시에서만 자란 영우가 산골에서 잔뼈가
굵은 아저씨들을 따라다닐 수 있겠어?”
“아저씨들이 도와준다고 했다니까”
“영우가 호기심이 많아서 그러나 본데, 따라가더라도 항상 옆에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가야하고 깊은 산속까지는 따라가지 마. 그런데 버섯 따러 갈 생각은
어떻게 하게 된 거야. 갑자기,,,”
영우는 오늘 낮에 선미 씨가 일하는 미용실 갈 때 버섯을 따러 산에 오르는 마을 사람들과 마주쳤었다. 그때 자신도 따라가고 싶다고 부탁했었는데, 마을사람들이
흔쾌히 데려가 주겠다고 하셔서 병휘에게 허락을 구하는 거다.
다음날 영우는 간단한 지식을 습득한 후 동네 아저씨들 2명과 양철지붕 사시는
부부2명이 한 조가 돼서 버섯을 따러 산으로 출발했다. 마을을 출발한 일행은 마을과 산 사이를 가로지르며 흐르는 냇가를 건너서 산모퉁이를 돌아 계곡 쪽으로
오르기 시작했다.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은 보기에도 좋았고 깊은 계곡이라 흐르는 물소리도 청아했다. 계곡입구에는 산에서 흘러 내려온 크고 작은 돌들이 각자의 모습으로 자리를 잡고 있었고 이 길을 다니는 사람들의 안전을 기원하며 쌓아
올린 돌탑들도 영우의 눈에 보였다. ‘이 돌탑 들은 누가 쌓았을까?’
영우가 궁금해서 아저씨에게 물었다.
“아저씨 이 돌탑들은 누가 쌓은 거예요?”
“누구랄 것도 없이 이 길을 다니는 사람들이 한 개씩 올려놓은 것이 탑이 된 거
야. 색시도 하나 올려 봐요”
아저씨가 대답을 하며 어느새 평편한 돌멩이 하나를 주워서 영우에게 건넸다. 돌을 받아 든 영우가 가장 안전하게 생긴 돌탑 위에 올려놓으며 마음속으로 이곳
마을의 안녕을 빌었다. 앞장서 걷던 아저씨가 걱정이 되는지 뒤돌아보며 영우에게 다짐하는 말을 건넸다.
“색시 꼭 우리가 지나간 길로만 따라오고 조금이라도 힘들면 얼른 얘기해요.” “네 아저씨 걱정 마세요”
아저씨들의 염려가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다. 영우의 첫 산행, 출발은 호기롭게 시작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서 지치기 시작했고 너무 힘들고 위험했다. 강원도의 험준한 산은 그녀에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영우는 점점 처음의 용기를 잃어가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잘못 판단했음을 절실하게 느꼈다. 걸핏하면 넘어지고 미끄러지고 놀래고 마을사람들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다.
일행들은 영우의 안전을 신경 쓰느라고 버섯채취도 제대로 못하고 평소보다 일찍
하산을 서둘러야 했다. 마을로 돌아온 일행은 오늘의 소득을 분배하기 위해서 양철지붕집 아주머니네로 모였는데 영우가 따온 버섯은 반 정도가 독버섯이거나 못 먹는 버섯이다. 그래도 동행한 멤버끼리는 수확물을 똑같이 나눠야 하는 풍습이 있어서 영우도 버섯을 바구니 가득 나눠받을 수 있었다. 영우가 버섯바구니를 옆에 끼고 마을 어른들께 인사를 드렸다.
“고맙습니다. 잘 먹을게요”
“색시 내일 또 갈래”
아까 돌을 집어 주었던 아저씨가 영우를 놀리듯이 웃음 띤 얼굴로 말을 건넸다. “아니요 못 갈 것 같아요”
“왜 한 번 더 가지? 산을 잘 타던데,,,”
옆에서 듣고 있던 아주머니가 말을 끊으며 나섰다.
“그만 놀려요 오늘 혼이 단단히 났을 텐데, 색시 어서 들어가요 힘들었을 텐데” “네 안녕히 계세요”
영우가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들어왔다. 다시한번 자신이 채취해 온 버섯을 들여다보며 흐뭇해하고 있을 때 병휘가 퇴근해서 돌아왔다. 병휘가 방에 들어서자
영우는 신이 나서 바구니를 꺼내 보였다. 병휘는 바구니의 버섯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산에 가서 사고라도 생길까 봐 부대에서도 노심초사 영우 걱정으로 하루를 보낸 병휘다. 그런데 막상 멀쩡한 모습의 영우를 보자 맥이 풀리고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와 헛웃음을 짓고 말았다.
영우는 지금 병휘가 오늘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아랑곳없이 버섯을 집어 들며 자랑을 하고 있다.
“이거는 표고버섯, 이거는 느타리버섯, 노루궁뎅이버섯, 송이버섯,”
병휘는 그런 영우의 모습을 내려다보며 허탈하게 웃음 짓고 서 있다.
“오빠! 나 버섯 많이 따왔지?”
그러고 보니 생각보다 제법 많이 따온 것 같다.
“그러게,,, 이걸 영우가 전부 따 왔단 말이지?”
“아니야 나 혼자 따온 건 아니고 동네 어른들이 나누어 주셨어,,, 그래서 이렇게
많은 거야,,, 내가 무슨 수로 이렇게 많이 따왔겠어?,,,”
“그럼 그렇지! 산에 처음 가서 이렇게 많이 따올 리가 없지,,, 아무튼 무사히 다녀와서 다행이야,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한번 경험했으니까 앞으론 산에
가지 마. 뱀도 많고 산짐승도 있고 산은 정말 위험한 곳이야”
“알았어 오빠 이젠 안갈거야. 나도 힘들어 죽는 줄 알았어”
영우가 따온 버섯은 다음날 아침 아주머니의 손을 거쳐 맛있는 반찬이 되어 밥상에 올라왔다. 물론 아주머니의 칭찬도 밥상 위에 올라왔다. 나머지는 그늘에 말려 오래 두고 먹는다고 했다.
첫댓글 아름다운글 감사합니다
멋진하루 되십시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