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LP판에서 흘러나오는 아름다운 노래
최00(57세)
긍정은 희망을 낳고, 희망은 아름다운 인생을 엮어나간다. 최00(57세) 씨 얘기를 들으면서 떠오른 생각이다. 최00 씨는 정말 효녀이며, 열부이고, 착한 어머니였다. 부모님을 향한 마음, 남편을 향한 마음, 그리고 자식을 향한 마음으로 똘똘 뭉쳤다. 아울러 마을사람들을 향한 공동체 사랑이 대단했다. 게다가 일에 대한 열정도 그 어느 누구도 따라가지 못할 정도이다. 모두 무한 긍정의 마음에서 나온 에너지였다. 긍정 에너지는 희망을 싹 틔웠다. 그리고 아름다운 인생을 만들어 나가고 있었다.
최00 씨는 이 동네에서 나고 자랐다. 그러나 어려서부터 인생은 평탄하지 못했다. 아픈 부모님과 오빠가 있는 집에서 열심히 일하여 생활을 꾸려갔다. 언감생심이라 하든가. 고등학교 진학은 꿈에서도 멀었다. “엄마 아빠가 탄탄하지 못하면 자식도 힘들잖아요.”
중학교를 다니다가 부산으로 가서 직장을 다니면서 학교를 다녔다. 그러나 어머니가 아파서 다시 동해로 올라왔다. 그때 아버지도 아프고, 설상가상으로 오빠마저 심장이식 수술을 했다. 참 힘든 나날이었다. 그런 와중에도 뭔가 배워야 한다는 생각에 미용기술을 배우게 되었다. 강릉에 가서 미용학원을 다녀 자격증을 땄다. 그러나 금방 써 먹는 것이 아니었다. 미용실 보조로 들어가서 일을 하면서 눈썰미로 기술을 배웠다. 주변에서는 너무 고생을 하니, 결혼을 하라고 했다. 하지만 마음이 잘 허락하지 않았다.
그때 남편을 만났다. 유선방송 사업을 하는 남편은 몸은 좀 불편했지만 정말 착했다. 눈물이 날 정도로 착한 사람이다. 그래 만나자 마자 가슴이 울렁거릴 정도로 좋았다. 착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성실하기까지 했다. 남편의 유선방송은 잘 됐다. 그러다가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케이블TV까지 감당하기에는 버거웠다. 남편은 동해유선방송에다 자신이 운영하던 유선방송을 팔았다. 그때 남은 것이 지금의 건물이다.
미용실도 잘 됐다. 그런데 미용실에서 사람들 만나면 말이 많아 점점 싫어졌다. 잘 했니, 못 했니, 누가 어떻다느니 등등 참 말이 많았다. 미용실 이름은 ‘헤어필’이었다. 특히 젊은이들의 머리 느낌을 좋아했다. 다양한 색채에다가 기발한 모양을 낼 수 있어 좋았다. 손재주가 좋은 탓에 손님도 많았다. 이제 미용실을 그만 둔지 3년 된다.
요즘은 두 가지 일을 한다. 하나는 그물작업이고, 하나는 카페를 운영한다. 내 건물이다 보니 부담이 많지 않다. 카페 옆방에 그물작업을 하는 공간을 마련했다. 힘은 들지만 단순 노동이라 좋다. 아마도 노후 연금은 그물작업이 될 것이다.
카페는 남편이 모은 LP판을 장식삼아 하고 있다. 남편이 음악을 좋아한다. 순옥 씨도 음악을 좋아하고 또 음식 만드는 것을 무척 좋아한다. 잘하고 좋아하는 일을 하니 기분이 좋다. 처음에는 카페에서 저녁에 술도 팔았다. 그런데 술이 취하니 손님끼리 사소한 것으로 싸우기도 하고, 울기도 하는 등 감당하기 어려운 일들이 있어 이제 술은 팔지 않는다.
요즘 우연히 마을 부녀회장을 맡았다. 마을을 위해서 뭔가 좋은 일을 해야 한다는 마음에 열심히 하고 있다. 내 일은 못해도 부녀회장을 맡고 있는 동안은 마을 일을 잘 하고 싶다. 그런데 그물작업에 카페에 일이 많아서 힘에 부치기도 한다.
지금까지 일 하느라 여행을 한 번도 못 가봤다. 일하다 잠시 시간나면 주변 드라이브 하는 게 여행의 전부였다. 그래서 꿈은 경치 좋고 공기 좋은 곳이며 인적 드문 곳에 가서 집을 지어 놓고 사는 것이다. 지나가는 사람 찾아오면 찬 한잔 하고, 책 읽으면서 잠시 쉬었다 가는 그런 공간을 만들고 싶다.
부드러운 음악이 흘러나오는 책방마을 카페에서 00 씨는 오늘도 아름다운 인생을 엮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