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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비엔날레와 부산미술대전 그 현장을 가다.
정인성 (부산미술협회 감사 및 부산비엔날레 감사)
지난해 11월 8일 2020 부산비엔날레가 65일간의 일정을 끝냈다. 코로나19로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전시회가 무사히 끝나게 되어 비엔날레 감사의 입장으로 대단히 다행스러운 일이다. 을숙도 현대미술관과 영도에 자리한 주) 해금엔지 폐공장에서 열린 전시회는 대면 전시가 허용되자마자 관람했다. 그러나 동광동과 남포동에서 산발적 열린 전시는 시간에 쫓겨 마지막 날 관람하게 되었다. 원도심 전시공간은 여러 건물로 나뉘어져 개최되고 있었는데 일요일이라 주변 상가는 모두 문을 닫아 한적했다. 일명 동광동 인쇄 골목이라고 불리는 거리인데 가을 햇살이 단풍 든 가로수 나무에 기대어 선명한 그림자를 길 위에 늘어놓고 있었다. 햇살을 머금은 플라타너스 나뭇잎의 노란빛이 유난히 눈부신 거리는 휴일의 한가함에 푹 젖어있었다.
필자가 40계단 주변에 산재한 전시장을 찾은 시간은 오전 10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그러나 생각 이외로 관람객이 많았다. 삼삼오오 짝을 지어 전시장을 찾고 있었다. 주로 젊은이들이었고 가끔 외국인도 안내 책자를 들고 숨은 전시 장소를 찾고 있었다. 맨 처음 방문한 전시장은 안내 책자 지도에 4번이라고 번호가 붙여진 워크숍이다. 전시장에 들어가기 전 발열 체크를 하고 명부에 기록 후 비치된 알코올로 손을 소독한 뒤 관람했다. 천장과 바닥을 검은색으로 칠해진 전시장은 벽면에 걸린 작품과 중앙에 사진 엽서를 꽂아 세워둔 이동식 진열대가 하나의 예술공간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그 공간에서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의미를 찾아보려고 노력했으나 나로서는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소설 속 한 장면이라도 연관시킬 수 있을까 하여 기억을 부지런히 뒤져봐도 별반 소용이 없었다. 하얀 액자 속에 담긴 무수한 사연과 엽서 사진이 알듯 모를 듯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음은 분명해 보였다. 일순간 현대미술의 개념적 서술과 나의 서정적 작업 사이에서 혼란이 왔다. 무수한 생각이 겹쳐져 어지럽게 했다. 워크숍을 나와 다음 전시장 또따또가를 찾았다. 또따또가 갤러리는 2층과 3층으로 좁고 가파른 계단이 인상적이었다. 또한 깜깜한 실내로 들어서니 주변 상황이 확인되지 않아 그자리에 서서 움직이지 못했다. 한동안 상영되는 영상을 바라보고 있으니 주변이 차츰 밝아지고 작품을 감상하고 있는 관객도 보였다.
가이드 북에 소개되는 201&301, 창, 스페이스 닻을 이어서 찾아가 관람하는 도중 길에서 보았던 외국인도 같은 동선으로 관람을 하는지 몇 번 마주쳤다.
이들과 마주치면서 비엔날레가 전시공간을 원도심으로 확장한 이유와 새로운 시도로 부산을 알리고 소개하는 역할을 하고있다고 생각되었다. 전시회를 다 관람하고 40계단을 올랐다. 부산의 소리를 40계단에 심어둔다고 했었는데 아무리 귀 기울여도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계단 아래 내려다 보이는 거리의 귀퉁이 '창'의 가게 앞 관람객들의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어쩌면 그 소리가 진정 부산의 소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40계단을 내려와 동광동에서 대청로를 따라 구. 한국은행 본부와 근대역사관(구. 미문화원)을 거쳐 남포동 부산은행 아트시네마 갤러리까지 이어진 동선을 따라 부지런히 걸었다. 소설가 박솔뫼가 쓴 '매일 산책 연습'의 길이다. 부원맨션, 용두산 아파트, 유나백화점, 소설 속 이야기의 길을 따라 나도 오랜만에 과거의 시간 산책을 즐겼다. 나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그 시절 무장한 군인과 경찰이 시위대와 대치하던 미 문화원 주변과 국제시장, 광복동의 거리다. 거리에는 최루탄가루가 싸락눈처럼 바람에 흘러 다니던 기억이 새롭게 떠올랐다. 국제시장 도로의 바닥에 때지어 앉은 시위대에게 주변 상인과 시민들은 박수를 보내고 빵과 음로수를 건내던 모습과 달이나던 시위 학생을 뒤쫗던 군인들의 아수라같은 현장 풍경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필자가 숨겨진 전시장을 헤매며 찾아다닌 행위가 "명탐정 야콥 051"의 숨겨진 의도를 깨닫게 하는 시간이었다. 사실 오랫동안 남포동에서 살았던 나로서는 중앙동 일원을 나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숨은 전시장 찾기가 쉽지 않았다. 덴마크 출신의 전시 감독 야콥 파브리시우스는 전시공간을 원도심으로 확장하여 수소문하고 찾아가는 방식으로 부산의 일부를 체험하고 느끼게 하려고 구성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고 보면 그 구성 방법은 성공적인 듯하다.
전시회를 관람하기 전 방역 명부에 나를 기록하면서 지역 난을 슬쩍 보니 서울에서 온 사람들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전시장 도우미에게 하루 관람객이 얼마나 되는지 물어보니 약 백 명 정도가 된다고 했다. 관심을 가지고 전시장을 찾아온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매일 규칙적인 일상을 벗어나 문화 향유를 위해 시간을 비워내는 일은 자신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시간이다. 현대인들의 삶이 이제 의식주 해결만으로 만족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났나 보다. 문화가 삶의 필수가 된듯하다. 어떤 젊은 남자 관람객에게 어디서 왔냐고 물어봤다. 인천에서 왔다고 했다. 비엔날레 관람을 위해 어제 혼자 부산으로 와서 을숙도 현대미술관을 관람하고 1박을 한 후 중앙동 일원의 전시를 관람 후 영도 전시를 관람할 계획이라고 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부산의 미술인들은 이번 비엔날레 전시를 몇 사람이나 관람했는지 갑자기 궁금해졌다.
필자가 아는 바로는 부산비엔날레는 부산 미술인들이 주축이 되어 만들어졌지만, 철저히 부산미술인들에게 외면당하고 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 복잡한 이해관계로 얽혀 부산 미술인들의 생각과 비엔날레를 운영하는 집행위원장의 견해차에서 오는 거리감이 가장 큰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듯 보인다. 비엔날레가 부산 미술인들과의 소통 부족으로 부산 미술인들의 관심을 밀어내 버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비엔날레는 저들만의 행사로 외면되고 있다. 현재 부산비엔날레의 운영을 주관하는 집행위원장은 그러한 문제를 극복하고자 부단히 노력하고 있지만, 부산 미술인의 생각은 쉽게 바뀌지 않나 보다. 그러고 보면 부산시립 미술관이 작품의 수준을 내세워 부산미술협회에서 매년 치루는 부산미술대전을 시립미술관에서 밀어낸 것과 맥을 같이 한다고 본다. 올해 부산미술대전 행사는 마땅한 전시공간이 없어 산발적으로 흩어져 전시할 수밖에 없었다. 부산문화회관과 시립미술관, 부산시청 전시장에 흩어져 전시하다 보니 관람객들의 불만과 분노가 이만저만 아니다.
부산시립미술관 역시 부산미술인들의 노력으로 만들어졌다. 부산시립미술관 홈페이지 미술관을 소개하는 글에는 "부산시의 대표적 미술 문화공간으로 지역 미술의 활성화와 시민들의 감성 문화 배양을 운영의 주요 목표로 두고 있다. (중약) 다양한 예술작품 및 예술인의 활동으로 일반 대중과 손쉬운 예술적 만남의 장(場)을 제공하고 미술 인구의 저변 확산과 미술창작의 활성화에 이바지하여 향후 부산미술계에 혁신적 역할을 하며"라고 되어 있다.
부산미술협회에서 주관하는 부산미술대전은 지역 미술의 활성화에 부응하는 행사다. 부산시가 지원하고 부산의 많은 미술인이 참여하는 대중성 있는 행사로 알려져 있다. 또한, 미술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에게도 미술계에 입문하는 통로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시립미술관에서 밀려났다. 그렇다면 질 좋고 수준 높은 전시회를 유치해 놓고 정작 부산 시민과 부산 미술인들로부터 외면당하는 실태는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미술관 인지, 시립미술관의 행정을 바라보면 안타깝다는 생각이 앞선다. 부산 시민과 부산 미술인들을 배려하는 방향으로 생각의 관점을 조금만 바꿔 본다면 그 답은 의외로 쉽게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요즘 외면당하고 있던 트로트가 대세로 주목받고 있다. 모든 방송이 트로트 열풍에 젖어있다. 그만큼 대중성이 중요해졌다는 방증인 것이다. 미술도 비록 수준이 낮다고 해도 대중성이 있어 관람객이 많이 온다면 성공적이지 않을까 묻고 싶다. 아무리 수준 높은 전시를 몇 달간 개최한다고 해도 관람객 수가 그렇게 많지 않다면 흥행에 실패한 기획이 된다. 미술관의 운영은 시민의 눈높이에 맞는 높음과 낮음이 적절히 섞일 때 더 좋은 결과를 창출하지 않을까 싶다. 미술에 관한 전문적 지식이나 높은 안목을 가진 관장과 학예사의 관점과 부산 시민의 관점은 상이하다. 현실과 동떨어진 이상이 과연 시민의 관심을 받을 수 있을까. 부산 시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미술관이 부산 미술인들에게 외면당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이러한 생각은 처한 처지에 따라 다르겠지만 적어도 다수의 부산 미술인들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