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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泉 摩尼珠
불기 2567년 계묘년 부처님 오신날에 비로사 석인 돈여
佛生迦毘羅(불생가비라) 부처님 가비라에서 탄생하시고
成道摩竭陀(성도마갈타) 마갈타국에서 성불하셨네
說法波羅奈(설법바라나) 설법은 바라나시에서 시작하시었고
入滅拘尸羅(입멸구시라) 구시라성에서 열반에 드셨구나
오늘은 부처님이 오신지 2567년 되는 날입니다.
부처님 탄신을 경하드리옵고 부처님 자비 광명이 온 세상 가득하여
평화롭고 신심있는 국토가 되게 하시옵고 부처님 정법이 오래도록 존속하게 하옵소서 이 법회에 동참하신 여러분 모두 부처님 성불하신 뜻을 새기며 동시에 성불하시길 기원합니다.
깊은 숲속의 난초는 그윽한지라
보는 사람 없어도 자태와 향기 수승 하구나
간직한 도 아름다운 보배 인지라
안목을 갖춘 자
비로소 알 수 있으리.
부처님은 출가하신 후 설산에서 육년의 고행을 하시고 보리수 아래에서 성불하신 뒤 열반에 드시려다 자비심을 일으키셔서 설법을 시작하시어
아란존자를 시자 삼아 인도 전역을 설법하며 다니는데
하루 종일 걸어서 다음 설법지를 향하여 가시다가 저녁이 다가와 쉬려고
머무시는데 목이 마르니 존자에게 물을 길어오게 하였는데
쉬는 처소 위쪽의 길로 우마차가 지나간 뒤여서 물이 흐려져 있었다.
아란존자는 눈에 보이는 탁한 물을 부처님께 공양올릴 수 없다 생각하시고 길지 않고 돌아왔습니다. 그때 천신은 그냥 길어가면 부처님이 알아서 드시고 해갈을 하였을 것을 하고 탄식을 하였습니다. 당연히 부처님은 갈증을 해소치 못하고 힘든 시간을 견뎌야 했습니다.
탄생, 청정한 정신의 세계 도리천에 계시다가 마야 부인의 태에 들어서 오늘 탄생하며 여래장이 되었지요.
마니주에 비유한 청정한 자성과 여래장의 모습이 많은 경전에 등장하고있으며 부처님으로부터 28대 조사이신 달마스님이 불법을 중국으로 전하시고 그 뒤로 이어지다가 마조스님에 이어서 남전보원스님에게로 이어졌고 그분의 설법 중에 마니주를 즉 본성을 우리 선종의 조사 스님을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 오늘 살펴보려고 합니다.
부처님의 법이 중국으로 전해지고 그곳에서 다시 동쪽으로 최고로 끝지점인 이 나라 선법이 전해져서 선하면 시작이 부처님의 마음을 전한
분반좌도 있지만 삼조 아난존자의 찰간착도 있습니다.
가섭존자가 아란존자에게 한 도각문전 찰간착하라고 한 그 소리에 7일을 개족합장을 하고 용행정진후 대오를 하게 되고(........)
○ 부처님이 열반에 드시기 전에 말씀하시기를 그때 대중이 천이백 대중인데 이 대중 가운데서 견성 못한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열반에 들지 않겠느니라.
그때 대중 가운데 한 사람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셨습니다.
그후 아난존자가 가섭존자께 묻기를 ‘금란가사와 백옥발우를 전한 밖에 결점이 무엇입니까’, 가섭존자께서 답하시기를 ‘도각문전(倒却門前) 찰간착(刹竿着)하라.’
여기에서 아난이 꽉 막혔더라.
지금부터 남전의 마니주라는 화두를 소개 합니다.
천봉선문에서는 8칙이고 자세히 다룬 문헌은
종용록 제93칙 魯組佛會(노조불회) 라는 화두입니다.
그래서 전반적으로 이해를 돕기 위해서 종용록 93칙을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노조화상과 스승 남전 화상의 문답으로 되어있습니다.
시중(시중-보여주다. 큰스님이 대중에게 보이다입니다.) 천동각화상이 고칙을 찬송한것과 그 송고에 대하여 만송노안 또는 보은노인이 종용함에서 평창 시중한 것을 합편한 것임)
형산의 옥으로 까치를 쫓고 늙은 쥐가 금을 물어온다.
그 보배를 알지 못하면 그 쓰임새를 얻지 못하나니 옷 속의
구슬을 활짝 깨달을 자가 있을까?
본칙
노조가 남전에게 묻되 ‘摩尼珠를 아는 이가 없으나 如來藏 안에서 친 히 거두어 얻을 수 있다’ 하였는데 “어떤 것이 藏입니까?” 하니
남전이 이르되 “내(王老師)가 그대와 왕래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니라.” 하였다.
노조가 묻되 “왕래하지 않는 것이 무엇입니까?”하니
남전이 이르되 “역시 장이니라.”하였다.
노조가 다시 묻되 “어떤 것이 구슬입니까?” 하니
남전이 “사조여 하고 불렀다.”
노조가 대답하니
남전이 이르되 “가거라, 그대는 내 말을 알지 못한다.” 하였다
운제사조는 여기에서 신입(信入)하였다.
終南山雲際師祖禪師(嗣南泉)初參南泉。問云。摩尼珠人不識。如來藏裏親收得。如何是藏。泉云。王老師與汝往來者是藏。師云。直得不往來時如何。泉云亦是藏。師又問。如何是珠泉召師祖。師應諾。泉云。你不會我語。師信入。
평창
종남산(終南山) 운제(雲際) 사조(師祖)스님이 남전선사는 남전의 법을 이었는데 천동이 잘못 알아 노조(魯祖)라 했다. 여기서 가려 보겠으니 학자들은 알아야 한다.
지주의 노조산 보운 선사는 마조의 법을 이었으니 남전의 형이 된다. 그런데 사조라고 남전이 불렀으니 이 공안으로 살피건대 남전의 제자임이 틀림없다.
처음에 남전에게 묻되 “마니주를 아는 이가 없으나 여래장 안에서 친히 거두어 얻을 수 있다.” 하였으니, 이 말은 본래 영가선사의 증도경에 나온 것이다. 범천기 화상의 주에 이르되 “범어의 마니는 번역하면 如意 또는 無垢光 또는 增長이다.” 하였다. 楞伽經에는 이르되 “寂滅은 一心이라 이름하고, 一心은 如來藏이라 이름하는데 세 가지 뜻을 갖추었다.
첫째는 가리워 덮는다는 뜻(隱覆義)이니 여래를 덮어 감추기 때문이요, 둘째는 머금어 거둔다는 뜻(含攝義)이니 모든 중생과 국토를 머금어 거두기 때문이요, 셋째는 낸다는 뜻(出生義)이니 능히 無漏의 因果와 人天의 도행을 내기 때문이다” 하였으니, 처음은 미혹할 때의 경지요. 나중는 깨달았을 때의 경지요 중간은 본체를 지적한 것이다. 또 勝鬘經 에서는 두 가지 여래장을 설한다. 첫째는 空如來藏이니 온갖 번뇌를 벗어나 여의었기 때문이요, 둘째는 不空如來藏이니 항하사보다 많은 不思의 불법을 구족했기 때문이다.
종남산 운제사의 사조 선사가 처음 남전에 있을 때 문담후 “가거라 너는 내 말을 알지 못한다” 는 말에서 사조스님은 이로부터 믿어 들어갔다. 원통국사가 이르되 “지금에도 믿어 들어가는 자가 있는가?
만일 있다면 罔象(罔그물망 象이-코끼리상)이를 때에 빛이 찬란하고, 만일 없다면 离婁(离-산신이 婁-별리름루)가 떠나는 곳에 파도가 충천할 것이다” 하였다. 불과는 이르되 “온 땅덩이가 그대로 여래장 이거니 어디에다 마니주를 둘 것이며, 온 땅덩이가 그대로 여래장 이거니 무엇을 일러 여래장이라 하겠는가?” 하였고 설두는 다르게 이르되 “험한 백자 장대 끝에서 광대놀이를 하는 것은 좋은 솜씨가 아니다.
거기에다 눈길을 돌려 손과 주인은 엇바꿀 수 있어야 능히 범의 굴에 깊이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설사 사조가 깨달았다 해도 역시 龍頭蛇尾일 것이다. 머리와 꼬리가 완전한 것을 보기를 요한다면 역시 천동화상이어야 할 것이다.
여기서 나도 한마디 하고자 하면 부처님이 성불하지 아니하고 부처이고
나는 가지 않고 잘간다.
송고
시비를 나누고 득실을 밝히며
마음에 응하고 손바닥에 지적한다.
왕래하건 왕래하지 않건
그저 모두가 藏이니
輪王은 공있는자에게 상을 주었고
黃帝는 형상 없는 罔象에게 얻었다
樞機(추기)고동을 돌리고 기량에 능숙하니
눈밝은 납승은 갈팡질팡(鹵莽-노망) 않는다.
收者易見者難 수자이견자난
見者易用則難 견자이용즉란
見得用得二無兩般 견득용득이무양반
閒把一枝歸去笛 월파일지귀거적
夜深吹過汨羅灣 야심탄과율라만
遯菴宗演- 대혜광록 편찬자 민나라사람
거두기는 쉬워도 보기는 어렵고
보기는 쉬워도 쓰기란 어렵다.
보고 쓰는 것에는 두 가지가 없으니
여유롭게 한 개 귀거적(歸去笛)을 잡고서
깊은 밤 (피리를) 불며 멱라만(汨羅灣: 멱라의 물굽이)을 지난다. (둔암 종연)
무슨 말인가? 여기서 귀거적(歸去笛)이란 곧 무공적(無孔笛)이다. 이는 곧 구멍 없는 피리를 말한다. 구멍이 없다는 것이 무슨 말인가? 저 멱라만(汨羅灣: 멱라의 물굽이)이란 중국 호남(湖南)성을 흐르는 멱수(汨水)와 라수(羅水)가 합쳐지는 만이라 하여 이렇게 부른 것이다.
이상의 다섯 구절은 남전선사의 뜻을 그대로 관통하고 있다.
○ 또 다른 문헌에서는 저 사조스님이 종남산(終南山)에 머물렀는데, 평소 학인스님이 찾아보면 곧 벽을 보고 돌아앉았다고 한다. 이렇듯 독특하게 제접하는 방식 때문에 그를 ‘노조면벽(魯祖面壁)’이라고 부르기도 하였고
南泉聞曰。我尋常向師僧道。向佛未出世時會取 。
尚不得一箇半箇。他恁麼驢年去。
그런데 이 소문을 들은 남전스님은 말하기를, “나는 평소 사승(師僧)에게 말하기를, ‘부처가 아직 세상에 나오지 않는 때를 회취(會取)했어도 오히려 하나의 절반을 얻는 것이 아니다.’라고 했는데, 그가 이렇게 나귀해를 보내는구나.”라고 하였다.
평창_돈여
점점이 이어진 등불이여
오늘도 이어지고 어제도 이어졌구나
옴도 옴이 아니고 감도 감이 아닌 것을 괜시리
석가는 온다간다 하는데
여래장이여 만상이 뚜렷하여
산과 강을 비춘다
악 !
부처님의 제자 10대 제자중에
부처님의 법을 가장 많이 부처님의 법문을 한 말씀도
놓치지 아니하고
조르르르 다 외워서 다 바칠수 있는
십대제자 중 아란존자의 도통 허시게 된 경위를
말씀허셨습니다.
아란존자는 부처님의 사촌동생으로써 출가 허자 마자 부처님의 시봉을 돌아가실때까지 열반 허실때까지 부처님의 시봉을 받들면 받든그러한 제잡니다.
그래서 일생을 부처님을 따라다니면서 시봉허면서 부처님의 법문을 들었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부처님의 법문을 제일 많이 들었고 아란존자는 어떻게 머리가 영특허든지 한번 들으면 잊어버리는 법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해인사에 모시고 있는 모셔져 있는 팔만대장경이 전부 아란존자의 입을 통해서 줄줄줄줄줄줄 외워 바쳐가지고 그것을 기록해 가지고 전해 내려온 것이 바로 팔만대장경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머리가 좋고 총력이 좋아서 다 알고는 있었지만은 부처님 살아계실때까지는 도통을 허지를 못했습니다.
경을 많이 외우고 머리가 좋은것과 도통 견성 헌것과는 내용이 다릅니다.
아무리 팔만대장경을 육도로 다 외우고 뜻을 안다 해도 도통을 못한 사람이 있고 일자무식이라도 도통 견성을 허는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식과 공부를 많이해서 지식이 높은 것과 도를 닦아서 견성을 헌것과는 다릅니다. 학문을 많이 닦은 것은 아는 것이고 도를 닦아서 견성성불 헌 것은 깨달은 것입니다. 아는 것과 깨달은 것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파나나 먹으면은 연하고 부드럽고 감미롭고 맛이 있다. 빛깔은 안 익었을 때는 퍼렇고 익으면 노랗다 이렇게 그리고 그것은 남방열대지방의 식물이다. 남방에서는 그것을 식용으로 사용한다. 그러헌 내용을 아무리 잘 안다 해도 파나나를 직접 입으로 먹어본 사람과 한 번도 구경은 못하고 파나나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과의 차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경을 줄줄줄줄 외우고 육두백판으로 잘 뜻을 잘 알고 외우는 사람과 그러한 그런 글은 무식해서 잘 몰라도 이뭐꼬 아까 조실스님께서 말씀하신 이 뭐꼬 이 참선을 해가지고 열심히 해가지고 툭 이치를
도를 깨달은 사람과는 그렇게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참선은 아무리 연세가 많거나 무식하거나 여자거나 어리거나 하등에 상관이 없습니다. 아란존자와 같이 그렇게 팔만대장경을 육두로 다 외우고 해설을 헐줄 알아도 도통을 못했기 때문에 그 가섭존자 부처님의 수제자 한테 쫓겨났습니다.
왜 쫓겨났냐 부처님께서 돌아가시자 마자 모다 하 땅을 치고 통곡을 하고 슬퍼하고 있는데 부처님 제자중에 미친이가 있었던지 못된 제자 늙은 제자 하나이 일어서 가지고 여러분 우지 마세요. 여러분 울 것 없습니다. 그동안 부처님께서 살아 계신 동안에는 너무나도 우리를 구속하고 무엇은 먹지 말아라 무슨 짓은 하지 말아라 잠을 적게 자라 싸움을 하지 말아라 삼백가지 오백가지의 조목을 만들어 가지고 우리를 꼼짝달싹 못하게 자유를 구속하고 공부만 하라고 그러셨는데 그로 인해서 우리는 가고 싶은데도 마음대로 못가고 허고 싶은 일도 마음대로 못허고 그동안 얼마나 우리는 얼마나 압박하에서 구속생활을 했더냐 이제 부처님은 돌아가셨으니 우리에게는 아무도 잔소리 헐 사람도 없고 구속 헐 사람도 없으니 우리는 오늘부터 만판 자유가 되었다. 그러니 먹고 싶은데로 먹고 허고 싶은데로 허면 되는데 무엇 때문에 우느냐고 외치는 미친기 있는 사람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을 보고 가섭존자를 비롯한 많은 훌륭한 도승들은 대단히 가슴 아프게 생각하고 이대로 있다가는 얼마안가서 우리 불교의 교란이 문란해질 것을 염려를 한 나머지 부처님 돌아가신 뒤 백일만에 부처님 제자속에 가장 도가 훌륭한 오백명의 큰 스님네를 청해가지고 칠엽굴 이라고 허는 굴속에서 부처님께서 그동안 쭉 법문 허신 것을 차례차례 한사람이 외우면 아 나도 그때 그렇게 들었다. 아 나도 그때 그렇게 들었다 아니 그대 그때 그 대목은 그렇지 않고 이렇게 말씀허셨다. 그러면 여러 사람들이 아 그렇다 해 가지고 구절구절이 한사람이 외우면 그것을 증명을 하고 또 한사람의 한구절 외우면 증명을 해가지고 해가고 부처님 일생동안 허신 법문을 그렇게 해서 검토해서 결집을 허게 되었는데 그때 아란존자는 외우기는 잘 외우는 재주가 있었지만은 도통을 못했기 때문에 그 오백명 속에 포함이 되질 못해 가지고 아란존자는 그때 자기가 잘 외우니까 으레 참석할줄 알고 으슥 당당하게 들어섰다가 부처님의 수제자 가섭존자로부터 여지없이 쫓겨났던 것입니다.
쫓겨나가지고 얼마나 분이 터졌던지 울고 불고 몸부림 치다가 그래도 부처님 법문이 몸에 너무나도 잘 배인지라 크게해서 발심을 해가지고 칠일동안을 밤낮을 자지 아니하고 발가락을 엄지발가락하나 양쪽 엄지 발가락으로 서가지고 개발을 딛고 서서 이레동안을 잠을 안자고 용맹정진을 헌 결과 확철대오를 했습니다.
그래가지고 가섭존자 있는데로 가서 문을 열으라고 외쳤습니다.
아까 조실스님께서 말씀허신대로 니가 도통을 했으면 문을 열지 말고 들어오라 그러니까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아란존자는 문을 조금도 열지
아니헌체 쑥 들어섰습니다. 그래가지고 거기서 법담을, 사형사제간에 법담을 해가지고 가섭존자로 부터서 형님으로부터서 분 확실히 인가를
받아가지고 정식으로 오백의 큰 스님네 성스러운 큰 스님네의 한사람으로 일원으로 참가를 해 가지고 아란존자의 입으로 통해서 부처님께서 일생동안 설하신 법문을 줄줄줄줄줄줄줄 외워 바쳐가지고 다른 사백구십구명의 도인들이 증명을 해 가지고 제일회 결집을 마쳤던 것입니다.
그 아란존자가 가섭존자 한테 쫓겨 나가지고 이레동안 용맹정진을
해가지고 확철대오 툭 깨쳤는데 그 깨친 것은 그 깨치는 방법이 무엇이냐 하면은 ........ 《 전강 》
面壁觀心是何事 면벽관심시하사
迷雲破處月孤明 미운파처월고명
凡聖從來無二路 범성종래무이로
莫將邪見隨多道 막장사견수다도
면벽관심하는 일이 대체 무슨 일인가?
구름 흩어진 곳에 달만 홀로 밝았더라.
범부凡夫와 성인聖人이 본래 둘이 아니니
삿된 소견을 일으켜 많은 길을 밟지 말지니 만공
아난 존자에게 장로長老들이 말하기를 “부처님께서 가섭존자에게 전한 법은 금란가사와 옥발우가 아니고 정법안장[正法眼藏]은 따로 있다네.” 이런 말을 한단 말이야. 무엇을 따로 전했나 하고 크게 궁금증이 일었어. 그래서 하루는 사형師兄인 가섭 존자를 찾아가서
“오늘 사형님한테 긴히 알아볼 일이 있어서 왔습니다. 내가 생각할 적에는 부처님께서 사형님한테 의발衣鉢을 전한 그것을 법을 전한 것으로 알고 있고, 사람들도 다 그렇게 알고 있는데, 그것 말고 따로 전한 것이 있다니, 대체 그것이 무엇인지요. 그것을 알고 싶어서 왔습니다. 좀 일러주십시오.” 하고 물었어.
에 가섭은 “아난아, 도각문전 찰간착[倒却門前 刹竿着]하라.”고 한단 말이야. 문門 앞에 찰간대刹竿臺를 꺾어 없애버리라는 것이지.
이게 대체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어. 아난 존자는 부처님께서 49년 동안 설법하신 그 말씀을 한 마디도 빠뜨린 일 없이 전부 기억을 했고, 십대 제자십대제자 가운데 기억력이 가장 뛰어난 제자이기 때문에 부처님 말씀 가운데 자기가 모를 것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대체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어.
그래서 “모르겠습니다. 도저히 모르겠습니다.” 대답했어.
“그대가 그걸 모른다고 하면 어떻게 부처님의 법문을 뒤에 올 중생衆生에게 전할 수 있겠는가? 그대가 알고 내가 몰라도 안 되고, 내가 알고 네가 몰라도 안 된다.” 하면서 야단을 쳐서 내쫓았다 이 말이야.
쫓겨 나와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기가 막히거든. 그래서 아난 존자는 인도印度의 비야리성 毘耶離城이라는, 아주 높은 곳에 올라가서 조족공부鳥足工夫를 했어. 조족공부란 새처럼 발뒤꿈치를 들고 우뚝 서서 하는 공부야. 그렇게 바야리성 꼭대기에 올라가서 공부를 했다 이 말이야.
조족공부를 일주일 동안 했어. 잠도 안 자고, 눕지도 않고, 딱 서서 합장을 하고 일주일 동안 그렇게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해서 ‘도각문전 찰간착’ 의 도리를 깨달았다 이 말이야. 깨닫고 보니 과연 사형님이 나를 위해서 그렇게 지극히 일러 주었는데 내가 알지 못했구나 했지. 그렇게 생각하면서 사형님한테로 찾아갔어.
사형님이 계신 계족산鷄足山에 가서 가만히 정定에 들어있으니까 돌문이 스스로 열려져 가지고 거기를 들어가 보니 10대 제자가 다 모여 있어. 10대 제자가 모여가지고 부처님이 49년 동안 설법하신 법문과 행적行蹟을 낱낱이 수록하는 거야. 오늘날 부처님의 팔만대장경 八萬大藏經은 그렇게 해서 결집結集이 되었고, 오늘날까지 부처님의 정법을 이어오게 되었다는 말이지
이것이 비록 언어를 통해서 표현한 것이긴 하지만, 이것이 바로 불조佛祖의 안목眼目을 밝히는 관문關門이야! 이 문을 들어서야 비로소 불법佛法이라고 하는 그 진소식眞消息을 알 수 있는 것이고, 이것을 통해서만이 모든 불조의 안목을 밝힐 수 있는 것이고, 이 길을 들어가지 않고서는 불법을 알 수 없습니다.
이 길을 통과해아 합니다. 제第 1관문關門이야 이것이. 그런 관문이고
불조佛祖의 제1관문이니까 우리 납자들은 여기를 반드시 통과를 해야 되겠지. 옛날 납자衲子들도 그랬지만, 특히 요새 납자들은 그게 그거고 그게 그거지 뭐, 이런 식으로 말하거나, 본래 한 물건도 없는데 무얼 따질거야 하는데, 그게 큰 병이야.
“그놈이 그놈이지 뭐, 그거 따질 것 있나, 본래 한 물건인데 뭘 따져 따지기는.” 이게 수좌首座들이 들기 쉬운 병입니다. 아주 들기 쉬운 병인데 그렇게 머리도 꼬리도 없는 그런 병에 걸리면 안 됩니다.
반드시 두미頭尾가 분명해야 돼. 두미가 분명해 가지고서 불조의 안목을 똑바로 밝혀 들어가야 제대로 밝히는 것이지, 그렇게 그냥 머리도 꼬리도 없는 식으로 들어가면 안 됩니다.
우리가 화두話頭 공부를 해 나가는 데 있어서도 바로 들어가는 길을 버리고 자기 멋대로 사량思量을 해서 화두를 짓는데, 거기 두 가지 병이 있습니다. 그 하나는 사량병思量病이야. 사량병이라는 게 자기 망상妄想을 중심으로 해서 자기 멋대로, 아는 지식과 망상을 총동원해서 따진다 이 말이야. 요렇게 요렇게 따져 가지고 그걸 일일이 그렇게 따지면 무슨 말대답이 될 것 같아서 그렇게 따진다고. 세상 공부일 경우에는 분명히 대답이 있지. 그러나 이 무상대도[無上大道]의 공부는 맞추는 공부가 아닙니다. 대답하는 공부가 아니야. 맞추는 공부가 아닌데, 이걸 맞추려 하고 대답하려 하면 이것이 고래古來로부터 조사祖師들이 아주 간절히 경계해 놓은 병입니다. 이것이 큰 병입니다.
우리 수좌들은 뭘 맞춰서 대답하려 하는 사량병思量病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또 한 가지 병이 있어. 또 한 가지도 아주 참 큰 병이야. 사량병보다 더 큰 병이야. 본래 공적空寂했는데 뭘 또 더 알려고 애쓰는가 그 말이야. 본래 편안便安하고 본래 공적空寂하고, 이렇게 본래 공적하고 편안해서 본래 한 일도 없는데, 무얼 알고 닦고 할 것이 있느냐 말이야.
‘본래 성현도 없고, 범부도 없는데!’ 하는 식으로
공空한 자리에 딱 집착執着을 해 버린다 이 말이야.
하나는 망상의 알을 낳는데 집착을 하고, 하나는 공적空寂한 데에 집착을 한다 이 말이야. 이 두 가지 병이 다 큰 병病이라 이 말이야. 그런데 알려고 하는 망상병妄想病은 그래도 고칠 수가 있는데, 공적한 병에 한번 집착해 버리면 고칠 수가 없어. 그건 부처님이 출현한 병病에 한번 집착해 버리면 고칠 수가 없어.
그건 부처님이 출현出現을 하신다고 해도 고치기가 어렵습니다. 공적병이라는 병이 그게 아주 무서운 거야. 그 병에 걸린 사람은 이미 도인道人이 다 되었고, 부처가 다 되었기 때문에 다른 말을 들으려고 하지도 않아. 그걸 무기병無記病이라고 그래. 이 두 가지 병을 조심해서 절대 그런 데에 떨어지질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강江을 건너는데 외나무다리가 있다고 할 때, 그 외나무다리는 동그랗게 깎은 다리야. 무척 어려워. 기름까지 반들반들하게 발라져 있어. 발만 댓다 하면 쫄딱 미끄러 떨어지게 생겼단 말이야.
앞에서 말한 병病이라는 게 이 다리와 같아. 어떻게든지 건너가기만 하려 하면 쫄딱 미끄러져 떨어지는데, 어디에 떨어지느냐? 집착상執着相에 떨어져, 집착상에….
그런데 집착상에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좀 알아보려고 하는 실온 집착상[實縕 執着相]에 떨어져 버리는 것이고, 또 하나는 본래 한 물건도 없다는 공空의 집착상에 떨어져 버리는 것이야. 왼쪽에는 물이고 오른쪽에는 불이야. 그러니 그 두 군데에 떨어지지 않고 건너가자면 얼떨떨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 수좌들 중에 한 소식 했다는 사람들은 전부 ‘불야타佛也打 조야타祖也打’ 라고, 부처도 때려 부수고 조사도 때려 부수고 이러한 엄청난 건방진 생각을 가지는데, 그게 잘못되면 병폐가 많다 이 말이야. 그런 용기를 가지고서 공부는 해야겠지만, 공부를 안 하고서 쓸데없는 용기만 가질 것 같으면 큰 손해야.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가지면 다리 밑으로 쫄딱 미끄러져.
아주 조심조심操心操心 건너야 된다 이 말이야. ----만공화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