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7-14 주일설교
안식일은 하나님이 복 주신 날입니다
마태복음 12:9~21
전 세계의 모든 사람이 공통으로 가장 싫어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세요? 남이 나에게 무엇을 ‘하라’ 혹은 ‘하지 마라’하고 의무와 한계를 정해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속담에 “하던 **도 멍석 펴 놓으면 안 한다.”라는 말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는 자기가 좋아서 했지만 멍석을 까는 순간 남이 나에게 요구하는 일, 이제부터 해야만 하는 의무가 되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계속하고 싶어서 취미를 직업으로 삼는데 말이 ‘덕업일치’이지 사실은 후회하는 사람이 많다고 합니다.
모든 사람은 좋아서 시작했든 아니든 반드시 해야 하거나 하지 말아야 하는 의무와 한계가 있습니다. 우리가 그것을 지킬 때 나와 주변 사람이 모두 행복할 수 있습니다.
쉽게 예를 들 수 있는 것은 도로 중앙에 그어진 두 줄의 황색선입니다. “중앙선을 침범하지 말지니라” 이것이 면허증을 받을 때 국토부와 나와의 계약 조건입니다. 중앙선을 침범하면 자신과 타인이 다치거나 죽을 수 있습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예는 부부관계입니다. 결혼 전에는 세상 모든 여자를 사랑할 권리가 있던 남자가 결혼하는 순간 아내 외의 어떤 여자도 사랑해서는 안 되는 것이 한계입니다. 인간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계약은 바로 결혼이고 그 계약을 잘 지키면 자신과 배우자와 자녀와 여타의 가족과 주변 사람과 속한 교회와 공동체가 모두 행복할 수 있습니다. 만일 이 계약을 침범하면 자신과 주변이 모두 시끄럽고 불행해집니다.
이 외에도 인간관계는 계약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 계약을 지킬 때 행복합니다. 특히 상대방이 나보다 강자일 때 계약을 지키는 것은 자신에게 복이 됩니다. 엄마는 어린 자녀에게 이렇게 계약합니다. “엄마 말을 잘 들으면 뭐든 다 해 줄게.” 대기업 대표는 회사원에게 회사 일 잘하면 매월 꼬박꼬박 정해진 월급을 주겠다고 계약합니다. 자녀와 회사원이 혜택을 보려면 싫어도 엄마 말과 대표 말을 잘 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도 이런 계약 관계입니다. 하나님과 처음부터 사람과 계약을 체결하셨는데 이 언약은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체결하신 언약입니다. 하나님이 사람과 맺으신 언약은 일방적으로 사람에게 유리한 은혜 언약입니다.
1953년 10월 1일에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했을 때 Harry Truman 미국 대통령이 “이승만 그 날강도에 당했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한미간에 전쟁이 나면 무조건 서로 참전한다는 내용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조약 때문에 만일 대한민국에 전쟁이 나면 미국은 대한민국 군사력의 9배를 의무적으로 보내야 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우리나라는 미군을 도울 힘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최전방에 미군을 배치해놓아서 북한이 침공하면 미군을 넘지 않고서는 내려올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 덕분에 지난 70년간 우리나라에 전면전이 없었고 우리나라는 엄청난 경제발전을 이루어 오늘날 선진국에 우뚝 서게 되었습니다. 지금 대한민국 군사력은 세계 5위이고 GDP는 세계 14위입니다. 6.25 전쟁이 휴전으로 끝났을 때 총사령관이었던 맥아더 장군은 이 나라가 재건되는데 최소 100년은 걸릴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70년 만에 이렇게 된 것은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은혜이고 하나님 손길로 쓰임 받은 나라는 바로 미국입니다.
미국은 소련 스탈린의 남하를 막아야 한다는 필요성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했지만, 우리 하나님은 아무런 필요성이 없음에도 사람에게 찾아와서 일방적 은혜를 베푸시는 계약을 체결하셨습니다. 이것은 바로 하나님의사랑 때문입니다.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드신 하나님은 사람을 너무나 사랑하여 일반적 은혜 계약을 맺었습니다.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은 옛 계약과 새 계약이라는 뜻입니다. 사람과 하나님의 관계는 처음부터 끝까지 계약 관계이므로 그 계약서 내용을 잘 배우고 잘 지키는 사람이 하나님의 복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구약과 신약을 잘 배우고 잘 지켜 복된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인류가 죄를 짓기 전에도 사람과 언약하셨고 죄를 지은 후에도 언약하셨습니다. 죄짓기 전에 하나님이 주신 은혜로운 언약은 우리가 “창조 언약”이라고 부릅니다. 죄를 지은 후에 주신 은혜로운 언약은 “구속 언약”이라고 부릅니다. 비록 아담의 범죄로 깨어졌지만 창조 언약은 지금도 유효합니다. 창조 언약의 내용은 모세에게 주신 모든 율법 속에 그대로 다 들어있습니다.
창조 언약의 중요한 핵심은 세 가지인데 안식일, 결혼, 그리고 노동입니다. 인류에게 이 세 가지는 인류가 존속하기 위한 기본입니다. 이것을 깨뜨리면 인류는 불행해지고 존속할 수 없습니다.
제 승용차는 흔하지 않은 디젤엔진 차입니다. 평소에는 셀프 주유를 하는데 한번은 주유원이 있는 주유소에 들렀더니 주유원이 휘발유를 넣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엔진에서 연료가 지나가는 부품을 다 갈았습니다. 혼유 사고는 자동차의 죽음을 초래합니다. 휘발유나 경유를 구분하여 주유하는 것은 자동차가 살기 위한 기본입니다.
사람도 마찬가지로 하나님과의 창조 언약을 잘 지킴으로 하나님이 약속하신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창조 언약의 핵심 내용: 안식일, 결혼(출산이 포함됨), 노동 가운데 오늘은 안식일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6일간 세상을 만드신 후에 안식하시면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십계명의 제4계명인 안식일은 모세가 십계명을 받으면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세상이 만들어질 때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사람이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십계명을 받기 전부터 있었던 창조 원리입니다. 십계명 전에도 사람은 결혼하고 노동하면서 살았듯이 모세가 십계명을 받기 전에도 사람은 안식일을 지키면서 살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면서 그날을 복되게 하셨습니다. 이 말씀이 담겨 있는 창세기 2:3을 찾아서 읽어 보겠습니다. 화면에 띄어드릴 수도 있지만 각자 찾아서 밑줄을 긋고 같이 읽어 봅시다.
그날을 복되게 하셨다는 말은 안식일을 지키는 사람에게 복을 주신다는 뜻입니다. 안식일을 거룩하게 구분하고 지킬 때 사람이 하나님의 복을 받습니다. 안식일을 지키는 방법은 기본적으로 일을 쉬는 것입니다. 쉬면서 하나님을 기쁘게 섬깁니다.
그런데 지난주에도 설명했듯이 사람들은 어떤 행동은 일이고 어떤 행동을 일이 아닌 일상생활인지 궁금했습니다. 사람들이 질문을 해오니 모세와 제사장들이 일과 일이 아닌 것을 구분하여 설명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본질을 희미해지고 껍데기만 남았습니다. 지난주에 보여드린 대로 미쉬나에는 안식일에 하면 안 되는 일 39가지를 설명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복되게 하려고 안식일을 주셨는데 오히려 안식일 계명이 사람을 괴롭히는 요소가 많이 생겼습니다.
농부나 육체 노동하는 사람이 안식일에 쉬는 것은 간단합니다. 그런데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는 간단하지 않습니다. 질병 가운데 당장 치료하지 않으면 위험한 것이 있습니다. 급성충수염으로 맹장이 터진 환자는 내일 오라고 하면 안 됩니다. 사고가 나서 다친 사람도 당장 치료해야 합니다. 그렇게 급한 환자에게 주일에는 쉬어야 하니까 내일 오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자비를 닮은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자비하신 하나님이 복되게 하신 안식일을 가지고 하나님을 아주 야박한 분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그들의 잘못된 생각을 바로잡아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안식일에 회당 예배에 참석했을 때 거기에 한쪽 손 마른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예수님이라면 틀림없이 안식일에라도 병자를 고쳐 줄 것을 예상하고 트집을 잡으려고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선생님, 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이 옳을까요?” 만일 안식일이어서 병자를 고치면 안 된다고 하면 예수님도 별수 없는 분이 되겠죠.
예수님은 뭐라고 대답하셨고 어떻게 행동하셨을까요? 손 마른 사람은 응급환자는 아닙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두 가지 이유로 그를 치료해야 합니다. 우선, 예수님이 회당을 떠나면 다시 그 사람을 못 만날 수 있습니다. 그로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안식일을 오해하고 있어서 바로잡아 주어야 했습니다.
사람들이 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이 옳으냐고 물은 것은 궁금해서 물은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곤경에 빠뜨리기 위한 질문입니다. 예수님은 그 질문에 대답하기 전에 그들에게 외통수 질문 하나를 던졌습니다. “어떤 사람에게 양 한 마리가 있는데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다면 건져야 하겠소?” 유대인들은 뭐라고 대답했을까요?
탈무드에는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양이 구덩이에 빠졌을 때는 양이 하루를 견딜 꼴을 넣어 주어야 한다. 만일 그 동물의 목숨이 위험하면 안식일에도 끌어내야 한다.” 이것은 옳은 규정입니다. 동물이 죽어가는데 안식일이라고 구경만 하고 있다면 양에게는 무자비한 것이고 사람에게는 손해가 큽니다.
그런데 문제는, 양에게 꼴을 주는 것도 노동이고 동물을 끌어내는 것은 더 큰 노동입니다. 이처럼 양이 구덩이에 빠지면 무조건 안식일 규정을 어기면서라도 양을 구출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은 질문은 양도 건지는데 사람을 치료해야 하지 않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도 대꾸하지 못할 때 예수님은 그 사람의 오른손을 고쳐 주셨는데 예수님의 치료행위는 노동은 아니었습니다. 그냥 “손을 내밀어라” 말씀만 했습니다. 어떤 꼬투리도 잡지 못한 유대인들은 회당 밖으로 물러가서 저 예수를 어떻게 죽일 수 있을까 의논했습니다.
여러분, 신약 시대 성도에게 안식일 계명을 폐지되거나 없어진 것은 아닙니다. 안식일 계명을 십계명에서 유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에서 시작된 창조 언약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사람은 안식일을 지켜야 합니다. 다만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여 주일로 바뀐 것뿐입니다. 주일은 먹고 살기 위한 일을 쉬는 날입니다. 여러분은 꼭 주일에 쉴 수 있도록 기도하며 노력하기 바랍니다.
그런데 쉰다는 말은 유대인처럼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지금도 유대교인들은 안식일에 전등도 켜거나 끄지 않습니다. 심지어 안식일에는 엘리베이터 버튼도 누르지 못합니다. 그래서 층마다 서도록 설정해놓고 타고 내립니다. 안식일에 불을 피우지 말라고 한 이유는 장작을 패는 것이 노동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이는 잘못 해석하여 전기 스위치도 못 올리도록 규정한 것입니다.
우리가 주일에 먹고 사는 일을 쉬는 것이 기본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러분은 자기 생명을 돌보고 가족과 성도의 생명을 돌보세요. 그러기 위해 먼저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경배하고 말씀을 배움으로 영적으로 은혜를 받으세요. 가족과 사랑하고 교인과 친교하는 것도 중요한 일입니다. 또한, 선을 행하고 복음을 전하는 일에 힘쓰시기 바랍니다.
복음서에서 신자들은 안식 후 첫날에 모여서 예배드렸습니다. 요한계시록에서 요한은 주의 날에 예수님을 만나 계시를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안식 후 첫날인 일요일은 주의 날입니다. 주일은 주님과 함께 하는 날입니다. 주일은 하나님이 복 주신 날입니다. 주일에 안식하며 주님과 함께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풍성히 받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