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해서 참았지 / 박명숙
용수동은 순천 시내에서 4킬로미터 떨어진 지역이다. 산꼭대기에서 물길을 사이로 송학, 풍치, 삼거, 노변, 범죽, 노두, 와룡, 아교 마을이 있다. 계곡에서 내려오는 물이 옥천을 지나 순천의 심장이라고 불리는 동천으로 흐른다. 행정구역으로는 시에 속하지만, 시골이나 다름없을 만큼 자연 경관이 아름다운 산골이다. 산에서 끊은 고사리와 산나물, 밭에서 얻은 여러 채소를 데쳐서 시장에 팔아 생활하는 소박한 사람이 산다. 용수동 나물은 맛 좋기로 소문났다. 또, 양봉으로도 많이 알려진 곳이다.
동네 중심에 와룡저수지가 생긴 건 1963년이다. 그때부터 용수동 지역을 상수원 보호구역으로 지정해서 문화시설은커녕 집도 지을 수도 없고, 가게도 차리지 못했다. 그래서 집안 대대로 물려 온 산과 들에서 나는 작물로 생계를 이어갈 수밖에 없다. 새벽 네 시면 나물 바구니를 이고 시장에 가려고 택시를 기다리는 어머니들을 흔하게 본다. 일찍 가서 좋은 자리를 잡아, 싱싱한 나물을 빨리 팔고 오려고 단잠을 깨고 나선다. 남편에게 들은 얘긴데 이 저수지에서 자식을 하늘나라로 먼저 보낸 부모도 몇 명 있다고 했다. 개발할 수 없는 땅이라 토지 거래도 안되어 놀고 있는 논밭이 한 두 군데가 아니다.
설상가상으로 삼거 마을 위쪽에 공원묘지가 들어선 건 1994년쯤이다. 상수원보호구역이어서 장사는 물론 물놀이와 낚시까지도 금지된 지역에 묘지 단지가 있다는 게 이해가 안 된다. 법정 2차 도로를 만들어주겠다는 말에 솔깃하여 반대하지 못했다고 한다. 30년이 지난 지금도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는데 누구를 탓하겠는가. 명절이 되면 공원묘지로 올라가는 성묘객들의 차로 길이 막혀 경찰이 차선을 통제하거나 돌아가게 한다. 불편한데도 착한 주민들은 꾹 참고 살아간다.
조용히 있으니 무시하는 걸까? 이것도 부족하여 최근에는 댐을 만든다고 떠들어대니 기가 막힐 일이다. 목적은 기상이변으로 홍수 피해가 더 심해져서 기후에 대응하는 댐을 건설하겠다는 거다. 전국에서 열네 곳 후보지 안에 용수동이 들어 있다. ‘옥천 기후 대응 댐 후보지(안) 설명회’를 한다고 해서 바쁘지만 시간 내서 가 봤다. 머리에 띠를 두르고 반대 시위하는 마을 주민들로 북적거리는 틈새를 가르고 들어가서 귀를 세우고 들었다. 환경부에서 내려오고, 시청 담당자들이 와서 설명했다. 국가 보조금으로 공사하고, 시에서 관리한다고 말했다. 용수동에 댐이 필요한 이유는 홍수조절, 용수 공급, 하천 개선, 노후 수원지 안전성 확보라고 한다. 60년이 흐르기까지 시에서 저수지의 안전성을 얼마나 점검하고, 쓰임새에 맞게 관리했는지 묻고 싶다. 탁상행정(현실적이지 못한 행정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공무원은 몰라도 용수동 주민은 안다.
용수동이 후보지로 선정된 걸 설명한 후에 발의하는 시간이 됐다. 기다렸다는 듯 여기저기서 손을 들고 격양된 목소리로 쏟아냈다. 억눌렀던 감정이 댐 문제로 북받쳐 올라왔다.
“순천시는 사과하라, 나쁜 것은 다 용수동에 설치하냐. 사과하라.”
“상수원 보호구역을 해제하라, 댐 건설이 웬 말이냐. 돈 계산만 하지 마라.”
“죽을 때까지 먹고 살 걸 보상하라, 묶여있는 땅 팔아 시내에서 집 한 채도 못 산다. 사과하라”
“다른 동네 사람 같으면 진즉 길가에 포크레인 몇 대는 대놓고 길을 막았을 거다. 용수동 사람이 착해서 참고 살았다. 사과하라 사과하라.”
댐을 건설하려는 시와 반대하는 주민의 대치가 시작됐다. 기후 변화 대응으로 댐이 필요한 이유는 알겠다. 하지만, 왜 하필 용수동이어야 하는지는 이해가 안 된다. ‘벼룩의 간을 빼 먹는다’라는 속담이 생각난다. 정치에 이용당하는 건 아니겠지? 홍수 조절 기능으로 댐을 만들어야 한다면 다른 방안도 충분히 더 논의 해보고 후보지를 다시 정하면 좋겠다. 부디 술렁이는 지역민에게 기쁜 소식이 들려오길 바란다.
첫댓글 용수동 주민 입장에서는 기가 막히겠네요. 좋은 방향으로 잘 해결되면 좋겠어요.
시민기자로 활동하시면 좋겠는데요? 글이 설득력 있어요.
수업 시간에 배운 것을 다 잊어버려서 제자리만 맴돌고 있는 글인데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모두에게 좋은 방향으로 해결되길 바라 봅니다.
고맙습니다. 바라는 대로 되길 저도 원합니다.
SOS마을 가다 보니 현수막이 걸려 있더라구요. 힘 없는 노인들이 많이 사는 곳만 골랐네요. 결과는 뻔한데 참 억울할 일입니다.
네, 결과가 뻔한 걸까요? 마지막까지 기대를 해보고 있습니다.
저도 용수동 주민 덕분에 편하게 공원 묘지 오갑니다. 변하지 않는 풍경에 안도하면서요. 그런 사연이 있는 건 몰랐네요. 이번에는 꼭 용수동 주민의 바람 대로 되면 좋겠네요.
고맙습니다. 시내와 가장 가까운 곳에 이곳처럼 풍경이 좋은 곳은 찾아보기 힘들 겁니다.
착한 사람들이 손해 보는 세상은 언제쯤 끝날까요? 좋은 결과 있길 바랄게요.
고맙습니다. 살고 싶은 곳으로 계속 남아 있기를 저도 바래 봅니다.
헐벗은 자연은 결국 우리를 피폐하게 만드는데 왜 자꾸 그러나 모르겠네요.
안타까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