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 노트 27-1
1. 질문 : 경행을 할 때 집중이 안 됩니다. 특히 ‘들어서 앞으로 놓음’을 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경행을 하기가 싫어집니다.
답변 : ‘들어서 앞으로 놓음’을 할 때 염주를 손으로 훑어서 전부 알 수 있는 것처럼 해야 한다. 세 개의 동작이 끊어짐이 없이 연결해서 알아차려야 집중이 된다.
< 참고 >
미얀마 마하시 명상원에서 경행을 하는 방법은 처음부터 ‘들어서, 앞으로, 놓음’을 하지 않습니다. 수행은 단계적 과정이 있습니다. 처음부터 고도의 집중력을 요하는 방법을 사용하면 마음이 따라가지 못해 싫증이 나서 수행을 계속하기 어렵습니다.
발의 움직임 하나에서 ‘들어서, 앞으로, 놓음’을 알아차리려면 처음에 ‘오른발, 왼발’의 움직임을 번갈아가며 알아차리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그런 뒤에 집중력이 생기면 발 하나의 움직임을 두 가지로 나누어서 ‘들어서, 놓음’을 알아차립니다. 오른 발의 ‘들어서, 놓음’을 알아차린 뒤에 다시 왼발의 ‘들어서 놓음’을 알아차립니다. 이렇게 알아차리다가 집중이 되면 이때 발하나의 움직임을 세 단계로 나누어서 ‘들어서, 앞으로, 놓음’을 알아차립니다. 그래서 오른 발에서 ‘들어서, 앞으로, 놓음’을 알아차리고 다시 왼발에서 ‘들어서, 앞으로, 놓음’을 알아차립니다.
이렇게 ‘들어서, 앞으로, 놓음’을 알아차릴 때는 보폭을 너무 크게 잡지 말고 발을 조금만 떼야 합니다. 그리고 자세하게 알아차리려고 하다 보면 움직일 때 몸이 뒤뚱거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걷는 속도를 조금 천천히 하고 몸이 움직일 때 무게의 이동이 균형에 맞아야 합니다.
이렇게 세 단계로 나누어서 알아차리려면 집중력이 있어야 합니다. 자신의 집중력이 세 단계를 따라가지 못하면 두 단계로 나누어서 알아차리고 그래도 따라가기 어려우면 단지 ‘오른발, 왼발’만 알아차려야 합니다. 수행은 자기 상황에 맞게 하는 것이 좋습니다.
처음에 ‘오른발, 왼발’의 움직임을 알아차리기가 어려워 집중을 하기 힘들 때는 ‘닿음’ 하나만 알아차려도 좋습니다. 오른발이 바닥에 닿는 것을 알아차리고 다시 왼발이 바닥에 닿는 것을 알아차리면 훨씬 쉽습니다. 이때의 ‘닿음’이란 발을 바닥에 ‘놓음’을 말합니다. 단지 오른발 왼발의 ‘닿음’ 하나만 알아차리면 ‘들어서’가 없기 때문에 마음의 여유가 생깁니다. 그러면 알아차리는 부담이 적어서 계속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이렇게 알아차리다가 집중이 되면 ‘오른발 왼발’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닿음’은 마하시 명상원 수행방법은 아닙니다. 처음에 ‘닿음’만 알아차리는 방법은 제가 스스로 해본 방법인데 상당히 효과를 얻어서 경행을 재미있게 할 수 있었습니다.
이 외에도 집중이 되면 발을 ‘들으려는 의도, 들어서, 앞으로, 놓고, 누르고’ 등으로 자기가 알아차릴 수 있는 만큼 알아차려도 좋습니다. 이러한 과정 하나하나가 서로 다르지만 알아차릴 때는 하나의 궤적 안에서 알아차림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렇게 알아차리려면 반드시 집중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억지로 알아차리려고 하면 몸에 힘이 들어가고 대단히 피곤해서 수행을 계속하기 어렵습니다.
경행은 하기 싫다고 그만 두어서는 안 됩니다. 수행에서 경행의 장점은 중요합니다. 경행은 운동을 하는 효과 외에도 움직이면서 생긴 집중력의 향상은 수행을 전체적으로 끌어올리는데 도움이 됩니다. 그래서 알아차리는 것을 무리하게 해서 싫증이 나지 않도록 알맞게 알아차려야 합니다. 그러면 재미가 있어서 경행을 계속할 수 있습니다.
한국명상원에서 경행을 하는 방법은 조금 다릅니다. 한국명상원에서는 ‘오른발, 왼발’이라는 명칭을 붙이지 않습니다. 명칭을 붙이면 마음을 발에 밀착시켜서 분명하게 알아차리게 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하지만 명칭을 붙이면 발의 실재하는 느낌을 알아차리기가 어렵습니다. 가령 들을 때의 가벼움이나 내릴 때의 무거움 등을 알아차리기가 어렵습니다. 또 발을 들고, 놓고, 서고, 돌려는 의도를 알아차리기가 어렵습니다. 이런 실재를 알아차려야 하는 이유는 이것들이 모두 무상의 성품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한국명상원에서 전혀 명칭을 붙이지 못하게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집중이 안 될 때는 명칭이라도 붙여서 알아차리는 것이 좋습니다. 그런 뒤에 조금 집중이 되면 명칭을 붙이지 않고 알아차리는 방법을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이렇듯 수행은 상황에 따라 적절한 응용이 필요합니다. 수행방법이란 모두 수행자의 근기를 도와 이롭게 하기 위한 것으로 어떤 것 하나만 고집할 필요는 없습니다.
한국명상원에서 경행을 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다음 방법은 집중이 될 때 순서대로 옮겨가면서 알아차려야 합니다.
첫째, 오른발 왼발의 뒤꿈치가 들리는 ‘일어남’ 하나만 알아차립니다.
둘째, 오른발 왼발이 바닥에 닿는 ‘사라짐’ 하나만 알아차립니다.
셋째, 오른발이 일어나는 것에서 사라지는 것까지 연결해서 ‘일어남, 사라짐’을 하나의 궤적으로 알아차립니다. 여기까지 분명하게 알아차림을 해서 집중력이 생기면 다음 단계로 의도를 알아차리는 수행을 해야 합니다.
이상의 방법은 붓다께서 법문하신 대념처경에 있는 방법입니다. 붓다께서는 사념처 수행을 할 때 일관되게 먼저 ‘일어남’을 알아차리고 다음에 ‘사라짐’을 알아차리고 마지막으로 ‘일어남, 사라짐’을 알아차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단계적인 방법으로 알아차리라고 한 것은 수행자의 근기를 배려한 방법이며 이런 과정을 알아차리면서 자연스럽게 무상의 법을 알게 하려는 뜻이 있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상의 방법으로 수행을 해서 충분하게 집중이 되었을 때 의도를 알아차리는 단계로 넘어가야 합니다. 원래 경행이란 ‘의도와 움직임’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의도를 알아차려야 비로소 경행이 완성됩니다. 자신의 모든 행동은 전부 의도가 있어서 움직입니다. 이러한 의도는 눈으로 물질을 보는 것이 아닌 마음의 영역이기 때문에 알아차리는 힘이 있을 때 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때의 의도는 원인이고 움직임을 결과입니다. 그래서 의도를 분명하게 알아차리면서 움직임을 알아차리면 위빠사나 수행의 두 번째 지혜인 원인과 결과를 아는 지혜가 성숙합니다.
경행을 할 때 모든 동작은 의도가 있어서 하지만 마음은 비 물질이라서 알아차리기가 어려우므로 처음에 정지된 동작에서부터 의도를 알아차리는 것이 좋습니다. 일정한 장소까지 걸어가서 서있을 때 ‘돌려는 의도’를 알아차린 뒤에 천천히 돕니다. 돌고 나서 선 뒤에 다시 ‘가려는 의도’를 알아차린 뒤에 발의 일어남을 알아차립니다. 경행을 하면서 이렇게 정지되었을 때 의도를 알아차리면 움직일 때 알아차리는 것보다 실천하기가 쉽습니다.
이렇게 ‘돌려는 의도’에 의해서 천천히 돌고, 다시 서서 ‘가려는 의도’에 의해서 앞으로 가는 수행을 한 뒤에 집중이 되면 다시 ‘오른 쪽으로 돌려는 의도’에 의해서 오른 쪽으로 돌고 다음에는 ‘왼쪽으로 돌려는 의도’에 의해서 돌면 좋습니다. 매번 같은 방향으로 돌지 말고 한 번씩 바꾸어서 돌면 알아차림이 강화됩니다.
또 서있다 앞으로 나가려고 할 때 ‘오른 발을 들려는 의도’를 알아차린 뒤에 오른 발을 앞으로 내밉니다. 그런 뒤에 다음에는 ‘왼발을 들려는 의도’를 알아차리고 왼발을 앞으로 내밉니다. 이렇게 오른발과 왼발을 번갈아가면서 의도를 내면 훨씬 집중력이 향상됩니다. 이렇게 의도와 움직임을 알아차리면 나중에는 전면에서 경행을 할 때의 모든 의도와 움직임을 한꺼번에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이 외에도 경행에서 알아차려야할 방법들이 많이 있으며 또 주의해야할 것도 많이 있습니다.
특히 주의해야 할 것은 경행을 할 때 시선은 반드시 서너 걸음 앞에 고정하고 마음은 발을 겨냥해야 합니다. 멀리 보거나 옆을 보면 알아차림을 놓칩니다. 이렇게 알아차릴 때 끊어짐이 없이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끊어짐이 없다는 것은 알아차림을 지속시켜 집중력을 키우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