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아치 새끼의 오류
朴埰同 (2024.07.02.20:30)
부캐가 양아치인 나는 ‘전주 열린문교회 이광우 목사 <칼빈주의 새끼 유생儒生들에게>’를 “양아치 글”로, 이광우 목사를 “양아치”로 단죄했다. 이랬던 내가 이 시점에서 내 양아치 이미지를 조금이라도 덜고 싶어 ‘목자, 가르치며 다스리는 장로(수염이 난 자)인 목사의 양육을 받는 양무리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내가 그동안 목사의 권위를 소중히 여기며 나보다 어린 젊은 목사님이시더라도 그분들께 예의를 다해 왔던 사실’을 이야기하며 “오죽하면, 이랬던 내가 하나님께서 내신 교회 권위의 질서를 어기면서까지 이광우 목사에게 막 나갔겠느냐?”고 말한다면, 논리학에서는 이를 “연민(동정심)에 호소하는 오류”라고 말한다.
<칼빈주의 새끼 유생儒生들에게>에서 이광우 목사는 ‘여성 목사 안수’를 두고 “정당하고 논리적인 논박은 얼마든 환영한다.”며 “논리”를 운운했다. 그런데 <칼빈주의 새끼 유생儒生들에게>는 여러 논리 오류로 이뤄진 글이다. 그 오류 하나가 ‘글 주제인 여성 목사 안수’에서 벗어나 느닷없이 고故 박윤선 목사님을 들먹거려 ‘삼천포로 빠진 오류’, ‘논점일탈의 오류’인 ‘인신공격의 오류’다. 또 하나가 ‘논점일탈의 오류’인 ‘연민(동정심)에 호소하는 오류’다. 박윤선 목사님 따님 박혜란 님의 아픔을 내세워 독자(관객)의 동정심을 자극 선동했던 바로 그 오류다.
‘논점일탈의 오류’를 “삼천포로 가는 오류”로 말하기도 하는데, <칼빈주의 새끼 유생儒生들에게>에서 드러나는 ‘인신공격의 오류’는 “세리 앞에서 자기 의를 드러낸 바리새인의 오류”라고 말할 수 있는 오류다. 이광우 목사가 박윤선 목사님을 비하하려고 자기 아내와 “단 한 번도 싸운 적 없다.”고 말한 바로 그 오류다.
참 가관인 것은 이광우 목사가 독자(관객)의 동정심을 자극 선동하는 ‘연민에 호소하는 오류’를 범하면서 박세리 선수 아픔을 다음과 같이 박혜란 님 아픔과 빗대 말한 것이다.
《요즘 한국 골프의 살아있는 전설인 박세리 선수가 그 부친의 도박 빚을 갚느라 지친 나머지 그를 고발하자 박세리 선수를 일컬어 “낳고 길러준 부모 은혜도 모르는 ×”이라고 상스런 욕을 하는 정신 나간 자(者)들이 있던데, 당시 박혜란 목사가 책을 펴냈을 때도 사람들의 무참한 쌍욕이 그에게 쏟아졌다.》
‘박혜란 {목사의 딸}’이 출판된 얼마 뒤, {목사의 딸}을 읽으면서 나는 ‘미국 유학파’이자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건축학과 졸업’이라는 학력을 가진 박혜란 님을 두고 ‘70세가 넘도록 새어머니를 향한 소아병적 보복 심리에 빠져나오지 못한 나머지, 낳고 길러주신 부모 은혜도 모르고 아버지 등에 비수를 꽂은 배은망덕한 딸, 천륜을 저버린 딸’로 생각했다. 이런 생각을 했던 나는 박세리 선수를 욕한 사람들과 똑같이 정신 나간 놈이었을까? 아니면, 이광우 목사가 정신 나간 놈일까?
그래, 고故 박윤선 목사님은 박세리 선수 아버지처럼 도박 빚으로 박혜란 님을 평생 지치게 만드셨는가?
<칼빈주의 새끼 유생儒生들에게> 서두에서 이광우 목사는 “공수특전단 장교 출신”이었다며 자신의 경력을 말한다. 그리고 끝에서 다음과 같이 전라도 양아치(조폭) 흉내를 낸다.
《어쩌다 징허게 재수(?) 좋게 남자로 태어난 칼빈주의의 새끼 유생儒生들이여! 그냐, 안 그냐?》???
바로 이것이 ‘양아치 새끼의 오류’다. 정확히 말하면, 논리학에서 “원천봉쇄의 오류”로 말하는 오류다. 물론, 우리가 ‘참 더러운 오류인 원천봉쇄의 오류’를 당할 때, 모독감을 느낀 우리는 ‘똥이 무서워서 피하냐? 더러워서 피하지.’ 하는 심정을 갖게 마련이다.
덧말: 나는 ‘하나님 말씀을 가지고 말장난을 치거나 농弄으로 삼는 것은 하나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것과 같다.’는 가르침을 받은 사람이다. 그런데 ‘똥이 무서워서 피하냐? 더러워서 피하지.’는 뇌동맥류 시술을 마친 지가 며칠 되지 않아 안정을 취해야 하고, “난치성 희귀암에 속한다.”는 갑상선 수질암 제거 수술을 앞둔 내 심정이기도 했다. “칼빈주의 #새끼 유생”으로서 모독감을 느낀 내 심정이었다. 그러나 “쌍방울” 운운한, 하나님 말씀을 가지고 말장난을 친 ‘이광우 <‘차이’와 ‘차별’의 차이>’를 읽고는 역겨움에 이 심정을 버렸다. 쌍방울을 거세해 수염이 없는 내시가 아닌, 쌍방울을 찬 남편이자 아비로서, 내 쌍방울과 수염이 부끄럽지 않게 이 양아치 새끼에게 개처럼 짖어대기로 한 것이다. 그리스도 능동 순종 문제로 예장 합동 Wolf들, 정이철, 김만옥, 임진남, 이창모 목사에게 짖어댔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