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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30일 오늘의 역사
2022년 한국의 탈춤 유네스코 무형문화재 등록
2022년 중국 덩샤오핑 뒤 이었던 장쩌민 전 주석 사망
1926년 중국 장쑤성 양저우에서 태어난 장 전 주석은 상하이 자오통(交通)대학교에서 전기과를 졸업했다. '문화 대혁명' 기간 당과 공직에서 추방당해 10년 동안 피신생활을 하기도 했다. 1세대 지도자인 마오쩌둥 사망 후 80년대 개혁과 개방시대가 열리면서 장쩌민은 본격적으로 정치권 핵심 인물로 떠오르게 된다. 그가 최고지도자 반열에 올라선 계기는 1989년 톈안먼(天安門)사태였다. 당시 톈안먼 사태로 실각한 자오쯔양(趙紫陽) 전 당 총서기의 뒤를 이어 그는 당 총서기에 올랐다. 이후 1993년 3월 국가주석까지 맡으며 중국 최초로 당(黨)·정(政)·군(軍)의 모든 권력을 거머쥔 뒤 2003년까지 중국 최고 지도자로 재임했다.
장 전 주석은 2002년 11월 후진타오 전 국가주석에게 당 총서기 자리를 물려준 것을 시작으로 다음 해 3월 국가주석직을 이양했다.
톈안먼 사태라는 격동을 거쳐 최고 지도자에 오른 고인은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노선과 도광양회(韜光養晦·빛을 숨긴 채 실력을 키움) 노선을 충실히 계승하면서 미국 등 서방과의 원만한 관계 속에 중국의 비약적 경제 성장을 일궜다.
그가 당 총서기가 된 1989년 1조7200억 위안(약 319조원)이었던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은 실질적 임기 마지막 해인 2002년 약 7배인 12조1700억 위안(약 2260조 원)을 기록해 비약적인 발전을 이뤘다.
2021년 국내 최장 해저터널인 충남 보령해저터널 개통
충남 보령해저터널이 2010년 11월 착공한 지 11년 만에 대장정을 마치고 30일 개통되었다. 보령시 신흑동 대천항 근처에서 원산도까지 해저터널 6927m는 전국 최장이다. 기존 인천북항해저터널 5.46㎞보다 1.5㎞ 더 길다. 전 세계로 따지면 일본 도쿄아쿠아라인 9.5㎞, 노르웨이 봄나피요르드 7.9㎞·에이커선더 7.8㎞·오슬로피요르드 7.2㎞에 이어 다섯 번째다. 영국과 프랑스 간 도버해협을 관통하는 유로터널은 38㎞에 이르지만 차량이 아닌 기차가 다니는 해저터널이다
깊이도 국내 해저터널 중 가장 깊다. 해수면에서 80m 아래, 터널이 지나는 바다 평균 수심 25m를 빼면 땅속 깊이만 55m에 이른다
이 터널은 NATM(New Austrian Tunneling Method) 공법으로 뚫었다. 유로터널 등 실드공법과 달리 화약을 터뜨린 뒤 거대한 드릴을 돌려 암벽을 깎아내는 방식이다. 하루 2~6m 전진할 정도로 작업이 더딜 수밖에 없다. 깎아낸 암반에 콘크리트를 뿜어 붙이고 쇠막대기를 박아 고정시킨다. 두께 40㎝가 넘는 아치형 콘크리트가 둘러싼다. 육상 터널에서 자주 쓰이지만 국내 해저터널에 적용하긴 처음이다. 이 때문에 강도가 매우 높아 지진에 끄떡없고 100년이 넘어도 안전에 문제가 없다
2018년 미국 일극체제를 이끈 조지 부시 미대통령 세상 떠남(94세)
2016년 유엔 안보리 북한 5차 핵실험(9.9) 탄핵결의안(2321호) 채택
2016년 대구 서문시장 화재 830여개 점포 소실
2016년11월30일 오전 2시 8분께 대구시 중구 서문시장 4지구 1층에서 원인미상의 화재가 발생돼, 지하 2층 지상 4층 건물을 모두 불태웠다.
화재는 상가가 칸막이가 없는 개방형 점포로 이뤄져 있고, 의류, 침구류, 원단 등의 점포로 구성돼 불이 옮겨 붙기 쉬운 가연물질이 급격한 연소로 진압대원 옥내진입이 곤란해 상황은 급격히 악화됐다.
최초 오전 2시 8분께 야간경비원이 4지구 1층에서 발생한 화재 상황을 보고 신고, 2시 9분께 대신소방서에서 첫 출동했다.
2시 30분께는 인근 노점의 LP가스가 폭발해 화재가 더욱 커졌다.
소방인원 총 870명이 투입됐고, 소방차 97대와 헬기 2대가 투입돼 화재를 진화하였다.
이 화재로 830여개 점포가 소길 되었다
2014년 바둑의 전설 우칭위안(오청원) 세상 떠남(100세)
2009년 북한 제5차 화폐개혁
2008년 '미련'의 가수 장현 별세
1970년대 ‘신중현 사단’의 핵심 멤버로 활동하던 가수 장현(63·본명 장준기)이 지병으로 유명을 달리했다.
장현은 1970년 ‘기라려주오’로 데뷔한 이후, 한국 음악계의 대부인 신중현 사단의 핵심 멤버로 활동하며 주목을 받았다. ‘나는 너를’, ‘미련’ 등의 히트곡을 남겼다.
1975년 대마초 파동으로 가수 활동을 접은 이후 사업가로 변신,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사업체 운영해 왔다.
장씨는 지난 1990년대에도 위암 말기 판정을 받았지만 수술로 건강을 되찾았으며, 최근에는 KBS TV ‘가요무대’에도 출연하며 가수로서 마지막 열정을 불태우기도 했었다. 하지만 올 여름 병원에 들렀다가 폐암 판정을 받고 치료를 받다가 결국 이날 눈을 감았다.
2004년 한국불교 해외개척의 선구자 숭산 스님 세상 떠남
2003년 이라크에서 송전탑공사 중이던 한국인 노동자 2명 총에 맞아 사망
2002년 일본·싱가포르 FTA(자유무역협정) 발효로 자유무역시대 개막
협정 발효로 일본과 싱가포르 양국 간 교역의 98~99% 정도가 무관세로 이뤄지게 됐다. 특히 싱가포르는 일본으로부터 수입하는 모든 물건에 일체 관세를 붙이지 않게 됐다. 지난 10월 칠레와 처음으로 FTA를 맺은 한국으로서는 간접적으로나마 FTA의 효과를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되는 셈이다.
일본과 싱가포르는 지난 1월 FTA 협상을 타결했다. 협상 시작 후 불과 1년 만이다.
2002 서울 광화문에서 2,000명 참석해 최초의 촛불시위 열림
2002.11.20 주한 미8군 군사법원 배심원단이 2002.06.13 두 여중생을 죽인 미군궤도 차량 관제병에게 무죄평결 내리자 누리꾼 ‘앙마’가 “광화문에서 반딧불이가 됩시다”라는 글 올린 지 3일 만에 첫 촛불집회
일주일 뒤인 12월7일 5만개의 촛불, 다시 일주일 뒤인 12월14일 10여만 명이 광화문을 ‘반딧불 바다’로 만듦
2000년 남북 이산가족 200명 서울-평양에서 50년 만에 혈육 상봉(2차 상봉)
서울과 평양이 2000년 11월 30일 또 다시 오열의 바다로 변했다. 남과 북의 이산가족 200명은 이날 분단 반세기동안 헤어져 살아온 가족-친척과 감격적인 상봉을 했다.
서울의 강남 센트럴시티 밀레니엄 홀과 평양의 고려호텔 2~3층에서 이뤄진 단체 상봉에서 이산가족들은 이름과 번호가 적힌 명찰을 확인하기도 전에 달려가 부둥켜 안고 흐느꼈다. 100세의 할머니, 81세의 할아버지도 백발이 성성한 아들의 손을 잡고 한없이 눈물을 흘렸다. 1차 상봉때와 달리 이번 상봉에는 북측의 가족들이 `장군님 만세` 등의 체제선전을 강화하는 모습을 보여 분위기가 한때 어색해지기도 했다.
또한 북한은 공동취재단의 일원으로 평양을 방문한 조선일보 사진기자를 3시간동안 억류해 필름을 압수한 후 우리 대표단의 항의를 받고 풀어주기도 했다. 이산가족들은 2박3일간 눈물의 밤을 지새고 12월 1일 다시 헤어져 기약없는 이별의 순간을 보내야 했다.
2000년 일본 고등법원, 위안소 설치는 당시의 국제법 위반 판결
일본 도쿄 고등법원은 2000년 11월 30일 일본군 위안부로 7년 동안 혹사당했던 재일 한국인 송신도(78)씨가 일본 정부를 상대로 사죄와 1200만엔의 손해배상을 청구한 항소심 판결에서 위안소 설치는 당시의 국제법 위반이라고 판결했다.
기토 스에오 재판장은 이날 송씨가 입은 피해사실을 인정하면서 “(일본군) 위안소 설치는 당시 일본이 비준, 가입했던 강제노동조약 등의 국제법을 위반한 것으로 국가에 그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일본정부와 기업을 상대로 한 지금까지의 전후 배상 소송에서 위안소 설치가 국제법 위반이라는 사법 판단이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러나 재판부는 송씨의 손해배상 청구에 대해서는 1심과 마찬가지로 “국제법상 개인이 가해국을 상대로 직접 배상을 청구할 권리는 없으며, 재일 한국인의 배상청구권은 한일 청구권 협정 체결 후 20년이 경과한 지난 1985년에 이미 소멸했다”고 항소를 기각했다
1999년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의 시애틀서 개막
21세기 세계 무역규범을 마련하기 위한 뉴라운드 출범을 결정하는 세계무역기구(WTO) 제3차 각료회의가 미국 시애틀에서 열렸다.
135개 WTO 회원국 무역장관들은 농업시장 개방과 공산품 관세 인하, 반덤핑 제한 제정 등 통상협상 분야와 방식 등을 담은 ‘각료선언문’을 채택하기 위한 사흘간의 협의에 들어갔다. 이번 WTO 각료회의에서는 농업보조금을 포함한 농업부문 협상이 가장 큰 쟁점으로 부각됐다.
비가 내리는 가운데 이날 오전 7시쯤부터 회의장 주변에 모이기 시작한 세계 각국 NGO들은 인간띠를 만들어 대표단과 기자단의 회의장 진입을 막았다.
시위대는 통금이 시행된 뒤에도 밤 늦게까지 도심 곳곳에서 경찰과 대치, 충돌했다.
한편 한국 대표단은 일본 유럽연합 등 5개국과 함께 가진 협의가 끝난 뒤 “임-수산물에 대한 별도 그룹을 만들자는 기존 입장을 더 이상 추진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는 수산물을 공산품과 동일하게 다뤄야 한다는 다른 나라들 주장을 받아들인 것으로, 협상이 끝나는 3년 뒤부터는 국내 임-수산업이 크게 위축될 전망이다. 지금까지 임-수산물 수입품에 대해서는 고율의 관세를 부과해 국내 산업을 보호해왔다.
1999년 통합방송법 통과
방송위원회 권한 강화와 위성방송 근거 마련 등을 골자로 한 통합방송법안 제정안이 1999년 11월 30일 국회 문화관광위원회에서 야당 의원들이 불참한 가운데 여당 단독으로 통과됐다. 여야는 이날 두 차례 총무회담 등을 열었으나 이견을 해소하지 못해 여당 단독 처리로 이어졌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여당 법안이 방송위원회의 정치적 중립을 보장하지 못해 찬성할 수 없으나, 기술적·산업적 통과 요구가 크므로 물리적으로 저지하지는 않겠다”며 표결에 불참했다.
막판 쟁점이던 방송위원회 구성 문제는 여당안대로 대통령이 3명, 국회가 3명, 국회 문화관광위원회가 3명을 각각 추천해 여야 추천비율이 7대2가 되도록 했고, 9명의 위원 중 4명인 상임위원 가운데 1명을 야당에 할애해 달라는 야당측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통합방송법은 12월 28일 임시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돼 1994년 첫 논의를 시작한지 5년 만에 결실을 맺었다.
1999년 신라문화 발굴에 헌신한 윤경렬 선생 별세
‘마지막 신라인’으로 불린 경주의 향토 사학자 고청 윤경렬(83) 선생은 신라인의 숨결을 발굴, 현대적으로 재조명하는 데 평생을 바친 향토 사학자였다.
타지인 함북 주을면 태생인 그는 신라 문화에 매료돼 지난 1949년 경주에 정착한 뒤 경주 어린이박물관학교를 개설하고 신라문화 동인회를 창립했으며 ‘신라이야기’ ‘신라의 전설’ ‘겨레의땅 부처님의 땅’ 등 많은 신라 관계 저술을 남겼다. 특히 우리 민속인형의 원형을 찾기 위해 4년간 일본에 건너가 인형제작 수업을 받았을 정도로 치밀했으며, 경주 남산의 불교유적지 답사를 위해 수천 번 이상 남산을 올라 남산의 지리를 손금처럼 잘 알았던 ‘영원한 신라인’이었다
1998년 이집트 람세스2세 시대의 `지하도시` 발견
1991년 통일교 문선명 교주, 김일성 북한 주석과 면담키 위해 세계일보 박보희 사장과 함께 입북
1984년 미국 통합우주사령부 신설결정 발표
1984년 전두환 대통령, 정치규제자 84명 3차로 해금
1980년 11월 5일 공포된 정치풍토 쇄신을 위한 특별조치법에 따라 정치활동을 규제받았던 5백67명 중 2백50명은 1983년 2월 25일에 단행된 1차 해금에서 풀려났으며, 202명은 1984년 2월 25일 2차 해금으로 풀려난 바 있다. 규제대상자 중 16명은 규제 기간중 사망해 피규제자로 남아 있었던 사람은 99명이었다.
정일권 박준규 문익환씨 등 정치활동 피규제자 84명에 대한 3차 해금조치가 1984년 11월 30일 단행돼 이날부로 정치활동이 가능해졌다.
이번 3차 해금조치는 정치적 비리와 혼란으로 정치활동을 규제 받아온 극소수의 인사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자유로운 정치활동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데에 의미가 있으며 정치풍토 쇄신법에 의한 피규제자 5백67명중 97%가 4년전의 `자유`를 회복함으로써 그동안 계속되어온 정치적 과도기가 종식됐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깊었다.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씨 등 15명은 이번 해금에서 제외됐다.
1984년 소련-중국 무역협정 조인
1983년 루밴스가 그린 `한복을 입은 남자` 3억7천만원에 거래
1983년 미국, 레이저광선포 실험 성공
미 공군이 항공기 적재 레이저 광선포 발사실험에서 1대의 무인항공기를 파괴하고 다른 두 대를 손상시켰다고 미 국방성이 전했다. 국방성은 공군이 9월 26일 캘리포니아주 부근 태평양 상공에서 순항 미사일과 같은 저공비행 무기로부터 해상함정들을 보호하기 위한 3건의 레이저광선포 발사실험을 실시했다고 1983년 11월 30일 발표했다.
이같은 실험은 고에너지 레이저 광선을 충분한 시간동안 목표물에 조견, 목표물의 표피를 불태운 뒤 중요부분을 파괴하는 실험으로 이미 6월 레이저광선으로 5개의 초음속 사이드 와이드 미사일을 격추하는데 성공했었다. 이에 앞서 3월 레이건 대통령은 우주전쟁에 관한 연설에서 레이저광선을 이용하여 미국은 핵공격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한 새로운 우주무기체제의 개발을 촉구했었다.
1981년 이윤상 유괴범 주영형 1년17일 만에 검거
경서중학교 이윤상군 유괴살해범으로 윤상군의 체육교사 주영형이 사건발생 1년17일만인 1981년 11월 30일 검거됐다. 주영형은 1천만원의 부채와 노름빚을 갚기 위해 1980년 11월 13일 이윤상군을 유괴해, 영등포의 아파트에 감금시켜 손발을 묶고 입에 반창고를 붙인 후 이불로 덮어 질식사 시킨 후 시체는 경기도 가평군 북한강변에 암장했음이 밝혀졌다.
주영형의 진술에 따라 경찰은 매장현장을 뒤진끝에 이날 오후 4시30분 사체를 찾아냈다. 경찰은 주영형과 그를 도와 범행에 가담한 공범 이양을 미성년자약취, 유인 및 살인, 사체유기 등의 협의로, 고양을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 방해 및 범인은닉 협의로 각각 구속했다.
1980년 한국 여자탁구 23회 스칸디나비아 오픈서 1,2,3위
1980년 TBC(동양방송), DBS(동아방송) 종방
1980년 11월 30일 자정, 언론통폐합 조치에 따라 동아방송(DBS)과 동양방송(TBC)이 종방했다.
1963년 4월 25일 첫 전파를 탄 동아방송은 개국과 함께 선구적 프로그램과 날카로운 비판의 목소리로 17년 7개월간 국민의 소리를 대변했다. 동아방송은 1964년 6.3사태 때도 수난을 겪었다. 당시 '앵무새'라는 프로그램이 내란을 선동하고 학생시위를 배후조종했다는 이유로 6월 4일 최창봉 방송부장 등 6명을 구속한 것이다. '앵무새'는 우리나라에 처음 도입한 고발성격의 사회비평 방송칼럼이었다.
1980년 11월 12일에는 동아방송 회장 김상만과 사장 이동욱이 보안사에 불려갔다. 언론통폐합 조치에 따라 동아방송을 포기하라는 것이었다. 삼성 회장 이병철도 이미 동양방송 포기각서에 서명한 뒤였다.
1980년 11월 30일 자정, 동아방송은 송지헌 아나운서가 고별방송을 전했으며 동양방송은 11시 30분까지 TBC TV의 마지막 특집프로그램을 방영하며 끝을 맺었다. 동양방송 라디오의 마지막은 '황인용의 밤을 잊은 그대에게'가 채웠다.
1979년 로마 가톨릭과 그리스 정교회 9백년간의 불화 종식
1974년 북한, 남북조절위 무기연기 통고
1972년 제1차 남북조절위원회 개최(서울)
1968년 서울 전차 마지막 운행
1968년 최초의 군승 5명 임관식
1967년 한국-몰디브, 국교수립
1966년 영국통치로부터 바르바도스국 독립
1964년 수출의날 제정(수출액 1억 달러 돌파)
1963년 제1회 청룡영화상 시상
1963년 11월 30일 7시 제1회 청룡영화상(조선일보영화상) 시상식이 서울 시민회관 대강당에서 열렸다. 청룡영화상은 한국영화 진흥과 대중문화 발전을 위해 조선일보가 마련한 명실상부한 한국영화의 그랑프리로 매년 시상을 해오면서 수많은 스타와 감독 등 영화인들을 배출, 가장 권위적인 최대의 민간상으로 자리를 굳혔다. 1973년 영화법 개정과 쿼터제 도입 등의 영향을 받아 한국영화가 침체되면서 중단되었다가 17년만인 1990년 스포츠조선의 주최와 조선일보의 후원으로 재개됐다.
제1회 청룡영화상 시상식에서는 ‘혈맥’이 작품상을 받았고, ‘돌아오지 않는 해병’의 장동휘 최무룡 구봉서 이대엽 김운하 등이 집단연기상을 받았다. 또 작고한 영화배우 남춘역을 추모하는 특별상 시상도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처음 시도하는 인기상은 팬들의 투표와 엽서로 뽑아 관심을 모았는데, 결혼 전의 신성일 엄앵란이 인기상 수상자로 결정돼 3천여명의 관중들로부터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1962년 유엔사무총장에 우 탄트 정식 임명
1954년 호헌동지회 결성
1953년 국회서 참의원 선거법 통과
1951년 전남에 비상계엄 선포
1950년 트루먼 미대통령, 한국전서 원폭사용 고려중이라고 선언
1949년 대(對)공산권 수출통제위원회(코콤) 설치
1948년 국군조직법 공포, 육군본부 해군본부 설치
1946년 세계 최소관광국 바베이도스 독립
1946년 서북청년단 결성
1946년 11월 30일 서울 YMCA 강당에서 '서북청년회(서청)'이 결성됐다. 광복 후 남하한 이북 출신의 청년들이 만든 평남청년회, 함북청년회, 황해청년회 등을 통합한 것이다.
공산주의 치하에 있다가 온 이들은 반공성향이 강했고 좌익을 공격하는 일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 미군정에게 서청은 믿을만한 세력이었고, 서청은 미군정을 등에 업고 좌익 공격의 선봉에 섰다. 미군정이 지나치게 힘을 실어준 서청은 점차 부작용이 생기기 시작했고 폐해는 제주도 4.3 사태 때 가장 극심하게 나타났다.
1947년 제주에서 3.1시위가 일어나자 새로 부임한 도지사의 경호원으로 서청단원이 함께 갔다. 서청단원들은 무고한 제주도민과 좌익을 구별해야 했지만 무차별하게 백색테러를 자행했고, 이들에 대한 반발심으로 좌익 쪽을 선택한 도민들도 적지 않았다. 또한 서청단원들은 보수 없이 경찰 보조역으로 활동해 민폐도 컸다.
이후 서청은 전 광복군 총사령관 지청천이 대동청년단을 중심으로 전국적인 청년조직 결성을 추진할 때 합동파와 합동반대파로 분열돼 심각한 내홍을 겪었다. 결국 합동파는 1948년 9월 대동청년단에 통합되고, 합동반대파는 1949년 12월에 이승만이 결성한 대한청년단에 대동청년단과 함께 흡수 통합됨으로써 자연 해체됐다.
1939년 소련 핀란드 침공
일명 겨울전쟁이라고도 하며 소련이 핀란드를 침공하여 발발한 전쟁이다 1940년 3월13일 까지 지속되었고 제2차 세계대전의 일부로 간주되고 있다 전쟁의 개전과 종전이 겨울의 시작과 끝을 함께해서 소련과 핀란드 전쟁보다 겨울전쟁이라는 이름으로 더 알려져 있다 전쟁의 결과는 핀란드는 전쟁에 패배했지만 발트3국과는 달리 소련에 흡수 되지 않았다
1936년 영국의 수정궁 화재로 소실
수정궁 또는 크리스탈 팰리스는 영국 런던에서 열린 1851년 만국 박람회를 열기 위해 지은 철과 유리로 이루어진 거대한 모듈식 건물이다 벽과 지붕 모두 유리로 만들어 졌으며 주철의 기둥이 건물을 지탱했다 크기는 무려 축구장 18개를 더한 크기였으나 화재로 소실되었다
1930년 소련군, 핀란드 공격개시. 冬期(동기)전쟁 시작
1926년 사단법인 경성방송국 설립
1923년 대동강교 준공
1923년 우리나라 첫 프로기사 조남철 9단 출생
1915년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러시아 일본, 대(對)독일 단독 불강화선언에 조인
1911년 외몽고 독립선언
1909년 일진회·대한협회, 통합 선언
1907년 중국혁명동맹회 진남봉기 실패로 손문 싱가폴로 망명
1905년 주한영국공사관 철수
1905년 대한제국의 애국지사 민영환 자결
계정 민영환 선생이 1905년 11월 30일 을사조약에 항거하며 이완식의 집에서 유서 3통을 남기고 45세의 나이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민영환은 1861년 서울에서 병조 판서 민겸호의 아들로 태어났다. 선생은 17세의 나이로 정시 문과에 급제한 뒤 예조·병조판서, 한성부윤 등을 거쳐 1895년 미국주재 전권대사에 임명됐다.
그러나 명성황후 시해사건 후 자괴감에 빠졌으나 광무황제의 신임으로 참정 대신, 탁지부 대신에 임명된 선생은 1904년 2월 한일의정서 체결과 1904년 8월 제1차 한일협약 등 일제가 자행한 침략행위에 대해 격렬히 저항했다. 이어 1905년 11월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조약에 서명한 이완용 등 5적을 처형하고 조약을 파기하라는 상소를 올렸다가 일경에 체포돼 평리원 감옥에 수감됐다.
정부는 1962년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중장(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
1900년 천재 작가 오스카 와일드 사망
1900년 11월 30일 파리, 이름 없는 작은 여인숙에서 나그네 한 사람이 숨을 거두었다. 여관집 주인의 조화밖에 없었던 초라한 장례식. 후세 문명사가들은 이 장례식을 "19세기 도덕주의를 묻는 거대한 의식"으로 부른다. 죽은이가 바로 남색을 탐한 죄로 하루아침에 심연 속으로 추락한 천재 작가 오스카 와일드였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한세기. 이제 동성애자들은 죄인은 커녕 법적으로 부부가 될 수도 있게 됐다.
동성애는 오래도록 도덕적, 법적 금기로 여겨져 왔다. 헤브라이즘은 자유로운 인간의 성적 표현으로 동성애를 관용했지만, 로마제국이래 유럽을 지배해온 기독교 정신은 동성애를 독신과 배덕으로 간주했다. 더블린 명문가 출신으로 옥스포드를 나온 천재 작가 와일드는 결혼하고 자녀 셋을 두었으나 뒤늦게 연하의 귀족 남성과 나눈 동성애 스캔들로 마흔여섯해 삶을 오욕 속에 마친다.
1896년 시인 김억 출생
1895년 독일, 마샬군도 점령
1888년 캉유웨이 등이 변법자강운동 일으킴
1885년 독일 마샬 제도 점령
1874년 영국 정치가 처칠 출생
1874년 캐나다의 소설가, `빨간머리 앤`의 몽고메리 출생
1869년 스웨덴의 발명가 달렌 출생
1864(조선 고종 1) 언론인 위암 장지연 출생
1835년 미국 작가 마크 트웨인 출생
1829(조선 순조 29) 경희궁 불남
1694년 이탈리아의 의사이자 생물학자 말피기 사망
1667년 아일랜드 작가 스위프트 출생
1067년 사마광 『자치통감』 집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