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 조선 조정을 혼란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칙서실종 사건
다들 이미 알겠지만 조선과 청나라는 기본적으로 조공·책봉의 관계였는데 이러한 체계의 일환으로 청나라는 여러가지 사유로 조선에 사신을 파견함.
여기서 청나라가 보낸 사신은「"칙사(勅使)"」라고 칭하며 이 칙사가 가져온 청나라 황제의 명령서는「"칙서(勅書)"」라고 불렸음.
기본적으로 조선 왕실은 칙사가 의주 부근에 당도하면 한양에 오기 전까지 미리 만반의 준비를 철저하게 할 수 있도록 사람을 보내어 칙서에 적힌 내용을 몰래 훔쳐보게 하는 것이 관례화되어 있었음.
그런데 영조 재위시기였던1738년 2월 7일, 이와 관련해 갑자기 사건이 터짐.
영의정 이광자
『"전하, 원접사조현명으로부터 매우 시급한 소식이 날라왔습니다!"』
영조
『"뭔데? 설마 누가 또 갑진년에 게장 안 먹었다는 소리라도 냈냐?"』
우의정 송인명
『"뭔소리여;; 그게 아니라 평소처럼 칙서내용을 확인하려고 칙서가 들어있는 상자의 뚜껑을 열었는데 글쎄 칙서는 없고 상자는 텅 비어있었다는 겁니다!"』
조선 당국은 이 때도 청나라 사신이 의주에 당도하자 관례대로 사람을 보내어 칙사 몰래 칙서의 내용을 훔쳐보게 함.
그런데 평소와는 달리 칙서가 들어있어야 할 상자가 텅 비어있었음.
원접사로 부터 이러한 소식을 접한 조정은 크게 당황하면서 사태의 경위를 추정하고 대응방책을 논의했음.
우의정 송인명
『"설마 청나라 쪽에서 이들 칙사에게 앙심을 품은 자가 있어서 이들을 곤란에 빠뜨리려고 칙서를 미리 빼돌린 거 아닐까요?
왜 이런 사태가 발생했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는데요?"』
예조판서 송진명
『"만약 칙사들이 우리들을 속이려고 일부러 칙서를 다른 곳에 감춰둔 것이라면 별 문제는 없겠지요.
그러나 우의정 송인명의 말대로 저놈들의 권력다툼 때문에 이러한 문제가 발생한 거라면 골치 아파집니다.
자칫하면 칙서를 잃어버린 잘못을우리에게 뒤집어씌울 수도 있습니다!"』
이광자
『"이 일은 우리에게 잘못이 있는 일이 아닙니다. 따라서 앞으로의 상황에 따라 임기응변으로 대처해야 하며 우리가 먼저 동요해서도 안 됩니다.
만약 저들이 칙서를 잃어버린 사실을 깨달아 놀라고 동요한다면 우리도 덩달아 함께 놀라고 동요하면 그만입니다.
만약 예조판서의 우려대로 칙사들이 우리들이 칙서를 잃어버렸으니 우리더러 찾아내라고 강요하면 우리는
「"칙서를 상자 안에 넣고 보관하는 일은 당신들이 모두 주관했는데 어찌 우리가 잃어버렸다고 할 수 있겠는가?"」라고 말해야 합니다."』
영조
『"오? 영의정 이광자의 대책이 가장 그럴 듯 하네. 그래, 그럼 그렇게 하는 걸로 하자!"』
이 와중에 송인명은 다음과 같은 방책도 제안했음.
『"칙사가 우리나라 경내로 들어오면 칙서를 지니고 있는 사람을 일부러 물에 빠뜨려(...)
물에 조금 젖게 하고 이를 핑계로 상자를 열어보자고 청하는 건 어떨까요?"』
『"아 아무리 그래도 그건 좀...
다시는 내 앞에서 그딴 말 하지 마라."』
당시 이들의 논의를 목도한 사관은 이러한 모습이 매우 한심해 보였는지 이런 논평을 남기기도 했음.
「"사신은 말한다.
청나라가 아무리 기강이 없다고 하지만, 어찌 칙서를 잃어버릴 리 있겠으며, 또한 어찌 고의로 감추어 두고 우리에게 뇌물을 요구하겠는가?
설령 도중에 잃어버렸다 해도 그 책임은 저들에게 있는 것이고, 몰래 숨겨놓고 뇌물을 요구하면 우리나라도 엄연히 할 말이 있는 법이다.
그러나 칙서가 사라졌다는 기별이 오자 온 조정이 불안해했고, 심지어는 물에 젖게 한 뒤 열어보도록 청하자는 계책까지 나오기에 이르렀다.
묘당(廟堂)에서 내놓는 대책이라는 것들이 이와 같으니, 식견 있는 사람들은 해괴하게 여겼다."」
- <영조실록>;1738년 2월 7일자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