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목사님께
매일 간간히 뿌리던 비가 오늘은 오전부터 쉬지 않고 내리는군요. 비오는 날에는 빈대떡이 제격이라며 아내가 부추전을 몇 장 부쳐오자 옛 추억도 자연스레 따라옵니다.^^ 며칠 전에는 구글이 5년 전 오늘의 사진이라며 목사님과 샘물교회 교우들 모습을 띄워주었습니다. 추억 알람인 셈인데요, 불쑥 나타난 사진 속에 있던 사람을 뜻하지 않게 만나며 반가웠습니다. 사진 속에 남아있던 그때의 이야기도 함께 소환되니 감사했고요.
한국은 폭염주의보가 내렸다는 소식을 들었는데요, 더운 일기에도 목사님 가정도 교회도 모두 평안하시죠? 찾아뵙지는 못해도 늘 마음에 고마움으로 간직하며, 목사님과 샘물교회 교우들에게 은혜와 복을 넘치게 부어주시길 기도합니다. 저희 부부도, 교회도 모두 평안합니다.
뉴질랜드의 한 해변에서 찍은 영상을 보았습니다. (https://www.youtube.com/shorts/pC-DOPAAzSM) 사육사와 아기 펭귄이 바닷가에서 작별하는 장면인데요, 과연 아기 펭귄이 어떤 결정을 내릴지 지켜보는 동안 자못 긴장이 되더군요.^^
"사육사의 돌봄을 뒤로하고 광대하기 짝이 없는 바다로 갈 것인가, 자기를 극진히 돌봐준 사육사에게 돌아올 것인가?"
잠시 둘 사이에 머뭇거리던 그 작은 펭귄이 바다를 향해 걸어가는 모습이 뭉클한 감동을 줍니다. 파도에 부딪치면서도 돌아서지 않는 그 모습이 장합니다. 누가 기다리는 것도 아니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목적지도 잘 모를 텐데 말이죠.
자기를 따듯하게 대해준 손길을 뒤로하고 그 어린 펭귄을 나아가게 한 힘이 무엇일까, 궁금했습니다. 그 안에 있는 본성, 곧 펭귄의 진실을 따라간 것이겠죠.
펭귄 안에 두신 그 진실이 아름답고 힘이 있습니다. 아직 새끼지만 진실을 나타내는 모습이 장하고 눈물이 날만큼 뭉클합니다. 파도가 그를 거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그 파도에 자극 받은 그의 본성은 밀려오는 파도에 전혀 굴하지 않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이들 안에 담아주신 진실이 그런 것임을 기억합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이전의 본성 대신에 예수님의 본성이 우리 안에 있어 예수님의 지혜와 거룩, 예수님의 사랑과 능력, 예수님의 인내와 겸손이 우리 삶을 통해 나타나는 것임을 생각합니다.
펜데믹 기간을 보낸 산마리노 친구들을 보면서 더욱 그런 생각이 듭니다. 더욱 그 안에 담아주신 진실을 따라 살아가도록 기도합니다.
늘 함께 기도해 주셔서 감사드리며, 오늘은 특별히 다이렐과 다렐의 이야기를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다이렐
다이렐이 다니고 있는 더 피플대학교(University of the People)는 2달이 한 학기입니다. 학생들의 수업 역량에 따라 한 학기에 한 과목이 주어지기도 하고 두 과목이나 세 과목이 주어집니다. 지난 1년 동안 매학기마다 한 과목씩만 수강해야 했던 다이렐은 지난 학기에는 두 과목을 수강했습니다. 학업에서 그만큼의 진보를 나타낸 것입니다.
지난 주 나눔에서 그녀는 세 과목을 수강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했습니다. 한 과목도 쩔쩔매던 그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단단하게 성장한 것이니 반가운 일입니다. 현재 수강하고 있는 과목의 과제로 할머니에게 일어난 일을 이야기로 쓰는 중인데 이미 두 챕터까지 마쳤다고 합니다.
그녀의 할머니 트리니다드는 입원치료를 진단 받은 조현병 환자입니다. 툭하면 손자들을 때리거나 꼬집고, 소리치며, 화를 내며 물건을 던졌습니다. 분가했거나 타국에 사는 자녀들은 입원시킬 돈이 없어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켜보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상태에서 손녀인 다이렐과 다닐로가 중심이 되어 그녀를 돌보고 있습니다.
그 할머니가 지금은 손자들을 위해 음식을 만들거나 음식을 만드는 법도 알려주고, 청소도 하며, 혼자서 산책도 하고, 손자들과 놀이도 하고, 함께 춤도 추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눌 정도로 상태가 되었으니 얼마나 감사한지요! 다이렐과 다닐로가 할머니의 뜻을 받아주며 함께 돌본 결과였습니다.
지난 해, 코로나바이러스에 걸려 집에 돌아온 아버지가 마당에 설치한 천막 안에서 시신으로 발견됐을 때, 그녀와 가족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하지만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다이렐은 놀라거나 당황한 모습을 보이는 대신에 늘 그랬던 것처럼 가족들을 예배의 자리로 초청했고, 모두의 마음을 위로하고 평안하게 했습니다. 그 큰 일을 치루면서도 평정심을 잃지 않았습니다. 가족들 모두가 놀란 일이었지만 매일 주님과의 교제 가운데 모든 면에서 자라나고 있었던 다이렐이 겸손히 자신의 자리에 섰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육체의 훈련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모든 일에 유익이 있으며 이 세상에서의 삶뿐만 아니라 저 세상에서의 영원한 생명까지 약속해 줍니다."(딤전 4:8)
매일 매순간 주님과 동행하는 사람은 자신 안에 어떤 힘이 자라나고 있는지 잘 모를 수 있지만 문제가 닥쳐왔을 때 과거에 없던 능력이 자신 안에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자신이 생각보다 지혜롭고, 강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 능력은 점점 지혜로워지는 모습으로, 밝고 강한 모습으로, 겸손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특별히 모두가 주저앉을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그 때에 혼자 일어선 사람처럼 뚜렷합니다. 그녀의 몸에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서명이 있습니다. 내 눈에는 키가 150센티미터도 안 되는 다이렐이 그런 사람입니다.
주님과의 비밀스러운 교제를 통해 매일의 삶 가운데 나타나는 힘이 경건임을 다이렐을 통해서 봅니다. 그녀 안에 사시는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능력이 자연적인 인간의 삶에 나타나는 것을 보는 것은 교회만 아니라 그녀의 가족 모두가 함께 경험하고 있는 기적입니다.
다렐
다렐이 어린 나이에 큰 슬픔을 겪을 때마다 우리 부부를 산마리노로 보내신 이유가 마치 다렐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곤 했습니다.
다렐은 아직 고등학교 1학년이던 어린 나이에 세례를 받고 네 명의 리더에 가입했습니다. 주변 상황, 특별히 여자 친구들의 바램대로 움직이는 일이 많아 심지가 견고하지 않은 친구로 보였습니다. 지프니 운전을 하던 아버지가 중풍으로 쓰러지자 가정에는 이내 경제적인 위기가 닥쳤습니다.
엄마가 맛사지 일을 하며 간신히 가계를 꾸려야 했고, 딸 자닝은 남자를 만나 동거를 시작했습니다. 얼마되지 않아 아버지는 40대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는데, 설상가상으로 장남 지보이는 마약과 도박에 손을 대 구치소에 수감되기도 했습니다. 마약중독 치료를 위해 재활병원에 입원해야 할 정도였으나 병원비는 엄두도 나지 않은 형편이었습니다.
슬픔은 차치하고서라도 형으로 인해 집은 조용할 날이 없었습니다. 특별히 아직 어린 다렐과 막내인 패트릭이 설 자리가 없었습니다. 특별히 경제적인 압박으로 인해 패트릭의 고등학교 자퇴를 결정할 정도로 가정은 어려워졌습니다. 그러던 중에 형 지보이가 불량배들에게 맞아 죽은 뒤 암매장된 채로 발견되었으니 그 가정의 슬픔과 환난을 끝이 없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 모든 아픔을 견딜 수 없던 엄마는 서둘러 일자리를 찾아 두바이로 떠났고, 다렐과 패트릭은 누나의 집에 얹혀살아야 했습니다. 다렐이 대학 졸업 후 직장을 잡았으나 곧 실직했고, 더 이상 소망이 없다고 생각하고 일자리를 찾아 외국으로 갈 마음을 굳혔던 때가 1년 8개월 전인 2021년 12월이었습니다. 그의 가족의 환난은 도무지 끝이 안 보였습니다.
그러던 중에 동생 패트릭이 의대에 진학했는데 반전의 서막과 같았습니다. 그후 다렐도 직장을 얻었고 동생을 돌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집을 구해서 누나의 집과 분리되었으며, 이사한 집을 교회 도서관으로 사용하기를 기뻐해서 에어컨과 책장과 책상을 마련한 후 교회 친구들이 가장 즐겁게 모이는 장소로 활용되었습니다. 다렐의 가정에 일어난 일을 생생히 증거하는 장소이기도 했습니다.
최근에 다렐이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을 감사해 하며 적은 글을 보며 마음에 뭉클한 감동을 느꼈습니다. 제 자리에 선 그가 너무도 자랑스러워서 칭찬의 글을 써보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가 하고 있는 모든 일에 은혜가 임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첫째, 어머니와 자주 소통하며 집안의 대소사를 의논하는 기쁨을 누리며, 어머니가 감사함으로 성경을 읽도록 안내한 일 둘째, 패트릭을 돌보며 그의 수업료를 준비한 일 셋째, 비콜로 이사한 누나의 가정을 도운 일 넷째, 직장에서 능력을 인정받은 일 다섯째, 형수에게 직장을 소개하며 그 가족을 돌본 일 여섯째, 교회 리더 중 한 사람으로서 자신의 자리에 선 일, 일곱째 상담학 석사 과정 한 학기를 마무리 지은 일 등입니다. 그가 제 자리에 섬으로 이 모든 일들이 다 원만하게 진행되고 있는 것을 보며 어찌 기쁘고 감사하지 않을까요?
아마도 우리 부부는 그의 편을 들어주는 사람으로, 요한처럼 친구의 기쁨에 참여하는 기쁨을 누리는 중일 것입니다.
실직했던 폴이 다시 직장을 구하고, 헤어져 살던 아버지가 더욱 자주 집에 돌아오면서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가족을 경험하고 있어서 감사합니다. 기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느 덧 제자로 살며, 교회로 서는 친구들을 봅니다. 주님의 몸된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진실을 나타내며 강하게 서 있는 것을 봅니다. 이 교회는 자라나면서 산마리노에서만 아니라 이들이 속한 학교나 직장에서도 그분의 영광을 드러내고 있는 것을 봅니다.
새끼 펭귄이 대양을 향해 나아가듯 주님이 우리 친구들 안에 담아주신 그 생명의 진실은 강하고, 지혜로우며, 겸손하며, 아름답습니다. 자신 안의 진실을 따라, 그분의 부르심을 따라 보이신 곳을 향해 물러섬없이 나아갈 친구들을 응원하고 지지해 주시고, 위해서 기도해 주세요!
기도해 주세요
늘 산마리노 친구들을 마음에 품고 기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평안하시길 바라며, 샘물교회의 모든 교우들이 주님의 마음에 큰 기쁨 드리는 자녀들로 발견되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