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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길 따라 전설 따라
경주 시가지를 돌아보는 일은 신비롭다. 천년 훨씬 이전의 시간들이 현재에도 살아 있는 듯한 착각을 하게 하는 흔적들이 눈앞에 수시로 닥쳐오기 때문이다. 경주의 맛은 아무래도 천년을 이어온 신라시대 이후부터 생성된 문화유적 답사 길에 있다. 대부분 문화유적들은 흑백으로 탈색되었지만 오래 전 사실들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어 호기심을 자극한다. 역사의 흔적들은 시가지는 물론 외곽지로 이어지는 곳까지 다닥다닥 붙어 밀집되어 있거나 듬성듬성 떨어져 있다. 그래서 자동차로 돌아보기 보다는 자연풍경을 감상하면서 느긋하게 자전거 하이킹으로 탐방하는 것이 훨씬 알차고 재미있다.
특히 경주 시가지에 위치하고 있는 황룡사와 분황사의 흔적, 첨성대와 월성, 동궁과 월지 등의 주요 신라왕경 유적을 탐방하는 시가지 코스는 자전거를 타고 천천히 돌아보는 것이 유적들을 빠뜨리지 않고 차근차근 살펴볼 수 있어 훨씬 유익하다.
경주 시가지를 에워싸듯 흐르고 있는 형산강과 북천, 알천변으로 형성된 자전거길을 따라 전설을 살펴보고, 분황사 앞을 지나 황룡사, 동궁과 월지, 월성과 첨성대로 이어지는 동부사적지, 대릉원 돌담길을 자전거로 돌아본다.
◆형산강줄기 따라
경주시외버스터미널 남쪽에는 자전거대여점이 여럿 있다. 아무 곳에서나 자전거를 빌려 타고 하이킹을 즐길 수 있는 곳이 경주다. 1시간에 3천원, 하루 종일 대여해도 7천원이면 된다. 친구나 연인과 함께라면 더욱 신명날 일이다. 경주자전거투어단에서 운영하는 하이킹 시간에 맞춰 신청해 참여하는 하이킹이라면 더욱 편안하다. 역사에 얽힌 재미난 이야기를 줄줄이 꿰고있는 문화해설사가 대동해 구수한 옛날이야기를 들으면서 쉬엄쉬엄 자전거로 돌아보는 하이킹은 생각만 해도 즐겁다.
신호등을 건너 가볍게 제방길을 내려서면 시야가 확 트인다. 푸른 잔디가 눈이 부시게 형산강을 따라 끝없이 펼쳐져 있다. 강은 낮은 곳으로 흐른다. 바다가 있는 포항 방향으로 물길이 나 있고 그 옆으로 자전거길이 길게 조성돼 있다. 약간 내리막이다 싶게 형성돼 페달에 밟는데 힘이 들지도 않는다. 햇살이 뜨거워도 자전거가 달리면서 일으키는 바람이 땀도 나지 않게 시원하다. 강변의 맑은 공기가 만드는 바람이라 가슴 속까지 정화시켜 머리도 청정해지는 느낌이 들게 한다.
행사가 있는 날에는 자동차가 들어오기도 하지만 평상시에는 자전거길과 걷는 길을 분리해 사고 날 일도 없이 안전하고 편안한 길이다. 하이킹하기에 가장 좋은 곳이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닌 듯하다. 2㎞ 남짓 자전거타기에 익숙해질 정도로 달리다보면 강 건너 아담하게 정자가 보인다. 조선시대 선비들이 글을 읽고 시를 읊던 금장대다. 경주시가 최근 운치가 있게 복원해 문화예술인들이 다양한 행사장소로 활용하고 있다. 날아가던 기러기가 주변 경치가 너무 좋아 넋을 잃고 바라보다 떨어진다는 일화로 ‘금장낙안’이라는 말이 전해져 내려오는 곳이다. 금장대 아래로 흐르는 물은 아무리 가뭄이 심해도 마르지 않는다. 사철 푸른 물이 넘실대며 흐른다. 경주 출신 문학의 거장 김동리 소설가의 ‘무녀도’ 배경이 이곳이다.
문화해설사들도 여기에서 잠시 페달을 멈추고 금장대와 무녀도 이야기를 들려준다. 센스쟁이 김정자 해설사는 구수한 이야기를 풀어놓고 복습하는 의미로 퀴즈를 내고는 경주 남산 사진이 들어 있는 아름다운 엽서 등등의 선물을 나눠준다. 참여자들에게 경주를 추억할 수 있는 엽서선물은 덤이다.
◆알천에 서린 전설
금장대에서 살짝 오른쪽으로 핸들을 꺾으면 또 다른 풍경이 이어진다. 경주보문관광단지에서 형산강과 합류하는 북천, 알천이 길게 이어지면서 자전거길이 그대로 연결된다. 서천변의 자전거길 옆에 잔디를 입힌 운동장이 조성돼 한여름에는 전국초등학생들의 화랑대기축구대회가 열려 선수들과 응원하는 학부모들의 열기로 뜨겁다. 알천변에도 마찬가지다. 8월 햇살보다 뜨거운 축구열기가 경주의 공기를 달구고 있다.
알천을 따라 상류로 올라가는 자전거길의 풍경은 양쪽으로 아파트와 건물들이 늘어서 있고 푸른 잔디에 야생화로 화단을 조성한 공원이 계속되면서 이색적인 풍경이 마음을 가볍게 한다. 곳곳에 벤치가 있고 꽃길이 형성돼 쉬고 싶을 때면 언제든지 자전거를 세워두고 쉴 수 있다.
지금은 알천이 편안하게 흐를 수 있도록 물길을 만들어 양편에 제방을 높이 쌓아두고 있지만 신라시대에는 그렇지 못해 홍수가 나면서 인근주택가에 피해를 입는 일이 더러 있었던 모양이다. 역사서들은 알천 홍수를 여러 곳에서 기록하고 있다.
선덕왕이 죽고 왕위에 오르기로 했던 조카 김주원이 알천이 범람해 궁궐로 들어오지 못하고 있을 때, 임금의 자리는 오래 비워두면 안된다는 구실을 들어 김경신이 왕위에 올라 38대 원성왕이 됐다. 김경신은 선덕왕 김양상과 손을 잡고 난을 일으켜 김양상의 4촌 혜공왕을 몰아내고 왕권을 찬탈하는 공으로 상대등에 올랐다. 선덕왕이 된 김양상은 재위 5년 이후에 왕위에서 물러나려 했지만 신하들이 만류해 재위 6년에 병들어 죽었다고 삼국유사 등은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일부 역사가들은 김양상과 김경신이 혜공왕을 몰아낼 때 5년 이후 왕권을 물려주기로 밀약했던 것이 지켜지지 않자 김경신이 술수를 부려 왕위에 올랐을 것이라 추측하기도 한다. 신라왕조사를 뒤바꾼 알천의 범람은 지속적으로 제방을 높이고, 상류에 덕동댐과 보문댐을 차례로 막아 이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되었다.
동해남부선이 알천 위를 굉음을 내면서 달려간다. 해설사가 들려주는 아득한 전설 같은 신라의 왕위를 잇는 일들의 이야기는 기차소리에 퍼뜩 현실로 돌아오게 해준다. 철로를 받치고 있는 기둥에는 은하철도 999를 베낀 벽화가 선명하게 그려져 있어 눈길을 끈다. 다리가 만든 그늘과 바람을 맞으며 쉬었던 다리에 힘을 주면서 조금만 지나면 분황사가 나온다. 신라시대 백성을 위한 대중불교의 꽃을 피웠던 원효대사가 150여권을 책을 집필했던 산실이다. 지금도 모전석탑이 듬직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으면서 옛날 ‘분황사’ 이름을 그대로 살린 사찰이 향을 피우고 있다.
분황사 앞을 지나는 도로변에 데크로 자전거도로를 만들어 휘파람 불며 편안하게 하이킹을 즐길 수 있다. 벚나무가 길게 가로수로 서있고 그 아래로는 코스모스가 꽃을 피운다. 동쪽으로 넓게 펼쳐진 벌판이 황룡사가 있었던 터다. 황룡사역사문화관이 들어서 황룡사의 역사와 신라사를 엿볼 수 있게 한다. 황룡사9층목탑의 모형이 복원돼 볼거리로 등장해 경주지역의 초등학생과 유치원생들의 체험코스로 인기다. 넓은 황룡사터에는 개망초가 하얗게 피어 안개가 피어오르는 느낌을 준다. 안개꽃이 주는 몽롱한 의식에서 깨어나 서쪽으로 길을 건너면 동궁과 월지가 넓은 주차장 앞에 기다리고 있다. 역사 이야기로 푹 빠져들었다가 또 현실로 돌아오는 반복을 되풀이 해야 된다.
◆동부사적지
동궁과 월지에서 큰 길을 건너서면 연꽃과 황화코스모스가 꽃대궐을 이룬다. 물 반, 고기 반이 아니라 꽃 반, 사람 반이다. 특히 주말이나 공휴일이 되면 첨성대로 이어지는 동부사적지는 인산인해를 이룬다. 여름철 야생화단지에도 꽃무릇, 금잔화 등이 한창이어서 사적지와 함께 새로운 경주의 명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전국에서 몰려온 관광객들의 사진을 찍는 모습들이 본래 있었던 풍경인양 익숙하게 눈에 들어온다. 사잇길로 줄을 지어 달리며 하이킹을 즐기는 부류도 자연스럽게 하나의 풍경이 된다.
경주 동부사적지의 다양한 꽃들은 군락으로 피어 화단이 되고, 화단은 또 첨성대, 고분, 계림 등의 사적과 조화를 이뤄 공원으로 기능하며 전국민의 휴식공간이 되고 있다. 동부사적지에는 늘 문화축제가 이어진다. 여름철 주말에는 꽃밭속의 음악회가 다양한 공연을 펼쳐 여행객들의 발길을 잡는다. 또 천년야행 프로그램이 진행되면서 저녁까지 발길을 묶기도 한다.
가뭄 때문에 농작물이 제대로 자라지 못하는 때에도 동부사적지의 연꽃은 본래의 습지에서 넉넉하게 키를 키우며 화려하게 꽃을 피운다. 사람들은 꽃길 속으로 파묻힌다. 연꽃길이 끝나면 다시 황화코스모스가 금물결을 이뤄 첨성대쪽으로 길을 낸다. 끝없이 이어지는 꽃길을 따라 걷다보면 하지를 금방 지난 하루해도 짧게 느껴진다.
월성 방향으로 조롱박과 수세미가 주렁주렁 열린 생태터널이 만들어져 시원한 그늘을 선물하고 있다. 얼굴 크기의 박을 쳐다보며 기념사진을 찍어대는 사람들이 생태터널을 가득 메운다. 터널을 빠져나오면 천년 사직을 굳게 지켜왔던 월성의 언덕이 푸른 숲으로 마주한다. 낮게 엎드린 고분들은 푸른 잔디밭 끝에 위치해 풍경을 더욱 살찌운다. 비단벌레 모형으로 특수 제작된 비단벌레전동차가 관광객들을 태우고 역사를 부활시키며 달린다.
◆대릉원 돌담길
첨성대에서 다시 서북쪽으로 페달을 밟으면 사극에서 만난 익숙한 돌담길이 나온다. 차도와 구분지어 담벼락에 연결된 자전거 도로는 고목이 된 벚나무가 시원하게 터널그늘을 만들어 달리기에 안성맞춤이다. 낭만적이다. 콧노래가 저절로 나온다. 사이가 불편했던 관계도 자전거를 타고 이런 곳을 달린다면 금방 풀어질 것 같다. 손잡고 걷는 사이라면 금방 어깨동무가 자연스럽게 될 듯하다. 대릉원 돌담길을 지나치다보면 사실 어깨동무하고 걷는 연인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데이트코스로 강력추천 할 만 하다.
대릉원 안쪽으로 30여기의 거대한 고분이 엎드려 신라 역사를 고증하고 있지만 담 하나를 두고 현실은 또 다른 역사를 만들어간다. 돌담길도 끝이 있다. 성덕대왕신종을 그대로 복원해 제작한 신라대종이 종각의 그늘에서 울음을 준비하고 있다. 노동과 노서리 고분군이 도심 속에 이질적이지만 친근한 풍경으로 공원을 조성하고 있다. 금관총, 식리총, 서봉총, 은령총, 호우총 등의 국사책에 나오는 익숙한 이름들의 고분들이 복원되지 못하고 평평하게 흔적으로 남아 있는 곳. 봉황대, 서봉황대, 이름 없는 고분들이 볼록볼록하게 몇몇 고목들과 조화를 이뤄 공원을 이루고 있는 곳. 을씨년스런 분위기를 주는 무덤이라고는 전혀 생각이 들지 않는, 경주사람들의 친근한 생활공간이자 관광객들의 아름다운 휴식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고분공원이다.
자전거로 돌아보는 하이킹이 가장 이상적인 곳이 경주이지 싶다. 오르막 내리막이 없는 평지길을 편안하게 달릴 수 있어 좋다. 경치가 좋아 더욱 좋다. 재미있는 역사이야기가 풍부해서 또 좋다. 누구나 착한 가격에 자전거를 빌려 탈 수 있어서 더욱 좋은 곳이 경주다. 휴가는 경주에서 자전거 하이킹으로 선택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첫댓글 지금도 자전거 타고 달려보고 싶은 경주입니다. ㅎㅎ
경주에 살고픈 일인입니다. 오늘도 그립네요
반갑습니다 삼유기운영자입니다
경주가 고향이신가 봅니다. ^^
전 타지에서 살아본 경험이 없어서 잘은 모르지만
경주 참 살기좋은 곳이죠....
삼국유사 기행에 한번 오셔요
환영합니다 ^^
@인공연못 예. 감사합니다. 경주는 마음의 고향입니다.
틈나는데로 쏘 다니고 있습니다.
6월기행 벼르고있었는데 급한일로 못갔습니다.
동참에 애쓰겠습니다~
@보리살타 감사합니다 ㅎㅎ 다음에 꼭 뵈어요
이러면서 저도 매번 참석하지는 못한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