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거장이 따로 정해져 있지 않은 '인생' 이라는 긴기차를 타고
남들 처럼 그저 종착역을 향해 쉬임없이 살아왔습니다.
막차를 탄것 처럼 선뜻 뛰어내려 쉬어보지도 못한채.....
3등칸에서 2등칸으로, 1등칸을 기웃거리면서.
다시 기차에 탈 수 없을 것이라는 두려움은 있었지만 그래도 훌쩍 뛰어내려
월정사에 갔습니다.............
돌아와 이제 다시 기차를 탈 수 없다 하더라도 갈 수 있는 길을 알았습니다
앞 뒤 함께 했던 동무가 없어도 혼자서 갈 수있게 되었지요
하늘도 ,산도,바람도, 물도, 나무도, 새도, 꽃도 이제
새로운 저의 도반이 되었습니다.
지극정성 으로 간난아이 돌보듯 우리를 보살펴 주셨던 여러 스님들
깊은 호수보다 더, 솔바람 보다 더 깊고 맑은 마음들 이셨지요....
월정사와, 우리가 갔었던 오대 여러곳들...가슴에 멍울처럼 깊게 남아서
손대면 눈물이 쏟아져 내릴것 같은 보고픔과 그리움이 되었습니다.
-----------------------------------------------
*9월12일
월정사에 왔다.
마음속 에서는 긴 준비기간이 있었음에도 정작 연락을 받고는
텅 빈 그릇에 물한방울이 떨어진 느낌이었다.
청아한 물방울 소리였다고 믿는다
이미 준비라는 그 동안이 비워가는 예비수행길 이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비행기표를 예약하고 제사거리(추석)를 준비하고 밑반찬을 만들고
그리고 짧은 며칠 여러가지 일들이 겹치고...
전날엔 새벽에 일어나지 못할까봐 잠을 설치고....
나만의 첫외출에 내 몫으로 지워진 일들이 그렇게 많음에 새삼 놀란다.
'단기출가'에서의 첫 절차 갈마.
절도 제대로 할 줄 모르고 경전도 읽어 본적 없이
명상음악으로의 경전, 필독서로서의 경전해설 정도를 접해본 터라
예비행자들 대부분 노래처럼 술술 아름답게 목청을 돋우어 경전도 없이 독경을 하는데
처음 접하는 나는 순간 앞이 캄캄해 지기도 했다.
면접을 하시는 스님들의 빛나는 눈과 맑디 맑은 표정에 가슴이 설레었고
특히 지장암 정안스님의 아름다운 모습에는 넋이 나갈 뻔 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소와 잔잔한 목소리의 말씀에 감격의 눈물이 방울방울....
순간 삶의 목표를 하나 더 만들었다. 정안스님의 미소를 닮아 보는 것!!!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고....
사람의 향기가 더 향기롭다고....
그러셨지요...
*9월13일 (둘쨋날)
수계식, 삼보일배, 중대적멸보궁 참배가 있었다.
삭발은 꼭 해보고 싶었는데(다시 태어나는 심정으로..)
갑자기 전에 전에 내긴머리를 싹둑 자르고 파마를 하고 왔더니
우리엄마가 아니라고 막무가내로 울어대던 내아이 생각이 났다.
아이에게 자신의 수호신처럼 생각했을 엄마가 사라졌다는 절망감을
잠시라도 느끼게 했던것에 대해 오랫동안 가슴 아팠던 기억이 이번에도
잔잔한 망설임으로 다가와 결국 삭발은 하지 못했다.
부처님을 사랑하지만, 내가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 또한 소중하게 간직하고
최선을 다하고 싶다.
내 세속의 눈으로, 머리를 삭발하고 스님들께 엎드리는 남행자들을
보면서 집..생각을 잠깐 했다.
마음은 모두 어린아이와 같을 진데...당황하는 모습도 잠깐 보였고...가슴이 짠했다.
일주문 까지의 삼보일배는 전날부터 체기가 있더니....힘들었다....
정말 정성껏 잘해보고 싶었는데....
스님의 목탁소리에 맞춰 엎드리고 서고의 '절하기'가
평상시의 강한 신념이나 '불심'이 없이는 고행일 뿐일까..
마음 속에서만 신념이 드나들었을 뿐 아직 '불심'이 들지 못한
내 몸에선 전나무 숲길을 지나 일주문에 이르는 '삼보일배'가
헉헉거림의 고행으로 받아 들였다.
단기출가 에의 참여 의지가 흔들리면 어쩌나 하는 노심초사로
절대로 낙오 하지말자는 결심 하나만 남아 어떻게 했는지 기억도 가물가물....
옆에서 힘을 북돋우어 주시며 함께하신 스님과 도반의 덕분으로
어쨌든 나는 ...해내었다...
적멸보궁 참배도 빗속에 가까스로....
그렇게 여러번 다녔던 길인데....
대중들과 함께하면 내기운의 몇 배만큼을 충전 받는다는걸 느꼈다
한참(?)뒤쳐진 두 행자 뒤를 지루한 걸음에 맞춰
끝까지 보살피며 함께 해주신 학감스님께 죄송함, 그리고 무한한 감사함
두루 느끼며 '절'에서는 낙오자를 만들지 않는다는 말을 실감했다.
적멸보궁에선 정처없이 떠돌던 나그네가 엄마품을 찾아든것 같은 안도감에
내마음 속의 허허로움과 곤함이 빗속에 흘러내렸다.
기쁨과,나그네의 공허함을 씻는 의미의 눈물이 쉬임없이 흘렀다.
눈물과 땀 뒤의 가벼움으로 마음은 하늘을 나는 듯....
내가 내몸을 사랑하지 않아 갈고 닦지 않았고 녹슬게 한 죄!
자신에게 부터 우선 참회 한다.
새고무신 때문에 발에서는 P가 흐르고.
고단한 몸으로 지장암에 돌아갔더니 스님들 께서
따끈따끈한 방에 이부자리를 미리 보아 주셨고 수고들 많았다며
뜨거운 쌍화탕 까지....하루의 피곤이 스르르 녹아 내렸다.
*9월15일(4일째)
어제는 처음으로 월정사를 감싸고 있는 오대산이 보이더니
오늘 아침엔 아스라히 피어있는 새벽안개가 보였다.
체기로 힘들던 속도 전날보다 편한것 같고
새고무신에 헤진 발만 안아파도 날아다닐것 같고
독경, 예불때 다리만 안아프면 어려운 경전도 음미하며 읽을 것 같고...
고행의 순간에는 진의를 못 느끼다가 지나고 나서
곰곰 생각해 보면, 살면서 스트레스 운운 하며 느끼는 정신의 고통은
육체적인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실감을 하게된다.
육신의 고통을 이겨내고 나면 정신의 문제는 바람처럼 흘러가거나
새털처럼 가벼워 짐을 알게된다
스님들께서 고행과 정진을 왜 함께 하시는지...
스님들이 절하시는 모습이 어찌하여 그토록 아름다운지....
가슴속으로 부터 뜨거움이 차오름을 느낀다.
*9월16일(5일째)
몸의 상태는 어제보다 나아졌다.
어젯밤에는 지장암 까만 하늘에 무수히 빛나는 별을 보았다.
눈감고도 찾을 수 있었던 북두칠성은 못찾고....
밤하늘도 아주 새까마면 맑게 느껴진다는 걸 알았다
전에 갔었던 중국의 묵간산(대나무산)의 밤이 생각났다
별 하나도 보이지 않던 창밖의 밤이 새까만 먹물 풀어 놓은 듯 보였던거...
아득 하면서 신비스러웠고 그렇지만 두려웠던거.
오대산의 밤하늘은 색색으로 빛나는 별들의 잔치가 있는
아름다운 하늘이다.
참회의 300배를 했다.(모두 함께)
고통,분노,원망,용서,회한 모두가 내 스스로의 잘못에서...
고통의 과정이 사람을 좀 더 낫게 하거나 너그럽게 하거나 변하게 한다
눈으로 보는 형상, 느낌, 시간의 흐름 까지도 정말 별것 아니라는 생각이다
많은 것을 후회하며 혹시라도 원한이면 내탓으로 돌려 놓았음으로
조금 성숙했음을 느낀다.
'용서'가 마음속의 앙금을 걷어갔고 그곳은 바람소리,물소리나는
빈집이 되었다
'발우공양'은 절차의 까다로움이 먹는행위의 신성함, 절식, 음식의 소중함,물절약등
많은 유익점을 생각하게 한다. 수행이면서 논리와 과학적인 측면이 함께 있다.
[떡과 콜라] [떡과초코파이]...초코파이의 추억이 스님들께도 있는걸 보면
과연 세계적인 초코파이다(중국에선 '좋고 아름다운 친구 파이'ㅡ하오 리 요우 파)
전나무 숲길이 아닌 일반인 출입금지의 부도탑으로 포행을 갔다
덕행스님의 말씀이 유명한 선사의 이름이 중요한 것도 아니고
나의 이름도, 탑에 적힌 이름도, 실상은 모두 허상 이라고...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떻게 생활하며 이 세상을 다녀갔다는 한 점에
지나지 않는데...몸의 고통만 아니면 그윽하게 앉아서 생명의 깊이를
알아보며 즐거울 수 있겠다고 생각하는 것도 망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셨다
인도해 주시는 스님에 따라 포행의 느낌도 다른것을 알았다
월정사와 오대산은 어떤 생각으로 어떤 마음가짐 으로 오는가에 따라
많이 다르다.
여러번 오고 갔지만 전에 왔었던 나는 지금의 내가 아니다.
-불교를 믿되 법에 의지하지 사람에게 의지하지 말라고...
뜻에 의지하되 문장,문구에 의지하지 말라고 하신다.
바로 볼 수 있는 귀와 눈(지식,철학)을 가지라고.....
스스로 어두운 세상을 밝힐 수 있는 불자가 되자고..
*9월17일(6일째)
아침에 온 몸이 퉁퉁...짧은 수면시간의 반은 잠을 못 이루었던것 같다
선방의 좋은 '지기' 때문인지 피곤하거나 졸립지는(덕행스님께선 '자물지는')않다.
아침 포행 길에서~ 이득이 되는 삶을 살아야 희망이 넘친다고 하셨다
지금 괴롭고 아쉬운 것이 무엇일까.
삶에서, 최고로 앞서가야 한다는 강박감을 목표로 두고 너무나 헐떡거리며
많이도 상하고 상처입고 그리고 미움...
필요없는 것을 소중한 것인양 참 많이도 주워 모아선 숨이 막힌다고
가슴을 두드리곤 했었다.
'한가지 마음이 그저 우리가 나고 죽는 이승에서의 '생'이라고 하신다.
어제는 기억할 수 있는 '전생'이고...'(덕행스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늘 갈망한다. 내가 아닌 다른사람(가족)을 위해서
라는 미명아래..그도 사실은 '나'일수 있는데...
아무때나 자고, 아무때나 먹고,씻고,떠들고,비난하고,그중에
히죽히죽 잘 웃은거 외에는 아무것도 잘한것이 없다
지금 나는 마음에 덕지덕지 박힌 때를 벗기 위해 뼈를 파는
아픔을 감내하고 있다. 너무나 비장해서 눈물 조차 잃어버리고...
점심공양후 포행길에서 작고 이쁜 야생화를 보았다
드디어~이제 꽃이 보이기 시작했다.
지난 며칠은 '여유없음' 내자신과 싸우느라 눈으로 보이는 것이 거의 없었다.
월정사에 비가 왔다. 빗소리도 좋고 나뭇잎 후두둑 떨어지는 소리도 좋고.
그림같은 경내에서 덩실덩실 춤이라도 추고 싶을 정도로 한없이~~좋다
내일이 추석이라고 송편을 만들고
소임(지장암)후 샤워를 했다.평상시 잘 모르고 살았던 뜨거운 물의 느낌! 화아~
시간을 여유있게 배정해 주어 이런 호사를...표나지 않는 배려에 절절히 고맙다.
ㅡ나이를 먹어가며 진지하게 보이려고 하는 경향을 본다
그렇지만 속으로만 진지.. 다른 사람들에게 부담이 되다보면
내감옥에 갇힌다. 내가 문을 닫아 걸거나 그들이 나의 문을 두드리지 않거나...
'동덕스님'께서는
-참선은 현실 그 자체,믿는 자와 안믿는 자가 따로 없이
내 속의 자체를 바로 볼 뿐...진리를 진리 그대로 볼 수 있는 눈 이라고 하시고
-불법의 세계는 말로도 문자로서도 설명할 수 없고 교리로서 설명할 수 없고
본래의 성품을 바로보면 '부처'라고 하셨다.
*9월18일(7일째)
추석날.
제사를 지낼텐데...생각하지 말자...
아침예불후 추석제사까지..우리 조상님들 께서 나를 찾아 여기에 오셨을까.
정성을 다해 기도했다.
조상을 생각하는 마음도 오랫동안 길들여진 것이긴 하지만
사람의 마음 속 까지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마음이 가볍다. 모든 일은 여기서 내가 새로 태어 났듯이 새롭게 모두가
잘되리라 믿는다.
억수같이 비가 내린다. 모두 씻어가라.
몸과 마음의 때와 그리고 영혼의 때까지...
지장암에서(포행) 한과,과일,보아차..평소에 즐기지 않았었는데..꿀맛!!!
영화<쉰들러리스트>에서 유태인들이 화물기차에 실려 아우스비츄로
끌려가며 중간역 쯤에서 지역주민들이 몰래 넣어준 사과를 씨와 꼭지까지도
너무나 맛있게 먹던 장면이 생각났다
우리는 그에 비하면 신선놀음인데도 사과가 이렇게 절절한데...
절박했던 그들에게 사과는.....눈물이 솟는다.
말로도 글로도 표현 할 수 없는 음식의 고마움 이다.
추석달을 보러 캄캄한 밤길에 야간포행을 나섰다
검은 산그림자, 아스라한 밤안개, 혼자하면 슬픔이 몰려 올듯한 정경이지만
함께하니 즐거웠다. 향긋한 나무냄새, 밤의 냄새(비온 뒤의),찹찹한 가을바람...
언제 또다시 이런 기회가 올 지 자꾸만 돌아보아지고...생각도 못하겠다
방긋 솟아오른 달을 보았다
소원은? 내주위 사람들 모두다~~~~~행복한것!
*9월19일(8일째)
잠들 때 단주를 잡거나, 독경을 하며 잠들거나 화두를 잡고 자면
잠에서도 계속 된다고 하신다.
무엇이든 초보 때는 어렵다. 처음 자전거를 탈 때 수없이 넘어지듯이
나는 지금 넘어지고 있다. 두손을 놓고도 탈 수 있을 때까지 타고 또 탈 것이다.
나는 아직도 두손으로 꼭 잡고도 앞으로 잘 나가지 못하고 있다....
'반야바라밀'은 피안의 세계, 강건너 부처님의 세계라고 한다
정말 나는 아는 것이 없다.....
강은 번뇌, 부처님의 말씀은 땟목 이라는데
그런데 아직도 땟목에 이르지도 못했는데 강은 어찌 건너갈까........
두 행자가 돌아간다.
한분은 몸이, 한분은 마음이 아파서...
나가고자 결정한 그분들의 선택이긴 하나 며칠만에 돌아가게 될거라는
생각은 추호도 없이 이곳에 왔을 것이다
대중의 마음을 서로 모아서 그들이 생각을 바꾸기를 원했으나
우리의 마음이 아직 거기까지는 못미쳤음인가...
포행길에 육수암에 갔었다
국보라고 하시는 관음보살님이 계시는 관음암 이었는데
갓난아이 수준의 초보 눈으로 보면 참으로 예쁜 관음보살님 이셨다
육수암 주지스님께서 '스님들은 죽기를 각오하고 죽음까지 초월하며
정진을 하신다'고 하셨다.ㅡ내게는 굉장한 용기로 다가왔다.
내 소원은 무엇인가. 이 시점에서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얻고 싶은 만큼 버릴 것은 무엇인가..
요가, 태극권을 배웠다. 한주스님의 잔잔하고 편안한 설명의 말씀까지
태극권 수련에 포함한다는 것을 몸으로 감지 할 수 있었다.
요가중에는 법륜전 부처님 앞에서 벌렁 드러 누워서 잠깐
단잠에 들게 해주시는 은혜(?)까지...고맙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행자 생활도 역시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작은 세계와 같아서
극단적인 문제가 존재하지 않을 뿐 가끔 잔잔한 바람이 일기도 하는
인간군상의 집단인 고로 눈에 띄는 것이 생기고,조금 생각하게 하고...
이럴 때 마음을 다스리는 살아있는 공부까지 몸소 체득하며 하고 있다.
*9월20일(9일째)
몸이 조금씩 가벼워짐을 느낀다
겨드랑이에서 작은 날개가 자라고 있는듯한,아니면 풍선이 부풀기 시작하는 듯한.
스스로에게 혹독한 신고식의 기간이었다. 그러나 꿈처럼 지나가고 있다.
망상의 보따리를 여기두고 사유의 빈보자기를 접어 가지고 회향하려 한다.
올 때는 목표가 없었고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을뿐 얻고 싶은것이
무엇일까도 몰랐고 글자 그대로 아무 생각이 없었다.
달리는 기차에서 문득 스친 꽃밭을 향해 뛰어내려 보거나
가던 길을 잠시 멈추고 가지 않던 길을 가보는 호기심 이거나 모험 이거나....
무엇을 찾았는가ㅡ 본래 내가 가졌던 좋은 마음을 찾는 법을 익히려 왔는데...
참선이란ㅡ 가짜 내가 진짜 나를 찾아 가는 길.
참회..절을 하다보면 본래의 나자신에게 참회가 된다고 한다
대나무가 바람을 쳐도 바람은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신다(덕행스님)
그런데 바람이 부니 마음이 나무를 흔들었다고~(심덕행자님께서..)
마음은 어디에고 머물지 않고(지용스님 말씀대로 정들이지 않고)
바람처럼 나비처럼 훨훨 가볍게 살아보고 싶은데
이렇듯 늘 한곳에 머무르려 하고
사실은 작은 노랑나비,흰나비 보다
화려한 호랑나비가 되고 싶은건 아닌지........
법상스님께서는 항상 어디가나 주인이 되라고 하셨다.
아무말 없이도 있는 것만으로 주인이 될 수 있었으면...
*9월21일(10일째)
서대염불암.
이정표도,표지판도 없는 길없는 길을 오르고 올라서
나무로 기와를 얼키설키 얹은 조그마한 암자에 갔다.
세차게 내리는 비를 맞으며 빗물에 미끄러지기도 하면서...
모두 함께 도착한 곳은 우리 모두 함께 서있기에도 버거운 작은 마당과
비탈에 가꿔놓은 텃밭에는 방울 토마토며 앙증 맞기도 하고 싱싱하기도한
야채들이 자라고 있었다.
그 귀한 방울토마토를 선뜻 따서 나눠 주시기도 하셨는데
천상의 음식을 먹는듯한 감사의 마음으로 정말 달게 먹었다.
사람에게 필요한 최소한의 것들만 가지고 자연속에 한 식구로 살며
정진하시는 스님이 위대해 보이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고....
비가 오는 까닭에 스님의 토굴은 "구름속의 작은 집'이었다
우리들 60여명의 소란을 감내하시며 반갑게 맞아 주셨고
속가의 향 '커피'까지 끓여 주시고...스님들의 이런 마음들은
내겐 늘 눈물과 함께하는 감동이다. 이제 울보가 다 되었다...
조그마한 부엌 아궁이에서 우리를 위해 타고있던 장작불은
기억할 수 없는 어느 생의 가장 따스했던 시절로 돌아간 아늑~한 느낌이었다.
돌아와서도 서대 어디쯤 이었을까 아스라한 기억으로 자꾸만 올려다 보게 되는
가슴 한구석 더운 느낌이 맴도는 '서대염불암' 이다.
꿈에서나 다시 찾을 수 있을 신비의 그 곳..
잘 보아둘걸.....
내 인생에 정적과 한적의 정진의 시간이 있게 될까...
차를 타고 나가서 단체 목욕을 했다.
뜨거운 물의 느낌도, 함께 물놀이 하는듯 함도 오랫만의 색다른 경험이다.
도반들과 어울려 목욕을 하고 함께 자고 마주보며 식사를 하고
가로늦게 해보는 사람들과의 스스럼 없는 어울림이
어린시절 새로운 놀잇감을 발견했던 것처럼
새롭고 즐겁다.
육체적으로 전해오는 고통의 강도가 조금씩 옅어지고 있다.ㅎㅎ
9월22일(11일째)
오늘 처음으로 아침 참회 108배를 무사히 마쳤다.(정확하고 곱게)
땀은 많이 흘렀지만 개운하고 가벼움이 이루 말할 수 없다
아침 예불(칠정례,구정례)을 외우게 되었고..좋은 기분에 앞으로는 노래처럼
늘 흥얼거리며 살 것 같다.(스스로도 놀랍다.)
월정사에서는 밤과 낮이 교대로 지나갈 뿐 시간이 흐를 것 같지 않았는데
역시 모든 것은 흘러간다
물도, 시간도, 사람도, 목숨도, 모두 흘러가면 새로운 것이 흐르는 것의 연속바퀴에
나는 어디쯤에 있을까. 흘러가지 않으려고 안깐힘을 쓰는 것은 아닌지..
무엇을 잡으려고 집착하는 것인지..괜한 집착이 족쇄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묵언이 필요했는데... 말을 하지 않고 있으면 자신의 내면이 보인다고 한다.
그런데, 깊은 나의 내면을 볼 수 있다는 것에 나는 겁을 내고 있는가....
'팔자대로 산다'는 것에 익숙했던 관념이
정안스님의 말씀을 듣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마음을 냈으면 노력이 필요하고 행이 필요하고 용기가 필요하다고...
스스로의 노력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이라는데...
창조한 삶은 업장까지 녹인다시며 부딪쳐 오는 것들에
참회와 기도와 정진으로 내면의 힘이 있는 사람이 되라고 하셨다.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살아왔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돌이켜보니
엉뚱한 곳에 힘을 쏟고 살았다는 자책이 든다.
약삭빠르게 적응하며 이득을 쟁취하며 사는 사람들을 따라 잡지도 못하면서
숨가쁘게 따라 다닌건 아닐까.혐오스럽다고 말은 그렇게 하면서...
내가 가진 청정하기 그지없는 기특한 잣대를 귀하게 생각하지도 못했고
잣대대로 행할 용기도 없었다
희노애락에 마음이 움직이면 삶은 계속 굴곡 이라고 한다
마음이 움직이지 않아야 평화로워지고 세상과 나의 주인이 된다고도....
마음에 이득이 되는 삶은 무엇일까..이제 걸음마를 시작한다.
-나는 몇%짜리 부처인가....
ㅡ덕행스님의 말씀
'참선'은 맑고 고요한것. 눈앞의 생각을 화두로 둔다고 한다.
..이 몸뚱이,끌고 다니는 이몸은 무엇인가...
염불하는 이 놈이 무엇인가...
번뇌(망상)가 일어나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이 중요하다
'화두'는작은 망상을 큰 망상으로 덮어 씌우는 것이다. 원래의 번뇌는 없다.
나의 업성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망상을 없애려고 하면 더 끌린다.
그래서 번뇌가 일어나려고 하면 참선을 하거나 염불을 한다.
망상이 일어나는 것을 알아차리는 순간 공부를 한다.
건강이 안좋은 사람은 영혼이 대체로 맑다. 자꾸만 자신을 돌아보기 때문에...
육체를 끌고가다 보면 나중에는 정신이 육체를 끌고간다.
..알고 지은 죄는 참회가 안된다.....실수는 실수대로, 고의는 고의대로 다가온다.
전생이 궁금한가...? 지금 이 모습이 전생이다.
참선에서 얻는 것 또한 내그릇 만큼 밖에 못 얻는다
깨끗이 비워야 새물을 채울 수 있다...
조금씩 여유 시간이 날때마다
갓난아기에게 밥 떠먹이듯 해주신 말씀들 이다.
처음에 멀뚱했던 내가 지금은 온몸으로 흡수하려 애쓰고 있다
*9월23일(12일째)
길을 찾아간다는 느낌.
용서,참회, 한사람씩 스크린 되며, 이해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
공연한 분노,격함..물처럼 흘려 보내고,보내고.. 용솟음 치는 감정의
찌꺼기 가지 흘려 보내고, 보내고..순간순간 일어나는 분별심까지
모두 보내리라 다짐해 본다.
참선은 아직까지 저만치 저만치 달아나는 마음을 다잡지 못한채
저려오는 다리에 굴복하거나 죽비 소리에 깜짝 놀라곤 하면서
그렇지만 조금씩 시간을 늘려가며 '고요'를 만나고 있다.
달아나려는 마음부터 잡고 우선 화두를 대신할 내'원'부터
세워 보아야겠다. 내마음이 자유로이 오고 갈 무렵이면
원하는 만큼의 고요한 참선이 될까.....
'현각스님'의 특강이 있었다.
'조각'작품은 원래 있는 것을 깎아서 드러난 것일 뿐
예술가의 창작품은 아니라고...
사람도 몸안에 모든 것이 갖추어져 있어서 안좋은 생각을 하면
안좋은 것이 일어나게 되는데 참선을 하면 업장이 녹는 것이
느껴진다고 한다...
찰나 찰나 생성되고 소멸되는 인생은 덧없고 무상한것..
그러나 자기를 찾아서 자기가 주제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하신다
자세히 듣고 보고 항상 자기 자신을 살피라고...
몸이 5키로쯤 가벼워졌다.
부처님 께서 내몸까지 보살펴 주신다는 느낌...가피일까..
고맙습니다.
*9월24일(13일째)
아침 참회108배가 수월해 졌다.
절하기가 수월해 진것 만으로도 마음속은 행복 가득이다.
전나무 숲길 아침 포행길에서는 입에서 노래가 흘러 나왔다.
물소리, 바람소리 반주에 맞춰서 '참새와허수아비'를...
흐린날씨에도 물과, 나무와, 바람과, 산과 그윽하게 좋은 오대산 하늘....
~훠이 훠이 가거~라~ 산너머 멀리 머얼리....아주 작은 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옆에서 무심코 내뱉는 말 한마디에 기분이 상하고 하루를 망치기도 한다.
나는 여태까지 살아오면서 다른사람의 기분이나 시간에 얼마나 흠집을 냈을까...
그저 지나치는 한마디 였을듯 한데 문득 화가 솟는다.
'화'가 제일 나쁜 독이라는데 그걸 잘라내는 것이 아직은 서툴다.
앨범사진을 찍었다.
화장기 없이 찍는것이 얼마만인지..10 여일 정진의 결과물 인데
내 표정이 어찌 바뀌었을지 궁금하다.
스님들께선 처음보다 많이들 예뻐졌다고 하시는데
영혼의 모습을 보시기 때문일까.
그런데 거울속에 보이는 내모습은 아직도 인듯 한데...
'상'을 당한 도반들을 위해서 모두 함께 선망부모께 드리는 108배를 했다.
아직 익숙지 못해 땀은 나지만 가볍고 상쾌했다.
ㅡ다람쥐 쳇바퀴 돌듯한 우리네 생활 이라면서 막상 쳇바퀴에서 내리게 되어도
쉽게 내리지 못한다. 그렇다면 다른 쳇바퀴로 라도 갈아타는
용기라도 내어보자.(덕행스님)
9월25일(14일째)
'일관'행자가 가르쳐 준대로 절을 했더니
아침 108배가 이제는 기다려질 정도가 되었다.
호흡과 동작이 절묘해야 가볍게 수월하게 되는걸 몰랐었다.
일체의 생각(망상)이 필요없는 곳이 절이라고 한다.
나비의 펄럭임이 태풍을 일으키게 된다고...
살아오면서 많이 실감했던것 같은데 또 새롭다.
나의 나머지 반생은 고요할 것 같다.(희망사항 이지만)
참회, 기도, 절하는 것은 우산을 쓰느 것과 같다고 한다.
업을 피하는 것, 등 뒤에서 오는 화살은 피할 수가 없다고...
정면으로 받으라...업이 소멸되는 과정에서 업을 첨가하지 마라....
사람은 자기에게 묻어있는 때는 쉽게 벗지 못한다.
아무리 닦아도 닦기 어려운 때가 순간순간 드러나곤 한다고...
얼마만큼의 노력으로 정진으로 무명의 때를 벗을 수 있을까.
*9월26일(15일째)
비로봉, 북대 산행...
밀짚모자(햇볕과 비를 모두 피해주는)에...야외 운력때도, 산행때도
필수품으로 챙겨 주시는데...모자를 쓸 때마다, 엄마의 지극한 보호와
사랑을 받는 행복한 아기의 마음이 된다.
행자들이 모자를 쓰면 천진난만하고 귀여운 영락없는 유치원생의 모습이다.
지용스님께선 행자들에게 모자를 씌워 주시곤 사랑에 겨운 그윽한 표정이 되시고...
모자 하나로도 서로간에 흐르는 관심과 사랑의 전률을 찌르르~~~
서로 마주보며 따스함과 아름다운 작은 마음의 교류를 감지 하는 것.
청정하기 이를데 없는 곳에서 우리도 일부가 되어가는 감회를 맛보고 있다.
주먹밥,사과,사탕,초코파이,떡 음료수,물...많이도 싸가지고
비로봉을 거쳐 상왕봉을 거쳐 북대 까지...
성질 급한 단풍이 군데군데 조금씩 물들기 시작하고
숲에서 내뿜는 향기에 '산림욕'을 하면서,주위를 휘이 둘러 보면서
산새의 지저귐에 화답하면서....
헉헉거리며 앞사람의 발만 보며 오르던 전에 내가 아님에 감사하면서...
단풍띠가 생기기 시작한 비로봉 정상의 시원함..
그간에 거쳐왔을 인생행로 처럼 다가오는 산아래 정경들...
우리의 지난일도 돌이키면 산아래 풍경들 처럼 평화롭다
숲에 가려진 가파른 계곡과 같은 삶속의 고난도 지나고 나면 아름다움(극복함)에
묻혀 추억이 된다.
처음 가보는 '북대 가는 길'은 사람들의 발길도 뜸한것 같고
스님들의 길이어서 인지, 산의 기운과 풀과 꽃과 나무가 어우러져
마치 다른세상을 탐색하는 듯한 신비함 마저 감돌았다..
언제 다시 이런 신비의 산행을 할 수 있을지....
너무나 소중해서 시간을, 공간을 정지하거나 아주 느리게
맞춰 보고 싶었다.
최대한 많이 간직하고 싶어서 두리번 거리고 머뭇 거리고....
하산길에 도반들 보다 먼저 내려오는 기회로
지용스님과 대화하는 행운이 있었다
편하게 대해 주시면서도,침착하고, 목소리로 표현되는
감정의 기복도 전혀 없이 몸에 배여 익숙한 평정상태로 잔잔하게
말씀 하셨다..내 마음 속에서는 감탄사를 계속 연발 하느라
말씀의 내용이 기억나지 않는데..모두 공감하거나 배움의
유익한 말씀 이었다.
수행의 깊이가 얼마나 일까 감히 가늠할 수가 없었다
문득 나의 모습이 돌이켜지며 부끄러워 얼굴이 달아오르고..
청정함의 모습이
속세의 우리는 많이 부러웠다.
*9월27일(16일째)
새벽예불, 사시예불, 저녁예불..
모두 함께하는 예불에 늘 새롭게 감격하는 일상이 되었다.
오래전에 '김영동의 대금 명상음악'에서 송광사 아침예불에
푹 빠져서 송광사에 갔었는데 예불은 접해볼 수 없었다.(시간을 몰랐었다)
내게는 가능하지 않은 기회쯤으로 여기고 있었는데...
내 목소리를 함께 넣어 하루에 세번 씩이나 예불을 하고 있다.
60명이 어우러지면....
나날이 깊이를 더해가는 불심까지 소리에 보태지면....
함께 하는 도반들이 애틋하고 사랑스러워지는 마음까지 불어 넣으면...
함께 하시는 청아한 스님의 독경 소리까지 어우러지면..
그윽하게 바라봐주시는 부처님의 기운까지 느끼게 되면....
향긋한 새벽기운이 법당안으로 살며시 들어오면....
온 오대를 부드럽게 감싸는 종소리와.....
선지식 본사행자님들의 엄숙한 도량석 까지....
천상의 기운일꺼라 생각하며 눈물도 방울방울...
북바쳐 오르는 가슴으로 엎드리고 인사하고 기도하며...
혼자서 제일 많이 했던 말은
감사합니다...감사합니다...감사합니다...
청규 시간에ㅡ
일상에서,전 후 사실의 설명이나 논리라며 내세우는 경위,분석 이라는게
요점 보다 내 생각에 치우친 변명이 늘 앞서 있었음을 참회 했다
나 자신에 대한 자책으로 혼란 스러웠던것이
도반들 앞에서의 참회로 새롭게 거듭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절에서는 목탁소리로 모든 말을 대신하는데....
우리는 평상시에 쓸데없는 말을 너무 많이 한다.
누군가를 위로 한다면서 슬픔을 더해 주는 바보짓은 정말 하지 말아야 할것!
*9월28일(17일째)
오대산에 새벽안개...한곳에 머무르지 않고 유유히 흐른다
우리네 마음처럼...
가을의 첫무렵 부터 단풍으로 붉게 물들 깊은 가을 까지
오대산에 있게되는 행운은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청정한 스님들,청아한 가을바람,물소리,바람에 구르는 나뭇잎소리
가는 곳마다 마중 나오는 명랑한 다람쥐...얼마나 아름다운 것들이 많은데
내 눈은 습관처럼 사람을 향해 있다. 눈이 보는 이야기로 가슴에 사연을
만드는 바보짓을 자꾸만 하려고 한다. 회향 하기전까지 덜어야할 숙제다.
'예불해설'시간에 강의 해주신 인광스님..
구름위를 걷는 듯, 스르르 걸어 들어 오시는 모습부터
천상에서 오셨을 것이라 여겨질 정도로 청정의 극치였다.
여태까지 살아오면서 그렇게 맑고 깨끗한 분을 만난 기억이 없었다.
꽃봉오리가 서서히 피어나는 듯한 삼배의 모습에도
입이 벌어져 다물지 못할 정도로...장삼자락은 학의 날개 였다.
파르라한 머리,투명한 얼굴,정갈함....일상의 삶속에서 묻어나는 모습 일텐데
우리는 어찌 살아야 아주 조금 이라도 닮아 볼수 있을까...
강의는 예리하고 활력이 넘쳐 한마디도 놓칠 수 없었다.
ㅡ과거 미래에 신경 쓸거 없다고, 현재가 세계라고 하셨다
예의가 동반된 평등이 있어야 서로가 보인다고 한다
예의를 갖추려면 ~다움이 있어야 한다고....
ㅡ망상은 없어지지 않으므로 친구, 애인처럼 함께하며
소중히 여기고 관찰하게 되면 성불에 이른다고 하셨다.
그리고,
가을엔 '첼로'소리가 제격이라고.......
*9월29일(18일째)
월정사 '오대산 문화 축제'가 9월30일 부터10월2일 까지 3일간.
3일간의 행사를 위해 여러사람들이 준비에 몰두하고 있다.
우리도 오후 운력때 힘을 보태고 있다.
행사 준비하면서 팽팽한 긴장에서 풀리는 느낌,축제의 의미로 다소 들뜨고
다른 힘이 솟는다..
스님들께선 다잡은 우리들 마음이 행여라도 흐트러질까 전전긍긍 하시는데
울긋 불긋한 등색깔 처럼 우리들은 즐거웠다.ㅡ축제는 즐거운 것이다ㅡ
절에서의 행사준비는 밖에서 와는 달리 참으로 조용하다.
구석 구석 에서 세심하게 사람들이 움직이는 듯 보이는데 아무소리가 없다.
우리가 배워야 부분들이 절에는 참으로 많음을 실감한다.
TV '출가'를 보았다.
전에 보았을 때와 행자가 되어서 보니 느낌은 조금 달랐지만
다시 보아도 좋았다....겨울에 월정사에 다시 오겠다는 결심을 또 했다.
영상으로 마음의 깊이와 무게까지 표현하는 건 불가능 할것 같다.
마음은 마음으로 밖에는 볼 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헛되이 보낸 나의 오늘은 어제 세상을 떠난이가 그토록 원하던 내일 이었다고'
감당할 수 없는 일도 힘든 일도 좋은 일도 지나간다.. 꿈이다...
그리고 화를 내면 안된다.. 모든 것을 태운다...
*9월30일(19일째)
불교문화축제 첫날...
전날 저녁 늦게 까지 꽃장식을 만들고 정성을 들였는데..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그쳐 주었으면 하는 염원과는 달리 세차게...
손님들은 비와 상관없이 경내에 가득.하늘의 조화가 '불심'을 밀어내지 못함인가.
'부처님 뇌 사리 이운식'에 앞서
도량을 청정하게 하고 마음을 정화하는 의미의 스님들의 '바라춤'공연이 있었다.
하얀 장삼에 붉은 가사, 녹색띠의 아름다운 의상과
장중하면서 무겁지 않게 몸을 놀리고 색감과 움직임이 모두 들뜨지 않은 속에서
조용한 화려함에, 춤의 리듬 속에 장중한 멋을 발하는 '바라'의 소리는
부드러우면서 쓰다듬는 맛의 느낌 이었으며
고요한 불교속에 활기를 불어 넣으면서도 가볍지 않은 '환상'이었다
비속에서의 설겆이 봉사는 물의 느낌을 만끽해보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물'은 흐르는 모습도 쏟아지는 소리도 만지는 느낌도
지나치지만 않으면 그보다 좋은것이 또 있을까
오대산 물이라서 더욱 좋았음은 물론이다.
지역주민과 함께한 저녁음악회,합창, 연주...
법륜전에서 모두 한마음 이었던 것이 더 큰 기쁨으로 다가왔다.
산사에서의 문화행사는 같은 마음의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행복한 마음을 서로 나눈다는 아름다운 의미가 있다.
*10월1일(20일째)
문화축제 둘째날.
오전에는 비가 내리고 오후부터 그쳤다
평상시에는 창밖으로 보기만 해도 그렇게 아름답던 '비'였는데...
행사는 비와 상관없이 그대로 진행되고 있다.
사람은 생명의 뿌리(자궁)로 부터 탯줄을 자르는 순간 시한부가 된다고..
꽃꽂이된 꽃과 같다고..살아 있기는 하지만 꽃 역시 잘렸기 때문에 시한부..
내 본성에 참배 하라신다...
종교는 마음을 편하게 하기 위해서 라고..태어날때는 신분의 차이가 있지만
갈 때는 평등 하다고 한다. 결국 '신'은 내 안에 있는 것이라
내 마음으로 중생, 부처가 된다고 한다.
갠지즈강은 우리 눈으로 보이는 '강'의 의미 역시 착각 '물고기의고향'이라고..
극락도, 이 세계도, 내 마음에 있지만 거기서 파생되는 세상은 각자
'업'에 따라 다르다고 한다. 미물의 몸으로,천상의 몸으로...
지금의 일은 내 '생'을 만들어 가는 것,나를 버려야 나를 찾는다고...
소금인형을 바다에 던지면 녹아 버리는 것처럼................................
오랫만에 행자들과 수다(?)를 떨어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어린아이 같은 마음으로 격의없이 진솔하게 나누는 대화가
노래소리 처럼 편안했다.
절 마당에서의 댄스(배틀)경연...빠르고 격렬한 음악과 동작 임에도
젊은이들의 왕성한 기운이 대지의 기운을 상승 시키는 듯한 느낌 이었다.
산사와 배틀의 절묘한 어우러짐,고요를 깨우면서도 정적속의 활기가 좋은 느낌!!
이어진 '산사음악회'에선 클라리넷 연주의 '가을동화'와 '타이타닉'
자연과 소리의 조화가 마음을 뜨겁게 움직인다.
이 소리의 아름다움 만큼 사랑하며 살 날이 앞으로 얼마나 될까.
적광전 하늘위에 은하수 처럼 흐르는 안개 속에 조명과 어우러져
오롯이 떠있는 숲을 보았다. 마치 꿈길에서 인듯 환상적 이었다.
다시 볼 수 있는 날이 언제 일까....
적적함과 아쉬움으로 가슴속은 출렁출렁 해지고 있다.
열흘 밖에 남지 않았음 이다.
*10월2일(21일째)
문화축제 마지막날..
축제는 정작 준비하는 사람들은 긴장의 연속인 고단한 일이라는 것을 본다.
그러면서도 끝내고 났을 때의 후련함과 보람, 한편의 아쉬움으로
다시 다음 행사를 준비하기 시작한다.
우리가 참여 할 수 있었던것도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정성스러운 한마음의 기운에 우리가 보탬이 되었던거..
지대방에서의 대화(벌점 감인데....)
상대방의 모습에서 내 영역밖의 다른 일상을 보고,
다양하게 생각하는 방법을 배우고, '다름'에서 거울을 들여다 본다.
앞의 도반이 내 거울 이라는 스님들의 말씀을 실감한다
인간이므로~~~조금씩 외롭거나 슬프거나....
내가 선택한 길을 가되 피하고, 건너고, 멈추고,돌고의 방법을 알게 될 것 같다.
*한국(상원사 중심),중국,일본의 '범종'에 대해서
기계,금속,박물관 관계 학자들의 세미나가 있었다.
우선 처음 접하는 것이라 흥미 있었고 '소리'을 위해서 얼마나 과학적 이어야 하는지..
조상들의 지혜와 기술이 얼마나 우수한 것이었는지 새삼 확인했다.
북경 에서온 학자의 중국말이 잘 들리고 반가웠다.
선재스님의 우리 채식 음식과 대만 스님들의 채식 음식을
저녁 공양때 맛볼 수 있었다. 정갈하고, 맛갈 스럽고 색다른 시식의 기회였다.
밤에는 야외에서 지역주민들과 '동막골' 영화관람...
평창에 영화관이 없는 관계로 평창에서 촬영한 영화의 관람 기회를
월정사 에서 마련한 자리라고 한다.
ㅡ곡식창고가 폭파 되면서 쏟아져 내리던 팝콘비는 절망 속의 '절망은 없다(?)'
그래도 있는 웃음,머리에 꽃을 꽂은 여자아이의 머리 위로 날으는 나비는 '무상계'....
사람의 마음 속에는 늘 외로움이 있고 외로움을 방어 하기위해 공격적으로
변하기도 하지만 외로움을 극복 하고자 한다면 앞사람의 손을 잡아야 한다는 것...
*10월3일(22일째)
오대산에 제법 쌀쌀한 바람이 분다.
이제 일주일 남았는데....
마음 속에선 계절을 앞서가 겨울 바람이 분다.
월정사에 와서 풀어 놓은 마음을 두고 바람이 되어서 돌아가려니
가슴 한구석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한다.
발에 날개를 달았다가 마음에 이슬 이라도 비치면 날아가 버리는 건데....
다시 젖먹이 간난아기 시절로 돌아가서 세상의 전부인 엄마얼굴 보며
방긋방긋 웃던 행복 가득의 그때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세상 때가 너무 많이 묻어 가슴에 앙금이 내려 앉고... 너무 무거워 버겁다....
스님 말씀대로 지금보다 더 멍청이가 되어
못 듣고 못 보고....하늘만 보고 바람 소리만 들으며 '쿠울~하게 살고 싶다.
*10월4일(23일째)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시간...눈가에 이슬이 자꾸만 지나간다..
친구가 보내준 옷을 유용하게 껴입어야 할 만큼 월정사는 벌써 춥다.
관광객들은 아직 반팔 차림으로도 오던데....
속세를 떠나 아주 멀리 온 느낌이 들 때가 바로 이럴 때.
월정사 주위의 모든 풍경이 너무나 소중하게 여겨진다.
한동안 많이 그리워 하며 살게 될 것이다.ㅡ단단히 각오하고 마음 굳게 먹는다ㅡ
경사가 꽤 되는 길이라 헉헉 거리긴 했으나 작지만 그림같이 아름다운 곳
'동대 관음암'에 가서 '선덕스님'의 법문을 들었다
ㅡ사람이 슬픔이나 기쁨에 갑작스레 봉착하게 되면 그 충격에 집착한 나머지
정신적으로 이상이 오게 된다고 한다.
그것을 걸러내기 위해 슬픔이나 기쁨으로 가는 길에 여운의 고통의 길을 만들어
둘러 가는 방법이 있다고ㅡ 동대 관음암에 계셨다는 '구정스님'의 일화를
예로 들어 말씀해 주셨다.
끊임없는 실천과 고민, 자신을 위한 변명에 익숙한 자기 자신의 번민과 갈등은
수행에서 해결법을 찾아야 한다고 하셨다.
생각이 너무 오래 머무르면 병이 되므로 수행을 통해 '자아완성'을 하라고....
갈마때 아버지 처럼 자상하고 따뜻하게, 잘 지내보라고 용기를 주셨던
'선덕스님' 이시다...
ㅡ유언장 쓰기
...내가 있어 행복했던 사람들..내 부모님, 형제들, 내 가족,
나를 사랑하는 친구들...내가 사랑했던 사람들...아름다운 날들...
가슴에 안고 갑니다...푸른 바다에 해가 봉긋 떠 오르면, 동산에 달 뜨면,
초저녁 초승달이 당신을 따라오면, 새벽 별 반짝이면...그게 나 임을...
비 오시면, 잎 지면, 하얀 꽃잎 날리면, 바람이 왔다 가면,
보름달 처럼 활짝 웃던 내 모습 한 번쯤 기억해 주세요...
나는 별이 되고, 달이 되고, 꽃이 되어 떠납니다....
*10월5일(24일째)
여태까지 짧지 않은 생 살아오면서
새벽 3시30분의 밤하늘을 몇번이나 보았을까...
매일 새벽 하늘을 바라보면서 새벽의 냄새를 온몸으로 들이면서..
이제는 아쉬운 마음 가득으로 새벽 하늘의 별을 뚤어져라 올려다 본다.
행자의 맑은 눈으로 별을 볼 수 있는 날이 또 있게 될까...
혼자서 보는 별보다 혼자 듣는 계곡의 물소리 보다 항상 함께해서
더욱 행복하고 좋았는데...돌아가 홀로 바라보는 하늘에서 도반들의
얼굴을 얼마나 찾게 될지....가슴이 메인다...
보기만 해도 푸근함이 느껴지는 '혜성스님'과의 포행길은 언제라도 즐겁다.
공양간에서 팔을 걷어 부치고 손수 반찬을 만들던 모습과..(단기출가 행자를 위해)
서로 부처되기ㅡ
마주한 어린행자가 너무 예쁘고 해맑아서 눈물...
어린행자가 절하는 모습이 너무 예뻐서 눈물...
이 행자에게 이렇듯 공손하게 절을 받을만 하게 잘 살아왔을까..눈물...
나 자신의 허물이 자꾸 생각나서 눈물...
미안하고 부끄러워서 눈물...
나와 함께를 늘 지고지순 성실하게 살아 가는 평생도반 생각에 눈물...
앞으로 많이 많이 사랑하며 살아야지 결심하며 눈물..........
내 눈물 상상하며 눈 적시고 있을 평생도반 적적함에 눈물.....
내 절 앞에 눈물 흘리는 어린행자 모습에 내아이 생각나서 눈물....
어린행자 어여쁜 이 모습 그 엄마가 보시면 어떤 마음일까..눈물...
일상적인 일과.. 예불, 발우공양,스님들의 법문, 목탁실습, 포행,사경
운력, 소임지(지장암)청소, 죽비소리, 함께 하던 참선....
덕행스님의 독경소리..손수 약을 끓여 주시던 해등스님....
카리스마에 인정이 넘치는 우리 지용스님.....
그리우면 어찌하나..남은 며칠의 시간이 천천히 흘렀으면...
어제 반야심경 암송 통과했다.
입학시험에 합격했을때 만큼 기뻤다.
경전을 암송하며 함께 예불 하는 기분은 갓난아기가 첫발자욱 내딛은 경이!!!
*10월6일(25일째)
오대산의 가을...
눈이 시리게 구름 한점 없이 하늘이 맑고 푸르다.
단풍이 서서히 들기 시작하고, 새벽에는 쌀쌀 하지만 낮에는 봄볕이다..
푸르디 푸르고 맑고 맑은 정지된 그림 속에 어여쁜 행자들의 고운 움직임이 있다.
흘려 보내고 싶지않은 우리들의 '아름다운 평화'.....
행복한 지장암 운력 가서 토란대를 다듬고...
함께 하신 지용스님, 해등스님께서 '생활 속의 보시행' 말씀해 주셨다.
팥이 듬북 들어있는 찐빵,떡과 과일, 음료수....
다듬은 토란대 보다 훨씬 더 많은 간식거리..스님들의 넉넉한 마음이다.
누군가로 인해 상처를 받고 화가 났다면 분노 하기전에 그것을 가한 사람의
상처를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그의 행동이나 말은 그의 사유와 생각의 산물 이므로
그로인한 나의 분노와는 상관이 없다고....(그의 화살은 그의 업식 이므로)
깃발이 움직임은 깃발이 움직임도 아니요 ..바람이 움직임이 아니요
내 마음의 움직임이다. 다른 사람의 나쁜 행을 보는 것은 내 마음의 움직임 이다.
깨달으면 '부처' 미혹하면 '중생' 중생은 불성을 보지 못한다.
마음밭의 열매...'콩 심은데 콩나고 팥 심은데 팥난다...
혹독한 생각이 일어나면 내 마음밭을 파괴해 버린다.
그 생각은 나그네 이다.주인이 아님을 알아 차리고 나그네를 내 보내야 한다.
깨달음은 무한한 지혜가 안으로 부터 나오는 것이다
"산은 산이 아니므로 산이라 하고 물도 물이 아니므로 물이라 한다
그래서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ㅡ성철스님.
생사가 원래 없다...내가 왜 여기에 있는가...
점심 발우공양때 옆행자가 '밥'행익 행자에게 '밥한숟가락 더달라'
묵언 규칙을 어기고 소근 거리다가 벌점을 받는 바람에 '108참회'....
'108배짜리 밥 한숟가락'을 얘기하며 도반들과 많이 많이 배꼽을 쥐고
웃었지만 남은 것은 눈에 한가득 고여 후두득 떨어지는 눈물 이었다.
(상황이 상황 인지라 벌점은 취소 되었다)
한주스님의 '태극권'은 신나고 재미 있었다.
*10월7일(26일째)
비가 내린다...
월정사를 둘러 싼 오대 첩첩 산턱에 산신령 처럼 유유히 흐르는 구름..
단풍으로 둘러 싸기 시작한 앞산..
비 속에 우산을 쓰고 탑돌이 포행을 했다.
가을 내내 청정해도 짧은 것이 가을인데 연일 비오고 흐리고
천상의 조화는 우리네 인생과도 같은 걸 우리는 늘 환함을 갈망하며 산다
비오면 비오는 대로 흐리면 흐린대로 바람불면 바람부는 대로
때마다 달리 옷을 차려 입듯이 마음에 옷을 차려 골라 입으면 될 일이다.
남아있는 짧은 시간..마주보는 서로의 얼굴이 아쉬움으로 젖어 있다..
태극권 마지막 시간을 알차게 정리해 주신 한주스님의 깊은 마음도,
행자들 한사람,한사람에 대한 깊은 관조와 이해로 바로 헤아려 보시려는
스님들의 '인간에 대한 지극한 예의'에 가슴이 또 젖는다.
긴장이 조금 풀렸는지..몸살기가 있어
'해등스님'께서 직접 달여주신 약을 한~사발 마시고 났더니 거뜬!
약과, 정성과, 사랑을 함께 마셨음이다.
'해등스님'껜 별명짓기 잘하는 내 생각으로 "만인의 애인" 이라고 지었다...
*덕행스님은 '어린 왕자' '작은 거인'
우리 지용스님은 '뜨거운 얼음'
*10월8일(27일째)
오대산의 경치는 시시각각으로 다르고 앞산, 옆산,뒷산의 단풍 빛깔도 다르다.
구름이 머무는 곳도, 지나가는 곳도 따로 있다.
지형과 기상의 상관관계 이겠으나 상식과 상관없이
월정사에 내가 서있는 위치에서 모든것은 나를 중심으로 움직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내가 나의 주인이 되어 가고 있는 것인가....
이제 남은 3일...
1분도 헛되이 보내지 않을 것과
오대산의 정취, 맑은 기운을 가득 담아 가기위해 노력할 것.
부처님께 나를 온전히 바쳐 남은 과제를 선선하게 해낼 것.
주지스님의 특강이 있었다
그동안 여러 스님들께 배운 내용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기회가 되었다.
초심자로서 뵙기에도 공부의 깊이가 느껴질 정도로 해박하고 명쾌 하셨다.
나와 불교와의 만남은 월정사 단기출가에 와서 처음이다.
오래 걸리긴 했지만 오는데 둘러서 헤메이지 않고 지름길로 오게 되어
감사할 따름이다..맑은 샘물을 부어 주시는 내 그릇이 청정 했으면 좋겠다..
'관행스님'의 유우머 에서는 솔바람의 향기가 묻어 나온다..
사람에 대한 연민은 집착임을, 욕심임을 알 것 같다.
그래서 사랑하는 마음도, 미워하는 마음도 갖지 말자고 하던가...
사랑하는 마음은 너무 외로워서, 미워하는 마음은 너무 괴로워서
사랑에 빠지면 미움의 뿌리가 되기 쉬우니...집착의 괴로움 인가..
나의 참선이 제법 고요해 졌다
참을성 없던 내다리도 조용해지고
자꾸만 내닫던 마음도 내안에 자리를 잡아가고
아직은 고요함이 좋아서 그에 그냥 머무르고 있다.
저녁에 '작은 음악회'
찬불가를 배우고.. 클라리넷으로 'When I dream"
전에 오랜시간 온종일 듣고, 듣고 하던 노래였다. 가슴에 잔잔한 파도가....
...someday you will come true...무엇을, 누굴, 그렇게 기다렸음인가...
가슴을 덥혀주던 소리에 푹 빠졌음인가.
종점에 다가가고 있다는 설레임 반, 두려움 반..
종점은 끝이 아닌 새로운 출발 이기도 한 것.
새로움은 늘 두려움과 함께 오지 않던가...
*10월6일(25일째)
오대산의 가을...
눈이 시리게 구름 한점 없이 하늘이 맑고 푸르다.
단풍이 서서히 들기 시작하고, 새벽에는 쌀쌀 하지만 낮에는 봄볕이다..
푸르디 푸르고 맑고 맑은 정지된 그림 속에 어여쁜 행자들의 고운 움직임이 있다.
흘려 보내고 싶지않은 우리들의 '아름다운 평화'.....
행복한 지장암 운력 가서 토란대를 다듬고...
함께 하신 지용스님, 해등스님께서 '생활 속의 보시행' 말씀해 주셨다.
팥이 듬북 들어있는 찐빵,떡과 과일, 음료수....
다듬은 토란대 보다 훨씬 더 많은 간식거리..스님들의 넉넉한 마음이다.
누군가로 인해 상처를 받고 화가 났다면 분노 하기전에 그것을 가한 사람의
상처를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그의 행동이나 말은 그의 사유와 생각의 산물 이므로
그로인한 나의 분노와는 상관이 없다고....(그의 화살은 그의 업식 이므로)
깃발이 움직임은 깃발이 움직임도 아니요 ..바람이 움직임이 아니요
내 마음의 움직임이다. 다른 사람의 나쁜 행을 보는 것은 내 마음의 움직임 이다.
깨달으면 '부처' 미혹하면 '중생' 중생은 불성을 보지 못한다.
마음밭의 열매...'콩 심은데 콩나고 팥 심은데 팥난다...
혹독한 생각이 일어나면 내 마음밭을 파괴해 버린다.
그 생각은 나그네 이다.주인이 아님을 알아 차리고 나그네를 내 보내야 한다.
깨달음은 무한한 지혜가 안으로 부터 나오는 것이다
"산은 산이 아니므로 산이라 하고 물도 물이 아니므로 물이라 한다
그래서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ㅡ성철스님.
생사가 원래 없다...내가 왜 여기에 있는가...
점심 발우공양때 옆행자가 '밥'행익 행자에게 '밥한숟가락 더달라'
묵언 규칙을 어기고 소근 거리다가 벌점을 받는 바람에 '108참회'....
'108배짜리 밥 한숟가락'을 얘기하며 도반들과 많이 많이 배꼽을 쥐고
웃었지만 남은 것은 눈에 한가득 고여 후두득 떨어지는 눈물 이었다.
(상황이 상황 인지라 벌점은 취소 되었다)
한주스님의 '태극권'은 신나고 재미 있었다.
*10월7일(26일째)
비가 내린다...
월정사를 둘러 싼 오대 첩첩 산턱에 산신령 처럼 유유히 흐르는 구름..
단풍으로 둘러 싸기 시작한 앞산..
비 속에 우산을 쓰고 탑돌이 포행을 했다.
가을 내내 청정해도 짧은 것이 가을인데 연일 비오고 흐리고
천상의 조화는 우리네 인생과도 같은 걸 우리는 늘 환함을 갈망하며 산다
비오면 비오는 대로 흐리면 흐린대로 바람불면 바람부는 대로
때마다 달리 옷을 차려 입듯이 마음에 옷을 차려 골라 입으면 될 일이다.
남아있는 짧은 시간..마주보는 서로의 얼굴이 아쉬움으로 젖어 있다..
태극권 마지막 시간을 알차게 정리해 주신 한주스님의 깊은 마음도,
행자들 한사람,한사람에 대한 깊은 관조와 이해로 바로 헤아려 보시려는
스님들의 '인간에 대한 지극한 예의'에 가슴이 또 젖는다.
긴장이 조금 풀렸는지..몸살기가 있어
'해등스님'께서 직접 달여주신 약을 한~사발 마시고 났더니 거뜬!
약과, 정성과, 사랑을 함께 마셨음이다.
'해등스님'껜 별명짓기 잘하는 내 생각으로 "만인의 애인" 이라고 지었다...
*덕행스님은 '어린 왕자' '작은 거인'
우리 지용스님은 '뜨거운 얼음'
*10월8일(27일째)
오대산의 경치는 시시각각으로 다르고 앞산, 옆산,뒷산의 단풍 빛깔도 다르다.
구름이 머무는 곳도, 지나가는 곳도 따로 있다.
지형과 기상의 상관관계 이겠으나 상식과 상관없이
월정사에 내가 서있는 위치에서 모든것은 나를 중심으로 움직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내가 나의 주인이 되어 가고 있는 것인가....
이제 남은 3일...
1분도 헛되이 보내지 않을 것과
오대산의 정취, 맑은 기운을 가득 담아 가기위해 노력할 것.
부처님께 나를 온전히 바쳐 남은 과제를 선선하게 해낼 것.
주지스님의 특강이 있었다
그동안 여러 스님들께 배운 내용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기회가 되었다.
초심자로서 뵙기에도 공부의 깊이가 느껴질 정도로 해박하고 명쾌 하셨다.
나와 불교와의 만남은 월정사 단기출가에 와서 처음이다.
오래 걸리긴 했지만 오는데 둘러서 헤메이지 않고 지름길로 오게 되어
감사할 따름이다..맑은 샘물을 부어 주시는 내 그릇이 청정 했으면 좋겠다..
'관행스님'의 유우머 에서는 솔바람의 향기가 묻어 나온다..
사람에 대한 연민은 집착임을, 욕심임을 알 것 같다.
그래서 사랑하는 마음도, 미워하는 마음도 갖지 말자고 하던가...
사랑하는 마음은 너무 외로워서, 미워하는 마음은 너무 괴로워서
사랑에 빠지면 미움의 뿌리가 되기 쉬우니...집착의 괴로움 인가..
나의 참선이 제법 고요해 졌다
참을성 없던 내다리도 조용해지고
자꾸만 내닫던 마음도 내안에 자리를 잡아가고
아직은 고요함이 좋아서 그에 그냥 머무르고 있다.
저녁에 '작은 음악회'
찬불가를 배우고.. 클라리넷으로 'When I dream"
전에 오랜시간 온종일 듣고, 듣고 하던 노래였다. 가슴에 잔잔한 파도가....
...someday you will come true...무엇을, 누굴, 그렇게 기다렸음인가...
가슴을 덥혀주던 소리에 푹 빠졌음인가.
종점에 다가가고 있다는 설레임 반, 두려움 반..
종점은 끝이 아닌 새로운 출발 이기도 한 것.
새로움은 늘 두려움과 함께 오지 않던가...
*10월9일(28일째)
아침이 새롭다.
새벽 3시30분에 까만 아침을 여는 행자들의 주섬주섬 하루가 시작 된다.
이렇게 일찍 깨어있는 건 '절'과 숲과 우리 행자들 뿐일것이다.
유난히 총총한 별빛을 길잡이 삼아 새벽길 나서는 하루하루를 많이 사랑했다.
본사행자님 들의 도량석에 가슴이 메이고
예불 드릴때, 원각경 독경때, 108배 하며 앞을 가리던 눈물...
마주 하는 도반들의 모습이 벌써부터 아쉬움으로 가득..
상원사에서 적멸보궁까지 삼보일배ㅡ
마음으로 부터의 준비 없이 엎드리며,절하며 내가 무슨 생각을 하게될지
궁금해서 그저 '날씨가 좋구나, 산이 아름답구나, 관광객이 많구나....
평상시의 산행처럼 생각하려고 마음 먹었다.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인양
걸어가는 등산객들과 나란히 삼보 걷고 엎드리는 고행을 통해서 그간의 삶을
돌이켜 얼마나 더 낮아질 수 있는지..시선에 얼마나 의연 할 수 있으며
나자신만 온전히 들여다 볼 수 있는지..자연의 기적을 경이롭게 귀하게 보았는지..
인간세상 너른 품으로 모두 감싸 안거나, 허허롭게 멀찌감치 떠나거나
이미 아무것도 아닌 허상 이었음을.. 참회도 용서도 사랑도 허상 이었음을..
수없이 엎드리며 '석가모니불'을 부르며 내몸은 바람만이 드나드는 빈그릇이 되었다.
도반들의 통곡소리에 내 빈가슴도 함께 울면서 흘러내리던 눈물의 의미를
부처님만이 아실지....나는 모르겠다.
손바닥에 꼭꼭 박히며 따라붙던 나무향기 가득한 굵은 흙들은 자연 속의 도반..
줄줄 흐르던 땀은 불청객 처럼 내게 들어와 함께 했던 '집착'이 떠나는 것임을..
적멸보궁에 도착 했을 땐 나는 오대산의 바람 이었다.
삶이 어짜피 살아야 할 것이면 재미있게, 즐겁게 놀이처럼 살아 보자고 생각 했었다.
그런데 어디에도 그 방법은 없었고, 친구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빨강머리 앤, 캔디, 알프스의 소녀 하이디, 소공녀, 제인에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칼렛 오하라, 작은 아씨들..이들과 함께하며 유쾌하게,
색다른 생각으로 살아오면서 이들처럼 보석같은 눈물상자 가슴에 품고 웃음과 눈물과를
펑펑 쏟아내며 살았다. 삶을 동화책 엮듯이 늘 그렇게,그렇게....
행복도 기쁨도 즐거움도 괴로움도 모두 쓸쓸함으로 귀결 되던거..
마음은 늘 한곳에 머물지 못하고 떠돌던 거..
인간의 고뇌, 번뇌..그렇게 붙잡고 있어도 혼자서는 해결해 볼 수 없었던거..
부처님 앞에 간난아이로 새로 태어났음을, 소리내어 첫울음을 토해 냈음을..
그래서 어찌할 수 없던 망상을 혼자 짐지고 있지 않아도 되는
지혜와 용기를 얻었다.
내려 오는길은 올라갈 때와는 다른 길로 여겨질 만큼 달랐다.
엎드려 보았던 길을 서서보는 차이일 것이리라..
삼라만상의 모든 생물, 물질의 잣대와 견해와 눈높이가 다를 것이므로
모든 것들을 존중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행자들의 땀에 젖었던 모습이 활기 참인지 해맑은 모습 때문 이겠는지
지나가는 사람들이 '유격훈련을 하고 오는 사람들일 거라고'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
우리들은 또 까르르 천진난만하게 웃었다.우리들의 눈에는 모든것이
아름답기만 했다. 우리의 마음이 그렇게 보라고, 느끼라고, 자꾸만 말하는 듯...
*10월10일(29일째)
떠나는 날이 내일로 다가왔다.
마음 속이 눈물로 가득 차 있다.
지용스님께서 모든것에 정들이지 말라고 도반들과 서로 정들지 말라고
사는 데 해롭다고 독이 된다고 어찌 감당하려고 하냐고 그렇게
염려의 말씀 해주셨는데 이미 깊어지고 말았다.
바람만 안고 가려는데 바람 속에 월정사의 향기가 배어들고
오대산을 휘감는 바람 속에 서대염불암이 동대관음암이 북대가 비로봉이
먼저 들어와 있다.내 바람은 그리움과 보고픔의 눈물 바람이 되려는가...
지장암에 이불을 빨아 널었다.
빨래에서 피어 오르던 아지랑이에 지장암에 내려 놓은 내 눈물도
함께 날려 보냈다.
자자회에서ㅡ
처음엔 고삐 풀린 망아지 처럼 와서 자신을 무장한 화살이 밖을 향했던 마음이
이젠 그 마음의 벽을 허물고 화살은 나를 향해 우리가 서로 진정한 도반이
되었음을 얘기했다.
무거운 나는 월정사에 두고 가벼운 나를 가지고 회향 하겠노라고..
비운다면서 정작 소중하다고 여기는 건 움켜쥐느라 고단했음을...
하산때 배낭을 비우듯 그렇게 비우며 내려 놓으며 살겠노라고 다짐 했다.
어린 관득행자(출가하셨음)가
'견도행자' 처럼 나이들어 가겠노라고....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온 내게 주는 최고의 '상'이었다.
지난 내 삶을 빛나는 보석으로 만들어준 귀한 한마디....(감사합니다..)
되도록 아껴야 하는 '말'이지만 이럴 땐 어떤 약 보다도 귀한 '말'이다.
여름 양말 달랑 두켤레 가지고 며칠만에 구멍난 내게 귀한 하나를 선뜻 내준
큰마음의 천사 '관득' 행자 였다.
온밤 새운 삼천배ㅡ
내 '절하기'의 한계는 108배 인데..
부처님께 온전히 나를 바치고 부처님의 마음으로 해보려고 생각했다.
대중들의 힘과 양옆 도반들의 고운 모습에 힘을 보태어 잘 해낼 수 있었다.
'석가모니불' 부를때마다 동그랗게 떠오르던 얼굴들..얼굴들..
나 때문에 슬펐던 사람들, 나 때문에 혹시 고달펐던 사람들께 참회, 용서, 사랑..
엎드리고 ,엎드리고, 마음에 봄햇볕이 들어 올때쯤 새벽이 오고 끝이났다.
내가 나를 위해 '절'을 했음도 알았다.
나고 죽는거 외에는 내앞에 거칠것이 없을 것이라는 자신감..
세상과의 만남에 늘 두렵던 것에 이제 새로울 것같은 용기..
한 배,한 배,자신과의 의지 다지기에 이겨냈다...
갑자기 몰려오는 다리통증도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냥..무조건..감사합니다...
*10월11일(회향)
새벽예불 드리고..
따뜻한 방에서 잠깐 꿀같은 잠을 자고 났더니
조금 전까지의 삼천배가 꿈이 되었다.
평상시와 전혀 다름이 없으신 스님들의 잔잔한 표정으로
우리도 함께 조용한 회향을 맞는다.
모든일이 흘러가는 일상일 뿐 다르게 의미를 부여할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그래서 들떠 흥분할 일도, 크게 기뻐할 것도 딱히 슬퍼 할것도 없는 것인걸..
그래도 우리들의 회향이 우리의 삶에 크게 의미있는 기회 였음을..
잘 지냈음을 서로 축하하는 좋은 시간을 가졌고
한달의 짐을 꾸렸으나 마음은 함께 싸지 못한 채
서로 긴 인사를 나누며 숨이라도 크게 쉬면 눈물이 쏟아질것 같아
허공을 향해 쓸쓸한 웃음만 주고 받고 그렇게 서로 헤어졌다.
우리의 스님들 께서도 우리들이 오고 갔던 법륜전 앞에 모두가 떠나갈 때까지
오랜동안 서 계시며 긴 작별인사를 해 주셨다.
애지중지 키워낸 아기들을 품에서 떼어내는 지극하신 표정으로...
눈물이 흐를 것 같아 스님들께 인사 드리기도 쉽지 않았다.
우리들은 지용스님께서 주신 똑같은 목걸이를 목에 건 스님의 아기들 이었다...
-----------------------------------------------------------------
돌아와서...
새벽에, 월정사에서의 새벽을 나혼자 시작 합니다.
아직도 눈감으면 월정사, 눈뜨면 여기...
그리워서 슬프고 기억이 아직 또렷해서 기쁩니다.
나날이 새롭게 부처님을 만나고 있고....
그렇게 힘겹던 '아침형 인간'이 되었고
'발우형식사'를 합니다.
매일이 감사하고 내 빈마음에선 늘 웃음이 흘러 나옵니다.
주위 사람들이 나때문에 좀더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희망하며 삽니다.
보고싶은 스님들..도반들.. 고마운 여러분들..
많이 애쓰신 우리 '수심'님께
감사드립니다...
첫댓글 그때 그시절이 그립습니다~~~ 가슴이 저려옵니다 ~~~잘보고 갑니다_()_
마음속 부처님 영접하기위해 절절히 애쓴 모습들이 가슴 뭉클합니다..잘 읽었어요..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