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가끔..길거리를 지나다 유모차를 탄 아기들을 보면..
"나에게도 저런 때가 있었겠지?".. 정말 천진난만 하고 순결했던..
그리고 아무 걱정이 없었을 법한.. 저런때가".. 라는 생각에 장탄식을 하며
문득..그때로 돌아갈 수 있었으면..이라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그러나 솔직히..그때는..너무도 순수하긴 했었겠지만..그렇다고 행복했었는지
그 시절에 대한 아무런 기억이 없으니 알 수는 없습니다
제가 기억할 수 있는 가장 어린 시절은..대여섯살의 어렴풋한 기억들 약간과
나머지는 거의 초등학교를 입학할 무렵부터의 기억이니까요..
그래서...만약..누군가..내가 정말 돌아가고 싶은 과거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전.. 유모차에 태워진 "아기 시절"이 아닌..초등학교 시절을 선택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난생처음.. 여러 사람들이 모이면..줄을 서야한다는 것을 배웠고..
선생님이 앞장서서..하낫 둘..하고 외치면..셋넷..하면서 선생님 뒤를 졸졸 따라
교문밖까지 이끌려..하교를 했었던.. 행복했던 추억이 고스란히 가슴속에 남아있는...
그 시절을 말입니다..
"둥근해가 떳습니다..자리에서 일어나서..제일 먼저 이를 닦자..웃니 아래 이닦자..
세수할때는 깨끗이.. 이쪽저쪽 목 닦고".....
율동과 함께 부르던 이 노래를..
무려 삼십오년이 지난 지금에도 잊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어쩌면..그만큼 그 시절을
그리워하고..그 시절로 돌아가보고 싶다는 증거는 또 아닐런지요..
친구들은 기억하시나요? 우리학교를..그당시 우리학교의 풍경을 말입니다...
초등학교 1학년때.. 우리의 교실은..단층으로 된 납작한 콘트리트 건물
이었지요....
몇반까지 있었는지까지는 기억할 수 없습니다만.. 교실이 그리 많지
않아서인지 때로는 오전반..때로는 오후반이 되어..일년을 보냈습니다..
오후반인때는..실컷 늦잠을 잔후..세수도 안한채 서둘러 학교로 달려가기가
다반사였고.. 엄마가 안계신 운좋은(?) 어떤날은 아예 등교조차 하지 않은 날도 있었구요..
그리고.. 2학년때는.. 지금도 군부대 같은데서 가끔 볼 수 있는..반원형의 양철깡통
건물이었지요.. 한학년이 높아져서인지..그 건물의 위치도 일년동안 써왔던
납작 교실보다는 조금 높은 위치.. 5,6학년 형들이 쓰는 2층 건물 옆에 있었던 것으로
기억이 됩니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교실에 여유가 없었던지..1학년때와 마찬가지로
오전,오후를 넘나들며 공부를 해야 했었지요..
지금은 너무나 쉽게 외고 있는 구구단을..바로 거기서 배웠는데..그때는 그게
왜그리 안외워지던지..수업시간에 구구단을 제대로 외지 못했던 친구들은
수업이 끝난후..교실앞 계단에 주욱 앉아서 구구단을 외워야만 선생님께서
집으로 보내주셨던 기억도 새롭습니다..
3학년 4학년 시절에는.. 우리 학교에서 제일 높은..4층으로 된 콘크리트..슬라브
건물을 썼었죠.. 3학년 부터는 제법 고학년이라고..가방도 1,2학년 동생들이
메고 다니는 메는 가방이 아닌..손에 들고 다니는 가방을 가지고 다녔습니다만..
저는 미처 그 새로운 가방이 준비가 되지 않아..한동안 동생들처럼..메고 다니는
가방을 가지고 다닌 적도 있었답니다.. 지금와서 말이지만..전..참 그때..쪽팔려
죽는줄 알았습니다...
5,6학년 시절에는..최고 학년 답게..소위 본관이라는 구식 일본식 2층 건물을
썼던것 같습니다..
그런데..전 개인적으로 이 건물이 별로 맘에 들지는 않았어요..
왜냐하면..복도가 나무로 되어있어서..매주 대청소를 할때마다..마루에 왁스를
발라 닦아야만 했고..또 어쩌다 실내화를 신지 않고 걷다가는..마루 바닥의 나무
가시에 찔리기도 했었으니까요..
그런데 사실..가장 맘에 안드는 것은..교무실과 교실이 같은 건물에 있다는
것이었지요..
지금 같으면..선생님들을 그리 어려워 하지 않았을 터이지만..
그때는 선생님들이 왜그리 어려웠던지...아무튼 선생님들이 무더기(?)로 계시는
교무실과 함께 같은 건물을 썼던 최고학년 시절은.. 별로 달갑지 않은 기억으로
남아 있답니다..
이제는 세월이 흘러.. 가장 먼저 우리가 1학년때 쓰던 납작 건물이..수영장으로
변한것을 필두로.. 지금은.. 거의
우리가 공부하고..뛰고 놀았던.. 건물들과..또 운동장에서 조차.. 옛모습을 찾아볼
길은 없지만.. 세월이 흐르면 모든 것이 변한다는 것이 세상사임을 생각할 때..
못내 아쉽기는 하지만 어쩔수는 없는 일이겠지요..
그러나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제 가슴..그리고 모든 친구들의 가슴속에 깊이
자리한..그 옛날의 우리 학교 모습과.. 그 속에서 배우며 뛰놀던 우리들의 모습을
기억속에서 바꾸어 놓지는 못할 것입니다..
여러분.. 보고 싶지 않으십니까?
그때 함께 뛰놀던..그 친구들과..그 정들었던 우리 학교의 모습을..
그때는 표현조차 하지 못했지만..지금은 웃으며..그때 내가 너를 짝사랑 했었노라..
말할 수 있는..내 첫사랑 친구의 모습을..
축구를 아주 잘했던 친구.. 달리기를 무척 잘했던 친구..또..싸우는 것은 한번도
볼 수 없었지만..우리 학교의 짱이었던 친구..들의 모습을..
보고싶습니다..
만납시다.. 모여봅시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지난 메일을 뒤적이다가 17년전인 2004년
이맘때쯤 어렵사리 초등학교 동창 친구들
한두명과 연락이 닿아 초등학교 동창회를
만들어 보기로 하면서 이메일 주소를
아는 친구들에게 보냈었던 메일을 다시 꺼내본다
시골에서 학교를 다닌 우리 또래 친구들은
대부분 가까운 마을에 살며 학생 수도
많지 않다보니 초등학교 1학년부터 6학년까지
남녀 할것 없이 같은 반으로 지내며 심지어는
중고등학교까지 같은 학교를 다니는 경우도
있어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뿔뿔이 흩어져도 자연스레 초등학교
동창회가 형성되고
나이 들어서도 스스럼 없이 자주 만난다는
것을 부러워 하던차에 내가 주동이 되어
어렵사리 만들어 초대회장을 하며 이끌던
초등학교 동창회..
그러나 동창회를 만들고 2년이 지나기전에
사업차 중국에서 머물게 된 탓에 3년여를
참석하지 못하고
있다가 다시 돌아와보니 그것도 조직이라고
처음에는 모두들 한마음으로 옛추억을
더듬으며 즐거워하다가 어느정도 시간이
흐르고 구심점이었던
내가 없으니 파벌이 생기고 분란이 생겨
서로 다투기도 하고 탈퇴하기도 하고..
중재자의 역할도 잠시 나 또한 개인적 사정으로
자주 나가지 못하다보니 아예 다음 까페 가입파와
네이버 밴드파로 나뉘어 양쪽 친구들과 모두
친한 상황에서 어느편을 들기에도 애매해
양다리를 걸치며 재통합 노력을 하다가
무슨 의미인가 싶어 요즘에는
아예 잊고 살게 되었다
물론..가끔은 몇몇 친구들과는 개별적으로
연락은 하지만 말이다
참..초심을 지키는 것이 그렇게 어려울까?
정치인들이라면 모르겠지만..
아니 정치인들도 모두 정치에 뛰어들때 초심은
있었을텐데 무엇이 우리와 그들을 변하게 만드는
것인지..
수구초심..이라는 말처럼 모두들 죽을때쯤에야
초심을 찾게될까?
요즘의 정치와 17년전 초등학교 동창회를 만들때의
추억을 오버랩 하면서 새삼 씁쓸함을 느낀다
첫댓글 기억력도 좋네
난 거의 없는 기억인데
중학교때부터는 생생한데
1학년5반 담임 염광자 선생님
2학년8반 류시화
3학년1반 김현숙
4학년1반 김현철
5학년2반 정해일
6학년2반 구재각
우린 3학년때까지 남녀 합반이었고
4학년때부터는 남자 여자반이 구분됐었지~
3학년 이후에는 이름만 들으면 대충
같은반이었던 친구였는지 아닌지 기억하고
있지~^^
오호호!박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