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4월 23일(월) 광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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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사람의 인생은 수없이 많은 인간관계 속에서 표류하는 것일지 모른다. 유치원서부터 직장생활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친구, 혹은 동료라고 부르는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살아가지만 결국 나이가 들어 지난 삶을 되돌아 볼 시기가 되면 자신의 곁에 남아있는 친구들이란 극소수이거나 아예 없는 경우가 많다. 영화 <언터처블 1%의 우정>은 쉽게 맺어지고 끊어지는 ‘친구’라는 이름의 관계에 대한 반추이자, 진정한 우정과 소통에 관한 고찰이다.
소득기준 상위 1%의 전신마비 백만장자와 무일푼 흑인 부랑자가 친구가 된다는 이 영화의 드라마틱한 이야기는 놀랍게도 실화다. 샴페인 회사 사장인 필립 포조 디 보르고와 아랍인 청년 애브델의 실제 이야기를 영화화한 것이다.
필립(프랑수와 클루제)은 패러글라이딩을 하다 추락해 사지 전체를 쓰지 못하는 장애인 백만장자, 드리스(오마 샤이)는 빈민가 출신의 전과자이다. 간병인과 환자로 만난 두 사람의 좌충우돌 에피소드는 ‘장애’를 이야기의 소재로 선택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신파적이지 않고 유쾌하고 즐겁게 극을 진행시켜 간다.
이 영화에는 상당히 많은 재즈, 팝, 클래식의 명곡들이 등장한다. 특히 음악 취향이 전혀 다른 두 사람이 서로 좋아하는 음악을 통해 교감하는 장면은 단순한 에피소드 이상의 의미를 시사한다.
드리스에게 클래식 음악의 감동과 고고함을 알려주고 싶은 필립은 파티 중 악단에게 부탁하여 쉽고 친숙한 클래식 음악들을 드리스에게 들려준다. 이 시퀀스에서 비발디의 사계를 비롯하여 바흐 프렐류드, 시바여왕의 도착, 왕벌의 비행 등 아예 한 장의 클래식 옴니버스 앨범이 통째로 소개된다.
드리스의 반응은 더욱 즐겁다. 광고음악, 파리실업국 대기 음악, 톰과 제리 만화음악 등으로 사용된 트랙들의 쓰임새를 밝혀내는 코믹한 장면. 결국 진정한 우정은 상대방을 개화하거나 내 안의 틀로 맞추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사랑하고 인정해야 한다는 것을. 어떠한 조건도 따지지 않는 관계야 말로 진정한 인간관계의 출발임을 일깨우는 장면이다.
이 영화에서 두 번에 걸쳐 사용된 비발디의 바이올린 협주곡 <사계>는 너무나도 친숙한 클래식 음악이자 인류가 낳은 가장 위대한 선율 가운데 하나이다. 바로크 시대 이탈리아 베니스 악파를 이끌었던 비발디의 모든 재능이 응축된 걸작이자 대표작.
비발디 <사계>로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음반을 팔았던 연주단체는 바로 이 무지치이다. 사계가 곧 이 무지치였으며, 이 무지치 하면 사계였다. 이들은 가장 규범적인 연주를 들려준다.
최근에는 이 협주곡에 대해 다소 파격적인 해석을 가하는 연주가 유행하는 추세다. 안네 소피 무터가 소규모 악단을 직접 이끌고 녹음한 도이치 그라모폰 음반은 테스트 트랙에 올라선 F1 자동차를 타고 달리는 듯한 폭풍의 질주같은 연주를 들려준다. 아예 곡 자체에 자의적인 해석을 더하여 마치 록 음악을 듣는 것 같은 파격적인 연주를 들려주는 나이젤 케네디의 EMI 음반도 재미있다.
하지만 최고의 앨범은 따로 있다. 바로 바이올리니스트 귈리아노 카르미뇰라의 디복스 음반. 이 무지치의 정통성과 무터의 파격이 공존하는 듯한, 영화 속 필립의 고고한 취향과 드리스의 자유분방한 성격이 함께 살아숨쉬는 것 같은 절묘한 화합점을 찾아낸, 우리 시대 최고의 비발디 연주다.
<독립영화감독/음악칼럼니스트>
첫댓글 진정한 우정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케 하는 영화...그동안 일상에 매몰되어 소홀하지 않았나 ..영화를 보면서 음악도 함께 느끼며 여러면을 생각해 볼 랍니다.잘 읽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