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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골산 봉서방 원문보기 글쓴이: 봉서방
새신자의 교육과 관리
I. 서 론
1. 문제 제기
현대 교회가 안고 있는 문제점 중의 하나는 사람들이 쉽게 찾아와 얼 마 안 되어 다시금 나가버리는 데 있다. 우리는 이러한 문제점을 매우 심각 하게 생각하면서도 이에 대한 뚜렷한 대책을 가지고 있지 못함이 교회 교육 의 현실이다. 세속교육에서도 유치원 교육이 중요하듯 교회교육에서도 새신 자들에게 교회가 무엇인지, 구원이 무엇인지, 하나님에 대하여, 예수 그리 스도에 대하여, 성령에 대하여 가르치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목회자들은 누구나 목회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새신자 관리에 대하 여는 무관심할 때가 많다. 다행히 최근에는 새신자에 대한 연구가 많이 진 행되고 있으며 또 교재도 많이 출판되어 일선 목회자들에게 많은 자극과 도 움을 주고 있다. 그러나 좀더 구체적이고 실제 교육에의 적용이라는 관점에 서, 본 논문에서는 목회 현장에서의 새신자 관리에 관하여 연구하고자 한 다.
2. 연구 목적과 방법
Gary W. Kuhne는 오늘날 교회가 교세확장을 위하여 여러 방법의 전도 와 행사를 통해 많은 결신자를 얻고 있으나 관리와 육성의 부족으로 그 중 대부분을 잃고 있다고 말하였다. 이러한 진술은 오늘의 교회의 문제와 사역의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즉, 교회가 새신자를 많이 얻는 일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지 만 열심히 전도해서 새신자를 많이 확보하는 것이 교회부흥과 직결될 수는 없다. 열심히 전도를 해서 새신자를 많이 확보하는 일과 함께 이들을 어떻게 지도하여 성숙된 신자로 양육하느냐하는 것이 오늘날 교회의 중요한 과 제요, 또한 교회사역과 성장의 바람직한 형태인 것이다. 이러한 교회성장의 가장 바람직한 형태는 질적인 성장과 양적인 성장 이 서로 조화와 균형을 이루는 것으로서 전도와 관리가 유기적으로 이루어 져야 한다. 한편 새신자들을 위한 교육이 없이 이루어지는 양적 부흥은 미숙한 그리스도인을 길러내는 위험성도 있으므로 양적 부흥보다 먼저 새 신자들을 바르게 교육함으로써 밝은 내일을 바라볼 수 있는 것이다.
Waylon B. Moore는 새신자 관리가 정상적으로 실시된다면 새신자의 95%를 성장시킬 수 있는 경이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러므 로 본 논문의 목적은 이러한 중요문제를 다루고 그에 대한 실천 방안을 제 안함으로써 보다 밝은 미래의 교회를 보게 하는 데 있다. 본 연구의 방법 으로서는, 새신자 교육에 대한 역사적 고찰을 토대로 해서 현재의 새신자 교육에 관한 문제점과 이상적인 새신자 교육의 방안과 목표를 제시하고자 하였다.
3. 연구 범위
본 논문은 전체가 8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장에서는 문제 제기와 연구 목적과 방법을 다루었으며, 제2장은 목회란 과연 무엇인가를 중심으로 목회의 개념을 살펴보았으며 또한 목회를 형성하는 요소로는 무엇이 있는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신약성서에 나타난 목회를 연구해 보았다. 제3장에서는 새신자 관리에 대해 역사적으로 추적해서 역사적인 고찰을 해보았다. 제4장 에서는 간략하나마 각 교회의 새신자 관리 현황을 분석한 글들을 기초로 한 실증적 고찰을 시도하였다. 이를 토대로 제5장에서 새신자 교육에 관한 문제점을 찾아보았고 또한 그 방안을 모색했다. 제6장은 새신자 교육의 목표를 설정했는데, 첫번째로 기 독교 교육학적 입장과 교회 성장학적 입장에서 본 새신자 교육의 목표를 역 사적으로 고찰했으며 그 다음으로 이상적인 새신자 교육의 목표를 모색했 다. 제7장에서는 위의 것들의 이론적인 바탕 위에 실질적인 새신자 확보에 대해서 그 몇 개 제안을 내놓았다. 그리고 제8장에서는 상기의 내용을 간략 하게 약함으로써 본 논문을 끝맺었다.
II. 교회 목회의 이해
1. 목회의 개념
목회란, 하나님은 개개인을 결단코 포기하시지 않는 분이라는 믿음 안 에서 각 개인들을 설교와 성례전 즉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끌어주고 교회의 한 지체가 되게 하며, 교회 안에 삶을 보존시켜 주는 수단이다. 그러므 로 목회는 교회를 형성하고, 생존하게 하며, 개개인을 영적인 타락과 부패 에서 건져내어 삶을 보존시켜 주는 성화와 교육의 행위인 것이다.
또한 목회는 인간의 영혼을 돌보아 주는 일이다. 그런데 목회가 관 심의 대상으로 삼는 인간은 인간 속에 있는 영적인 것뿐만 아니라, 성경이 말하는 대로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게 마련인 몸과 영혼과 정신이 하나가 된 인격체로서의 전인(전인)인 것이다. 이러한 목회는 우선 말씀의 사역(the ministry of the Word)으로 이루어진다. 그 이유는 전도(evangelization), 교리교육 catechesis), 설교 (liturgical Preaching) 등을 통해 신자들이 서로 이해하고 진리가 의미하는 것을 나누며 공동체 안에서 자라갈 수 있기 때문이다.
목회의 두번째 측면은 예배이다. 예배를 통해서 교회 공동체는 놀라운 하나님의 은총을 깨닫고 응답하면서 자신들의 전인에 영향을 끼치며 성장하는 것이다.
목회의 세번째 측면은 교육과 지도와 상담이다. 목회를 통하여 우리는 누구를 믿는 것인지 안내 받으며, 신앙 생활에서 경험하는 종교적 의미를 배우고 지혜로 이끌림을 받는다.
마지막으로 목회의 네번째 측면은 삶에 있어 서 파열된 개인의 상처와 공동체의 상처를 치유하는 것이다. 목회가 효과적으로 실천되기 위해 이 네가지 측면이 조화있게 잘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목회의 궁극적 목적은 구원에 두어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구원이란 하나님과 이웃과의 새로운 관계 형성이며 인간은 이러한 관계 안에서 죽음과 무의미 그리고 죄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목회활동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에 응답하는 것을 중심으로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져야 한다.
왜냐하면 목회의 본질은 교회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개개인에게 전달하는 데 있으므로 그 방법은 여러가지 모양을 띨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바로 여기에 목회의 다양성이 있다. 그러나 그것이 어떤 모양을 띠었든 목회의 목적은 언제나 전인의 치유이며 동시에 구원인 것이다.
2. 목회를 형성하는 3요소
교회목회(Church Ministry)에는 3요소가 있다. 그 첫번째는 복음 (Gospel)이며 둘째는 세상(World), 마지막은 인간(Person)이다. 첫번째 것은 하나님께서 계시하셨고 우리가 확인하고 경험한 후 증인이 된 것이며, 두번째는 우리의 실존적 상황이고, 마지막은 언제나 목회의 대상이 되는 주 어진 우리 자신 즉 인간이다.
1) 복음 -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목적은 세상의 구원이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역사는 하나님 의 구원의 목적이 담긴 특별한 행위와 사건들로 가득차 있다.
아브라함부터 이삭, 야곱, 모세를 부르시고 홍해를 건너기까지, 이스라엘에 왕을 허락하 시고 선지자를 부르시기까지, 또 유대인들을 추방하여 방황케 하시고 남은 자를 구원하시기까지, 그리고 이 모든 사건 속에 가장 큰 희망으로 기대되 었고 절정으로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생애, 죽음, 부활 등에는 하나님의 사랑과 그의 피조물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 자신의 노력이 끊임없이 나타나고 있다. 이런 다양하고 많은 방법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계시할 뿐만 아니라 그 깊이를 드러내 주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배반자 인간을 창조주이신 자신과 친교의 관계를 회복케 하시려고 이런 일들을 행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전능함은 사람을 구원하시는 융통성(flexibility)에서도 발 견된다. 그는 착한 일을 한 사람에게는 그 만큼의 복을, 악한 행동을 한 자 에게는 그 만큼의 벌을 주시는 상거래적 관계에서 그의 사랑을 베풀지는 않 으셨다. 오히려 그의 사랑은 무한히 넓고, 반역하고 죄지은 인간을 용서하시려는 것으로서 인간의 상상을 뛰어넘은 것이며, 요한과 바울은 이것을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라고 하였고, 또 "하나님 은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을 자신과 화해시키셨으니 이제 더 이상 사람의 죄 악이 그들을 붙잡지 못하리라..."고 증언한 탁월한 전도자였다. 증언되어 우리에게 전해졌으며 우리가 확인하고 경험한 바로 이 유산이 교회목회의 첫번째 요소인 것이다.
2) 세상 - 우리의 실존적 상황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대상은 세상이다. 즉 우리들이 그 안에서 태어나 고, 살고, 일하고, 공부하고, 놀고, 사랑하고, 결혼하고, 울고, 웃고, 고통 받으며, 죽는 이 세상인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을 저주하거나 버리 지 않으셨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예수 안에서 이 세상을 유지시켜 주셨 다. 그러므로 이제 이 세상은 항상 그의 세상인 것처럼 동시에 우리의 세상이기도 하다. 오늘날의 세상은 가히 혁명적이다. 왜냐하면 이 세상은 지금 변화가운데 있기 때문이다. 도시화, 공업화, 자동화, 인구폭발, 매스 미디 어의 발달, 수송수단의 발달과 자연과학에서의 새로운 탐구와 발견들, 정치 적, 경제적, 이념적, 종교적 다원주의가 개인이나 가족의 도덕성은 말할 필요도 없이 이 세상의 전 영역을 세속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사의 다른 시기와 마찬가지로 오늘날의 세상 역시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이며 세상은 여전히 하나님의 사랑이 드러나고 인간의 죄가 깨어질 장(context)이다. 그러므로 이 세상은 불가피하게 교회목회의 장으로 주어진 두번째 요소인 것이다.
3) 인간 - 교회 공동체의 각 구성원 내용(content)으로서의 복음과 장(context)으로서의 세상(world)은 인 간을 향하여(on), 인간 안에서(in) 수렴된다. 즉 변함없는 복음과 급변하 는 세상의 상호관계 속에서 인간이 존재하며 그 인간은 목회의 궁극적 대상이 되는 것이다. 사람은 발달한다는 의미에서는 늦변화하며 결코 완전할 수 없다는 점에서는 변함이 없다. 인간의 본성은 하나님으로부터 유래하기 때문에 인간은 본성상 삶의 충만함을 실현하도록 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현실상태는 하 나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데, 이것은 말하자면 본질적인 것이다.
이러 한 인간은 유한하기 때문에 자신과 세계에 대한 지식에 한계가 있고, 개인 적인 생활이나 단체생활에 있어서도 과정 중에 있으며 자신이 장차 어떻게 될지 알지 못한다. 또한 죄인인 인간은 자기의 존재가 무엇인지 그리고 어 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올바르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므로 교회목회는 인간을 본래대로 바르게 이해함으로써 복음을 구 현화하며, 복음과 세상과의 관계를 밝힐 수 있다. 복음에 나타난 변치 않는 하나님의 사랑을 어떻게 변화무쌍한 이 세상의 삶 속에서 상처받으며 살고 있는 한 인간에게 바르게 전달하느냐 하는 것이 바로 교회목회의 과제인 셈 이다.
3. 신약성서에 나타난 목회
1) 예수의 목회 기독교의 모든 목회가 그것이 그리스도의 목회라고 주장하기 위해서는 어떤 경우라도 그 목회가 마땅히 예수 그리스도의 의도와 행위 위에서 시작 되어야 하며, 예수의 목회를 근거로 한다. 이러한 예수의 목회에는 두드러 지는 두 가지 특징이 있다. 하나는 보내심(to send)이라는 단어로 대표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섬김(to serve)이다. 복음서 곳곳에 예수 그리스도가 아버지에게서 사명을 받고 보내심을 받은 자라는 사실이 묘사되어 있으며(마태복음 15장 24절, 마가복음 9장 37 절, 누가복음 9장 48절, 요한복음 3장 17절, 5장 36절, 7장 29절, 20장 21 절), 같은 주제가 몇 개의 비유 중에, 특히 마가복음 12장 1절 이하의 사악 한 농부 비유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는 12제자를 보내시며(마태복음 10장 5절), 70명을 보내시고(누가복음 10장 1절) 말씀하시기를 누구든지 그들을 영접하는 자는 그들을 보내신 예수를 영접하는 것이라고 했으며(마태복음 10장 40절), 또 한 예수를 영접하는 것은 예수를 보내신 하나님 아버지를 영접하는 것이라 고 말씀하셨다(마가복음 9장 37절, 누가복음 10장 16절). 결국 이 말은 보 냄을 받는 자들은 보내시는 이의 사명을 받을 뿐 아니라 보내시는 자의 권 위까지도 함께 지녔다는 것을 뜻한다. 예수는 보내심과 함께 목회의 기본적 특성으로 섬김 역시 강조하셨다. 또한 그는 섬김의 모델이 되어 주셨다.
누가복음 22장 27절, 요한복음 13 장 13-15절에 나타나는 주님의 말씀 "나는 너희가운데 섬기는 자이다"가 곧 그것이며 목회의 위대성은 외적인 지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섬김의 정 도에 있음을 강조하시기도 했다. 더 나아가 주님은 섬기는 자만이 큰 상을 받으리라고 약속하셨으며, 요한 복음 12장 26절에서는 "누구든지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라야 한다. 내가 있 는 곳에 나를 섬기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 께서 그를 높이실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면서 섬김이 목회의 근본 내용임을 확언하셨다.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목회의 특징은 예수님께서 가르치시고, 영을 고치시고, 복음을 전하는 곳곳에서 확인되었다.
하나님에 의해 보내심을 받 은 사역자로서의 권위와 헌신의 태도가 바로 그것이며 또한 죽기까지 하나 님과 인간을 섬긴 예수 그리스도의 일생이 그러하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통해 우리의 교회에서의 목회가 진정 하나님의 사랑을 전할 사명과 하나님께서 직접 보내셨다는 참 권위에 있는 지를 점검해 보게 되며, 또한 오늘날의 교회목회가 진정 섬김의 행위인지 늘 반성해야만 할 것이다. 2) 바울의 목회 이해 목회의 기본적 틀을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에서 배울 수 있다면, 바울 은 우리에게 목회의 다양성과 일체성을 가르쳐 준다. 왜냐하면 바울은 그 의 서신들을 통해서 목회의 명칭에 관한 큰 유동성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고린도전서 12장 38절에서는 "하나님께서는 교회 안에 여러 직분을 두셨는데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예언자요, 세째는 교사요, 다음은 기적을 행하는 사람이요, 다음은 병고치는 은혜를 받은 사람이요, 남을 도 와주는 사람이요, 관리하는 사람이요, 여러 가지 방언을 하는 사람입니다" 라고 하면서 교회의 목회는 각각 받은 은사를 활용하여 다양하게 이루어진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또 에베소서 4장 11절에서도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예언자로, 어떤 사람은 전도자로, 또 어떤 사람은 목 사와 교사로 세우셨다"고 하면서 목회의 다양성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바울은 이 모든 다양한 은사들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교회목회가 단 하나의 일치된 목적, 즉 성도를 준비시켜 섬기는 일을 하게 하고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기 위한 것임을(에베소서 4장 12절) 강조했다.
또한 로 마서 12장 6-8절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우리에게 나누어 주신 성령의 선물은 각각 다릅니다. 가령 그것이 섬기는 일이라면 섬기는 일을 하고, 가르치는 사람이면 가르치는 일을 하고, 권면하는 사람이면 권면하는 일을 하고, 권위를 가지고 지 도하는 사람은 성의를 다하여야 할 것이요 구제하는 사람은 기쁜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라고 하여 교회목회의 다양성을 이야기하면서도, 그 앞에서 많 은 사람이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루어야 함을(로마서 12장 5절) 강조함으로써 교회목회의 일체성을 언급한다.
III. 새신자 교육의 역사적 고찰
새신자 교육의 원리와 방법을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역사적인 고찰과 이해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러한 새신자 교육의 역사적 고찰이란 성 경적 근거를 찾는 것이다. 왜냐하면 참된 기독교 교육은 성경의 비옥한 토 양에서 발생하여 그 원리와 방법도 성경에 기초를 두기 때문이다.
성경에 나타난 새신자 교육의 역사는 다음과 같이 시대적으로 분류된다.
1. 구약시대의 새신자 교육
구약시대의 새신자 교육이란 유대인들의 새신자 교육을 뜻한다. 기독 교는 과거와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구약시대 에 이미 그리스도를 통한 구속의 섭리를 진행하셨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교 훈도 구약에 근거하였고 구약의 율법서와 예언서도 신약의 복음서와 아주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특별히 기독교 교육은 유대인의 교육토양에 깊은 뿌리를 두고 있다. 다시 말해서 유대인의 교육은 기독교 교육의 원형 이라 할 수 있다. 구약시대의 유대인들은 모태에서부터 야웨의 신앙을 가지고 태어나서 야웨의 신앙전통 의식 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새신자와 기성신자를 구분하 기 어렵다.
그러나 저들은 아이를 낳으면 생후 8일만에 할례를 행하므로(창세기 17장 12절, 레위기 2장 3절)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성결예식을 행하고 계약의 백성으로 교육이 시작된다. 그렇다면 새신자 교육의 효시는 유대인 의 어린이 교육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물론 구약시대의 어린이 교육은 주로 가정에서 부모들에 의해서 행해 졌다. 이스라엘 부모들은 자기의 자녀를 참신앙인으로 양육할 책임을 지고 교육했다.
그러나 성경에 나타난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를 보면 시대적으로 자녀교육의 방법이 다소 다르게 나타나는 것을 보게 된다.
1) 족장시대의 교육
족장시대 때에는 특별히 뚜렷한 형식의 교육은 없었다. 그러나 형식적 이며 정규적인 교육 대신에 비형식적이며 비정규적인 교육을 효과적으로 수 행했다. 예를 들면, 하나님께 제단을 쌓고 번제를 드리는 의식을 통한 교육 이다. 그들의 자녀들은 이러한 제사의식을 보고 하나님을 경배할 책임을 배 우고 하나님에 관하여 보다 깊은 이해를 얻고 바른 관계를 갖게 되었다. 또한 아브라함 때부터 이스라엘 민족은 공동체로서, 그들은 아 브라함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언약들에 관하여 배웠으며 그 언약이 신앙에 의하여 이스라엘 민족 중에 살아 있음을 배웠다. 이러한 배움 속에서 메시 야 대망(the Messianic Hope)의 신앙도 필연적으로 있었다고 본다.
2) 광야시대의 교육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애굽에서 해방시켜 광야로 보내시고 그들에게 율법을 주셨다. 이것이 인류를 위한 하나님의 교육계획에 있어서 가장 중요 한 과정이었다. 시내산에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율법이 주어진 이후부터 유 대인의 교육의 핵심은 율법이 되었다. 유대민족의 전역사를 통하여 보면 하나님은 그들의 교육의 중심이 되었고 율법은 교육의 바탕이 되었다. 특별히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쉐마(shema)로 불리는 교육선언 을 하심으로 히브리 민족에게 자녀들에 대한 종교교육의 절대성을 보여주셨 던 것이다.(신명기 6장 4-9절) 3) 포로이전 시대의 교육 Lewis Sherrill은 유대가 바벧론의 포로가 된 시기를 기점으로 전기의 교육과 후기의 교육으로 나누고, 전기를 히브리인의 교육이라 하고 후기를 유대인의 교육이라 부르고 있다.
포로기 이전 시대의 교육에는 다음과 같 은 종류가 있다.
첫째, 가정교육이다. 쉐마(Shema)(신명기 6장 4-9절)에 명백하게 규정 되어 있는대로 이스라엘 민족의 교육은 최초로 가정에서부터 시작된다. 가정은 교육의 기본 장소이고 부모는 엄격한 교사로서 교육적 책임을 졌다. 그리고 그들의 교육은 율법교육이며 생활교육이며 또한 민족교육이었다.
둘째, 장년교육인데 포로 이전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택하신 지도자들을 통하여 신앙교육을 받았다. 역사적으로 이들은 그 직능에 따라 제사장, 예언자, 선지자라고 불리웠으며 이들의 교육은 율법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제사장은 제사의식, 회당의식, 절기의식 등을 인도하므로 백성들의 신앙을 교육했고, 예언자는 예언과 책망과 경고를 통해서 백성들의 신앙을 교육했고, 선지자는 율법연구를 통해서 그들을 교육했다.
4) 포로이후 시대의 교육
이스라엘 민족들은 오랜 포로생활 속에서 그동안 섬겨왔던 야웨의 신 앙이 흐트러지는 위기에 이르게 되었다. 그러나 소위 "남은 자"(Remmant)들 의 강한 신앙고수와 교육을 통하여 그들의 종교교육에 괄목할 만한 발전을 가져오게 되었다. 그들은 보다 발전된 양태로 교육을 도모했다. 즉 회당과 학교라는 교 육기관을 통해서 교육을 수행했다. 회당에서는 하잔(Hazzan)이라는 회당 전 속의 지도 아래 친교와 예배와 성경공부를 통하여 신앙교육을 실시했다.
그리고 학교교육으로는 Beth Hassepher, Beth Talmud, Beth Hammidrash, Academy라는 교육기관을 통하여 교육했는데, 그 중에서 Beth Hassepher는 초등교육기관으로 신앙의 초보자를 지도하는 초신자 반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교수방법으로는 성경통독, 율법강해, 요절암송, 율법교독, 문답 형식, 비유와 상징이 있었다. 그리고 이때에는 이 방안을 위한 선교활동과 함께 개종자들을 위한 종교교육에 있어서 613개조의 계명을 가르쳤다. 이것 은 초기 기독교교육에 큰 영향을 끼쳤다.
2. 복음시대의 새신자 교육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님의 사역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충성스런 봉사였다. 예수님의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봉사는 전도(Kerygma)와 교육 (Didache)이다.
그리고 예수님의 이 두 가지 사역은 분명히 구별해 낼 수 없도록 서로 얽혀 있다. 예수님은 위대한 전도자요, 동시에 위대한 교사였다. 예수님은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선포하여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셨다(마가복음 1장 15절). 또한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온 새신자들을 가르쳐서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주님의 제자로 훈련시키셨다(마태복 음 26장 55절). 그리고 예수님은 자신의 복음사역의 확장이 훈련받은 제자 들의 헌신을 통하여 이루어질 것을 알고 그들을 사도라 칭하여 복음전선으로 파송하셨다.
마침내 예수께서 지상생애를 모두 마치고 승천하실 때 제자들을 향하여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마태복음 28장 19-20절)고 명령하심으로 역시 제자들에게도 당신의 사역처럼 전도와 교육의 사명을 동시에 병행하라고 당부하셨다. 그럴찌라도 예수 님이 사람들에게 주신 인상은 랍비(교사)에 더 가까왔다. 니고데모는 예수님을 향하여 "랍비여, 우리가 당신을 하나님께로서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라고 말했고, 심지어는 예수님을 대적한 바리새인들 이나 유대인들과 사두개인들도 예수님을 선생이라고 불렀다. 이와 같이 사람들은 예수님을 선생 즉 랍비라고 불렀다(요한복음 3장 2절). 마태는 언제나 예수님에 대하여 기록할 때에 그를 가르치는 분으로 묘사했다(마태복음 9장 11절).
복음서 기자들은 예수님을 선생(Rabbi)이라고 51회나 기록하고 있으며, 예수님 자신도 자신을 선생이라고 기록한 것이 5회나 된다. 진실로 예 수님에 대해서는 다른 어떤 표현보다도 교사로 표현하는 것이 가장 적합하 다. 이러한 기록들을 볼 때 가르침은 예수님의 사역에 중심적인 위치를 차 지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면 교사되신 예수님의 교육방법과 목표는 무엇이었는지를 살펴보 려고 한다. 예수님의 새신자 교육 방법을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볼 수 있다.
1) 생활의 본을 통한 교육이다.
예수님은 사람들을 통하여 "나를 따르라" "가서 너희도 이와 같이 하 라" "나는 마음이 겸손하고 온유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고 하 면서 당신의 삶 그 자체를 보여줌으로 가르치셨다(마태복음 4장 19절, 요한 복음 13장 15절, 마태복음 11장 29절). 이 방법은 가장 효과적이고 적극적 인 교육방법이다.
2) 생활현장에서 자유롭게 교육했다.
4복음서 전반에서 보여주고 있는 바와 같이 예수님은 어느 곳에 있든 지 교육사역과 깊은 관계를 갖고 계셨다. 예수님의 교육방법은 공식적이며 정규적인 것보다는 비공식적이며 비정규적인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예수님 은 장소를 초월해서 길가에서나, 해변에서나, 광야에서나, 산에서나, 집 안 에서, 우물 곁에서 그리고 회당과 성전, 그 어떠한 곳에서도 친밀하게 거닐 고 대화하면서 자연스럽게 진리를 가르쳤다.
3) 다양한 방법을 통하여 교육했다.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예수님의 교육방법은 형식적이기보다는 비형식 적이며 자연적인 것이었다. 예를 들면, 질의 응답을 통해서, 면담과 대화를 통해서, 시청각적인 실물교육을 통해서 알기 쉽게 가르치셨다.
4) 생활에서 부딪치는 경험을 통해서 교육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막연한 이론이나 관념적인 것이 아니었다. 사람들 의 생활주변에서 흔히 경험할 수 있고 현실적으로 생활에서 부딪쳐오는 시 선을 토대로 해서 말씀의 이해와 도움을 얻도록 했다.
5) 사람들의 삶의 현장을 찾아가 함께 생활하심으로 교육했다.
예수님은 몸소 제자들의 생활현장을 찾아가서 그곳에서 그들과 대화하 시고 그들을 부르시고 가르치셨다. 또한 예수님은 그들과 함께 하는데 인 색하지 않으시고 되도록 많은 시간을 함께 생활하시므로 개인접촉을 통하여 신앙을 지도하셨다.
6) 개인의 영혼에 관심을 집중시키는 교육이었다.
예수님에게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고려의 대상은 개인이었다. 그는 개 인적인 접촉을 강조하셨고 한 영혼에게 관심을 집중시키셨고 한 영혼이 바 로 서는 것에 영구한 가치를 두었다. 한 영혼이 하나님의 진리에 바로 서 고, 한 영혼이 양심에 따라 행하며, 한 영혼이 하나님의 요구를 총족시키 며, 한 영혼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갖도록 가르치셨다.
7) 영적 성숙의 단계에 따라 교육했다.
예수님은 교육에 있어서 개인차를 인정하고 영적 성숙의 단계를 고려 하여 적절하게 교육하셨다. 마태복음 13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천국에 대한 설명을 밭에 씨뿌리는 비유로 하실 때 제자들이 예수님을 향하여 "어찌하여 저희에게 비유로 말씀하십니까" 하고 물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저희에게는 아니 되었다"고 대 답하셨다(마태복음 13장 10-11절). 이것은 무리가 아직 천국설명을 이해할 만큼 영적으로 성숙되어 있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비유를 들어 설명한다는 말씀이다.
8) 개인상담을 통하여 교육했다.
예수님은 개인의 문제에 지극한 관심을 가지고 찾아 가시어서 그들과 상담하심으로 그들에게 복음을 소개하고 문제해결을 얻게 했다. 수가성 여 인이나 베데스다 못가에 38년된 병자나 세리장 삭개오의 경우가 바로 그렇 다.
9) 훈련된 제자들을 통하여 교육했다.
예수님은 자신이 직접 가르치실 뿐만 아니라 제자들을 훈련시켜서 그들로 하여금 다른 사람을 가르치도록 하셨다. 다음으로 예수님의 교육 목표를 간단히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예수님은 목표도 방향도 없는 교육을 하지 않으셨다.
언제나 분명한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하여 가르치셨다.
(1) 예수님의 궁극적인 교육목표는 십자가나 부활에서 나타난 하나님 의 나라 실현이었다.
예수님의 교육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예수님 당시의 정치적 상황과 유대인의 종교적 입장을 이해해야 한다. 예수님 당시 정치적 상황은 로마제국의 통치로 유대인들이 심한 고통 과 갈등에 빠져 있었다. 그렇기에 유대인들가운데는 정치적 해방과 정치적 메시야 사상이 무르익게 되었다. 이러한 정치적, 종교적 상황에서 예수님 은 하나님 나라를 선포해야 했다. 그러나 예수님이 선포하고 가르친 하나님 나라는 유대인들이 원했던 정치적인 해방이나 사회개혁은 아니었다. 예수님 이 가르친 하나님의 나라란 하나님의 주권이 실현되는 종말론적 영역이었 다. 하나님 나라의 성격 그 자체는 예수님의 교육방향과 목표를 결정지었다 고 볼 수 있다.
(2) 예수님의 교육목표는 인간이 하나님께 나아가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었다.
당시의 유대인들은 율법을 곡해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나 아가는 바른 길을 잃고, 하나님의 뜻을 바로 분별하는 믿음을 잃고, 영적 암흑에 빠져 있었다. 이러한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자신을 하나님의 계시자 로 가르치시면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바른 길을 보여주셨고, 인간의 태도, 생각, 행동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방법을 보여주셨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4장에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가르치신 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너희가 나를 알았더면 내 아버지를 알았으리라. 이제부터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 나를 본 자는 내 아버지를 보았거늘 너 희가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나는 아버지 안에 있다.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이상으로 우리는 복음시대에 예수님의 새신자 교육의 태도와 방법과 목표를 찾아보았다. 오늘의 새신자 교육의 프로그램을 만드는 데 있어서 무엇보다 이 원리를 적용해야 할 것이다.
3. 사도시대의 새신자 교육
새신자 양육에 대해서는 신약성경보다 더 폭넓고, 개인적이며, 지속적 이며, 전교회적으로 가르치고 설명한 책은 없다. 특별히 사도들의 대부분의 서신들, 즉 바울서신과 베드로서신과 요한서신들은 새로 믿는 사람들을 양육하기 위한 서신들이다.
빌립보서 1장 23,25절을 보면 사도바울의 삶의 첫째 목표는 새신자를 양육하는 일이었다. 빌립보서 1장 23,25절을 보면 사도바울의 삶의 첫째 목표는 새신자를 양육하는 일이었다. 사도바울은 아직도 연약하고 초보적 인 신앙단계에 머물러 있는 빌립보 교회 성도들의 믿음의 진보와 기쁨을 위해서 좀더 살아서 역사해야 하겠다고 자신의 삶의 이유를 밝힌다. 여기 "믿음의 진보와 기쁨을 위하여" 라는 말은 아직도 어린 상태에 있는 빌립보 교회 신자들의 믿음을 성장시켜서 진정한 구원의 기쁨을 가지고 그리스도인답게 살게 하려는 것으로 새신자 양육의 원리를 제시해 주고 있다. 또한 바울은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에서 교역이나 교회 전반에 있어서 교육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교사의 직분을 사도와 예언자와 목사의 직분과 함께 인정하였다.
바울은 교사의 직분을 고린도전서 12장 38절에서는 예언자 다음에 두었고 에베소서 4장 12절에서는 전도자와 목사의 다음에 두었다. 이것은 교 회의 기능에 있어서 교사의 임무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입증시켜 주는 것이다. 초대교회에서 교역자들은 누구나 다 교육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있지만 새신자 훈련 같은 특정한 일은 교사들에게 맡겨 교육했던 것이다. 사도행전 5장 42절에 보면 사도들은 "예수는 그리스도라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쉬지 아니하니라"고 했다. 초대교회는 말씀에 대한 봉사로써 전 도와 교육을 나누어서 생각하고 있었다. 전도는 믿지 아니하는 이들을 상대로 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일이다.
즉 죄와 불신앙에 빠져있는 사람들에 대하여 회개하고 복음을 받으라고 외 치는 일이었고, 교육은 주로 이미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온 사람들로서 아직 불신앙적인 면을 많이 가지고 있는 그들에게 말씀으로 가르치고 양육하 여 은혜 안에서 자라게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초대교회는 전도와 함께 신 자들을 은혜 안에서 자라게 하는 교육이 가장 중요한 관심사였다.
1)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가르쳐 주는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대로 사도들은 "예수는 그리스도라 가르치는 것과 전도 하기를 쉬지 아니하니라"(행 5:42). 진실로 사도들의 선교와 교육의 가장 중요한 초점은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사실이었다. 사도들은 교육이라는 과정을 통하여 신자들에게 보다 견고한 기독교적 신앙을 심어주려고 했다. 왜냐하면 초대교회 신자들은 대부분 유대교에서 개종한 개종자들이었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한 이해가 절대 필요했 던 것이다. 이들은 구약성서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예수가 구약에 예언된 메시야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에서 예수를 믿게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에게 예수가 구약성서에 예언된 하나님의 아들이요, 그리스도이심을 가르치고 깨닫게 하는 것이 절대로 필요했다.
2) 새신자들의 지속적인 신앙생활을 유지시키기 위해서였다.
새신자 양육이란 전도의 열매를 보존하고 성장시키고 번식시키는 것이다. 교육이 없이는 교회로 들어온 신자들을 계속적으로 교회에 머무르도록 할 수 없다. 초대교회 사도들은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 게 하라"는 주님의 복음명령을 따라 열심히 복음을 전파했다. 이리하여 교회는 날로 숫자적으로 팽창하여 나갔다. 실로 초대교회의 부흥은 놀라운 것이었다.
사도행전 4장에 보면 사도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 그리스도를 전파 했을 때에 회개하고 세례를 받은 제자의 수가 3천명이나 되었다(행 4:37-41). 여기에서 한 가지 문제가 제기되었다. 교회로 몰려든 새신자들을 계속적으로 교회에 머무르게 하는 일이다. 이 일을 위해서 사도들은 적극적으로 새신자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그것이 바로 사도행전 2장 42-47절에 나 타난 사실들이다. "저희가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주고 날마다 마음을 같 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이러한 일은 새신자들로 하여금 계속 교회에 머물러서 양육과 훈련을 받고 필요한 도움을 받을 수 있게 해주었던 조치였던 것이다.
3) 새신자들로 하여금 박해를 극복할 수 있는 믿음의 능력을 기르게 하기 위해서였다.
사도행전 14장에 보면 바울의 새신자 양육을 위한 강렬한 욕망과 훌륭 한 모범이 나타나 있다. 비시디아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박해가 심해지자 바울의 전도단은 박해를 피하여 그곳을 떠나야 했다. 루스드라에 도착한 그 들은 어떤 병자를 고치므로 신으로 대접받는 소동까지 벌였다. 그러나 얼마 안 가서 유대인들이 안디옥과 이고니온에 와서 사람들을 선동하여 돌로 쳐 죽이게 했다. 여기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난 바울은 지난날 그토록 박해를 당했던 더베를 거쳐 루스드라와 안디옥과 이고니온으로 다시 들어간다. 그 이유는 박해를 받고 있는 신자들의 믿음을 격려하고 교육하기 위해서였다.
제자들의 마음 을 굳게하여 믿음에 거하도록 권하기 위해서였다. 또한 사도행전 11장에 보 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수리아 안디옥에 사는 헬라인들에게도 전파되어 많은 헬라인들이 예수를 믿고 교회로 모여들었다. 그 소식을 들은 예루살렘 교회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 바나바를 보내 격려토록 하니 바나바는 그들에게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크게 기뻐하여 모든 사람들에게 박해 중에서도 굳은 믿음으로 주께 붙어 있으라고 권면했다(행 11:19-24). 이처럼 사도들은 새신자들로 하여금 박해를 극복할 수 있도록 믿음을 권하고 교육했다.
4) 새신자들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게 하기 위해서였다.
사도바울의 기독교 교육의 목표는 예수 그리스도를 닮는 것이다. 로마 서 8장 29절에서 사도바울은 말하기를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했다. 존 칼빈은 그 아들의 형상이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으 로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양자로 삼으실 때에 우리로 하여금 그의 맏아들 인 그리스도의 형상을 지니도록 결정하셨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모든 아들들이 본받아야 할, 영원히 살아있어 두드러진 분이라고 말했다. 또한 에베소서 4장 13-14절에서 사도바울은 말하기를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 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이는 우리가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고 했다.
역시 존 칼빈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란 나이가 늙은 것을 뜻하지 아니하고 계속해서 성장해 가는 영적 생명의 활력을 의미하는 것으로, 완전 히 장성한 분량이란 예수 그리스도에게 이르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거듭난 후에 어린아이와 같은 상태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되고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계속해서 성장해 나가야 한다고 했다. 그러므로 사도바울의 새신자 교육의 목표는 명확하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고 이루는 것이다. 바울은 이러한 교육목표를 달성하기 위 해서 해산의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5) 새신자들을 이단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교회가 성장함에 따라 그리스도교로 개종해 온 이방인들이 증가하게 되었는데, 교회는 이러한 개종자들에게 기독교의 바른 교리를 가르쳐야만 했다. 또한 교회가 급성장함에 따라 교회 안에 잘못된 이단사상이 강하게 침투해 들어왔다. 초대교회에 침투에 들어온 이단사상은 주로 율법주의와 영지주의였다. 그리고 이 두 이단사상은 초대교회를 심각한 위기로 몰아넣고 있었다. 율법주의란 인간의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과 동시에 율법을 지킴으로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는다는 기독교의 기본교리에 정면으로 도전했다. 왜냐하면 초대교회 신자들의 대부분이 유대 교에서 개종한 신자들이었기 때문에 과거의 자기들의 사상과 전통을 버리지 못하고 고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리하여 순수한 신앙을 가진 신자들까지도 이러한 사상으로 끌려가고 있었다.
사도들은 이러한 율법주의 이단을 경계하고 신자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로마서, 갈라디아서, 히브리서 같은 서신들을 써서 교회에 보냄으로 율법주의와 같은 이단에 미혹되지 않도록 신자들을 교육했다. 또한 영지주의란 당시 희랍 사상의 이원론적 영향을 받은 이단으로서, 대체로 기독교를 일종의 고차원적인 지식(Gnosis)으로 해석하려는 철학적인 종교였다. 그들의 사상은 창조론이나, 기독론이나, 인간론에 있어서 기독교 의 기본 사상을 부정한다. 그들은 지식이라는 우상에 빠져서 그리스도의 복음은 너무 단순하고 평이하기 때문에 좀더 고차원적인 지식을 필요로 한다고 주장한다. 사도바울은 이러한 이단에 현혹되지 말 것을 성도들에게 경고한다. 그리고 사도들도 앞을 다투어 골로새서, 야고보서, 베드로후서, 요한 1,2서, 유다서를 써서 이 무서운 영지주의 이단에 빠지지 않도록 가르쳤다.
6) 새신자를 제자화하기 위해서였다.
디모데후서 2장 1-2절에서 사도바울은 디모데에게 말한다. "내 아들아 그러므로 네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속에서 강하고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저희가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 존 칼빈은 여기 [부탁하라]는 말을 [전달하라], [가르치라]는 뜻으로 해석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너희는 나에게서 들은 것은 몸소 가르 칠 뿐만 아니라 또 다른 사람을 통하여 나의 가르침을 공포케 하라." 다시 말해 신자들을 제자화해서 그들로 하여금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고 지도 하는 사명을 감당케 하라는 뜻이다.
멕가브란은 이 말씀을 기초로 하여 교회는 새로운 집단을 찾아내어 제자로 훈련시킬 때 성장하게 된다고 말했다. 바울사도는 자신의 경험을 통 하여 재생산의 원리를 강조한다. 양육자인 자신은 그리스도를 본받아 그리 스도의 제자가 된 것처럼 디모데는 자기를 본받아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고, 또 다른 사람들은 디모데를 본받아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도록 재생산의 원리를 강조하고 있다. 즉 새신자를 훈련시켜서 제자를 만들고 그로 하여금 다른 제자를 다시 생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과정을 통해서만이 기독교의 확장과 성장을 도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사도바울을 비롯한 초대교회 사도들은 한편으로는 복음 전파하는 일에 힘쓰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 전파된 복음이 계속 보존되고 확장되도록 제자화 운동에 전력을 기울였다. 참으로 바울의 초점은 초대교회를 위한 지도력을 배양하는 데 있었으며 다음 세대에 대한 관심을 집중했던 것이다. 기타 초대교회 사도들의 교육방법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사도들이 가르친 교훈과 진리는 유대교적인 진리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었지만, 교수방법은 근본적으로 동일했을 뿐만 아니라 교육자료도 구약 성서를 중심으로 한 하나님의 말씀이었다.
또한 사도들은 말로써 가르치는 일뿐만 아니라 실제로 박해와 고난 속에서 기쁨과 용기를 잃지 않는 생활의 본을 보여서 새신자들의 신앙을 지도했다.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저희가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 그리스도라'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쉬지 아니하니라"(행 5:41-42). 이렇게 고난과 박해 중에서 참고 견디면서 기쁨과 용기를 잃지 않는 사도들의 태도는 새신자들에게 산교육이 되었음에 틀림없다. 또한 새신자 양육을 위한 사도들의 협조체계도 놀랍다. 예를 들면 빌립이 사마리아에서 전도하여 새신자를 많이 얻었을 때 이들을 양육하기 위하여 예루살렘 교회에 협조를 요청했을 때 예루살렘 교회는 즉시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어 빌립의 전도사업을 지원한 것이다(행 8:5). 초대교회의 성공적인 전도와 새신자 관리가 바로 이러한 긴밀한 협조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특별히 바울은 부활의 예수를 가르치는 교육선교를 하였는데 그의 교육장소도 예수님처럼, 정해져 있는 곳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곳이었다. 어떠한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회당에서, 극장에서, 법정에서, 감옥에서, 시장터에서, 학교에서, 배 안에서, 방 안에서, 어디에서나, 누구에게나 가리지 아니하고 전하며 가르치는데 힘썼다. 그리고 그의 교육방법은 대체로 토의형식이었으며 때로는 서신을 통하여 교육하기도 했다. 이상으로 사도들이 행한 새신자 양육의 내용과 목표와 방법을 더듬어 보았는데, 오늘의 새신자 교육도 이러한 원리를 적용해 나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