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행을 참 좋아한다. 역마살이 끼었다는 어머니의 말씀이 딱 들어맞았다. 내가 돈을 벌자마자 여행계를 조직하여 방학마다 새로운 곳으로 떠나곤 했다. 실제로 돈이 쌓이기 시작했을 때 아이를 데리고 신나게 즐겼다. 그래서 맨처음 호주를 두 번 가고, 스페인, 캄보디아, 대만 두 번,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중국 두 번, 일본 세 번의 기록을 세웠다. 그럼에도 유럽은 많이 안 가봐서 안타까웠다. 이탈리아, 스위스, 프랑스, 동유럽 등 언제 가보나 기회만 노리고 있었다.
그러나 나의 꿈은 산산이 부서져 버렸다. 몸이 아파 자유롭게 걷지 못하고 오른팔도 쓰지 못하니 슬플 수 밖에~~ 다른 사람의 손을 잡아야 하고 먹을 것도 제대로 못 먹는처지. 죄다 남의 도움으로 산다.
가까운 제주도가 그래도 맞춤 여행지다. 휠체어가 가능한 곳을 찾아 즐겁게 여행했다. 해외가 안되면 제주도는 몇 번 다녀오기도 했다. 제주도의 이색적인 풍경과 편안한 분위기가 나를 이끌었다. 그래서 남편이 정년하면 한달이라도 제주살이를 해보고 싶다. 그런 희망이 생기니까 생활에 활기가 생기고 가끔 집에서 해방되는 분위기에 쌓이기도 했다.
인터넷으로 제주살이를 검색하다가 '세화돌집' 을 발견했다. 민박집(하숙도 가능) 인데 그 주위 구좌읍에 한달살기 괜찮은 집과 프로그램이 많다는 정보였다.
그런데 눈에 띄는 게 있었다. 세화돌집의 주인이 대학 때 선배였다. 아니! 명예퇴직을 하고 제주도로 건너가 농사를 짓는다고 한다. 토종 씨앗으로 가지가지 농작물을 재배한다는 소식이었다. 일주일에 한번씩 뜻을 같이 하는 농사꾼들이 함께 밥을 지어먹고 농사정보도 나눈다는 따끈따끈한 소식이었다.
당장이라도 달려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만나도 특별히 나눌 말이 있는 건 아니다. 살아가면서 새로 하고 싶은 일을 찾아 그동안의 삶을 접고 새로운 길을 찾는 사람이 많으니까~ 나 역시 농부가 되겠다는 꿈을 아직도 가지고 있으니까. 자그마한 텃밭도 제대로 가꾸지 못하는 지금 상황이 안쓰럽지만ㅠㅠ
내년 봄에 밭을 갈아 새 씨앗을 뿌리는 걸 구경하면 좋겠다. 그리고 밝고 환한 제주사람들과 듬뿍듬뿍 찰진 밥을 나누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