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녁너머에는 무엇이 있더노? 니 속에는 무엇이 남았노?
대학 본고사가 있었던 시절에 선생님이 말씀하시길 “니가 서울대를 목표로 공부를 해야 국립대학교에 갈 수 있지, 지방사립대를 목표로 공부하면 전문대밖에 못 간다.”
평생을 과녁을 목표로 활을 쏘아 시수를 올리고 명궁 칭호를 받을 수야 있겠지만, 그걸로 끝인게지. 과녁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내 몸속에는 무엇이 남아 있는지 알지도 못하고 활을 접어야 한다.
산은 많고 인생은 유한해서 오르고 또 올라도 오를 산은 지천이라 평생을 올라도 산을 다 오르지는 못하고, 또 산을 올라 도통하기는 불가능한 일인거와 마찬가지다.
주구장창 과녁만 쏘아서는 과녁너머 무엇이 있는지 내 속에는 무엇이 남는지 알지 못하고 결국은 죽는 수밖에 없는 법이다.
활로 평생을 쏘아 밥벌어 먹은 사람이 “二. 身 胸虗腹實 左腋豁如(신 흉허복실 좌액활여)”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데, 왜 왼쪽 겨드랑이를 활짝 여는 게 흉허복실과 짝을 이루고 있는가? 에 대한 생각을 깊이 해 봐야 한다.
해석을 해 보면, ‘몸은 (목을 길게 빼고 왼 줌손을 오른눈 위에 높이 들어 올려)왼쪽 겨드랑이를 크게 벌려서 (가슴을 비우고)흉곽을 들어올리고, (두 다리에 多힘을 단단히 줘서 괄약근을 조여서)배에 힘을 주며 橫膈膜횡경막을 끌어내려 만작한다.’ 그러니까 左腋豁如좌액활여를 하지 아니하면 胸虗흉허를 할 수가 없다. 이렇게 결론지어 진다.
우리가 왜 활을 쏘나? 초딩들은 과녁을 맞추기 위해서라고 답할 수가 있다. 그러나 생각이 있고 인생을 고민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과녁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한 번쯤은 고민을 해 봐야 한다.
조선의 성리학자들이 射以載道사이재도, 射以觀德사이관덕의 활을 추구하면서 가장 소중히 여겼던 것이 무엇이었을까?
무과가 폐지되고 육량을 쏘지 않으면서 우리활의 본질인 射以載道사이재도, 射以觀德사이관덕이 희미해지고 향락과 기생첩만 남은 활터에서 道德도덕을 논한다는 자체가 사치임을 안다.
그러나 눈을 들어 과녁너머를 볼 생각과 기운이 있다면 이제 사~알짝 과녁을 내려놓고 과녁너머를 생각해 보고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아야 할 시기가 되었다.
우리활을 모를 때, 어떻게 쏘는 것이 바른 활인지를 탐구할 때는 지난한 사법논쟁에 휘말리기도 했지만, 이제 우리활을 쏘는 목적이 射以載道사이재도, 射以觀德사이관덕에 있음이 명백하게 밝혀졌으니, 어떤 방법으로 射以載道사이재도, 射以觀德사이관덕에 이를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시점인 것이다.
우리 조상님들께서는 撇絶별절로 활을 쏘았다. 왜 撇絶별절로 쏘았느냐 물으면 맹렬하게 쏘아서 육량을 80보 너머로 보내기 위해서 撇絶별절로 쏘았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과연 그럴까? 초딩은 이렇게 대답할 수 있겠지만, 생각이 있고 삶을 사랑하는 사람은 다른 고민을 해봐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활을 쏘는 사람이니, 우리조상님들께서는 撇絶별절로 쏘았는데, 撇絶별절로 쏘면 무엇이 좋은지, 撇絶별절로 쏘면 무엇이 우리에게 남을지 고민하고 탐구해 봐야 하지 않을까?
六千年을 활을 쏘아 道成德立도성덕립을 바란 민족이, 아무런 대책 없이 무과가 폐지되고 난 이후 撇絶별절이 버려지고 잊혀졌다고,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다고 생각하는 바보는 아마 없겠지?
이육사가 曠野광야에서 “다시 千古천고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超人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노래하고, 칼릴지브란이 예언자에서 “刹那찰나 바람이 불면 또 다른 여인이 나를 낳으리라.” 노래했으니, 삶을 구하는 사람에게는 길이 열리고 때가 되면 인연이 닿아서 뜻을 얻을 것임을 알 수 있지 않은가?
貫革관혁을 내려놓고 과녁너머를 보니 胸虗흉허가 남는다.
生삶과 福복을 구하는 사람은 과녁너머를 찾을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