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3시 사회사업 방법의 핵심인 ‘묻고 의논하고 부탁하기’의 첫걸음을 시작하였습니다. 마을 어른, 인근 기관의 사회사업가분들을 찾아다니며 인사를 드렸습니다.
복지관을 중심으로 오른쪽 아래에 있는 나눔의집부터 시작하여 위쪽 옆쪽에 있는 아파트 단지들까지 쭉 돌아다녔습니다. 저도 성현동 주민 1년 차기는 하지만 이렇게 언덕길을 오르락내리락하며 동네 구석구석을 돌아다녀 본 일은 처음이었습니다. 미처 몰랐던 우리 동네의 모습 - 지리, 관계, 판세, 정서, 문화 - 을 하나씩 하나씩 알게 되는 고마운 경험이었습니다.
봉천동 나눔의집 김남석 신부님
성공회 재단의 법인격으로 탄생한 나눔의집은, 건립 초기 거의 종합사회복지관과 유사하게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현재 관악구에 있는 많은 사회복지 유관 기관들 – 관악자활센터, 신림청소년쉼터, 살림터, 드림한누리공부방, 당곡어린이집 등 - 이 모두 봉천동 나눔의집에서 시작했습니다. 이곳에서부터 많은 기관이 독립해서 나올 뿐 아니라 이곳에서 처음 시작한 사업이 이제는 국책 사업으로 바뀌어 전국 단위로 시행되기도 한다고 합니다.
이렇게 다양한 사업들을 어떻게 하나의 기관에서 모두, 그것도 사회복지 관련 시설도 아닌 종교 관련 시설에서 해낼 수 있었을까 신기하고 존경스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해낼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신부님의 말씀을 바탕으로 생각해보았습니다.
제가 나름대로 생각해 본 그 비결은 ‘지극한 나눔과 섬김의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안 해도 되는 거지만, 이것까지 해야 하나 싶은 것도 한번 해보면 어떨까요.. 나눔의집이 그렇게 시작했으니깐요.”
예비 사회사업가들에게 마지막으로 당부해주시고 싶은 말씀으로 김남석 신부님은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조금 더 나은 사회를 일구는 데 기여하기 위해서는 ‘지극한' 나눔과 섬김의 마음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보여주기식으로 ‘꼭 해야만 하는 일’에만 얽매였다면 지금의 나눔의집 같은 모습은 볼 수 없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진정으로, 지극하게, 나눔과 섬김을 실천하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벽산블루밍아파트 관리사무소 이영임 소장님
이영임 소장님의 말씀을 들으며 가장 많이 떠오른 생각을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복지를 이루는 사람’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소장님은, 사회사업이나 사회복지사업을 직업으로 삼지 않는 사람 중에 ‘복지를 이루는 사람’의 모습에 가장 가까운 분이셨습니다.
“저는 몸으로 뛰는 사람이에요. 저는 어딜 가더라도(어느 아파트의 소장으로 부임하더라도) 소장실 폐쇄하고 밖으로 나오는 스타일이에요. 직원들과 같이 일하고, 사무실 밖에서 돌아다니며 일하죠. 그게 참 좋은 것 같아요“
소장님은 기본적으로 ‘직접’ 다니며 아파트 주민들을 한 분 한 분 살피고 계셨습니다. 치매 할머니에게 요양보호사를 주선하시고 수급을 관리하신 일화, 독거 할머니에게 식사와 반찬을 챙겨드린 일화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설사 그것이 본인의 ‘업무’가 아니더라도 발로 뛰어다니며 이웃과 나눔을 실천하고 계셨습니다.
소장님은 당신을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을 신앙생활에서 얻은 나눔과 섬김의 태도에서 찾으셨습니다. 상대방의 아픔을 알게 하고 그를 도울 수 있는 역할을 줬음에 감사해하시며 하나님의 은혜로 생각하셨습니다.
외부의 물질적인 동기가 아니라, 순수한 본인 내부의 선한 의지에 따라 행하심이 존경스럽고 감동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소장님과 같은 좋은 어른이 지역사회에 계심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또한 나눔과 섬김을 실천할 때 ‘의지’ 만큼이나 중요한 ‘기술’에 관해서도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묻고 안부 물어주는 거 해 주면 좋을 것 같아요, ... 주민이 오면 먼저 말을 거는 게 첫 번째라고 생각해요. 그 주민이 아무리 씩씩거리고 민원을 걸어도, 일단 그 사람 입장을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문제가 80%는 해결되는 거거든요.”
아파트 주민 중에는 임대아파트 단지에 거주한다는 것에 대해 피해 의식이 있는 분도 있고, 그만큼 외부 사람들에게 일정한 심리적 장벽을 갖고 계시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이런 주민들에게 접근하는 최고의 방법이 ‘묻고 듣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제가 복지요결을 공부하며 이론으로 익힌 내용을 소장님은 경험으로 체득하고 계셨습니다. 이분을 두고 ‘복지를 이루는 사람’이라 하지 않는다면 누구를 복지 이루는 사람이라 할 수 있을까요?
다시금 존경심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사회사업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저 자신이 갈고 닦아야 할 부분에 대해서 성찰하게 되었습니다. 학문하고, 수련하며, 이웃 관계를 주선하는 일에 보다 초점을 두어야겠습니다.
드림한누리공부방 신정은, 김현주 선생님
드림한누리공부방은 나눔의집 산하의 지역아동센터 격의 시설입니다. 그러나 제가 지금껏 보아왔던 지역아동센터와는 조금 달랐습니다.
우선 신정은 선생님께서는 이곳이 지역아동센터라고 불리기를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공부방이라 불리기를 원하셨습니다. 센터라는 말 자체가 낙인이 될 수 있다는 것에 주의하셨습니다. 복지요결에서 배운 정명의 중요성이 떠올랐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이곳이 아이들에게 늘 열린 공간이길 바랄 뿐, 정해진 스케줄을 가지고 아이들을 관리하는 공간이 되지 않길 바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언제든 아이들이 피곤하면 와서 자고 씻고 먹을 수 있는, 학원이자 놀이터이자 집과 같은 자연스럽고 편안한 공간이 되길 원하셨습니다.
공부방 한쪽 벽면에는 <4차 개정, ‘평화협정’>이라는 제목으로 아이들이 직접 정하고 만든 규칙 수십 가지를 크게 적어놓은 종이가 붙어있었습니다. 처음에는 ‘규칙을 없애자’는 것부터 시작해서, ‘이대론 안 되겠다’는 것을 아이들 스스로 느끼고서 규칙을 정하니 백 몇 가지의 규칙이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이후 줄이고 줄이는 과정을 반복하며 4차 개정 끝에 마침내 평화협정이라 불리는 지금의 규칙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아이들 스스로 규칙을 제정하고 고쳐오는 과정은, 이곳의 아이들이 ‘자기 삶의 주체(혹은 그렇게 되어 가고 있다)’라는 점을 잘 반영한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제가 맡은 단기사회사업이 아이들이 자기 삶의 주체가 되는 바탕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해왔습니다. 그래서 선생님께 규칙 만드는 과정에 대해 심화 질문을 드렸습니다.
아이들이 규칙을 지키지 않을 때 어떻게 대응해야 하며, 새로운 규칙을 만드는 과정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여쭤보았습니다. 머리를 얻어맞는 것 같은 답변을 들었습니다.
“(규칙을) 너무 잘 지키면 애가 아니잖아요.”
그렇습니다. 규칙 조금 지키지 않는다고 큰일 나지 않습니다. 제가 성장해온 과정을 조금만 생각해봐도 알 수 있었는데 왜 저는 그걸 미처 생각하지 못했을까요?
물론 안전과 같은 사항에 대해서는 절대 타협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만, 그 외에는 규칙은 규칙일 뿐입니다. 아이들이 아이들답게 성장하려면 규칙에 너무 얽매이는 것이 좋지 않을 것 같습니다.
특히 규칙을 벌의 기준으로 삼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겠습니다. 양심껏 지키도록 하고, 어겼을 때는 규칙을 다시 한번 읽게 하는 정도로 끝내야겠습니다. 신정은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규칙을 지키지 않는 것), 그건 그거대로 또 아이들한테 성장의 기회일 거예요.”
아이들이 스스로 성장할 수 있도록 잘 거들어야겠습니다. 섣불리 판단하고 아이들의 모습을 제멋대로 변화시키려 하지 말아야겠습니다.
관악드림타운 관리사무소 김남희 소장님
김남희 소장님은 선의관악복지관에 대한 칭찬과 실습생에 대한 격려로부터 대화를 시작하셨습니다.
아파트 특성상 어렵고 소외된 이웃들이 많은데, 아무리 관리사무소에서 신경을 쓴다고 하더라도 ‘지역사회 연계’가 없다면 할 수 있는 복지가 없다고 합니다. 관리사무소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유관 기관과의 연계뿐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한 측면에서 선의관악복지관이 이 지역에서 정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며 칭찬 감사해주시고, 이곳에서 실습하게 된 저희에게도 자랑스러움을 가져도 된다고 북돋아 주셨습니다.
또한 주민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그 자세와 마음가짐에 관해서도 이야기해주셨습니다.
- 이곳 주민들에게 ‘피해 의식’과 ‘가림막’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당황하지 말 것.
- 그럼에도 즐겁고 기쁜 얼굴로 대할 것.
- 그리하면 언젠가는 진심이 통하고 그분들 가슴 한편에 남아있는 따뜻한 구석을 발견할 수 있을 것.
유념하여 실천해야겠습니다.
은천제일교회 이석원 목사님
“우리 교회 옥상에서 하면 되겠네요. 옥상 뷰가 또 상당히 좋아요”
“우리 교회 주차장에서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얼마든지 미리 얘기해주세요.”
“우리 교회 본당 이용할 수 있어요.”
“우리 교회 접이식 의자 많아요.”
“우리 교회 식당 이용할 수 있겠네요.”
이석원 목사님을 만나 뵈며 복지요결의 한 구절인 ‘묻고 의논하고 부탁하기는 복지가 넝쿨처럼 뻗어 나가게 하는 요술’이라는 대목이 절로 생각났습니다. 단지 어떤 사업을 할 계획인지 말씀드리기만 했는데도, 어떤 공간을 내어주십사 부탁하지 않았는데도, 교회의 이곳저곳을 내어주려는 목사님의 모습에서 ‘어떻게든 도움을 주려는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진귀한 경험이었습니다. 이 동네는 정말 요술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적어도 제가 그동안 경험해온 세상, 대학교와 그 밖의 울타리에서 접한 사회에서는 ‘어떻게든 도우려는 사람’보다는 ‘어떻게든 손해 안 보려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왜 성현동에는 유독 이렇게 좋은 이웃들이 많은지 혼란스러울 정도였습니다. 이는 이 동네만의 분명한 강점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강점을 잘 살려 쓰고, 유지 강화하는 데 일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을 인사를 통해 얻은 깨달음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마을 어른들은 어떻게 하는 것이 사람다움, 사회다움을 이루는 것인지 몸소 체득하고 알고 계십니다.
2) 묻고 인사하고 부탁하기의 중요성과 그 방향을 재확인하였습니다.
3) 각자 삶의 다양한 형태, 다양한 방식으로 ‘복지를 이루는 사람’입니다.
첫댓글 예진 선생님 글 읽으니 우리에게 이야기 나눠주시던 동네분들 목소리가 옆에서 들리는 것 같아요.
"각자 삶의 다양한 형태, 다양한 방식으로 '복지를 이루는 사람'입니다."
공감이 돼요.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방법으로 복지를 이루는 동네 성현동.
그런 성현동에서 한달동안 함께하게되어 신납니다.
같이 힘내봐요. 응원할게요 예진 선생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