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글은 조선일보사 발행 월간 산 2020년 1월호에 실린 필자의 산행기입니다.
올해 직장생활 30년째다. 4인 가족의 외벌이 가장으로서 가족 생계를 위해 불철주야 직장에 얽매여 일하다 보니 갖가지 크고 작은 업무스트레스에 시달리곤 한다. 세상에 거저 되는 일은 없다고 했듯 직장에서 소정의 봉급을 받는 일을 하다 보니 스트레스가 생기지 않을 수는 없다. 업무로 혹은 인간관계로 받는 스트레스를 적절하게 풀며 살아가는 것이 지혜로운 처신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휴일이 돌아오면 과도한 직장생활에서 받은 심신의 스트레스를 풀려고 걷기운동을 하거나 가까운 바다나 산을 찾아 맑은 공기를 마시며 휴식을 하는 버릇이 들어 있다. 혼자 갈 때도 있고 가족이나 친구와 갈 때도 있다. 휴일에 조용한 곳에서 쉬거나 살랑살랑 걸어 다니면 스트레스가 풀리는 것은 물론이고 몸도 튼튼해지고 정신은 한결 개운해진다.
지난 휴일엔 집사람과 함께 집에서 자동차로 한 시간 거리의 ‘부산 치유의 숲’을 다녀왔다. 여행 내지는 산행을 겸해서 다녀온 부산 치유의 숲은 내게 또 다른 즐거움과 행복을 주기에 충분했다.
부산 치유의 숲은 부산시 기장군 철마면 산 180-2 장년산(해발 240m) 일원에 2년 전 부산시가 27억 원의 예산을 들여 조성했다. 치유의 숲은 153만㎡에 달한다. 부산대가 학술림(대학이 산림 자원보호와 육성을 위해 조성한 연구 용도의 숲) 부지(101만㎡)를, 기장군이 군유지(임야·52만㎡)를 무상으로 제공해 만들게 됐다. 부산시가 전반적인 숲의 운영과 관리를 맡고 있으며, 부산대의 학술림 기능은 그대로 유지돼 있다.
그곳을 찾으면 숲길을 천천히 걸으면서 지친 일상의 피로나 권태를 풀 수 있다. 숲속 곳곳의 치유마당과 풍욕장, 숲속 명상터, 솔바람 쉼터 등 심신 치유에 아주 효율적인 공간이 다양하게 조성돼 있다. 60대의 차량을 댈 수 있는 주차장과 숲 문화센터, 학술림 연구동, 방문자센터 등도 건립돼 있다.
부산 치유의 숲에는 소나무 종류와 참나무 종류가 많고 그 밖에 산초나무, 상수리나무, 때죽나무, 생강나무, 오리나무 등 다양한 종류의 나무가 분포돼 있다. 계곡 형 치유의 숲이어서 대부분의 길이 경사가 완만하여 유아나 노약자도 쉽게 오르내릴 수 있다. 도심에서 접근성도 상당히 좋아 휴일은 물론이고 평일에도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또한 이곳은 상수원보호구역이어서 외부의 오염원으로부터 차단돼 숲 전체가 청정자연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숲길을 따라 흐르는 계곡의 맑은 물을 따라 걸으면 1급수에만 서식하는 강도래를 볼 수 있고 계곡 근처에서는 호랑나비, 박각시나방, 장수풍뎅이 등 여러 곤충도 엿볼 수 있다. 주변 숲에서는 딱따구리, 딱새, 물총새, 큰유리새 등 다양한 조류도 만날 수 있다.
부산 치유의 숲에는 피톤치드, 음이온, 산소, 햇빛과 같은 자연치유 인자들이 가득하다. 굳이 질병 치료를 받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심신의 피로 해소와 휴양, 생활습관 개선 등 신체와 정신의 건강을 원하는 사람은 언제든지 찾아 산책하며 지친 몸과 마음에 활력을 채울 수 있는 곳이다.
우리 부부는 집에서 간단하게 도시락과 물, 간식을 준비해 배낭에 넣고 아침 일찍 집을 나서서 목적지에 당도했다. 정확하게 한 시간 걸려 10시에 도착했다. 자동차를 안전하게 주차하고 숲으로 들어갔다. 치유의 숲엔 벌써 사람들이 수십 명 찾아와 삼삼오오 짝을 이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걷고 있었다.
나는 아내와 이런저런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며 걸었다. 소문처럼 그윽한 곳이었다. 산새가 지저귀고 계곡물 소리는 음악처럼 들렸다. 바람이 살랑거리니 시원하기 이를 데 없었다. 산길은 완만하고 무성한 나무들은 그늘을 지어줘서 덥지도 춥지도 않아 산책하기엔 안성맞춤이었다. 심신에 잔뜩 깃든 피로나 스트레스 따위는 한여름 뙤약볕의 얼음처럼 시원하게 녹아나는 기분이었다.
적당히 걷다가 알맞은 장소에서 자리를 펴고 도시락과 간식을 먹었다. 시장이 반찬이라고 했듯 출출한 뱃속이어서 밥과 김치, 조미 김을 곁들인 식사는 꿀맛이었다. 아내도 밥맛이 아주 좋다며 평소보다 많이 먹었다. 밥을 먹고 나서 간식으로 과일과 과자를 추가로 먹었다. 나무그늘에서 먹으니 신선이 부럽지 않았다. 시간이 이대로 멈추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주변엔 심신의 힐링을 위해 숲을 찾은 다른 사람들도 음식을 먹느라 야단이었다. 숲에는 일체의 인위적인 소리는 거의 없었다. 산새소리, 계곡 물소리, 매미소리, 바람소리만 들렸다. 가끔 일부 산행객의 휴대전화기 소리가 들릴 뿐이었다. 자연의 소리는 역시나 심신을 안정시켜 치유하는 능력이 뛰어났다. 점심을 먹은 뒤에 조용하게 앉아 쉬니 속세에서의 갖가지 번뇌나 오욕칠정은 부질없다는 느낌이었다. 욕망이나 고집 등은 부릴 이유가 없어 보였다.
아내도 살림하고 가족 내조하느라 크고 작은 번민이 뇌리를 짓눌렀는데 치유의 숲에 오니 몸과 마음이 가뿐해진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좀 더 자주 오자고 나를 다그쳤다. 비록 집에서 거리가 좀 멀긴 하지만 틈틈이 부산 치유의 숲을 찾아 건강을 다지고 일상의 무료함을 달랠 생각을 하게 됐다.
기장 장년산 치유의 숲에서 충분하게 휴식하고 발길을 집으로 향했다. 숲에서 보낸 시간은 그야말로 행복했고 말 그대로 한 첩의 보약을 먹은 느낌으로 작용했다. 하늘마저 맑아 기분은 상쾌하기 그지없고 몸은 새털처럼 가벼웠다. 내일부터 직장일도 잘 되고 부부금실은 한층 더 두터워질 것 같았다. 휘파람으로 트로트 노래를 흥얼거리며 귀갓길에 들어서 자동차 페달을 살며시 밟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