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동의 사죄(赦罪)
한 입 베어 물고 버려진 배(梨)를 주워담아가며
칩입자의 도망 길 따라가는 할아버지를 스쳐 지난다
"느자구없는 놈들 잡히기만 해 봐라!"
화풀이로 삭이는소리가 들려온다
전날 밤 서너 명이 탱자나무 울타리를 뚫었었다...
이곳은 과수원 들어서기 전에는 드넓은 논, 밭이었다
계절따라 놀잇감과 먹거리가 많았고
가운데 두렁은 동천가는 길목이라
주인과의 사이는 웬수나 다름없었다
밭 이랑 숨바꼭질에 쑥대밭 만들어 놓고
모닥불에 보리 태워 손바닥에 비벼서 먹었다
보리피리 꺽어 불며 종달이 높이 올리고
신나리 합창하며 동천으로 향한다
지금도 종달새 소리는 구수한 그리움이다
밭에 있는 가지, 토마토의 절반은 꼬마들 몫이다
노란 벼 한 줌 훑어 참새가 되었고
학교 숙제는 추수 끝낸 후 이삭줍기라
편 가른 삼태기 싸움은 해 떨어지는 줄 몰랐다
보름날 밤 쥐불 놀이로 작은 우주를 만들었다
불 깡통 높이 던져 흩어지는 불꽃은 예술이라
마지막 불씨 모아 높이 쌓아 놓은 노적가리에 불 지피면
솟구치는 불꽃은 달빛에 스며들어 한 폭의 수채화
어느 날
논밭에 묘목이 심어지고
탱자나무 둘러쳐 과수원으로 변해 가면서
또 다른 악연의 시작이라...
탱자나무 밑동 자치기 한다며 잘라내고
울타리 구멍 뚫어 밤중 서리 하다가
모퉁이를 향하여 소락데기 지르는데
"만복 할배 배 따가요..."
시커먼 물체가 질주해 온다
숨죽여 기다리다 잽싸게 빠져나와
준비해 놓은 탱자줄기로 구멍을 막아버리면
가시에 처박은 까뭉이 제 命대로 못살게 해주고
동네 반대편으로 물러간다
뒷날 아침 궁금증에 이곳을 지나면
콩닥콩당 맘 졸임도 괜찮고
궁시렁 화난 소리도 한 재미였으니
악동을 이웃한 할배 팔자라...
이제 탱자나뭇길 주변은 흔적없이 사라지고
아랫 논 차지하고 있는 순천 시립도서관 앞마당
조 만복 할아버지 흉상에 고개 숙이니
아! 그 아래 찬란한 시절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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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와 手筆
찬란한 시절 (惡緣)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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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4.21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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