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jnilbo.com/2019/09/01/2019090117314791460/
교육의 창>매뉴얼의 노예들로 성평등학교가 가능한가?
배이상헌 효천중 도덕교사
학생의 민원이 제출되었다. 도덕수업시간 교사의 발언과 수업자료로 제시된 영상자료가 매우 불편했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민원에 따르면 ‘위안부 할머니는 일본군에게 스스로 가서 몸을 팔았다.’, ‘여자를 꼬시다가 안되면 강간하면 된다’라는 말을 했다고 하니 그게 도덕수업인가? 패륜수업이고 패륜교사임이 분명하겠다. 더구나 2학년 학생 전체를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십여 명의 학생이 민원의 제기내용과 똑같은 교사발언과 영상자료의 문제를 드러내고 있으니 민원의 사실근거는 충분히 확인되는 것 아닌가.
해당 교사가 광주학생인권조례의 제정자문위원이고 학생인권운동과 성평등교육을 다년간 실천했던 교사라지만 어쩌겠는가. 스쿨미투는 시민사회의 관심이 쏠리는 가장 뜨거운 감자, 성희롱·성폭력 문제를 가지고 사안의 경중을 헤아리고 사람에 따라 달리 적용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학생들이 수치심과 모욕감을 느꼈다면 교육부의 ‘학교내 성희롱·성폭력 대응 매뉴얼’은 이를 명백히 성희롱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아동복지법 제17조’의 2.아동에게 성적 수치심을 주는 성희롱 등의 성적 학대행위, 또는 5.아동의 정신건강 및 발달에 해를 끼치는 정서적 학대행위 등에 해당하는지 법적인 심판을 받을 이유가 충분한 것 아닌가 말이다.
결국 시교육청의 성인식개선팀은 해당 교사의 성희롱 사유를 근거로 담아 수업배제와 수사의뢰를 통고하는 공문을 완성한 후 민주시민교육과장과 정책국장, 교육감의 결재를 거친 후 학교로 발송한다. 학생의 설문신고를 확인 후 단 하루 만에 신속하게 집행을 끝마쳤다. 이날이 7월9일이다.
그런데 다음날 황당한 상황이 발생한다. 해당 교사가 가·피해자 분리조치 차원에서 지시된 수업배제를 거부하고 팀장에게 항의전화를 한다. 그리고 자신이 억울하다고 생각되는 항변을 페이스북에 그대로 공개해버린다. 지금껏 이런 경우는 없었다. 다음은 당시의 항의내용이다. *전체 학생에게 진행된 수업인데 다수 학생의 기억을 확인하지 않은 채 단지 십여 명의 학생만으로 사실근거를 확정하는 것이 옳은가? *교과수업이면 교사의 발언과 영상자료가 교과서의 어느 부분과 관련한 것인지 확인하였는가? 해당 교과서를 펼쳐보지도 않고 상황을 판단하는 것이 말이 되는가? *성윤리·성평등단원의 수업이 학생에게 미치는 불편함이나 수치심의 특성에 대해 도덕교과 장학사나 교과전문가에게 조언을 구한 바는 있는가?
‘교원의 지위향상 및 교육활동 보호를 위한 특별법 시행령 제7조’는 교원에 대한 민원의 경우 교원에게 소명기회를 반드시 주고, 교원의 수업활동을 존중해야 함을 명시하고 있는데 왜 교사에게 최소한의 확인을 하지 않는가?
시교육청의 성인식개선팀 장학사는 ‘피해자를 위한 기관이기에 우리는 교사의 말을 듣지 않는다.’라고 명확히 선을 그었다. 교사는 ‘내 편이 되어달라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성희롱 사안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최초 절차가 너무 미흡하다.’고 항변한다. 교사의 항변이 페이스북을 통해 여기저기 알려지면서 7월22일에는 30여 지역교사들이 교육청을 항의방문 했다. 이날 결재권자인 이재남 정책국장은 영상자료가 부적절하다고 답변했으며, 교사들은 부적절함의 여부는 장학의 관점에서 토론될 문제이지 성희롱범죄로 수사의뢰할 사안일 수 없다고 맞섰다. 정책국장은 단지 위의 매뉴얼대로 한 것일 뿐이며 어쩔 수 없었다고 답한다.
결국 시교육청은 24일 해당교사를 직위해제 처분하는데 답답하게도 다음날 외부전문가들이 포함된 해당학교의 성고충심의위원회는 이번 사안이 성희롱에 해당하지 않음을 만장일치로 결정한다.
7월29일 전국도덕교사모임 대표단은 광주에 내려와 기자회견과 항의방문을 통해 광주시교육청의 교권침해와 교육활동 침해행정을 규탄한다. 성윤리·성평등단원에서 학생의 불편만을 앞세워 교사를 수사의뢰하는 광주의 행정이 일반화된다면 전국의 모든 도덕교사들은 교과서의 해당 단원의 수업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날도 이재남 국장은 매뉴얼대로 한 것일 뿐 어쩔 수 없다고 답한다. 학생이 불편을 호소하는 부분의 교육과정 관련성이나 교사발언의 진위여부 자체에 대해 교육청은 판단할 수 없으며 오로지 경찰에 수사의뢰하는 것이 매뉴얼이라는 것이다. 매뉴얼과 상식수준의 합리적 판단절차는 왜 대립되는가? 매뉴얼의 문제인가? 아니면 매뉴얼을 운용하는 실무력의 문제인가? 교육과정과 교수활동에 대한 전문적 판단을 부여받은 교육청은 왜 그 부분마저 수사기관에 판단을 떠넘기려 하는가?
설상가상 유명 여성학자들이 영상자료 ‘억압받는 다수’를 성차별을 설명하는 빼어난 자료라고 평가하는 칼럼이 여러 언론에서 발표되고 프랑스의 영화감독이 자신의 영화를 변호하는 편지를 보내기까지 하였다. 그리고는 ‘성평등교육과 해당 교사를 지키는 시민모임’까지 결성되었다.
광주시교육청은 언제까지 모든 판단을 포기하고 매뉴얼대로 했다는 이야기만 반복할 것인가? 매뉴얼은 복잡한 과정과 절차에 대한 간편한 해설이기에 충분히 유용하다. 또 매뉴얼은 대강의 합의된 절차이므로 관료에게 쏟아지는 책임추궁을 회피하기에도 유용하다. 하지만 2차대전 당시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거대한 희생도 매뉴얼만 맹신했던 아이히만 같은 성실하고 당당한 관료로 인해 가능했음을 기억하자.
매뉴얼이 대화와 소통을 회피하는 이유여서는 안된다. 특히나 사회체제에서 의사나 변호사 등 전문직들에게 매뉴얼은 당연히 친근한 것이나 한편으론 경계해야 할 것들이다. 환자의 이야기를 자세히 듣기보다는 증세를 분류하여 매뉴얼대로 처방만 하려는 의사, 의뢰인과 구체적으로 소통하기보다는 사건의 통례에 따라 매뉴얼대로만 대처하려는 변호사 등을 생각해보라. 한 사회의 전문직은 그 사회의 질적 수준을 입증하고 국가 수준의 복지를 대변한다. 매뉴얼대로만 하면 최소한 욕을 먹지 않는다고 최소한의 보신만 전전긍긍하는 전문직들이 그 사회를 얼마나 초라하게 만드는지 분명한 일 아닌가.
학교는 학생,교사,학부모,지역사회 등 다중의 주체들이 다양한 전통과 절차로 상호협력하는 공간이다. 그곳의 소통과 갈등이 어찌 몇몇의 매뉴얼로만 풀리고 설명될 것인가? 매뉴얼이란 본디 계속 진화하는 것이지만 그것은 매뉴얼의 노예가 아닌 매뉴얼의 주인들이 거니는 마을에서 가능한 일이다. 스쿨미투, 성평등의 학교사회를 개척하는 리더십도 바로 매뉴얼 주인들의 아름다운 활약에 근거하지 않겠는가? 인권의 도시 광주에 누가 되지 않는 광주시교육청의 아름다운 마무리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