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람일자 : 2017. 9.13.
개인 페북에 쓴 일상글이라 아마도 점잖으신 분들이 보기엔 불편할 수 있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헛.헛.
위탁보호시설에서 자란 아이가 엄마의 편지를 통해 찾게 된 아버지가 난쟁이였다. 왕따와 거짓말, 회피와 방황속에서 갈등하다가 결국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려는 찰나에 또다른 사실이 밝혀졌다. 둘은 친자관계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아이는 난쟁이 아빠를 선택했고, 보호시설의 친구들과 화해하고 행복한 생활을 그려나간다.
훌륭하다. 감동적이다. 아름답다.
그런데 울고 싶지 않았다. 울고 싶은 장면이 많았음에도 울기 싫었다.
너무 낭만적인게 흠이야.
헬조선과 비교되게 영화속에 나오는 독일사회의 면면이 매우 부럽다는 게 문제다. 젠장.
톰(난쟁이)은 번듯한 직업(조정 선수)을 가졌다. 안정적이고 탄탄한 사회생활을 해나가며 소수자를 인정하는 멋진 팀웍의 친구들을 가졌다. 일상생활에서 마주치는 성인들은 그래도 겉으로나마 "난쟁이"라는 단어를 금지어로 인식하고 자기 검열하는 문화의식과 예의범절을 가졌으며, 대다수의 시민들은 톰이 난쟁이라는 이유로 차별과 배제를 경험하지 않게 하기 위해 자신의 말과 행동을 조심하고 또 조심한다.
난쟁이라고 조롱하고 혐오하는 미성숙한 청소년들과 성인들도 분명히 있다. 그러나 그들조차도 독일사회안에서 함부로 행동하지는 못하며 아이든 어른이든 결국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고 사과하는 태도를 보인다. 추후에 그들의 인격이야 어떻든간에...
아... 참 성숙한 나라다.
헬조선에선 난쟁이하면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떠오른다.
무얼 다른 상상을 할 게 있나? 시골장터에 가면 엿장수로 만나거나 한물간 서커스에 등장하는 게 전부이다.
한국에서 [아이레벨]같은 스토리는 절대 나올 수 없다.
난쏘공에서 난쟁이의 딸은 아마 매춘부가 되지 않았나?(기억이 가물가물...)
그러나 독일이라고는 해도 나는 계속 의심과 반격의 질문이 계속된다.
- 톰이 가난했다면? 빈곤했다면? 아이는 그래도 톰을 선택했을까?
- 톰은 몸만 장애를 입었지 그밖에 다른 모든 것들은 정상범위이다.
남자어른. 인성 좋음. 안정된 직업. 자부심. 아들을 키울만한 재력. 좋은 친구들. 뭐가 부족하지? 나라도 선택할만 하네. 진심...
- 결국은 중산층 계급의 사회도덕성, 인권존중, 낭만적 사회변화 같은 걸 꿈꾸기 위한 장치가 아닌가?
- 배려, 소수자 존중, 혈연관계를 벗어난 가족의 탄생 같은 바람직한 신화를 만들고 감동받고 싶은 욕구의 실현은 아닐까?
이렇게 계속 흠집을 내고 싶은 것이다.
젠장... 진심.. 나는 각박한 한국사회의 심상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헛.헛.
그래도 나는 계속 묻는다.
빈곤속에서도 바람직한 선택은 가능할까?
한국식 서사라면 예전에 보았던 난쟁이 가족의 다큐가 떠오른다.
부모도 난쟁이, 아이들도 난쟁이. 서커스를 하며 서로 갈등과 상처도 있지만, 한국사회 현실에서 그래도 고단함을 이기며 생존을 위해 아둥바둥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물론 그걸 보는 나는 동정이나 연민 이외에 다른 감정이 떠오를 여지는 없었다. 그들에게 동정이나 연민이 얼마나 끔찍한 것일까.
그럼에도 그것만이 전부다. 한국식 이해의 스토리는...나로써도 어떤 방식으로 이해하고 생각할지에 대한 어떤 교육도 성찰도, 경험도 한 적이 없었기에.... 구차한 변명이지만. 그게 사실이다.
한국사회에서 경험한 건 그런 것이니까.
의심하면 의심할수록 한국이라는 나라가 비참하다.
보고 배운 게 없는 하찮은 땅에서 비굴해지는 개인인 내가 싫다.
어떻게 하면 독일같은 시민의식을 갖게 되는 걸까.
나는 부정의에 대한 촛불의식보다,
사람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사려 깊은 그들의 태도가 무척 부럽다.
사소한 말실수 하나에도 자신을 검열하려는 정말 아주 사소한 사람들의 표정과 말투, 행동, 그 태도가 넘나 부럽다.
정의에 가득차서 옳음을 방패삼아 누구에게랄것 없이 목소리만 높이 세우는 사람들의 왕왕거림이 참말로 너무 피곤한 한국사회라서 그렇다.
솔직히 나는 그 어떤 논리의 정의파 인권파보다, 사소하게 내 옆의 누군가의 상처를 돌보는 작고 작은 속삭임같은 기대임이 좋다.
사람에 대한 관심과 예의, 배려와 존중을 표현하는 태도가 하나하나 쌓여서 정의를 이루어 간다고 나는 생각한다.
정의가 먼저가 아니라, 사람이 먼저다.
약자에 대한, 상처입은 사람에 대한 상황과 배경을 살피는 데에 항상 어떤 조건과 목적성, 필요성을 먼저 따지는 한국사회의 모오든 맥락은 참으로 피곤하다. 피곤하다. 피곤하다.
사소한 것들을 존중하지 않기에, 한국사회는 아직 멀었다.
난쟁이 톰.
그가 가난쟁이, 난쟁이, 톰이었다면, 좋았겠다.
그럼에도 미히가 아빠로 톰을 선택했다면 더 없이 좋았을 거다.
가난의 연대, 약자의 연대, 불합리한 조건들간의 연대.
새로 만난 아들에게 좋은 침대와 방을 선물할 수 있는 부자 아빠가 아니라, 술먹고 깽판치다가도 부둥켜 안고 '네가 있어줘서 고맙구나' 라고 울부짖는 불쌍한 아빠를 차마 선택할 수 밖에 없는, 다 자란 어른아이가 수둑룩 빽빽히 많은 나라가 대한민국이어서 슬프다. 젠장...
첫댓글 살짝 스치고 지나갔던 부분들까지도 꼼꼼하게 생각하게 해주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