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시>
진달래 피는 사이 외 2편
강빛나
사량도 기슭에 진달래가 피었다는 소식에 이어 그 봄의 입꼬리를 물고 아버지 목단꽃빛으로 쓰러지셨다 서울에서 420km를 달리는 동안, 아버지를 뒤따르는 엄마의 심장소리가 진한 울음으로 진동을 계속했다 마음이 먼저 남해안을 달리고, 낙지 한 뭇이 딸려왔다 무뎌진 다리를 타고 목까지 휘감는 낙지들의 곡예, 남해와 목선도 딸려왔다 아버지의 검붉은 장딴지는 주낙을 감았다 풀고, 뭍으로 부친 땀 냄새가 아스팔트 위에 번졌다
진달래는 피었는데,
바다 속 터널 같은 401호실
사방에 푸른 멍울의 파도가 들썩이는데, 침대 한 칸을 차지하고 바다를 마감한 아버지는 식솔들을 떼어내고 갯벌 위에 누우셨다 작년에 부친 꽃무늬 가방이 엄마와 함께 생기를 잃고 의자에 앉아 있다 외길 걷던 아버지, 부쩍 보고 싶다는 전화 목소리 봄 가운데 웃고 있는데, 언제쯤 저 꽃 가방은 나갈 수 있을까 시들던 꽃목이 힘을 주고 있다
뭉게구름 벙글어지듯이
여름을 닮아 속심이 든든한 그녀는 물돌이로 커가는 감자꽃을 좋아했다
5월 감자꽃을 생각하면 가난의 성장통이 쉽게 지나가고, 꽃이 피기 전에 유전을 자르면 실한 엉덩이처럼 꽃은 밭고랑을 꽉 채우고도 남았다
그녀는 꽃을 그대로 두면 웃자라 내성천의 보슬보슬한 감자 맛을 잃기 쉽다고 했지
인간의 생각이란 어쩌면 중심보다 중심을 살짝 비껴가는 부푼 꽃 색이 좋아서,
펼치면 조금 감추고 싶은 이력서처럼 백사장은 감자 꽃잎이어서, 그 속에 노란 들판을 꿈꾸기도 하지
복사열에 꽃잎이 느슨해지면 통나무다리를 세워 공중에 오르고, 고무대야에 앉아 물미끄럼 타는 생각에 빠지기도 하는데, 땅을 밀고 올라오는 바지랑대에 눈길이 닿는 그녀와 나는 닮은 곳이 없지만
자른 감자 꽃대를 몇날며칠 식탁 위에 놓으면 꽃잎은 뭉게구름 벙글어지듯이
땅 한 평 빌려주고 일수 놓는 걸음으로 장마가 오가는 사이, 감자는 그녀를 꼭 닮아 버릴 데 없이 야물었다 잘라야 할 때, 딱 자르면 속 썩을 일이 없는 걸까
항상 오른쪽에 가방을 메고 같은 자세로 살아가는 그녀는 다른 방향으로 생각을 틀 시간이 없어 자르는 일도 구름 타듯 하지
그녀가 장터에 감자를 팔고 온 밤은 배추, 열무 모종을 생각하지 서른다섯 시간으로 쪼갠 하루지만 늘어진 여름 물돌이에 발을 담그고, 가끔은 육지 속의 섬을 자처해 보는 것
정수리에서 이마로 향하는 땀방울을 짚어보는 일이지
파문
누가 던졌을까
강물 위에는 수백 번 떨림이 있고
그 아래에는 안간힘으로 버티고 선
결의 자기장이
수억의 흔들림 잡고 있다
이 곤고한 파동이 계속 될 동안
바닥까지 내려간 돌멩이는
정작 한 번도 짚어 보지 못한
강물의 수심을 알아 차린다
깊이를 안다는 건
만날 수 있는 경계를 안다는 것
물의 깊이가 깊을수록
사방 경계벽이 없다는데
어디로도 발이 닿지 않는 나는
허물지 못한 축의 거품을 쓰고
돌멩이가 남기고 간 흔적을 지우고 있는 것이다
어느 날, 베링해를 회유한 내 사랑하는 연어가
모천母川의 기슭을 거스르고 거슬러
이 수북한 돌멩이를 통과해 올 때까지
내 어리석은 날들은 수면水面 속에 입술을 묻고
내가 내게 던진 경고에
다시 한 번 파르르 떨 것이다.
<신작시>
장마의 일 외 2편
강빛나
네 지하가 순식간 불은 빗물에 첨벙거리면
여름의 시작이었다
만날 때마다 눅눅한 짜증이 끈적였지만
상관이 없었다
복숭아를 세 박스쯤 먹고서야 더위를 끝내는 나는
털 알레르기가 있다는 너의 체질이 궁금했다
어쩌면 한 그루 실과를 보면서도 닮은 곳이 없어서
지루하지 않겠구나 생각했다
번번이 날씨를 빗나간 외투 없는 천도복숭아 기분 같은
네 겨드랑이에서 물비린내가 올라온다는 상상을 하면서
그 밤부터 나무의 등 쪽을 바라보았다
집을 나설 때마다 네 입에서 곰팡이 포자가 터졌다
너는 적당한 수분의 아빠와
까칠한 단맛의 엄마와
만나도 아직 만나지 않은 반대편의 나 같았다
기억하는 후각은 비리고 물이 고인 발처럼 칙칙했다
그래도 너였으므로
난생 처음 뭉근한 진흙에 발목을 뺏기고도 무섭지 않았는데
잦은 비에 싱거운 복숭아를 베어 물고 너를 보러 간 날
등 뒤에서 폭풍 접영으로 달려오는 하마 같이
그렇게
절망은 검고 단단한 뿔로 오래 남을 줄 몰랐다
말 달리자
밤낮 침대에서 TV리모컨이 깜빡이고 주무르던 팔이 아프다 버석한 서로를 겹친다 차라리 역마살이 좋았어 오래 달리기에는 채찍이 필요 없겠네
비릿한 숨소리가 오가던 마방은 힘을 잃고, 참을 수 없이 가벼운 애인을 태우고 달리던 말발굽소리 다 어디로 갔을까, 발기가 몸의 길을 빠져나가고 있다
제자리걸음이잖아
쉼 없는 칠요일이 꿈속에서 자주 출근을 한다 너덜너덜한 발굽 신이 떨어진다 몽골이나 제주도에서 살았어야 했다고 이제는 달려도 힘이 나지 않는다고,
여보 러닝화 좀 바꿔 줘, 한 목소리가 시트 밑으로 기어들어간다 방에서 발가락은 손이 된지 오래, 임산부 배 같은 밤이 아침, 한낮 모두 같아져 심줄 불끈한 날보다 입이 둥둥 떠다닌다
제발 그 입 좀 닫지
하품하다 딸려 나온 눈물을 쓱쓱 남의 다리에 문지르다 스무 번째 자세를 뒤척이는 말띠 남자의 고개 숙인 변명이 내일을 걷고 있다
물텀벙 그 여자
물메기가 올라왔다
부레 속에 남해 한 쪽이 흐르고 무릎 젖은 그녀가 웅크리고 있다
손 바쁜 저녁 식구들이 허겁지겁 입을 벌렸다 후루룩 넘어가던 미끈한 껍질은 목울대를 지나 바다를 감아 올렸다
듬성듬성 무 하나로도 시원해질 수 있었던 그녀의 겨울, 밥상에서 사라지지 않았던, 물렁하게 풀어져야 제 맛 나는 빈 구석은 텀벙, 버려지고 밀려나면서 자리를 잡았다
땡볕 아래서 체중이 줄어들던 물메기처럼 그녀는 병실에 누워 서서히 말라가고 있다
물메기국 한 그릇만 먹어봤으면, 다리를 움찔 오므리면서, 밥상으로 다가가면서 홀쭉해진 가슴에 물기가 돈다
힘겹던 저녁이 길어진다 입맛 도는 순간이 목에 걸려 눈물로 밥을 후루룩 만다 등 푸른 그녀의 흔적을 찾아 남해로 남해로 기억의 지느러미를 퍼덕거리며, 간신히
<에스프리>
최초의 기억이 머무는 곳에서부터
강빛나
1. 최초의, 그때
인간에게 ‘최초’란 말은 어떤 의미를 지닐까? 처음으로 사랑을 한 날, 처음으로 시를 알게 된 날, 처음으로 친구와 이별한 날 등 처음은 서툴지만 우리에게 호기심과 열정과 다짐이 공존하는 때일 것이다.
“시를 쓰려거든 그때로 돌아가라, 사랑이든 세상에 대한 분노든 처음으로 자신이 가장 힘들고 아팠던 때로 돌아가라. 그것이 최초의 기억이다.” 나탈리 골드버그(Natalie Goldberg)의 선언처럼 내가 가진 최초의 기억을 더듬는다.
꼴을 먹인 소를 가장 편편한 나무 그늘 밑에 묶어 두고 내려오면 교실 창문으로 나를 지켜보던 눈망울
부둣가에 앉아서 어딘가로 떠나고 싶은 소녀가 있었다. 그리고 더 깊숙이 들어가면 한 몸처럼 교감하던 어진 소의 눈망울이 보였다. 맑고 선해서 눈곱 밑에 굳어있던 눈물자국을 닦아주고 싶었던 소. 오빠가 중학교로 진학하면서 잠깐 동안 내게 소의 풀을 먹이는 일이 맡겨졌다. 학교 수업이 끝나기 무섭게 앞산 언덕으로 달음질쳐 올라가면 소는 나보다 먼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얼굴 한 번 쓰다듬어 주면 답례하듯 내 손등을 핥아주었다. 말하지 않아도 깊게 통한다는 의미를 그때 알았을까? 조막손으로 풀을 몇 가닥 뜯어 입에 넣어주면 마냥 행복해 하던 모습이 지금도 선명하게 다가온다. 그런데 철부지 소녀에게 맡겨진 소는 양껏 풀을 뜯어 먹었는지 알 수 없는 게 문제였다. 해가 어스름 내려앉으면, 그때를 기다렸다는 듯 곧장 소를 몰고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아버지께 고삐를 인계하고 나면 그날의 임무는 끝난 것이었다. 산에서 친구들과 소꿉놀이하며 노는 것이 좋아서 소를 보지 않고 금세 다른 것에 빠졌던 생각을 하면 왜 이렇게 명치끝이 아려올까? 그때 나의 소는 배고프지 않았는지 몰라. 물론 아버지께서 저녁마다 여물을 삶아 소에게 주는 것을 보긴 했지만 말이다. 내가 지닌 사랑은 늘 주면서도 상대에게 허기를 안겨주는 것 같아서 돌아서면 미안해질 때가 있다. 아마도 유년의 길목에서 소에게 다하지 못한 마음 한 구석이 심리로 작용한 때문이리라.
이렇게 소에 대한 이야기를 서두로 나의 시는 최초의 기억을 탄생한다. 처음의 사랑처럼 순수하고 서툴러서 마음을 무한해제하고 싶을 때면 소와 교감하던 어린 날의 그 장소로 돌아가는 것이 내 안의 시발점이다.
2. 요동
통영의 많은 섬들 중 ‘사량도’에서 태어나고 자란 나의 마음은 늘 바다를 그리워한다. 섬을 떠나온 지가 언제인가 싶게 세월의 덮개가 두꺼워져 가는데도 기억의 기울기는 바다로 향해 있다. 마음이 울적할 때나 삶의 기운이 빠질 때면 바다의 출렁임을 보러 간다. 펄떡이는 물고기들의 움직임을 보고 나면 마음 한구석이 충만해진다. 영락없는 섬사람의 기질이다. 몸뻬 바지 차림새에 어판장 한가운데서 생선 배를 척척 가르고 있는 아지매의 뚝심 좋은 근성이 나는 좋다. 어떤 미사여구도 덧붙이지 않은 삶의 리얼리티가 그 속에서 꿈틀거리고 있다.
칸칸이 얼린 바다가 꽉 찬 신호를 보내면
문어 낙지 조개가 알몸으로 나와
육지로 떠날 준비를 한다
냉동실에는 객지로 보낸 아들. 딸들 먹이려고 칸칸마다 싱싱한 해산물을 얼리는 부모님의 사랑이 들어있다. 그 마음이 바다를 건너 자녀들에게 전달돼 오면 부쩍 철이 들기 시작한다. 바다는 내 아버지의 하룻밤 생사가 달린 곳이고, 손마디가 굵어진 곳이며, 우리들의 책 읽는 소리가 아버지 가슴을 꽉 채운 곳이다. 그러면서도 마음껏 건너갈 수 없는 장벽을 만드는 곳이기도 하다. 쉽게 가 닿을 수 없어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항상 바다를 끼고 빙빙 돈다. 이 그리움의 무게는 갯벌 속에 박혀 있어 캐내고 캐내어도 끝없이 나오는 조개 꿈으로 탄생한다.
바다 속 터널 같은 401호실
서방에 푸른 멍울의 파도가 들썩이는데, 침대 한 칸을 차지하고 바다를 마감한 아버지는 식솔들을 떼어내고 갯벌 위에 누우셨다
나의 시가 흘러가는 방향을 따라가다 보면 만나는 지점은 늘 바다다. 그 바다는 내 아버지의 수고와 한시도 마음을 놓지 못한 어머니의 걱정이 떠다니는 곳이다. 또한 친구 같았던 ‘소’를 떠나보낸 곳이다. 나는 수시로 부둣가에 앉아서 알 수 없는 미래와 건너가지 못한 세계를 궁금해 했다. 그러한 호기심을 발견하고 키워준 분이 중학교 국어 선생님이셨다. 시가 뭔지도 모르는데 시를 좋아하게 만들어 주셨다. 유일하게 마음을 표현하기 좋았다고나 할까.
3. 끝없는 변주곡 선상에서
“이미 준 것은/잊어버리고/못다 준 사랑만을 기억하리라/나의 사람아”
중학교 때 김남조 시인의 시 중에서 ‘너를 위하여’라는 시를 접했다. 그 따뜻함의 정조와 운율적 리듬이 나의 가슴에 깊은 울림을 주었다.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라면 그렇게 해야 할 것 같았다. 그것이 인연이었을까? 김남조 시인의 남편인 故김세중 조각가의 미술관인 ‘예술의 기쁨’에서 시인 등단식을 했었다. 뒤늦게 찾아온 시의 길이지만 사람의 운명이라는 것이 이토록 신기하고 놀랍다는 것을 그 장소를 보고 다시 한 번 실감했다.
그렇게 김남조 시인으로부터 시작된 시의 길은 조금씩 다양한 색을 칠하면서 변주를 거듭한다. 새로운 감각이 와 닿으면 골수를 쪼개는 번뜩임이 있어서 좋다. 정체되지 않고 흘러가는 강물처럼 유유히 흐르다가 바다에 이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어느 날, 베링해를 회유한 내 사랑하는 연어가
모천(母川)의 기슭을 거스르고 거슬러
이 수북한 돌멩이를 통과해 올 때까지
최초의 그때로 돌아간다.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발동하던 그 부둣가에서 펜을 잡는다.
강빛나
통영 출생, 단국대대학원 문예창작학과 박사 수료
2017년 미네르바로 등단, 제2회 예천내성천문예공모 대상 수상
현 계간 미네르바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