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지겨운 슬픔
-〈킬링 디어〉가 비극인 이유
●아가멤논의 딜레마와 더 악화된 딜레마 〈킬링디어〉
○아가멤논의 딜레마 :
트로이 정벌에 나서는 아가멤논과 아가멤논의 군대를 막아선 아르테미스는 출정을 방해하는 역풍을 순풍으로 바꾸려면 딸 이피게네이아를 희생 제물로 바쳐야 한다.
트로이 전쟁이라는 공적 대의를 포기할 것인가? 사랑하는 딸을 포기할 것인가
○킬링 디어의 딜레마
술을 마시고 수술을 하다가 의료 사고를 낸 의사 스티븐(아가멤논)
사망한 환자의 아들인 마틴(아르테미스)
내 결여를 네가 메우라 당신이 내 아버지가 되어야 한다.
나와 동일한 결여를 너도 갖추라. 내가 아버지를 잃었으니 당신도 가족 중 하나를 잃어야 한다. 가족 중 누구를 잃을 것인지 스스로 선택하라
★복수 : ‘같은 경험’을 인위적으로 생산해 내는 기획
피해자가 겪은, 겪고 있는, 겪어가야 할 아픔, 고통의 양과 질 그대로를 가해자가 알아야 한다.
●교육으로서의 복수
한계 가해자 본인의 자발적 역량만으로 그것이 가능하지 않기 때문
‘타인의 슬픔을 똑같이 느낄 수 없음’이라는 인간의 근원적 무능력
피해자는 이 한계를 고통스럽게 절감할 때 가해자를 교육하려고 한다.
○교육으로서의 복수 두 단계
1단계 레벨테스트
당신은 하루아침에 남편과 아비를 잃은 모자의 슬픔을 이해할 수 있는가? ‘이해’의 문제?
2단계 맞춤형 교육
이해할 수 없으면 정확히 동일한 상실을 경험함으로써 그 슬픔을 배워 보라
●슬픔을 공부하는 심장
○고통을 통한 배움의 의미
고통 뒤에는 깨달음이 있다
고통 없이는 무엇도 진정으로 배울 수 없다.
○비참한 소식
타인의 슬픔 같은 경험과 같은 고통만이 같은 슬픔에 이를 수 있다는 비참한 소식
○더 비참한 소식
우리가 그런 교육을 통해서도 끝내 배움에 실패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 그 교육이 하나의 생명으로서의 내 존립을 위협하기라도 한다면.....
자신을 유지하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함, 하나의 생명체라는 것 이것은 거부할 수도 박살낼 수도 없는 인간의 조건이다.
인간에게 특정한 결함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가 바로 결함이라는 것. 그러므로 인간이 배울만한 가장 소중한 것과 인간이 배우기 가장 어려운 것은 정확히 같다. 그것은 바로 타인의 슬픔이다.
●이 글을 읽으면서
1)통장에 29만원 밖에 없다던 전직 대통령이 자꾸 생각이 났다. 그 사람은 왜 그럴까? 인간이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생존이 위협 당할 때 배움이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더 비참한 소식이 이해가 되었다. 그래서 우리가 슬픔을 공부해야 한다는 설득도 함께...
2)저자는 책머리에서 경험(세월호 사건이라는 공적인 날짜와 아내의 수술이라는 사적인 날짜에서 느꼈던 이유)으로 인해 슬픔에 대한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결심을 하게 된 계기 또한 공감이 가는 내용이었다. 내가 자주 경험하고 확인하는 일이므로...
인간은 심장이다. 심장은 언제나 제 주인만을 위해 뛰고, 계속 뛰기 위해서만 뛴다. 타인의 몸 속에서 뛸 수 없고 타인의 슬픔 때문에 멈추지도 않는다. 타인의 슬픔에 대해서라면 인간은 자신이 자신에게 한계다. 그러나 이 한계를 인정하되 긍정하지는 못하겠다. 인간은 자신의 한계를 슬퍼할 둘 아는 생명이기도 하니까. 한계를 슬퍼한다면서, 그 슬픔의 힘으로 타인의 슬픔을 향해 가려고 노력하니까. 그럴 때 인간은 심장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슬픔을 공부하는 심장이다. 아마도 나는 네가 될 수 없겠지만, 그러나 시도해도 실패할 그 일을 계속 시도하지 않는다면,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말이 도대체 무슨 의미를 가질 수 있나. 이기적이기도 싫고 그렇다고 위선적이기도 싫지만, 자주 둘 다가 되고 마는 심장의 비참. 이 비참에 진저리 치면서 나는 오늘도 당신의 슬픔을 공부한다. 그래서 슬픔에 대한 공부는, 슬픈 공부다.
타인의 슬픔에 대해 ‘이제는 지겹다’라고 말하는 것은 참혹한 것이다. 그러나 평생 동안 해야 할 일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슬픔에 대한 공부일 것이다.-졸고〈책을 읽으며〉, ≪눈먼 자들의 국가≫ 문학동네.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