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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과정을 통해 내일을 봅니다.
문예준
중학교를 자퇴하고 은둔형 외톨이로 보낸 시간 3년, 샨티학교에서 보낸 시간 2년 6개월, 샨티학교를 졸업하고 학교에 더 머물며 청년과정을 시작한 지 2년째 슬슬 그 마무리가 눈앞에 다가왔다. 사회에 나가 하나의 톱니바퀴로 살아가야 할 나의 미래에 큰 우려가 예상되지만, 이제는 사회로 뛰어 들어가야 할 때인 것 같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준비가 아직 덜 됐다고 느끼지만, 이제는 정말 샨티를 보내주어야 할 때인 것 같다.
2023년으로 샨티학교 4년 차에 접어들었다. 학생으로 2년 있었고, 졸업한 뒤 보조교사로 2년을 더 보냈다. 보낸 시간만큼 나의 경험치는 쌓여갔고, 경험치가 쌓여갈수록 피로도 함께 쌓여갔다. 4년 동안 많은 것을 경험하고 배웠지만, 어떻게 성장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무언가를 배우는 사람에게 어떻게 대해야 할지,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람에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등, 많은 것을 배운 것 같지만, 이 이상으로 무엇인가를 배웠다고는 말 못 하겠다. 그래도 분명한 건 많이 성장했다는 것이다.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 차이점, 변화
알고 있는 사람은 아주 잘 알고 있는 나의 과거는 긍정적임과 거리가 많이 먼 편이다. 그때 당시 인생에서 느낄 수 있는 부정적인 감정의 60%를 다 맛본 것 같다. 우울함에 찌들어 매일이 자해의 연속이었다. 물론 나의 감성적인 부분이 문제였다고 스스로 생각한다. 이때의 나를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미친놈’이었다. 제정신이 아니었던 삶을 되돌아보면 미친놈 같았다. 과거의 나를 실제로 마주쳐도 미친놈이라 생각할 것 같다. 사회 불안장애, 사회공포증이 너무 심했을 때 이야기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타인의 시선에 신경을 너무 많이 써서 생긴 부수적인 문제라고도 생각한다.
과거의 나는 모종의 사건으로 매우 소심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 눈치를 보며 행동, 말 하나하나에 조심스러워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를 좋게 봐주길 원했던 것 같다. 나에 대해 좋게 생각해 주길 바라며 배려라는 이름의 욕망을 채우려 했던 것 같다. 때문에 이에 대한 스트레스도 정말 거대했다. ‘나를 나쁘게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나를 친구로 써 안 받아주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을 하며 스스로를 절벽으로 내몰았다. 결국 우울증으로 진단받고 사람의 시선이 두려워 일상생활을 하지 못했다. 이 일을 뒤로 산티학교를 다니게 되면서 점차 좋아졌다. 과거의 나는 이런 사람이었다. 스스로를 상처 입히며. 별것도 아닌 것에 의미를 부여해 자신을 괴롭혔다.
물론 과거는 묻어가는 것, 지금은 나의 많은 부분이 바꿔있다. 스스로 착각하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예전만큼 사회가 엄청 두렵지 않다. 예전엔 스스로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두려움을 느꼈다면, 지금은 어느 정도 조절할 수 있을 정도의 두려움만 남아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타인의 시선에 신경을 많이 쓰지 않게 되었다. 과거 자신의 문제점이라고 생각되는 ‘타인의 시선에 너무 많이 신경 쓰는 것’을 어느 정도 인지하여 스스로 개선하고 싶었기 때문에 일부로 타인의 시선을 너무 의식하지 않으려 한다. 그래서인지 나를 ‘눈치 없는 인간’으로 보는 경우가 종종 생기는데, 이때마다 성취감을 느낀다. 어찌 보면 남의 눈치를 안 보겠다는 나의 계획이 대성공한 것이니 말이다.
약간은 극단적인 방법이라 생각하지만, 의도적으로 상대방의 시선에 신경을 안 쓰니 너무 삶이 편했다. 비록 오해는 받아도 그만큼의 가치가 있는 편함이었다. 눈치가 없어 생기는 오해와 문제점도 있었지만, 자해하면서까지 스트레스 받으며 타인의 눈치를 챙기는 게 더 힘들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냥 눈치 없는 인간이 되어 살아가기로 했다. 병적으로 타인을 너무 많이 신경 쓴 경험이 있다 보니 옛날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 마음에 더욱 적극적으로 타인의 눈치를 살피지 않은 부분도 있다.
타인의 눈치를 보지 않는 삶의 장점이 하나 있다면 타인에게 얽매이지 않고 살다 보니 자신에게 더 집중할 수 있고, 스트레스 받을 일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온전한 자신을 발견한 느낌이라고 설명할 수 있겠다. 자신의 삶에 타인의 의지가 조금도 없다 보니 자신이 원하는 것을 보다 선명하고 분명하게 바라볼 수 있다. 나는 이것이 강신주 철학자가 말한 ‘자유란 무엇인가’에서 나온 ‘자유’라고 생각한다.
모든 것이 맞아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강신주 철학자가 말하는 “자유(自由)와 이상(理想)”에서 “이상(理想)이 외부로부터 주어질 때가 타율(他律)이라면, 내가 정할 때가 바로 자율(自律)이다.”에서의 자율이 내가 느끼고 있는 자유가 아닐까 싶다.
사회로 나가며 기대되는 것, 걱정 되는 것
본론부터 말하자면 기대되는 것은 바뀐 나의 모습에 자신감을 얻어 사회에서 잘할 수 있을 것 같아 약간은 기대가 되고, 걱정되는 것은 막연한 앞날, 사회에서 잘할 수 있지에 관한 걱정거리가 좀 남아있다.
앞에서 말했듯 과거 나는 아주 우울해했었고 사회에 대한 공포를 가지고 있었지만, 이제는 옛날만큼 사회에 대한 공포를 가지고 있지 않을뿐더러, 공포를 이겨내는 방법을 약간은 깨닫게 된 것 같아, 조금은 앞으로의 미래에 희망과 기대가 생긴다. 과거의 나는 사회에 나가는 것이 너무 두려웠다. 정확하게는 사람이 두려웠다. 사회에는 정말 다양하고 많은 사람이 존재하니 말이다. 난 아직도 그들이 두렵다. 한번은 “내가 왜 그렇게 사람을 두려워하지?”라는 생각에 고민해 본 결과, 중학생 때쯤 친구에게 상처를 많이 받아 그런 것 같았다. 이것이 나만의 문제가 아닌 친구의 문제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중학생 시절 나도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어쩌면 친구가 나에게 상처 준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지금 나의 모습은 많이 달라졌고, 예전에 문제로 인식하지 못한 점을 지금은 인식하여 개선하고 고쳤다. 때문에 사회에 나가서도 잘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과거 샨티학교에서 학교생활에 지쳐 남도현 선생님과 상담하던 때가 기억나는데, 그때 당시 선생님께서 나에게 이런 말씀을 해주셨다. “예준아, 너는 가시를 두르고 있는 채로 사람을 안아달라는 것과 같아, 이 말이 무슨 의미인 줄 알겠니?” 당시 이 말이 어떤 의미인지 나는 알지 못했지만, 지금은 이 말이 뭘 의미하는지 알 것 같다.
난 아직 사회가 두렵다. 예전에 비해 성격이 많이 달라져 어느 정도 기대되는 점은 있지만, 이것에 큰 희망을 품지 않고 있다. 기대에 부풀려진 풍선이 터지면, 그만큼 실망의 후폭풍이 거대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 쓰러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을 정도의 실망을 감당하기 위해서 스스로 기대를 잘 안 하려 한다. 그래서 딱히 기대는 안 한다. 솔직히 기대할 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누군가 나를 위해 준비해 주는 것도 아니고, 스스로 일을 찾아 떠나는 것이 사회라고 생각하기에 걱정 많이 가득하다. 하지만, 하나의 가능성은 생각해두고 있다. 일이 잘 풀렸으면 하는 최고의 시나리오, 알바 또는 일을 하며, 좋은 사람을 만나 경험치를 쌓아가고, 쌓은 경험치를 활용할 수 있는 최고의 시나리오 말이다.
산티아고를 걷는 첫날은 정말 죽고 싶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다리에 힘이 붙고 걷는 게 쉬워지니까 자신감으로 가득한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때 당시에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3일에 걸쳐 갈 수 있는 거리를 2일 만에 갈 수 있을 것 같아 실행해 옮겼는데 별 탈 없이 해내었다. 이때 느낀 “하면 할 수 있다.”를 사회에서 다시 느껴보고 싶다. 처음부터 조금씩 하나, 둘 해내다 보면 사회에서도 문제없이 생활할 수 있다고 믿는다. 너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샨티학교, 청년과정
올해 보조 교사로 한 일을 뽑자면 캠프 기획 및 진행, 장기 이동 여행 학습 정도가 되겠다. 이외 자잘한 것도 있을 텐데 기억이 안 난다. 올해는 작년보다 교사라는 것에 얽매이지 않았던 것 같다. 그냥 보조교사 직을 맡은 인간으로 살았던 것 같다. 작년에는 교사에 얽매여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었는데, 올해는 작년과 다르게 물 흐르듯 그냥 살았던 것 같다. 작년의 삶을 되뇌어보면,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던 것에 의미를 부여해가며 스트레스 받았었던 것 같다. ‘교사라면 어떻게 행동해야 하지?’, ‘교사로서 학생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등의 의미 있는 생각을 하며 행동과 말에 신중을 기했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냥 평소대로 인격을 존중하며 학생을 한 명의 인간으로 대하면 되는 것이었는데, 뭣하러 그렇게 생각을 하며 스트레스 받았었는지, 지나간 과거에 아쉬움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무엇에 그렇게 쫓기며 살았나.” 지금 생각해 보면, 처음이어서가 아니었을까. 비록 보조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만큼 쉽게 보이고 싶지 않았었던 것 같다. 학기 초에 중학생들이 많이 들어와 규칙을 어기는 것도, 말을 해도 듣지 않았던 것도, 계속 설명해야 했던 것도, 많이 지쳐 예민해 더더욱 교사 업무에 집중했던 것 같다. 단, 처음이었기에 그 방식이 너무 서툴렀던 것 같다. 이미 지나온 시점에서 아쉬움을 느껴도 바뀌는 것은 없지만, 난 아직 그때 당시의 자신의 모습이 많이 아쉽다. 서툴러서 아쉬운 것은 아니다. 처음 해본 일을 더 잘하기 위해 자신을 채찍질했던 나의 모습이 아쉬운 것이다.
그런 나의 모습에 스스로 지쳐 결국 번 아웃이 왔었다. 이대로 가다간 샨티학교가 망하기 전에 내가 먼저 튕겨 나갈 것만 같았다. 그리하여 2023년도에는 마음을 가볍게 하고 학교에 다니기로 했다. 따라 마음이 편안해졌고 위에서 말했듯 변화가 조금씩 찾아왔다. 물론 중요한 업무를 할 때 부담감과 긴장감은 있었지만, 마음을 편하게 지니고 있으니 어느 정도 일 처리가 부드럽게 진행되었던 것 같았다. 학생을 대할 때도 편하게 뇌를 거치지 않고 말하게 되니 너무 자유로웠다. 물론 몇몇 사람은 이런 나의 모습에 불편함을 느끼기도 하였지만, 그건 그것대로 그들의 의견 존중하되 나의 모습은 바꾸지 않기로 했다. 그들의 입맛대로 행동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그들도 나의 입맛대로 행동할 필요는 없으니까.
그렇게 난 개인주의가 되었다. 이타 주의는 남을 우선으로 생각하고 행동하기 때문에 피곤하고, 이기주의는 내가 되기 싫었다. 무엇보다 변해버린 성격이 개인주의와 잘 맞아떨어졌다. 학기 초, 중반에 ‘미생에 담긴 성장과 관련된 동기부여가 가능한 인지발달 도식(schema) 연구’ 그리고 ‘정의란 무엇인가?’의 글을 쓰며 알게 된 개인주의가 지금의 나를 만든 것 같다. 덕분에 지금은 자유롭게 타인에게 얽매이지 않으며 편안한 삶을 살고 있다.
장기 이동여행 학습 (프랑스)
2023년 장기 이동 여행 학습으로 나의 두 번째 여행이 시작되었다. 올해는 프랑스와 산티아고로 가게 되었다. 프랑스에선 최현주 선생님의 지분인을 통해 함께 지내며 일손도 도와드리고 현지 학생들과 어울리는 시간을 가졌다. 현지 학생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아 내가 직접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았다. 아이들이 수업 기획 및 진행하고, 나는 그런 그들의 안전 또는 돌발 상황에 대처할 수 있도록 한 발짝 뒤에서 감독하는 식이었다. 사전에 이것을 방침으로 정하진 않았지만, 이렇게 하는 게 산티 아이들이 좀 더 성장하기 수월할 것 같다고 생각되어 이 방식을 선택했다. 물론 나의 주관적 가치관과 연관된 개인적인 생각이다. 하지만, 프랑스 국가는 교사와 학생이 같이 어울려 노는 식의 수업이 일반적인 분위기였다. 그래서인지 프랑스 현지 아이들은 한 발짝 물러나 있는 나를 이상하게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솔직히 말하면 그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엇, 왜 저 사람은 저 뒤에 있지? 우리랑 같이 놀기 싫은가?’ 같은 시선 말이다. 적대적인 느낌은 아니었지만, ‘엇’이라는 궁금증의 눈빛은 느껴졌다. 그리하여 프랑스 수업 분위기와 내가 생각하는 가치관 둘 중 어느 것을 채택해야 할까 고민했었다. “프랑스에 왔으니 프랑스에 따르는 게 맞지만, 마음으로는 나의 방식을 따르는 게 맞는 것 같아”라는 고민을 많이 했었다.
꼬리에 꼬리를 물어 “기왕 프랑스에 왔는데 프랑스의 방식을 채택하는 것도 아이들에게 좋을 것 같기도.. 하지만, 이동 여행 학습은 놀러 온 게 아니라서 프랑스 방식은 이동 여행 학습의 본질에 어긋나는 것 같은데..”라는 생각과 “왜 프랑스 수업 방식은 이동 여행 학습의 본질에 어긋나는가?”라는 생각까지 할 무렵, 그냥 생각 없이 내 마음이 조금 더 끌리는 방식을 채택하기로 했다. 원칙을 정하지 않고 때마다 하고 싶은 것을 하기로 말이다. 현지 학생들과 대화하고 싶어지면 말 한 번 걸어보고, 그러다 보면 같이 웃으며 떠들기도 했다. 나는 그렇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현지 아이들에게는 아니라고 생각할지도.. 확실한 것은 틀을 벗어던지니 마음도 편해지고 학생들과의 관계도 나름 개선된 느낌을 받았다.
난 항상 틀을 만들어 놓고, 틀 안에서 행동하는 방식을 선호했다. 앞으로의 미래에 계획을 세워 벗어나지 않도록 틀을 맞추는 게 안전하고 이상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미래에 대한 가능성은 예측할 수 없으니까. 하지만, 프랑스에서 느낀 점을 계기로 틀을 만들어 행동하는 것이 항상 좋고 옳은 방식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틀이 아무리 견고해도 다른 사람에겐 한 명의 생각일 뿐이니까. 또한 앞으로 다가오는 미래에 아무리 대비를 해도 예측할 수 없는 변수와 가능성은 항상 존재하니까. 그래서 난 예측할 수 없는 변수를 즐기기로 했다. 스트레스 받으면서까지 막을 수 없는 것을 막으려 하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행동인지 이제는 아니까.
대안학교
학교에는 두 가지 신분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이는 학생과 교사로 이루어져 있는데, 일반적인 학교에서는 이 절대적인 신분 앞에 보이지 않는 선이 존재한다고 느낀다. 학생은 교사의 밑이라는 암묵적인 선 말이다. 예를 들어 교사 앞에서는 욕을 하면 안 된다든지, 복도에서 떠들고 있었는데 교사가 나와 이들을 지켜보면 눈치채고 뿔뿔이 흩어지는 것처럼 말이다. 어쩌면 어른과 아이 사이에 생기는 예의 일 수도 있겠다. 나 또한 어른에게 또는 어른 앞에서 욕을 사용하는 것은 도리에 어긋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말끝마다 시발을 붙이며, 습관적으로 욕이 배어있는 사람은 많다. 그리고 난 이것에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욕이 가져다주는 불쾌감, 불편함이 너무 싫었다. 우리 샨티 학교에 다니는 불특정 다수도 욕을 많이 사용한다. 한때 이것에 정말 스트레스 많이 받아서 하루는 이것 때문에 참다 참다 화도 냈었고, 습관적 욕설이 왜 안 좋은지에 대해 설명해 주는 영상까지 보여준 적이 있다. 하지만, 바뀌는 것은 없었고, 나의 스트레스는 쌓여만 갔다.
그러던 어느 날, 욕설을 사용하는 데 있어 학교에서 문제가 불거질 즘, 채수영 선생님께서 학생들에게 이런 말씀을 해주셨다. “일반학교에서는 교사 앞에서 욕하는 거 꿈도 못 꾸는데, 대안학교에서 교사랑 학생이 욕하면서 대화하는 게 얼마나 대안학교스럽냐”라는 맥락으로 말씀하셨던 것이 기억난다. 채수영 선생님의 말씀을 들은 이후로 생각에 잠겨 왜 내가 욕설을 들으면 기분 나빠했는지 정리해 보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욕이 가져다주는 불쾌감과 불편함 때문이라는 것, 어쩌면 욕설이 가져다주는 느낌 혹은 이미지 때문에 기분 나빠했을 수도 있겠다. 간단히 욕설의 정의만 보면 ‘남의 인격을 무시하는 모욕적인 말.’이라 생각하는데, 남의 인격을 존중하지 않는 점에서 거부감을 느껴 불쾌감을 느낀 것 같다. 근데 이상하게도 채수영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생각을 정리한 뒤로 욕설을 들어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의 욕설이 반갑게 느껴졌다. 항상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불특정 다수의 욕설이 항상 듣기 거슬렸는데 채수영 선생님의 말씀에 나도 넘어간 것처럼 느껴졌다. 채수영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내용에 적극 동의해서일까, 아니면 욕설을 바라보는 채수영 선생님의 시선이 부러워서일까, 나도 모르게 새로운 시선에 눈을 뜬 기분이었다. 이일을 뒤로 욕설로 스트레스 받는 경우가 현저히 적어졌다. 욕설로 인해 스트레스 받는 경험이 무색해질 정도로 말이다.
내가 욕설로 인해 스트레스 받은 경험이 무색한 이유는 욕설을 사용한 이들이 반드시 나쁘다고 생각한 자신이 부끄러웠다. 욕설의 의미가 나쁘니 욕설을 사용하는 사람을 나쁘게 생각하는 현상은 자연스러운 것이라 생각한다. 일종의 섭리이니까. 살인은 나쁜 것이니 사람을 죽인 사람은 나쁜 것이다. 그럼 사람을 죽인 사람은 반드시 나빠야 하는, 한 명의 악인으로서 살아야 하는 것일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범죄를 저지르는 행동은 분명히 잘못되었지만, 그것과 별개로 그 사람 자체의 모든 것을 나쁘다고 판단해선 안된다고 생각한다. 이는 선한 행동도 마찬가지이다. 봉사를 했다고 해서 그 사람의 모든 것이 반드시 선해 야만 한다면 그것 또한 분명한 오류가 있다. 범죄를 저질러 항상 그 사람이 죄인으로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니고 이타적으로 행동했다고 해서 항상 이타적으로 살 수 없듯이 말이다.
그러나 나의 태도는 위 말과 다르게 욕설을 사용한 이들을 한 명의 악인으로 바라보고 있었던 것 같았다. 욕설하는 사람에 대해 매우 부정적으로 생각했으며 그런 그들의 행동을 이해하긴커녕 내 입맛대로 바꾸려고만 했으니까. 채수영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매우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장기 이동 여행 학습 (산티아고)
산티아고 순례길은 2019년도 4학년이 장기 이동 여행 학습을 하러 간 곳이다. 원래 대로라면 나 또한 산티아고를 갔었어야 했지만, 정신 상태가 불안정했던 나를 캐어 하기 온전한 상황이 아니었기에 어쩔 수 없이 열외 해야만 했다. 만약 그때 산티아고를 갔었으면 교사분들을 엄청 고생시켰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장기 이동 여행 학습 기간이 끝나고 학생들이 복교했다. 그들은 산티아고 때 일을 이야기하며 학교생활을 이어갔지만, 나는 그들의 이야기에 끼지 못했다. 산티아고를 가본 적이 없으니까.
산티아고를 안 간 것에 대해 후회는 안 한다. 내가 선택한 결과이기도 하고, 앞서 이야기했듯 만약 갔으면 당시 교사분들을 엄청 고생시켰을 것이 너무 뻔했기 때문에 못 간 것에 대해 후회는 없다. 하지만, 그들의 산티아고 경험담을 들으면 조금은 부러웠다. 산티아고를 갔다 온 그들만이 가지고 있는 느낌, 감정을 가지고 있는다는 게 부러웠다. 어쩌면 이야기 속 장소에 없어 알지 못하는 느낌, 감정을 놓쳤다는 사실에 더 부럽게 느껴졌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산티아고를 가고 싶다는 나의 꿈은 점점 커져갔고, 2023년도 장기 이동 여행 학습으로 산티아고를 간다고 하여 나도 같이 따라가게 되었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었던 첫날은 정말 지옥이었다. 20km 넘게 걷는 것과 가방의 무게에 적응하지 못했을 때의 몸뚱이라 그런 줄 알았지만, 다음날이 되니 그날의 길이 몹시 가팔랐다는 것을 깨닫고, 앞으로의 모든 길이 첫날과 같은 가파른 길이 아니라는 것에 안도했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총 800km로, 그중 우리가 걷는 거리는 총 250km였다. 비교적 적은 거리이지만, 결코 쉬운 길은 아니었다. 비바람이 와도 묵묵히 걸어야만 했고, 비가 그치면 빗물로 인해 길이 잠겼다. 사람을 돌아버리게 만드는 기후가 너무 미웠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걷는 것 외에 없었다. 그렇게 매일 걷다 보니 비가 오든, 바람이 불어오든, 날씨가 춥든,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게 되었고, 걷는 게 즐거워져 버렸다.
산티아고 길에 대한 기대는 딱히 안 하고 있었다. 걷는 것 이외에 정해진 활동이 없었으니 재미있을 것 같지 않았고, 기대할 수 있는 것도 딱히 없었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매일 20km 이상 걸으며 매일 다른 풍경, 매일 다른 사람, 매일 다른 환경을 보고 경험하니 너무 재밌었다. 마치 휴대폰, 인터넷으로만 듣고 보던 여러 가지 정보를 직접 체험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분명 처음엔 해당 나라의 기후 때문에 많이 힘들었지만, 새로운 자극을 경험하고 나니 기후 따위가 나의 행복을 막을 수 없었던 것 같다.
하루하루 재미를 느끼며 미친 척 걷다 보니 목적지 마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우리의 최종 목적지는 콤포스텔라 대성당으로 마을 안쪽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더 안으로 들어갔다. 저 멀리 콤포스텔라 대성당 꼭대기가 보이기 시작했고,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이때까지만 해도 딱히 별생각 없었다. 그냥 또 다른 목표에 도달했구나 정도의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목적지에 도착하자마자 몰려오는 허무함에 가슴이 답답했었다. 지금은 시간이 많이 지나 그때의 감정을 망각했지만, 나의 일기장에 쓴 글을 보면 이런 글이 적혀있다.
‘허무하다. 다리가 아프지만, 멈추고 싶지 않다. 더 이상 갈 곳이 없다는 현실이 답답하다. 매일 20km 이상 걸으니 당연한 것일까. 울타리에 갇힌 짐승의 마음이 이런 것일까. 가슴이 꽉 막힌 기분이다. 싸인을 찾아 길, 돌, 건물을 둘러보며, 하늘, 나무, 강, 물웅덩이, 순례자를 지나며 느꼈던 성취감을 더 이상 못 느낀다는 것이 너무 답답하다. 이 자유를 다시 느끼려면 얼마의 시간을 보내야 할까.’
목적지에 도착하기 위해 걸었지만, 막상 도착하고 나니 몰려오는 허무함과 상실감이 몰려왔다. 할 것이 없어 생기는 허무함과 상실감의 감정을 이때 처음 느꼈다. 더 할 수 있는데 할 게 없는 상황, 인생을 살면서 처음 느낀 감정에 혼란스러웠다. 분명 후련할 줄 알았는데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사실이 가슴을 더 답답하게 만들었다. 지금은 당연히 시간이 많이 지나 이때의 감정이 어떤 감정이었는지 기억도 가물거리지만, 난 아직도 산티아고를 걸으며 느꼈던 성취감 맛보고 싶어 한국에 돌아온 뒤로 가끔 가방을 메고 여기저기 돌아다닌다. 일의 시작만큼 마무리와 마음의 정리까지 중요하다는 것을 몸소 깨닫게 되었다. 산티아고를 가고 싶다는 욕심에 해외 이동 여행 학습을 따라가게 되었고, 거기서 상상도 못한 값진 경험을 했다는 것만으로 만족해야겠다.
마지막
난 미래가 두렵다. 앞에서 충분히 언급했지만, 계속 반복하는 이유는 그만큼 두렵기 때문이다. 우리는 미래를 사는 게 아니니 미래를 두려워할 수밖에 없다. 변화의 시간을 기다리는 게 두렵고 버겁다면, 오늘을 즐기며 살아가는 것이 최선이라 생각한다.
샨티학교에 처음 들어왔을 때 나의 모습과 지금을 비교하면 정말 많은 것이 바뀌어있다. 가끔은 지금의 나의 모습이 어색할 때도 있다. 하지만, 지금의 내가 좋다. 부정적인 감정을 느꼈을 때, 거기서 멈추지 않고 어떠한 방식으로든 새로운 것을 찾아 헤매는 자신의 모습이 좋다고 생각한다.
확실히 샨티학교에서 4년의 시간을 보내고 많은 글을 써왔지만, 학교라는 한정된 곳에서 얻은 경험으로 글을 쓰려고 하니 소재가 다 떨어졌다. 그래서인지 이번 글에 쓸 내용이 많이 생각나지 않는다. 구차한 변명이겠지만 말이다.
드디어 긴 여정이 끝났다. 비록 청년 과정은 2년이었지만, 졸업하고 바로 뛰어든 청년 과정은 2년의 시간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당연히 아니겠지만, 청년 과정이 오랫동안 머물며 처음부터 해왔던 일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샨티학교에서 끝나는 청년 과정이 잘 믿기지 않는 것 같다. 물론 청년 과정은 멈추지 않는다. 남도현 선생님과 청년반 학생들의 의지가 꺾이지 않는 이상, 우리는 계속 앞으로 나아가지 않을까 예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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