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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밥집에서 날개를 달다
이홍사
차를 가져오지 않았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집에 모셔두었다. 차를 두고, 운동 삼아 반바지 차림으로 자전거를 타고 중앙시장으로 향했다. 초복을 지난 지 며칠 되지 않아 낮에는 햇살이 너무 뜨거워 자전거 타기가 쉽지 않지만 저녁 무렵에 구름이 조금 끼자 현관계단 난간에 체인으로 유배되어 있던 자전거를 끌고 나왔다. 약속은 중앙시장 국밥집이었다. 자전거로 겨우 이십분 걸리는 거리다. 그것도 최대한 땀이 나지 않게 천천히 달려온 것이다. 차를 가져오지 않았다는 해방감이 술의 유혹을 뿌리치기 힘들었다. 그러나 나는 내가 지닌 인내력을 테스트 하듯이 사이다만 고집을 하고 있었다. 밖은 후덥지근하고 국밥집 안은 기름때 묻은, 십년은 족히 넘었을 선풍기가 한 대 돌아가며 더운 국밥집 열기와 구수한 냄새를 휘휘 내젖고 있었다.
나이 탓인가? 잇몸이 들쑤시고 풍치가 자주 들어 한동안 끙끙거리다가 불과 열흘 전에 죽어도 가기 싫은 치과엘 갔었다. 내 발로 간 게 아니라 아내에게 끌려갔었다. 내 의지와는 무관하게 아내와 의사가 상의하고 바로 잇몸 수술에 들어갔다. 그날부터 의사의 금주령이 내려졌다. 그 금주령이 아내에겐 고소하고 마땅해 죽을 맛인 모양이다. 나는 마취가 풀리지 않은 상태에서 어금니에 거즈를 물고 병원을 나서자 말자 아내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던지며 어눌한 발음으로 말했다.
-평생 당신 먹여 살리려고 얼마나 이를 악물고 일했으면 이가 이 모양이 되었겠냐?
-하이고, 말씀은 잘도 하시네. 술 담배 좀 끊으라는 말 못 들었어요?
아내도 지지 않았다. 처음엔 오른쪽 윗부분의 어금니였다. 일주일 만에 실밥을 빼고 오른쪽 아랫부분 어금니를 잇몸과 분리해서 치료를 하고 꿰매서 고정시켜놓은 지 겨우 이틀째다. 마취는 완전히 풀렸지만 턱이 많이 부어있는 상태다. 하여 수육을 왼쪽으로만 우물거리고 있었다. 잇몸에 붙들어 매고 있는 실밥이 씹을 때마다 보통 거추장스러운 게 아니었다. 수육 맛인지 머리눌린고기 맛인지, 맛도 모르고 사이다를 소주잔에 부어 마시며 소주처럼 홀짝거리며 바로 안주를 집어 먹고 있었다. 사이다에 무슨 안주가 필요하겠냐만 나는 사이다를 소주로 생각하고 먹고 있는 참이었다. 일체유심조라고 하지 않았던가, 소주잔에 담긴 사이다를 한잔 들이키고 돼지 염통을 안주삼아 억지로 씹고, 아니 씹는 게 아니라 우물거리고 있었다. 까닥하다간 사이다에 취하겠다. 마음 같아서는 뒤가 어떻게 되던 소주 한 잔을 홀짝하고 싶지만 내가 구강 수리중이라는 사실을 아는 곰치가 소주잔이 비면 내가 소주병을 집을 짬도 없이 곧장 사이다를 채워주곤 했다.
중앙시장 국밥집으로 약속을 정한 사람은 낙지였다. 곰치 그리고 나, 낙지의 집에서 보면 중앙시장은 말마따나 중앙지점이 되는 곳이다. 나는 자전거를 타고 갔으며 낙지는 신시가지에 드물게 들어오는 시내버스를 운 좋게 타고 왔고 가장 늦게 나타난 곰치는 부근에 회식자리까지 왔다가 걸어서 왔다고 했다. 세 명이 약속하고 모인 시간은 채 삼십분이 걸리지 않았다. 대형마트에 의해 재래시장이 죽어간다며 시에서 재래시장 살리기의 일환으로 시장에 아치형의 캐노피를 설치하고 간판도 획일화시켜 재래시장 정비를 완료했지만 띄엄띄엄 보이는 손님으로 미루어 활성화되었다고는 말하기 어렵겠다.
우리들!
자주 만나는 우리는 미래문화연구소 회원들이다. 이 작은 도시에서 그래도 먹물로 자처하는 모임이다. 시인, 조각가, 소설가, 서예가, 수필가, 도예가, 문화유산해설가에 시의원도 한 명 끼어 있는 연구소 회원들인데 그 가운데서도 마음이 동하여 부정기적으로 자주 술자리를 갖는 우리의 공식명칭은 따로 없는 해물잡탕이다. 곰치와 낙지를 잘게 썰어 넣고 멸치까지 넣어서 양념삼아 우리가 벌이는 영양가 있는 토론을 첨가하면 걸쭉한 해물잡탕이 된다. 때로는 목공예를 하는 왕새우까지 합세하는 날은 주제에 비타민이 더욱 풍부해진다는 얘기다.
곰치는 나의 오랜 술친구다. 무료한 저녁이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전화로 안부를 묻곤 했다. 말이 좋아 안부전화지 한 잔 하자는 말과 진배없다. 그는 한 번도 내가 술을 먹자는 제의를 거절한 적이 없었다. 오늘도 과에서 회식이 있다고 했지만 내가 전화를 하자 한 조를 맞추라고 말하고는 그 자리를 슬그머니 빠져나와 곧장 중앙시장으로 달려 나온 것이다.
낙지로 말자면 빨리 취하는 것으로 미루어 술고래라고 표현하기는 적절치 않고 술을 하루도 거르는 날이 없는, 주류회사 사장의 우수고객으로 표창을 받아야 마땅할 인간이다. 술을 빠는 흡반을 지니고 술자리라면 악착같이 달라붙어 낙지라고 불리는 인간이다. 예전에 잘나갈 적에는 민노총 지역 사무장에다 회사에서는 노조지부장까지 지낸 인물인데 지금은 일정한 직업 없이 막노동을 하고 있다. 그가 쓴 노동시는 잘 나가는 출판사에서 시집으로 묶어 대한민국에서 노동운동을 하는 인간들이라면 그를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유명하다. 요즘은 시를 몸으로 쓰는 낙지는 독서량이 많아 잡학에 밝다. 어떤 주제가 말문이 막히지 않을 만큼 유창하게 대화가 되는 편이다.
오늘의 얘기 주제도 예사롭지 않다. 흔하지 않은 민속학을 전공하여 박사 학위를 받은 곰치는 시청 학예연구관이다. 곰치처럼 굼뜨게 행동하는 그가 맡고 있는 왕산기념관 건립공사에 대해서 얘기를 하다가 왕산 허위선생의 업적에 관해 열변을 토하고 있다. 그의 기념관을 짓는 일이 지금 곰치가 감독으로 맡은 업무다.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오래토록 만나지 않으면 안부를 묻고 나면 별로 할 말이 없는 법이다. 우리 일행은 자주 술자리를 만드는 까닭에 누구는 어떤 술을 좋아하고 누구는 술버릇이 어떻다는 것을 훤히 꿰뚫고 있으며, 만나면 바로 얘깃거리를 만든다. 때로는 지난번에 술이 취해서 중단되었던 토론을 다음 자리에 만나면 이어가곤 하기도 한다. 오늘은 왕산 허위선생이 우리들의 안주다. 곰치는 평소에는 곰치답게 과묵한 편이다 그러나 토론에 들어가면 목소리에 힘이 들어간다. 반면 멸치로 불리는 나는 어떤가? 평소에는 멸치처럼 촐싹대다가 묵직한 주제의 토론에 들어가면 과묵해질 수밖에 없다. 독서량의 부족으로 아는 바가 없기 때문이다. 그들이 벌였던 토론을 경청하다가 술자리가 끝나고 집에 와서 인터넷이든 책으로 그 인물을 찾아보곤 하는 게 고작이다. 또 내가 알지 못하는 주제를 경청하다가 술이 과하고 지겨우면 아무 때고 일어선다. 그리고는 술값을 계산하고 먼저 와 버리는, 살아서 폴짝이는 멸치처럼 진득하질 못하다.
그들의 언제 어디로 튈지 모르는 토론에 끼어들려면 사전에 공부를 해야 하는데 특히나 그들이 역사학이나 역사적 인물에 대해서 이견이 생기면 중재 역할도 할 수 없을 정도다. 내가 끼어들 수 있는 주제는 정치에 대한 얘기나 경제가 아니면 문학이 고작이다. 오늘도 곰치가 치고 낙지가 깐죽거리며 딴지를 걸고 있는 토론에 끼어들지 않고, 정정하자 끼어들지 않은 게 아니라 끼어들지 못하고 듣고 있는 입장이다. 왕산선생에 대해서 잘 아는 바도 없지만 구강상태가 좋지 않아 말은 않고 그들의 토론을 경청하고 있는 형편이다. 몰라서 토론이 안 되는 주제를 만나면 자꾸 묻기만 하여도 말상대는 되겠지만 오늘은 그 마저도 귀찮을 정도다.
국밥집에는 방이 하나 있고 가게에는 테이블이 대여섯이 놓여있다. 더운 탓인지 방은 비어있고 내가 앉은 자리에서 뒤에 테이블에서 소주를 마시는 팀들은 남녀 두 명씩, 사십대 네 명인데 보아하니 고향이나 학교 동창들로 보인다.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를 들어보니 서로 허물없이 말을 놓으며 육두문자를 섞어가며 사업인지 장사를 했던지 부도를 내고 날아버린 그 누구를 잘근잘근 씹고 있다. 아마 날아버린, 그들이 안주로 씹고 있는 자에게 금전적인 피해를 당한 여자도 그 자리에 있는 모양이다.
-네가 당한 액수가 얼마쯤 되냐?
-나는 별로 많지 않아. 그렇지만 괘씸하다. 그 자식이 청산유수라서 감언이설에 넘어간 게 괘씸하다는 말이다. 나도 미친년이지.
술자리가 무르익자 그들의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었다. 나는 그들을 돌아보지 않고 그들이 떠드는 소리와 곰치와 낙지가 벌이는 왕산선생에 대한 공방전과 어느 말도 올곧게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수육을 우물거리며 아래턱을 자꾸 쓰다듬었다. 아래턱 부분이 좀 부었고 턱 밑, 목울대는 망울이 져 있어 잇몸보다 목울대의 망울이 더 아픈 기분이 들고 신경이 쓰였다.
곰치는 첫잔을 맥주로 시작한다. 그리고는 소주를 마시다가 마지막 잔에는 맥주와 소주를 썩어 폭탄으로 마무리를 하는 주법이고 낙지는 소주로 시작해서 소주로 끝나는데 안주에 젓가락 가는 횟수에는 대단히 인색하다. 아무리 좋은 안주가 있어도 거의 깡소주 수준이다. 하여 가장 빨리 취하는 사람이 낙지다. 소주가 세 병쯤 비어갈 때면 낙지는 취한 특유의 눈빛으로 눈을 끔뻑거리며 하던 토론에 대해서 꼬리를 물고 늘어진다.
-그래서? 그래갖고? 어쩌자는 말인데?
그가 취하면 꼭 물고 늘어지는 말이다. 그 말에 내 대답은 늘 일정하다.
-그래갖고, 그만 처먹고 취했으면 집에 가자는 말이다.
이제 조금만 더 마시면 분명 꼬투리를 잡는 그 말이 나올 것이다. 낙지가 마신 소주는 이미 소주 두 병이 넘어서고 있다.
왕산선생이 서대문 형무소에 교살 당하기 직전에, 어느 여자와 붙어 계돈을 떼어먹고 행방불명되었다고?
이게 뭔 쉬어터진 소리여? 정신을 차리고 가만히 생각하니 옆 좌석의 일행들이 떠드는 소리와 곰치와 낙지가 주고받는 말이 뒤죽박죽 내 머리를 그야말로 쉬어터지게 만들고 있었다. 그 동안 나는 수육을 우물거리며 남에게는 말 못할 엉뚱한 생각에 빠져 있었다.
지난달에 질녀 상견례에서 만난 사돈일 될 여자와, 옆자리에서 육두문자를 섞어가며 떠드는 여자와 톤이 굵고 갈라지는 음성이 너무 닮아 있어서 그 질녀 사돈이 될 여자를 떠올리고 있었다.
한 달쯤 되었을까, 질녀 상견례가 있었다. 작은 형이 먼저 돌아가시고 큰형님은 천안에 계시는 관계로 작은 형수가 상견례에 같이 가자는 지원 요청을 했다. 그런 자리는 내 취향에 맞지 않지만 마다할 구실을 찾지 못하고 따라 나섰다. 상견례장소는 시 외곽에 있는 아담한 한식집이었다. 그 자리에서 도착하니 상대방 쪽에서 먼저 와 있었다. 방으로 안내를 받고 방을로 들어가 사돈이 될 여자의 얼굴을 쳐다보았는데, 어디서 보았더라....... 한참 생각해보니, 세상에 이런 일이....... 나는 속으로 중얼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 사돈이 될 여자는 바로 몇 달 전 에 콜라텍에서 사교춤에는 초보인 내 손을 잡아주었던 여자다.
콜라텍에는 딱 사흘을 갔었다. 이 나이가 되면 뭐든 운동을 해야 한다고 다들 입을 모았다. 운동도 뭐 좀 재미있는 것을 해야 한다고 해서 무도학원을 하는 후배의 사교댄스 강습실을 찾았다가 콜라텍에 갔었다.
내가 하다가 그만 둔 운동은 헤아릴 수 없다. 배드민턴은 사흘, 골프연습장은 한 달 티켓을 끊었지만 열흘을 넘기지 못했고 새벽산행은 일주일, 수영장도 일주일을 못 버티고 헬스장도 이틀, 스쿼시는 딱 한번을 갔었다.
운동에는 젬병인 내가 마지막 찾은 곳이 사교댄스 연습실이었다. 도통 스텝이 안 맞고 음악에도 몸을 실을 수가 없다고 투덜거리자 후배 녀석이 콜라텍으로 데려간 것이다. 콜라텍에서도 사흘을 못 버텼는데 후배의 소개로 그 자리에서 만나 내 손을 잡아주며 스텝을 제대로 가르쳐 준 여자가 질녀의 시어머니가 될 거라고는 정말이지 꿈에도 생각을 못 했다. 춤이란 남자가 리더를 하고 여자가 따라하면 쉬운 법인데 내가 워낙 운동신경이 발달하지 않은 초보고 그 여자가 워낙 고수라 바뀔 수밖에 없었다. 나보다 서너 살쯤 위로 보이는 여자는 내 어깨를 밀어주고 한 바퀴 돌아 내 어깨를 살짝 감싸주고 다시 내 어깨를 밀고 손을 살짝 잡아 턴을 시키고는 다시 당겨 허리를 팔로 감싸고 고개를 뒤로 젖혔다가 나를 돌려주는 기본동작에서 나는 스텝보다 내 가슴부위에 슬쩍슬쩍 와 닿는 그녀의 젖가슴에 신경이 더 쓰였다.
상견례!
말 그대로 최고의 예의를 갖추어야하는 그 자리에서 아는 척 할 수도 없었고 모르는 척 할 수도 없었고, 몸 둘 바를 모르고 옆자리에 앉은 형수님과 맞은편에 앉은 사돈이 될 그 여자의 눈치를 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시켜놓은 고급 음식을 맛도 모르고 진땀을 흘리며 코를 박고 먹다가 보니 질녀의 힐책이 날아왔다.
-작은 아버지도 뭐 말씀 좀 하세요.
-응? 나야 뭐 니들이 하자는 데로 따라가는 거지 뭐! 신랑감이 잘 생겼다.
내가 한 말은 그게 전부였다. 마주 앉은 질녀의 시어머니가 될 그 여자와 눈이 마주치는 게 너무 껄끄러웠다. 여름이 지나고 가을쯤 결혼식 날을 잡자는 내용으로 상견례는 끝났지만 지금 생각해도 멸치로 불리는 내가 그 가시방석에 어떻게 끝까지 앉아 있었는지 모르겠다. 질녀 사돈이 될 그 여자도 처음에 내 얼굴을 보고 흠칫 놀라는 눈치였으나 금세 태연해졌다. 그리고는 그 자리에서 할 말은 또박또박 다 했건만 나만은 고개를 들지도 못했으니 사교댄스에 대한 견해와 인식이 서로 달랐던 게 아닐까 싶다.
-왕산선생께서 말씀하셨지요. ‘그 자식 그렇게 삼십육계 쳐서 잘 처먹고 잘 살라고’ 하셨죠. 그 말이 명언이지.
이런 제기랄, 내가 들은 말은 곰치가 하던 말과 그 중간에 뒷좌석에서 분개하는 여자의 목소리와 섞여 들렸다. 내가 좌석을 잘못 택한 것인지 집중을 못하고 엉뚱한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지 알 수가 없다. 그렇다고 뒤돌아보고 좀 조용히 하자고 했다간 그 쪽 분위기를 왕창 깨고 말 것이다. 그쪽 분위기를 깨는 것은 괜찮지만 국밥집을 전세 낸 것도 아니고 시빗거리가 될 수도 있는 일이다.
곰치와 낙지는 그 시끄러운 가운데 아랑곳하지 않고 주거니 받거니 하며 이제 왕산의 후손들 이야기에서 기념관을 지어서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다. 왕산 후손들의 이야기만 듣고 시에서 기념 사업회를 만들어 수십억을 들여서 기념관을 짓고는 있지만 사후관리에 대해서는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고 곰치가 불평을 늘어놓았다. 사실이다. 시에서 인력을 배치할 것도 아니고 그리 유명한 인물도 아닌데 기념관을 찾는 사람이 하루에 몇 명이나 될까? 속으로 헤아렸다. 준공식은 거창하게, 많은 인원이 참석하겠지만 그 길로 곧장 애물단지로 변하고 그걸 노리는 지방신문 기자들은 기사화 시켜 민원을 재기할 것이라는 것이 곰치의 의견이다. 방법은 하나가 있다고 그는 말했다. 그곳을 도서관으로 활용하며 기념 사업회에서 관장 한명을 무임금으로 배치하고 시에서 군대를 면제 받은 공익요원을 두어 명 지원하는 방법뿐이라고 했다. 그런 방법도 괜찮지! 낙지가 맞장구를 쳤다.
이야기가 그쯤에 진행 되었을 때 국밥집에 후줄근한 사내 하나가 들어왔다. 어디서 막노동을 마치고 바로 나온 모양이다. 야구모자에 청바지, 낡은 안전화까지 신은 모양새로 미루어 공사판에서 일을 마치고 저녁 먹으로 왔음이 분명했다. 오십대 초반이거나 사십대 후반으로 보이는 그 사내는 체격이 왜소했지만 노동으로 단련된 몸매를 지니고 있었다.
-오늘도 국밥으로 말아 드릴까?
고기를 썰고 있던 국밥집의 국밥집 아줌마 같이 생긴 주인여자가 국밥뚝배기를 들어 보이며 주방에서 요리대 너머로 말했다. 단골인 모양이다. 사내는 대답 없이 고개만 까닥거리고는 물수건을 가져다가 목덜미를 닦고 있었다. 오늘은 무슨 일을 했는지 어지간히 피곤한 상이다. 나는 국밥이 한 뚝배기에 얼마인지 슬쩍 메뉴판을 훑어보았다. 돼지국밥 3500원. 메뉴판에는 그렇게 적혀 있었다. 사내는 시장부근의 허름한 여인숙에 숙소를 두고 있을 것만 같았다. 돼지국밥 한 그릇으로 저녁을 때우고 좁은 여인숙 방에서 달빛을 껴안고 세파에 시든 몸을 누일 것 같았다. 주인 여자는 마치 그가 올 것을 알고 준비라도 하고 있었던 듯이 바로 국밥과 깍두기 한 접시를 사내 앞에 올려놓았다. 사내는 무척이나 시장했던 듯이 국밥이 나오기 전에 이미 숟가락을 쥐고 있었고 국밥이 나오자 국밥 위에 얹힌 뜨거운 수육부터 퍼다 우물거리며 먹기 시작했다.
그도 이빨이 시원찮은 모양이다. 국밥을 씹는 게 아니라 우물거리고 있었다. 나는 곰치와 낙지가 벌이는 토론에는 관심이 없고 눈길을 사내에게 주고 있었다. 참! 열심히 먹는다, 고 밖에 표현할 수 없도록 주위의 시선은 아랑곳 않고 그는 국그릇에 코를 박고 우물거리고 있었다. 소주 한잔을 권하고 싶은 충동이 일었지만 사내의 자존심과 연결되는 문제라서 가까스로 참고 있는데 뒷좌석이 갑자기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이어서 곰치와 낙지가 주고받던 논쟁도 뚝 끊어지고 잠깐의 싸늘한 침묵이 유지되고 있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려 뒷좌석을 보았다.
여자였다!
뒷좌석 테이블 앞에 한 여자가 꼿꼿이 서서 허리에 양손을 받치고 씩씩거리며 한 사내를 째려보고 서 있었다. 한 눈에 보아도 폭발직전이었다. 식탁에 앉은 세 명의 남녀는 얼어붙어 있었고 한 명의 사내는 엉거주춤 일어서며 어쩔 줄을 모르는 표정이었다. 나는 무슨 영문인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씩씩거리며 서 있던 여자의 입에서 바로 욕설이 튀어 나왔다.
-어느 년이냐고? 대체 어떤 년하고 붙어먹은 거야? 이 개 같은 자식아!
-여보! 왜 이래? 고향 동기, 초등학교 동기들이라고.
-초등학교 동기 좋아하네. 초등학교 동기는 구멍이 없나? 이 자식아! 어떤 년이냐고? 두 년 다 붙어먹은 거야?
서 있는 여자는 악다구니를 쓰며 소리를 질렀다.
-여보 진정해. 왜 이래? 사람들 많은 데서.......
-진정? 내가 지금 진정하게 생겼어? 직접 목격하고 단서를 잡았는데 진정하라구?
분을 삭이지 못하던 여자는 말이 끝남과 동시에 온몸을 부르르 떨며 식탁모서리를 잡고 번쩍 들어 식탁을 뒤집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식당 주인아줌마가 그 소란에 무슨 일이냐고, 꽥 소리를 질렀다. 테이블이 뒤집어지며 와장창, 소주병과 국밥 뚝배기가 바닥에 쏟아지며 깨지고 음식물들이 앉아 있던 세 사람의 아랫도리로 쏟아졌다. 국밥이 식었으니 뒤집어 쓴 걸로 끝나겠지만 국밥이 뜨거웠더라면 중요한 부위에 심한 화상을 입었을 것이다. 앉아서 국물을 뒤집어 쓴 남자가 일어나며 여자를 달랬다.
-승기 엄마! 왜 이래요. 얘들은 초등학교 동기들이라구요. 진정하세요.
여자는 들은 척도 않자 그 남편이 여자의 허리를 감싸 안고 식당 밖으로 밀고 나가면서 달랬다. ‘여보! 집에 가서 얘기하자’ 애기 달래듯이 식당 밖으로 나가며 뒤를 돌아보고 음식물을 뒤집어 쓴 일행들에게 눈을 찡끗해 보였다. 우리는 무슨 영문인지 모르고 그저 그 소동만을 지켜보고 있었다. 식당 안은 그야말로 난장판이 되었지만 국밥을 먹던 사내, 그 후줄근한 사내는 그 소동에도 소 닭 보듯 하고는 그저 국밥을 퍼먹기에 바빴다. 술상을 엎은 여자도 이상하지만 그 난장판에 묵묵히 제 자리에 앉아 국밥을 먹는 사내가 더 이상해 보였다.
-내 이 자리에서 장사 이십 년을 넘게 하지만 이런 꼴은 처음 당한다.
국밥집 주인여자가 그렇게 말하자 여자 둘은 테이블을 바로 놓고 물수건을 가져다가 뒤집어 쓴 국물을 닦고 깨진 소주병과 뚝배기 청소를 시작했고 남은 남자가 아주 면구스런 목소리로 주인여자에게 말했다.
-아주머니! 저 친구 마누라가 의부증이 심해서요. 중증입니다. 정신병원에 있다가 지난달에 퇴원시켰는데, 아직도 저 모양이네요. 부서진 건 변상해 드리겠습니다.
주인아주머니에게 그렇게 말해놓고 우리 일행을 향해 돌아서서 허리를 구십 도로 굽히고 인사를 하며 말했다.
-소란을 끼쳐 죄송합니다. 대신에 제가 소주 한 병을 사겠습니다.
-아, 괜찮습니다. 그럴 수도 있죠.
곰치가 극구 사양했으나 만류할 사이도 없이 사내는 냉장고에서 소주 한 병을 꺼내다 우리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조금 취기가 도는 낙지가 고개를 쭉 빼고 소주병과 돌아선 사내를 번갈아 살폈다. 이게 웬 횡재냐는 눈길이었다.
-저어기....... 아저씨! 공짜로 소주가 한 병 생겼는데 한잔 하실라우?
내가 국밥을 먹느라 정신이 없는 사내를 향해 소리쳤다. 사내는 자기를 부르는지 의심하는 눈초리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소주병을 들어보였다. ‘저 말입니까?’ 하는 눈치였다.
-저 양반 말을 못해요. 그리고 술도 못하구요.
국밥집 아줌마가 중재에 나섰다. 아하! 그랬구나, 나는 무릎을 쳤다
사내는 술을 못해서 아주 송구하다는 투로 굽실거렸다. 나는 호의를 베풀었는데 보기 좋게 퇴자를 맞았다. 곰치와 낙지는 거기에 초라한 사내가 앉아 국밥을 정신없이 퍼먹고 있다는 사실을 눈여겨보지 못했던 모양이다. 내가 그렇게 그와 대답 없는 대화를 나누자 사내가 앉은 자리를 돌아보았다. 사내는 곰치와 낙지에게도 고개를 굽실거렸다. 굽실거리는 게 몸에 밴 습성 같았다.
그동안 옷을 닦고 테이블을 정리한 뒷좌석의 남자는 한잔 더하자고 두 여자에게 말했고 여자들은 그만 가자고 했지만 사내가 완강히 말했다.
-남의 장사 집에 와서 이렇게 난장판을 만들어놓고 그냥 가면 예의가 아니지! 아줌마 미안하지만 여기 수육 한 접시하고 소주 한 병 더 주세요.
여자들도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다시 자리에 앉았다.
-나는 말로만 들었는데 완전히 중증이네! 철민이 쟤 앞날이 걱정된다.
목소리가 사돈이 될 여자와 지독히 닮은 여자가 말했다.
-정신병원을 보내든가 이혼하면 되겠지만 애들이 걱정이지 뭐.
다른 여자가 되받았다.
-철민이 저놈은 잔정이 많아서 그러지도 못해.
-저래가지고 평생을 어떻게 사냐? 생지옥이 따로 없다.
이젠 난장판을 부리고 간 여자가 그들의 안줏거리로 등장했다. 그러는 동안 옆자리의 사내는 국밥과 깍두기 접시까지 깨끗이 비웠다. 그리고 일어서서 아랫주머니를 뒤적이더니 땀에 젖어 축축한 지폐를 꺼냈다. 천 원짜리 지폐는 축축하게 달라붙어 잘 떨어지지 않는 듯 했다. 사내는 지폐가 찢어지지 않게 조심스레 넉 장을 헤아려 식탁위에 올려놓았다. 주인아줌마가 눈치를 채고 잔돈 오백 원을 그의 손에 쥐어주고 국밥그릇과 지폐를 거두어 갔다. 그는 바로 일어서지 않고 앉은 자리에서 윗도리 쪼기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땀을 얼마나 흘렸는지 담뱃갑마저 축축이 젖어 얼룩져 있었다. 사내는 젖은 담배가 잘 빨리지 않는 듯 깊게 빨 때마다 볼우물이 움푹 들어가곤 했다. 아마도 어금니가 거의 없는 듯 했다. 나는 사내를 보며 부어있는 내 아래턱을 쓰다듬었다. 아래턱은 여전히 부어있어 턱 선이 고르지 못하다. 사내가 물고 있는 담배는 얼마나 급하게 빠는지 담뱃재가 활처럼 휘다가 급기야 그의 무릎에 떨어졌다. 그래도 사내는 아랑곳 않고 담배를 빨고 있다. 담배를 피운다는 표현보다 담배를 빤다는 표현이 적절하도록 깊게 빨고 있는 사내와 눈이 마주쳤다. 머쓱해진 나는 얼른 눈길을 거두었다. 그리고는 슬쩍슬쩍 사내를 훔쳐보았다. 담배를 다 피운 사내는 꽁초를 바닥으로 던지고는 발로 비벼서 껐다. 국밥집 아주머니가 담배를 다 피운 사내에게 종이컵을 들어 보이며 말을 걸었다.
-조씨! 커피 한 잔 드릴까?
그는 대답 없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일어섰다. 그리고는 나를 한번 힐끔 보고는 식당을 나갔다. 나가는 그의 등에 대고 펑퍼짐한 국밥집 아줌마가 조심하라고 인사를 던졌다. 뭘 조심하라는 말인지, 그 사내가 들었는지 모르겠다. 내가 그 사내에게 눈길을 팔고 있는 사이 곰치와 낙지의 대화는 출판기획사를 경영하고 있는 방 복덕의 이야기로 넘어가 있었다.
방 복덕!
아메리칸 스타일로 복덕방이라 불리는 그가 지금 경제적으로 위기에 처해 있다는 이야기다. 우리들 보다는 대여섯 살 아래지만 가끔 우리가 모이면 나타나 허심탄회하게 가슴을 열어놓고 술을 사는, 총애 받는 후배다. 내가 알기로는 시청에서 나오는 반상회 회보나 문화담당관실에서 나오는 인쇄물들은 아메리칸 복덕방 기획사에서 찍고 있다. 말은 안 하지만 그 유인물을 따내는데 곰치의 영향력도 조금 작용을 하는 모양이다.
-한국 경제가 바닥을 치고 환율이 이 모양인데 복덕방이라고 온전하겠어?
그 동안 침묵을 유지하고 있던 내가 한마디 거들었다. 복덕방이 언젠가 나에게 하소연한 적이 있었다. 잘 나가던 아파트의 분양 유인물이 줄어서 힘들다고, 하긴 이 손바닥만한 도시에 작년에 생긴 대단지 아파트만도 열 군데가 넘는다. 미분양으로 속출되니 신문에 끼워 넣어 보내던 인쇄물마저 끊겼다고 했다. 복덕방 이야기로 넘어가자 내가 그렇게 무겁게 닫고 있던 입을 열었는데 곰치와 낙지, 한마디 대답이 없고 눈길은 내가 아닌 뒷좌석으로 가 있었다. 뭐야? 그러고 보니 시끌벅적하던 뒷자리가 다시 조용해졌다.
돌아보니 좀 전에 난장판을 만들고 간 여자가 남편을 어떻게 따돌렸는지 그 자리에 와 서있었다.
-승기 엄마! 오해 푸시고 여기 좀 앉으세요.
남아 있던 사내가 의자를 빼서 여자에게 앉기를 종용했다. 여자는 순순히 남자가 빼주는 의자에 앉았다. 여자는 아주 온순한 양이 된 듯이 자리에 앉아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또 다시 난장판이 될까 우려했는데 그럴 일은 없을 듯했다. 아마도 사과하러 온 모양이다.
-아줌마! 여기 돼지국밥 네 개 주세요.
어느 틈에 들어왔는지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녀석들이 교복을 입은 채로 들어와 책가방을 벗어 의자에 걸며 국밥을 주문했다. 후줄근한 사내가 국밥을 먹고 간 그 자리였다. 녀석들은 네 명이었다. ‘ 어? 이 집에는 에어컨도 없네.’ 한 녀석이 말했다. 녀석은 시대적 착오를 하고 있었다. 시간이 제일 더디게 가고 시대 변화의 흐름에 한발 늦게 가는 곳이 재래시장이다. 대형마트의 배추 반쪽, 파 한줌에도 가격표가 붙어있고 바코드로 찍어 카드로 결제하는 시대지만 재래시장은 그래도 에누리가 있고 덤으로 한 줌 더 집어주는 곳이다. 이 시대에 학생들이 국밥집을 찾는다는 건, 보기 드문 현상이다. 요즘 아이들은 입맛이 변해서 다들 피자집이나 햄버거 가게로 향하는데 녀석들이 국밥집으로 들어오니 기특한 일이다.
국밥집!
나는 바로 삼십 년도 넘은 내 고교시절의 아련한 추억을 떠올렸다. 우리도 그랬다. 자주 가는 빵집이 지겨우면 이 시장바닥의 순대 국밥집을 찾았다. 우리가 입은 것은 교복이 아닌 교련복이었다. 그 때 순대국밥이나 돼지국밥 가격이 오백 원 정도 할 때였지 싶다. 지금 국밥집 의자에 앉아 있는 녀석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이 녀석들은 국밥을 먹으면 학원으로 갈 것이고 우리는 그때 아줌마에게 부탁해서 소주 두어 병을 찌그러진 노란색 물주전자에 부어서 어른들의 눈을 피해가며 물 컵에다 소주를 가득 부어서 마시고는 국밥으로 안주를 삼았다. 나는 이 도시에서 자랐다. 이곳이 고향이다. 그래서 이 도시의 변화를 낱낱이 읽고 있다. 그 시절, 국밥도 네 명이 오면 두 그릇이나 세 그릇만 시키고 나머지 돈으로는 소주를 마시거나 영화관으로 가곤 했다. 그 때는 참으로 돈이 귀할 때였다. 몇 번 와서 단골이 되고 얼굴을 익히면 바로 외상을 그었다. 지금이야 이 재래시장에 있는 국밥집에서 외상을 하는 위인이야 없겠지만 우리 때는 달랐다. 외상은 상호간의 믿음이고 신뢰다. 그때는 시로 승격되기 전의 읍이었고 고등학교가 인문계 하나와 실업계인 공고 하나뿐이었다. 그만큼 익명성이 얕다는 얘기다. 어느 학교 누구라고 하면 다들 알 정도였다. 그래서 외상이 가능했다. 외상값을 갚으러 갔다가 실컷 먹고 다시 외상을 긋고 가는 일이 허다했다.
나는 녀석들이 플라스틱 물통에 든 것이 소주가 아닐까하는 노파심에서 세심히 보았다. 냉장고에서 금방 꺼낸 물통에 물방울이 서려있는 그건 분명히 찬물이었다. 약간 실망스러웠다. 녀석들이 소주를 마시고 있었다면 건너가 말을 붙이고 한잔씩 따라주며 인생에 대해서 뭐라도 한마디쯤은 건넸을 것이고 내가 소주 한 병 정도는 스폰서 했을 것인데, 나는 속으로 뇌까렸다 ‘요즘 아이들은 숫기가 없어서....... 분명한 사실은 모범생이 인생을 잘 사는 건 아니다.’
-승기 엄마! 마음 넓게 잡수시고 한 잔 하세요. 고향 친구들끼리 하도 오랜만에 만나서.......
남자가 잔을 그녀 앞으로 내밀며 말했다.
-아니에요. 술은 못하고....... 제가 왜 이러는지 저도 모르겠어요.
앉아 있던 두 여자는 그 여자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까 잔뜩 긴장하고 있는 눈치다. 여자는 이제 제 정신이 돌아온 모양이다.
-아니 우리는 괜찮아요. 시장 하시면 국밥이라도 한 그릇 하시던가? 아, 그러고 보니 저녁시간이네!
두 여자 중에서 한 여자가 국밥을 들먹였다.
-아니 밥은 집에 가서 애들 아빠하고 먹죠. 뭐....... 그 양반한테도 미안하고.......
여자는 고개를 들지 못하고 말했다.
-그런데 승기 아빠하고 좋아하는 사람이 어느 분이세요?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물었다. 승기 엄마로 불리는 여자가 제 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잘 나가다가 삼천포로 빠진 것이다. 이야기를 들어보면 중증이다.
-승기 엄마! 여기는 그런 사람 없어요. 승기 아빠가 바람을 피거나 그런 게 아니라니까요.
-맞죠. 저도 그렇게 믿고 싶어요. 그런데 여자들만 보면 딴 생각이 들어요. 미안해요. 제가 노래라도 하나 불러드릴까요? 미안해서 그러는데.......
-아 좋죠. 승기 엄마 옛날에 노래 잘 했잖아요?
남자가 맞장구를 쳤다. 사과하러 온 자리에서 노래를 부르다니 중증이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여자는 자리에서 조용히 일어섰다. 그리고 손을 배꼽부위에 대고 가지런히 맞잡았다. 초등학생들이 동요를 부르는 자세였다.
-허영란의 날개를 불러드리겠습니다.
허영란이라는 가수가 있었다. 날개라는 노래는 이십년이 넘었는데 그때 날개라는 노래로 히트를 쳤었다. 아주 가창력이 뛰어난 가수였고 고음처리를 잘 해야 하는 난해한 곡이다. 여자는 헛기침을 두어 번 하고는 노래를 시작했다. 초등학생이 동요를 부르는 것처럼 다리를 살짝살짝 굽혀가며 노래를 시작했다. 희망적인 요소를 품고 있는 가사라서 내가 좋아했던 노랜데 한동안 잊고 있었다.
일어나라 아이야~ 다시 한~번 걸어라.
뛰어라 젊은이여~꿈을 안고 뛰어라~
저음으로 시작하는 노래가 보통솜씨가 아니었다.
날아라~ 날아라~ 고뇌~ 찬 인생이여~
일어나 뛰어라~ 눕지 말~고 날아라~
옆자리에 서 국밥을 먹던 녀석들이 여자의 노래가 고음으로 올라가자 국그릇에 숟가락을 걸쳐놓고 모두들 고개를 돌려 여자를 바라보았고 어떤 녀석은 박자에 맞추어 박수를 치고 있었다. 여자의 고음처리는 아주 매끄러웠다.
어느 누가~ 청춘을 흘러~가~는 물이라 했나
여자는 자신의 노래에 도취된 듯했다. 여자의 노래솜씨는 거의 프로 수준이었다. 식당안의 모든 눈길은 노래를 부르는 여자를 향해 있었다. 주방에서 고기를 썰던 주방 아줌마도, 길 건너편에서 좌판을 벌여놓고 있던 민속떡집 아줌마도, 복덕방을 얘기하던 곰치와 낙지도 여자에게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인지 여자의 볼에서는 눈물이 타고 내리고 있었다. 그때 낙지가 일어서서 양팔을 날개처럼 벌리고 가락에 몸을 싣고 있었다. 취기가 있는 낙지의 그 동작은 춤이 아니었다. 시인인 그는 즉석에서 날개를 만들어 날개를 젖고 있는 것이다.
어느 누가~ 인~생을 떠도는 구름이라 했나~
여자의 노랫소리는 국밥집을 빠져나와 허공을 날고 낙지도 덩달아 하늘을 날고 있었다. 국밥집 분위기가 그 쯤 되어가고 있을 때 그 여자의 남편이 되는 작자가 국밥집 안으로 들어섰다. 나는 그 작자가 제 아내의 입을 막던지 아까처럼 허리를 껴안고 나가면 어쩌나 생각했는데 의외로 그 작자도 노래가 끝날 때까지 아무 말 없이 등 뒤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여자의 노래는 우리가 알 수없는 마력을 지니고 있었다. 모두들 조용히 경청하고 있었다. 노래에 도취된 여자의 눈물은 목덜미까지 타고 내렸다.
노래가 끝나자 낙지는 날개를 접고 자리에 앉아 소주잔을 들었고 옆자리 학생들은 나이스, 앵콜하며 외쳤다. 낙지가 집에 가면 분명 국밥집에서 날개를 달았다는 시를 쓸 것만 같았다. 나는 술자리가 끝나고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가면서 그 노래의 의미를 새기며 날개를 불러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날개! 그래 국밥집에서 날개를 달았다.
노래가 끝나자 여자는 좌중을 향해 고개를 숙이고 인사를 했다. 그 남편은 조용히 여자의 허리를 감싸며 이제 집으로 가자고 속삭이듯 말하며 조용히 국밥집이라는 무대에서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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