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릿말
비 소식이 있었는데 비는 내일 새벽에 그칠 모양이다.
그래서 당일치기 트레킹을 출발했다.
지난달 중단한 33코스 중간지점인 경남용암포 마을에서 시작하여 34코스 경남 삼천포항까지 마칠 일정이며
이제 출발지점까지 거리는 168km로 많이 짧아져서 당일에도 쉽게 다녀 올만하다.
- 걸었던 날 : 2025년 11월9일(일요일)
- 걸었던 길 : 남파랑 경남고성~사천구간.(용암포~맥전포~상족암~하이면사무소~삼천포항~삼천포대교사거리)
- 걸었던 거리 : 19.2km.(32,000보,5시간)
- 누계거리 : 529.7km
- 글을 쓴 날 : 2025년 11월 9일.(일요일)
남해고속도로를 2시간 달려 8시 용암포 마을에 도착했다.
새벽에 비가 내려 공기는 신선했고 하늘에는 구름이 많았지만 걷기엔 최상의 날씨이다.
더구나 오늘은 산을 오르는 코스는 없고 대부분 해안길이어서 편하게 걷는 코스이다.
용암포 마을을 벗어나니 바로 맥전포항이 나온다.
맥전포항은 작은 어선이 많았으며 제법 큰 어선 두척이 고동소리를 내며 항으로 들어 오고 있었다.
항구의 건물에 남파랑길 쉼터가 있어 가까이 가서 살폈으나 직원은 아직 출근전이다.
맥전포항의 어선들~
맥전포항을 벗어나 해안 데크길을 걷는데
아담한 바위섬이 있었고 작은 다리로 연결되어 있다.
저 작은 섬 소나무 아래에서 한나절 쉬면 욕심없는 편안한 힐링이 될듯하다.
아버지와 청년이 갯바위에서 낚시중인데
청년은 아직 낚시가 초보인것인지 아버지는 천천히 당겨 보라고 하신다.
갯바위 산책로가 아기자기 한데 걷는 사람은 우리뿐이다.
갯바위 데크길을 걷다가 아내에게 "나랑 살아서 이렇게 이쁜길을 걷는거야?"
라고 말했다가 내가 아니면 당신 혼자 걷거나
이런 길 걷지도 못했을 거라며 본전은 커녕 핀잔만 들었다.
그렇다. 60대 초중반 나이에 하루에 20~30km를 걷는일은 쉬운일이 아닐 것이며
한반도 남한을 한바퀴 돌아 보겠다고 나선길을 따라 나섰기 쉽지 않을 일이고
이 길을 같이 걸어 준 아내가 감사하다.
상족암 군립공원 아래 해안가에 별(star) 조형물이 있다.
하늘의 별을 따다 줄수는 없지만 이 조형물의 별 안에 앉게 해서
"내가 별을 따다 준거야!" 라고 했더니 그런 아재 개그 별로라고 한다.
그래도 한장 더!
상족암 군립공원 조형물에서도 인증샷!
채석강의 해안을 닮은 바다 둘레길 공룡 발지국을 보러 들어서고
초식동물 조각류가 나란히 걸어간 발자국을 본다.
아내는 아이들이 초등학교 시절 두딸을 데리고 체험 학습차
이곳에 온 기억이 있다고 했지만 나는 초행이다.
이 지역은 공룡 발자국과 새의 발자국이 남아 있는 화석지대이다.
현판의 설명 자료에 따르면 약 1억년전 중생대 백악기 지층에서 발견된
세계 3대 공룡발자국 화석산지라고 적혀 있었다.
작은 마을 한쪽에 이층 펜션의 한줄 언어가 잠시 발길을 멈추게 한다.
"행복해서 울어 본적이 있나요?" 라고 벽면에 적혀 있다.
펜션 이름일까?
주인님이 시인일까?
지나는 나그네에게 묻는 저 언어가 가볍지 않다.
잠시후 아내에게 물었다.
당신은 행복해서 울어 본적이 있나요? 라고 했더니
아내는 작은 딸아이의 학생시절 기억을 꺼낸다.
작은 딸아이가 고등학생 시절 시험을 치르고 집에 들어 올 때
성적에 관한 그 어떤 잔소리 없이 먹고 싶다는 감자탕을 사 주었는데
딸아이는 순간 너무 행복하다며 눈물을 글썽거리며 울었다고 했다.
딸 아이의 그 눈물은 성적이나 시험 스트레스가
엄마와 정서적 교감으로 행복함이 밀려와 행복해서 울었던것 같다고 했다.
나에게는 이런 기억이 있다.
2018년 5월 20일 나의 백두대간 산행 마지막 날의
" 돼지친구 산행일기"에 쓴 글을 인용한다.
4년에 걸쳐 백두대간을 완주하고 진부령 돌탑 앞에 섰다.
지리산에서 진부령까지 807km 대간 마룻길을 걸었고
진부령 돌탑 앞에 선 순간 금방이라도 눈물이 날것만 갔았다.
중략 생략~
마지막 종주길에 마중 나온 아내와 식사를 하러 황태구이집에 들어가
강샘과 백두대간 완주를 기념하는 건배잔을 부딪치는데 뜨거운 눈물이 났다.
나는 참지 않고 그대로 눈물을 훌렸다.
상기된 눈물은 부끄럽지 않은 남자의 눈물이었으며
4년동안 백두대간을 걸으면서 흘린 땀이 환희로 돌아오면서 흘린
행복한 순간의 눈물이었다.
(돼지친구 산행일기 중에서)
이제는 코리아 둘레길 4,500km를 완주하는 날
행복해서 나오는 눈물로 원 없이 울어 보고 싶다.
하이면사무소 사거리에 도착하여 남파랑길 33코스를 마감하고
이어서 삼천포 항으로 향했다.
농촌마을 면소제지는 한가하다.
하이면 소제지 마을에 도착하는데 낡은 간판들이 눈에 들어오고
동내는 사람이 드물고 승객없는 빈 마을버스가 지나가고 있었다.
버스 정류장에서 잠시 쉬었다가 다시 일어나 걸었는데
길가 화단의 은목서는 하얀꽃을 피웠고 진한 향기가 아쉬움을 달랜다.
사천 남일대 해변에 들어 선다.
남일대는 신라말 학자 고운 최치원이 이곳의 절경에 감탄하여 남일대라 이름지었으며
해안 한가운데 해안절벽에는 구멍바위,흔들바위,코끼리 바위가 있고
해안의 고운 모래 백사장과 주변의 느낌은 가히 사천의 명물 해안인듯 하다.
그런데 아이구야 어찌 할꼬~
해수욕장의 호텔과 스파는 폐허로 변했고
리조트 공사는 중단되었으며 짚라인 시설은 녹슬어 멈추어 있다.
이곳 택시기사님 말에 의하면 코로나를 격으면서 시설들의 영업이 중단되고
이 지역 화력 발전소의 전기 발전량을 줄이고 인원조차 줄이다 보니 이렇게 됐다는 설명이다.
세상이 너무도 빠르게 많이 변하고 있고 이런것들을 보면 나는 무섭기도 하다.
해파랑길 동해안에서도 영업을 중단한 수 많은 건물들은 보면서 안타까워 했었고
아나로그에서 컴퓨터와 인터넷으로 바꾸어 가는 세상은 그럭저럭 살았는데
이제는 AI와 로봇의 세상을 살아야 한다.
과연 편리함만 있을까?
내가 모르는 그 세상들이 두렵기까지 하다.
나만 그럴까?
진널전망대에 오른다.
1973년 겨울 무장공비가 침투했던 지역이어서 반공 안보교육장의 현장이고
시인 박재삼이 바닷가을 산책하던 해안가 전망대이기도 하다.
시인 박재삼은 인제 강점기 시절 1933년 일본 동경에서 태어나
4살때 어머니의 고향 삼천포로 이주하여 살고
한국전쟁과 분단, 그리고 산업화 시대를 거치며 성장했다고 한다.
그는 어려운 환경속에서 독학으로 문학을 익혔으며
고향 삼천포를 중심으로 바다,포구,항구, 갈매기,어부등의 단어가 자주 등장하는
한국적 서정적 정서를 담아낸 향토 시인이시다.(문학관 자료 참조)
진널 전망대 아래 박재삼 시비가 있다.
바닷가 산책
사랑은 결국 곱씹어
뒷맛이 끊임없이 우러나게 하는
내 고향 바닷가!
삼천포 시장에 도착했다 "삼천포로 빠진다"라는 속어가 있다.
어떤 이야기의 흐름이 주제와 상관없이 본론에서 벗어 날때 쓰는 속담이다.
인터넷으로 유래를 찾았더니 서울에서 진주로 가는 길목에 삼천포가 있어
진주로 가려다가 삼천포을 경유하면 시간이 더 걸린다는 표현이 배경이 되었다는 설이다.
그런데 오늘 현지 택시기사님 왈~
과거 삼천포에서 여러번 시장(?)을 지낸 인물이 있었는데
그분이 삼천포을 시(市)로 승격시키고자 수차례 건의 했으나 번번히
시 승격이 좌절되어서 "삼천포로 빠졌다"라고 했다는 것이 원조라는 설이 있고
또한 옛 영화배우 박노식씨가 영화 대사중에 "삼천포로 빠졌다"는
대사가 있고 나서 유명해졌다는 말씀도 하신다.
뭐가 맞은지도 모르겠고 어떤걸 믿어야 할지도 모르지만
삼천포에서 그냥 즐기다 가면 될 일인듯 하다.
시장의 꽈베기 할머니가 추천해 준 생선구이 식당에 들어 갔다.
그 식당에는 손님들이 가득 만석이다.
겨우 자리를 잡아 생선구이와 물회를 시켜 점심을 맛나게 먹고 일어 선다.
트롯 장구의 신! 박서진길.
트롯 유명세로 길 이름도 생기는등 요즈음은 트롯이 대세이다.
어찌됐건 가수의 유명세가 관광상품이 되고
사람들이라도 많이 찾아와 주길 바라는 간절함 일것이다.
삼천포 입구 사거리에 도착하여 남파랑길 34번 코스를 끝내고
사천 바다 케이블카를 탄다.
해상케이블카는 해상의 섬을 경유하고
각산(408m)에 올라 전망대에 다녀오는 한바퀴코스 케이블카이다.
케이블카에서 멸치잡이 시설 죽방을 내려다 보고~
쉽게 각산(408m) 전망대에도 올랐다.
남파랑길 35번 코스는 저 아래에서 각산(408m)을 환종주하는 코스여서
케이블카 투어로 대처 할 수도 있는데
그것은 트레킹이 아니라며 다음달에 와서 꼭 걸어야 한다고 한다.
에휴~ 그럼 어쩔수 없이 담달에 와서 땀나게 걸어야 할 일이다.
각산 전망대에서 케이블카로 하행중에 순천에 사는 기곤 친구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지금 남파랑길을 걷는중이면 순천에 들러 가란다.
마치 우리부부의 오늘 트레킹을 알고 있는것 같았다.
나는 순천으로 향했고 아랫시장 거목순대에서 반가움과 정으로 소주 한병을 마시고
친구의 손주 자랑을 안주삼아 한병을 더 마셨다.
그리고 운전대를 아내에게 맡겨 집으로 돌아 왔다.
2025년 11월 9일 걷고
2025년 11월 11일 저녁에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