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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문학신문 이계절의 작가 - 마경덕
2007. 9. 29. 23:15
인터넷문학신문
이 계절의 작가
마경덕 시인
전남 여수 출생
2003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2005년 시집 <신발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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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정이유
- 그가 펼쳐 보이는 상상력이 포스트모던적인 의식의 해체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생활의 체험과 그 체험에서 길어올려지는 사유에서 출발한다는 점이다. 여기에 한 가지를 덧붙이자면 그의 시는 날렵하고 유니크하다는 점이다. 그의 시는 가벼운듯 하면서 둔중하고, 아이러니와 페이소스를 결합해서 보여주는 웃음 속의 눈물, 울면서 웃는 진경을 풍성하게 보여주고 있다. 삶의 긍정과 아름다움에 바쳐져 있고 그의 절망은 아름다운 삶의 전경이다.-
-나호열 (시인)
시인 마경덕
인터넷문학신문은 그동안 매월 투철한 작가정신을 바탕으로 높고 깊은 영혼을 가꾸어 왔으나 올바른 평가에서 소외 되어 온 작가들을 선정하여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이 달의 작가’를 운영하여 왔다. 그러나 독자들의 열렬한 호응에도 불구하고 인터넷신문이 안고 있는 인력의 부족으로 잠정 중단하였다가 편집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 이 계절의 작가’로 변경하여 올해 가을부터 부활 시행하게 되었다.
2007년 첫 번째 이 계절의 작가는 시인 마경덕이다.
2003년 세계일보 신춘문예를 통하여 등단한 마경덕 시인은 문단에서의 시력 詩歷은 길지 않으나 그동안의 활동 사항을 보면 수 십 년에 걸쳐 활동해 온 어느 작가, 시인보다도 뚜렷한 족적을 남기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Post- Post ( 포스트모더니즘 이후)의 징후를 뚜렷하게 보여주고 있는 현 시단의 풍토에서 마경덕의 작업은 뚜렷한 바가 있다.
마경덕은 전통적 시법의 옹호자이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인터넷을 통한 시의 대중화(이는 대중에 영합하는 대중시)에 앞장 서 있는 시인이기도 하다. 인터넷은 정보의 확산에 기여하는 바가 크지만 개인과 개인, 개인과 집단, 집단과 집단 간의 소통에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마경덕은 개방적 특성을 지닌 블로그를 통하여 자신의 시 뿐만 아니라 타 시인의 좋은 시를 선정 수집하여 독자들에게 알리는 수고로운 작업을 기꺼이 수행하고 있고, 자신의 시작 체험을 담은 수준 높은 동영상 강의를 배포함으로써 생산자(시인)에서 소비자(독자)로 흘러가는 일방적 통로를 독자와 창작자를 평등으로 묶는 쌍방향의 구도로 전환하는데 힘을 쏟고 있는 것이다.
앞서 말한 전통적 시법의 옹호자로 마경덕 시인을 소개하는 까닭은 그의 시법이 전위적이지 않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가 펼쳐 보이는 상상력이 포스트모던적인 의식의 해체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생활의 체험과 그 체험에서 길어올려지는 사유에서 출발한다는 점이다. 여기에 한 가지를 덧붙이자면 그의 시는 날렵하고 유니크하다는 점이다. 그의 시는 가벼운듯 하면서 둔중하고, 아이러니와 페이소스를 결합해서 보여주는 웃음 속의 눈물, 울면서 웃는 진경을 풍성하게 보여주고 있다. 삶의 긍정과 아름다움에 바쳐져 있고 그의 절망은 아름다운 삶의 전경이다.
앞으로 더욱 활발한 활동을 펼쳐 보일 것을 기대하면서 이 계절의 작가로 선정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선정위원]
나호열 (글). 오만환. 김상숙. 김경성. 조일영. 한상림
시집 <신발論>
♥ 이달의 작가 대담내용
1. 선생님은 그리스도의 말씀 안에서 검소하고 알뜰한 주부로서 아이 셋을 키우시다 늦깎이로 시를 쓰게 되셨지만, 끊임없이 노력하는 부지런한 시인으로서 삶의 진정한 모습이 들어있는 좋은 시를 보여 줌으로써 많은 독자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시인이 되고자 만학을 하고 있는 늦깎이가 많습니다. 특히 같은 여성으로서 시를 공부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마경덕 : 등단한지 벌써 5년이 되었군요. 20대 초반에는 꽁트와 수필을 썼었는데 결혼하고부터는 문학과 상관없이 살았지요. 시부모님 모시랴, 아이 셋 키우랴 문학은 뒷전이었지요. 어느 날 막내딸이 엄마의 꿈이 무엇이었느냐고 묻는 바람에 퍼뜩 정신이 들었습니다. 오십이 다 된 나이였어요. 너무 늦었다고 했더니 아이는 아직 늦지 않았다고 시작해보라고 했지요. 그 말 한마디에 용기를 내어 처음으로 시를 쓰게 되었습니다. 늦깎이 여러분, 시작이 반이라고 하지요. 마음을 정했으면 최선을 다해보세요. 문학은 나이가 좀 들어서 시작하는 것이 좋다고 봅니다. 새로 산 반짝이는 가구보다 손때 묻어 길들여진 가구가 더 멋지지 않습니까. 삶을 살아낸 흔적들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지요. 각종 문예지에서 젊은 시인 젊은 시인하면서 특집도 내주고 그러던데 나이가 젊다고 다 젊은 시인이 아니지요. 젊은 생각으로 쓴 시는 젊은 작품입니다. 어떤 시를 쓰느냐가 문제지요. 먼저 생각의 틀을 깨야 합니다. 고정관념에 길들여진 언어로는 좋은 시를 쓰기 힘듭니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중요합니다. 쉬지 않고 노를 젓는 자만이 앞으로 갈 수 있습니다. 시를 쓰는데 성별이나 나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2. 선생님의 등단작 ‘신발론’은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세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인 신발론에 대하여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리며, 두 번 째 시집을 계획하고 계신지요?
마경덕 : 저는 시의 소재를 늘 가까이에서 찾지요. 신발론 역시 제 삶이 묻어있는 작품입니다. 딸만 셋이다 보니 구두며 운동화며 신발이 많습니다. 일년에 한번 신발장 정리를 하는데 구두를 한 자루 버리고 나니 "내가 신발을 버린 것이 아니라 신발이 나를 버리고 갔다“ 는 생각이 들었지요. 나는 무거운 짐이었고 신발은 나를 싣고 다닌 배 한 척이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과적으로 기울어진 배 한 척이 짐을 부리듯 나를 내려놓고 홀가분하게 떠났습니다. 일상의 언어를 일기 쓰듯이 시화하고 깨달음을 전해주는 시라고 하더군요. 저는 뒤집어 보기를 좋아하는데 이 작품 역시 생각을 뒤집어 본 것입니다.
첫 시집은 등단한지 3년 만에 나왔습니다. 두 번째 시집은 내년 가을쯤으로 잡고 있답니다. 두 번째 시집은 첫 시집과 다른 맛이 나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도 같은 맛이 난다면 금세 질릴 것 같아요. 변화가 없다면 금방 싫증이 나겠지요. 독자들의 입맛은 까다롭고 예민하니까요.
3. 선생님의 블로그는 이미 많은 시인들이 매일 올라오는 좋은 시들을 감상하는 곳으로 알려져 있고 시를 공부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특히 좋은 텍스트 시들을 감상할 수 있어서 훌륭한 블로그라고 생각됩니다. 매일 블로깅을 한다는 것이 쉬운 것이 아닌데, 지금 몇 년째 꾸려 오고 계신지요? 그리고 블로그를 이용하고 있는 문인들에게 꼭 한 마디 하시고 싶은 말씀은 무엇일까요?
마경덕 : 블로그 이름이 ‘내 영혼의 깊은 곳’입니다. 상처받은 영혼들이 마음의 양식을 얻어갈 수 있도록 매일 성경 말씀으로 문을 열고 있습니다. 2004년 5월에 시작했으니 벌서 3년이 넘었네요. 그동안 ‘내 영혼의 깊은 곳’을 사랑해주셔서 방문객 수가 200만이 다 되어갑니다. 소설 수필 동시도 싣고 있지만 무엇보다도 시가 주를 이루고 있지요. 시창고엔 수천 편의 시들이 쌓여있습니다. 나름대로 엄선해서 시를 올리다 좋은 시를 보러 오시는 분들이 많아졌습니다.
사이버라는 무한한 공간에서 많은 시인들을 만나지요. 아날로그 시대에서 디지털 시대로 바뀌면서 온라인이라는 거대한 흐름이 생활마저 변화시키고 말았습니다. 블로그를 시작한지 두 해 전만 해도 블로그에 대해 묻는 이들이 많았는데 요즘은 인터넷의 대중화로 블로그가 우리 생활의 일부로 자리 잡게 되면서 밤을 새며 블로깅을 즐기는 블로거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인터넷이 실생활에 활용되면서 네티즌의 목소리도 높아졌는데 인터넷의 힘은 바로 대중의 힘이지요.
블로그는 조금만 관리하지 않으면 금세 방문객이 줄어듭니다. 매일 새로운 무언가를 보러 오시는 분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해야합니다. 언제부턴가 블로깅을 해야 하는 의무가 저에게 주어졌더군요. 시간에 쫓기면서도 블로그를 놓지 않고 있습니다. 대중의 힘에 떠 밀려가는 느낌입니다. 이제 ‘내 영혼의 깊은 곳’은 저 개인의 것이 아니라 문학을 사랑하시는 모든 분들의 것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블로그를 찾아주시는 분들 대부분이 로그인을 하지 않고 ‘즐겨찾기’로 흔적 없이 다녀가시지요. 십중팔구는 방문자 수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좋은 시는 서로 나누어야 합니다. 그래서 문을 활짝 열어두었습니다. 스크랩을 해 가시는 분도 있지만 드래그로 긁어 가시는 분이 더 많지요. 드래그 하시고 출처를 밝혀주셨으면 합니다. 그것은 기본적인 예의라고 생각합니다.
4. 현재 詩話로 산문을 쓰시고 계신데,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마경덕 : 저는 시인이니까 평범한 산문보다는 詩話로 쓰는 산문을 좋아합니다. 현재 모 문예지에 올 초부터 ‘시와 에스프리’ 라는 이름으로 산문이 연재되고 있습니다. 산문은 시와 또 다른 매력이 있지요. 매달 주제를 선택해서 시를 곁들여 산문을 쓰고 있는데 힘들어도 보람은 있습니다. 두 번째 시집을 낸 후 산문집 한 권을 내고 싶습니다. 시인이 쓴 산문집, 기대해주세요. 마지막으로 ‘내 영혼의 깊은 곳’을 사랑해주시는 여러분께 고맙다는 말씀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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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경덕 시모음
골목이 고양이를 키운다
막다른 집에서 시작된 골목이 동네를 돌아다녀요. 막다른 집에서 걸어 나와 구불구불 기어간 골목의 등이 보여요. 집과 집 사이로 용케 피해 다니며 골목은 종일 고양이와 놀아요. 지붕에서 옥상으로 아찔한 난간으로 휙휙 고양이를 던지며 하루를 보내요. 즐거워라, 아이들이 사라진 골목. 골목끼리 고양이를 주고받으며 놀아요.
또 던지려나 봐요. 수채 구멍에 쥐새끼를 풀고 수백 톤의 어둠을 골목에 부려요. 냉장고 음식을 봉투에 싸서 집 앞에 내놓아요. 봉투를 찢고 악취를 끄집어내고 죽은 쥐를 뒤꼍에 던져요. 불안한 눈 의심 많은 귀를 못된 고양이 얼굴에 달고 있어요. 벽을 디밀고 "뛰어 넘어! 골목을 벗어나면 죽을 줄 알아!" 으름장도 쳐요. 막다른 집 골목이 벽을 타고 올라가요. 다시 골목이 시작돼요. 휘익, 고양이가 날아와요.
나를 맛보였다
강원도 깡촌, 줄창 시퍼렇게 서 있는 여름산의 무르팍이 싱싱했다. 산비탈에서 굴러온 바람이 달리는 차창으로 맨발을 디밀었다. 발바닥에서 서늘한 그늘내가 났다. 떡대 좋은 산 하나를 끼고 돌자 풋내가 질펀했다. 산딸기를 만지고 온 농익은 바람이 딸기물 든 손으로 내 머리칼을 연신 어루만지고 버스는 투덜투덜 돌밭을 달렸다. 툭, 탁, 다급한 돌멩이가 계곡으로 튀고 물 젖은 바람이 벼랑을 타고 기어올랐다. 강바람은 이끼빛 수건을 목에 걸치고 있었다. 곳곳에 바람의 몸에 맞는 바람집이 있었다. 마을에 사는 바람은 미간을 찡그리고 밭두렁에 쪼그리고 있었다. 바람에게도 마음이 있다는 걸 그때 알았다.
뒷좌석에 마음을 눕히고 찬찬히 바람을 맛보기 시작했다. 개울에 발 담근 물소리를 집어먹으니 박하사탕을 깨문 듯 후련했다. 눈을 감고 바람의 뒷다리를 흠흠, 들이마셨다. 동시에 누군가 나를 맛보고 있었다. 익었나, 설었나, 뒤집고 있었다. "나"라는 맛에 대해 생각하는 순간, 나를 한 입 베어 문 바람이 퉤퉤! 나를 뱉어버렸다.
꽃병
온몸이 입이다
한 입에 우겨넣은 붉은 목 한 다발. 부르르 꽃잎이 떨린다. 잘린 발목에서 쏟아지는 비린 수액, 입안 그득 핏물이 고인다. 소리 없이 생피를 들이키는 저 집요함. 허기진 구멍으로 한아름 허무를 받아먹는.
식욕과 배설뿐인 캄캄한 구멍은 입이고 항문이다.
시한부 목숨들. 나, 나 얼마나 살 수 있지? 물컹물컹 썩어 가는 발목을 담그고 일제히 폭소를 터트린다.
아름답다 저 구멍
화환(花環)
뭐야. 줄이 안 맞잖아. 앞줄 고개 좀 숙여. 분홍이는 제 자리도 몰라? 얼른 이층으로 올라가. 장미야, 향수 좀 뿌려. 화장도 안하고 여태 뭐 했어? 머리꼴이 그게 뭐야. 니들 정말 안 웃어? 한 시간만 무조건 웃으라니까.
둥글게 꽂힌, 1 2 3.
누가 1이니? 2는 또 누구야. 시간 없어. 대충 대충 서. 순서가 어딨어. 옷? 흰옷 밖에 없냐고? 기가 막혀. 국화야, 짧은 치마는 왜 찾니? 향수는 왜 뿌려. 웃겨 정말 . 제발 좀 울어. 사흘만 활짝 울라니까. 분무기를 디밀자 꽃들이 뚝뚝 눈물을 떨어뜨린다. 죽은 꽃이 죽은 자를 조문하러 달려간다.
한 시간용 웃음 3개, 72 시간용 울음 2개
꽃집 남자는 주문 받은 3단짜리 웃음과 울음 사이를 부지런히 오간다
가위를 주세요
이게 전부요? 이력서가 되물었다. 쓰윽, 가윗날이 스쳤다. 가방끈이 짧구먼, 입이 큰 쓰레기통이 말했다. 창밖에… 비가 오고, 빗줄기가 꽃 모가지를 치고 피다만 꽃이 발에 밟혔다. 소식 끊긴 애인이 대문 앞에 기다리고 있었다. 꼭 와줄 거지? 애인이 보낸 청첩장이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나는 나에게 선물을 받고 싶었다. 실반지는 얼마죠? 화려한 금은방은 대꾸도 없었다. 생일선물이 나를 비웃었다. 손님, 사실 거예요? 친절한 백화점이 정중히 물었다. 나는 들고 있던 옷을 내려놓았다. 가격표가 킥킥, 코웃음쳤다.
그만 일어나요. 성질 급한 미용실이 말했다. 다리를 꼬고 앉은 사모님에게 동네 미용실이 달려가 허리를 굽혔다. 애인이 결혼을 하는 그 시간, 머리카락을 털며 팁이 나를 비웃었다. 나는 오래된 애인을 싹둑 자르고 일어섰다.
숫돌
밋밋한 돌덩이가 칼을 쥐고 논다
얼마나 칼을 갈아 마셨는지
쇠비린내 물큰 난다
쇠붙이를 물어뜯은 제 몸도 우묵하다
허공에 무수히 칼자국이 나있다
가방, 혹은 여자
그녀는 무엇이든 가방에 넣는 버릇이 있다. 도장 찍힌 이혼서류, 금간 거울, 부릅뜬 남자의 눈알, 뒤축 닳은 신발. 십 년 전에 가출한 아들마저 꼬깃꼬깃 가방에 구겨 넣는다. 언젠가는 시어머니가 가방에서 불쑥 튀어나와 해거름까지 잔소리를 퍼부었다. 그녀의 취미는 접시 던지기, 지난봄, 던지기에 열중한 나머지 벽을 향해 몸을 날린 적도 있었다. 틈만 나면 잔소리를 향해, 바람난 남자의 뻔뻔한 면상을 향해 신나게 접시를 날린다. 쨍그랑 와장창!
그녀의 일과는 깨진 접시 주워 담기. 뻑뻑한 지퍼를 열고 방금 깨뜨린 접시를 가방에 담는다. 맨손으로 접시조각을 밀어넣는 그녀는 허술한 쓰레기봉투를 믿지 않는다. 적금통장도 자식도 불안하다. 오직 가방만 믿는다. 오만가지 잡다한 생각으로 터질 듯 빵빵한 가방, 열리지 않는 저 여자.
돌꽃
물이 마르자 꽃이 사라졌다. 따글따글 돌 구르는 소리, 물새울음도 들리지 않는다.
저 주먹만한 몽돌의 나이는 아무도 모른다. 흐르고 흘러 먼 섬에 닿았다가 수천 년 파도에 굴렀다. 어느 바람이 손이 헐도록 바위를 쪼개고 다듬어 둥글었다. 따글따글 물에 부딪혀 모난 성질 다독여, 꽃을 피웠다.
그냥 두고 와야 했다. 저 돌멩이가 바다의 살점인 줄 몰랐다. 얼마나, 천천히, 천천히… 품고 어르고 한 숟갈, 두 숟갈, 짠물을 떠 먹여 키웠는지 미처 몰랐다. 그 아름다운 돌무늬가 돌의 마음이었다. 물이 마르니 마음도 거두어갔다.
토마토가 말하다
한 입 깨물면 찍, 물똥을 갈기는 토마토,
토마토는 입이 없다. 둥글고 살진
엉덩이만 있다. 그래서 고인
말이 줄줄 흘러내린다
입이 없는 토마토는 제 안의 슬픔을, 얼룩얼룩
셔츠에 지리고.
그러니까 탐스런 엉덩이 토마토는 울컥
무언가를 배설하고
나는 알 수 없다
귀보다 말이 많아 그의 마지막 유언을
읽을 수 없다. 내 입은
입이 없는 것들의 가슴을 모른다
헤이. 토마토!
방금 무슨 말을 한 거지?
물렁물렁 우물우물 씹히는 토마토
토마토의 붉은 심장이. 침묵이
금세 입 속으로 사라졌다
그러나 물렁한 말은
혀끝에서 가슴으로 번져간다
목공소에서
희고 매끄러운 널빤지에 나무가 걸어온 길이 보인다. 나무는 제 몸에 지도를 그려 넣고 손도장을 꾹꾹 찍어 두었다. 어떤 다짐을 속 깊이 새겨 넣은 것일까. 겹겹이 쟁여둔 지도에 옹이가 박혔다. 생전의 꿈을 탁본 해둔 나무, 빛을 향해 달려간 뿌리의 마음이 물처럼 흐른다.
퉤퉤 손바닥에 침을 뱉는 목공. 완강한 톱날에 잘려지는 등고선. 피에 젖은 지도 한 장 대팻날에 돌돌 말려 나온다. 죽은 나무의 몸이 향기롭다.
칙, 칙, 압력솥
추가 움직인다. 소리가 뜨겁다
달리는 기차처럼 숨이 가쁘다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듯, 더는 참을 수 없는 듯,
추를 마구 흔든다. 지금 당장 말리지 않으면
머리를 들이받고 자폭할 기세다
저 맹렬한 힘은 무엇인가
저 안에 얼마나 많은 신음이 고여 있는가
슬픔이 몸을 찢고 나온다
집 한 채를 끌고 소리가 달린다
밤기차를 타고 야반도주하는 여자처럼
속이 탄다. 부글부글
말뚝
선착장 짠물에 얼룩진 쇠말뚝, 굵은 밧줄이 똬리를 틀고 말뚝의 목을 조이고 있다. 얼마나 많은 바다가 드나들었나. 끙차, 목에 밧줄을 휘감고 버틴 시간이 얼마인가. 투두둑 바다의 힘줄을 끊어먹은 말뚝 모가지가 수평선을 향해 늘어져있다.
녹이 슨 밑동. 벌겋게 흘린 눈물자국이 지워지지 않는다.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든 밧줄, 단숨에 바다를 둘러매던 그을린 팔뚝, 노을에 젖은 만선의 깃발, 말뚝에 마음을 묶던 사람들은 어디로 갔는가. 철썩, 포구가 몸을 뒤트는 순간 말뚝의 영혼이 새어나간다. 수많은 이별을 치르는 동안 말뚝의 심장은 차갑게 식었다.
선창가 말뚝에 걸터앉아 떠난 사람을 생각한다. 말뚝 뽑힌 자리, 깊이 파였다. 나를 맬 곳이 없다.
연장통
장례를 치르고 둘러앉았다. 아버지의 유품(遺品)을 앞에 놓고 하품을 했다. 사나흘 뜬눈으로 보낸 독한 슬픔도 졸음을 이기진 못했다.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나무상자는 관처럼 무거웠다. 어서 짐을 챙겨 떠나고 싶었다. 차표를 끊어둔 막내는 자꾸 시계를 들여다봤다. 이걸 어쩐당가, 마누라는 빌려줘도 연장은 안 빌려 준다고 해쌓더니… 어머니는 낡은 상자를 연신 쓰다듬었다.
관뚜껑이 열리듯 연장통이 열리고 톱밥냄새가 코를 찔렀다. 술과 땀에 절은 아버지, 먹통, 끌, 대패, 망치를 둘러메고 늙은 사내가 비칠비칠 걸어 나왔다. 몽당연필을 귀에 꽂은 아버지, 대팻밥이 든 고무신에서 고린내가 풍겼다.
자식 농사만은 대풍을 거두셨다. 망치는 부산으로, 톱은 서울로, 줄자는 울산, 말라붙은 먹통은 분당으로, 아버지는 그렇게 아홉 번을 찢어지셨다. 가방을 뚫고 나온 이 빠진 톱날이 악어처럼 사나웠다.
아버지의 금시계
아버지 모처럼 기분이 좋으시다. 노란 금시계를 내밀며, 이거 봐라. 오늘 집에 오다가 횡재했다. 십만 원짜리를 삼만 원에 샀다. 허어, 이 비싼 걸 그리 싸게 주다니. 검게 그을린 팔뚝에 금시계 눈부시다. 주름진 손에 금시계 반짝인다.
싸구려 도금시계. 얼마 못 가 맥기칠 벗어질 조잡한 금시계를 아버진 도무지 모르신다. 술 한 잔에 보증 서주고 집 날리고 친구들에게 봉이라고 불리는 세상 모르는 아버지, 그러고도 아직 남을 믿는다. 칠이 다 벗어져 거뭇거뭇한 아버지. 며칠 후 멈춰버릴 시계를 믿는다. 길에서 처음 본 시계장수를 믿는다. 오늘 참 고마운 사람을 만났어, 어허, 이 비싼 걸…
양버즘나무
한 가마니의 그늘이 실려 갔다
그늘만큼 허공도 잘려나갔다
떨어뜨린 그림자를 싣고 버스는 달려가고
청소부는 돗자리만한 그늘을 쓸어 담았다
천 개의 귀를 가진 양버즘나무
찰랑찰랑 목까지 드리운
방울귀고리도 몽땅 잃어버렸다
늘 적자((赤字)인 나무의 농사법
마디마디 관절이 불거지고
욱신욱신 무릎이 쑤신다
이쯤 농사를 접으라 해도
고집쟁이 저 여자
놔두면 묵정밭 된다고
그럴 순 없다고
끙, 무릎을 일으킨다
헛농사를 짓는 양버즘나무
4월 느지막이
허공에 밭을 간다
빈둥빈둥 늙는 집
지지난 봄, 집 앞에 들어선 연립 한 동, 분양을 알리던 현수막은 바람에 시들었다. 해를 넘겨도 팔리지 않는 집. 빈방에 어둠이 살고 있다. 빛바랜 만국기를 붙들고 집이 생각에 잠기는 동안 어둠이 야금야금 집을 뜯어 먹는다. 하수구를 막고 지붕을 걷어내고 벽에 금을 긋는다. 어둠은 난폭한 세입자, 뒤꼍에 모여 이 곳에 뼈를 묻자고 소곤대는 소리에 벽지가 풀썩 무너져 내렸다. 빈둥빈둥 집이 늙고 5층 꼭대기로 벽돌을 져 나르던 늙은 여자는 노임을 포기하고 떠났다. 어둠이 옥탑으로 올라간 뒤 목을 뽑고 내려다보던 건달같은 사내도 보이지 않는다. 뒤꼍으로 꽁초를 던지고 가래침을 뱉던 사내마저 치우고, 집은 덩그렇다. 마당에 그림자를 내려놓고 잠든 빈집. 창문은 서랍처럼 닫혀있다.
지루한 영화
미안해, 어젯밤엔 필름이 끊겼어. 전화 한 통화에 그를 다시 편집했다. 영화는 비극적이었다. 해피엔딩은 진부해. 멋진 라스트신을 꿈꾸며 책을 끼고 안경을 쓰고 영화관에 갔다. 텅 빈 머리를 모자로 감추고 다녔다. 팝콘은 왜 먹는 거지? 그가 투덜거렸다. 영화가 시작되면 코를 골았다. 스크린 속에서 벙어리 여자가 수화를 하고 있었다. 나는 한마디도 못했는데 영화는 끝이 났다.
그렇지, 확 자빠지는 거야. 감독의 손짓에 그 밑에 깔렸다. 나는 조연이었다. 발 밑이 어두웠다. 등을 붙들고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갔다. 그를 믿었지만 가끔 낯설었다. 불빛 흐린 스크린위로 찬바람이 불었다. 듬직한 그의 등뒤로 피했다. 이봐, 넌 바람막이야. 감독이 소리쳤다. 온몸으로 바람을 막았다. 등은 자주 깜박였다. 더 쥐어짜!. 감독은 성질이 급했다. 나를 쥐어짜 기름을 부어주었다. 등이 쓰러져 불이 붙었다. 발등이 타들어 가는데 그만 대사가 떠오르지 않았다. 감독은 여전히 닦달했다. 나를 바짝 태웠다. 눈물에 그을음이 묻어 나왔다. 관객들이 하품을 했다. 그만 끝내! 객석에서 누군가 소리쳤다. 그는 한방에 나를 걷어찼다. 컷! 라스트신은 완벽했다. 필름은 모두 삭제되고 싸늘한 등 하나만 남았다. '첫사랑'은 서둘러 종영되었다. 지루한 멜로였다.
밧줄이 숲을 끌어당긴다
강물을 가로지른 긴 외줄, 참나무 허리에 건너편 물푸레나무가 묶여있다. 밧줄의 거리만큼 허공이 좁혀진다.
7월의 허리통이 한 자나 늘었다. 불어난 물소리에 자박자박 물푸레나무 발목이 젖는다. 물푸레나무숲으로 바람이 밀려가고 물푸레 가지에서 첫눈 뜬 새소리가 참나무숲으로 밀려온다. 깊은 물소리도 따라온다.
불안을 묶고 아슬아슬 건너던 밧줄, 출렁이던 무게를 버리고 저리도 태연하다. 멀고 먼 것들, 마주 보며 지나치던 것들, 끝내 닿지 못한 것들이 서로를 어루만진다.
줄 하나 붙잡고 지금 이 산과 저 산이 통화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