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서원
경주 옥산서원 답사기 (3편)
김신묵 ・ 2022. 9. 10. 9:35
▩ 경주 옥산서원(玉山書院) 3편
옥산서원의 건물배치는 비교적 단순 명료하여 무변루 누각을 지나면 네모진 마당에 ㄷ자 형태로 정면이 강당, 좌우에 동재와 서재가 배치된 모습이며 강당 뒤로는 몇 단의 돌을 쌓아 높인 뒤 사당을 앉혀 전학후묘(前學後廟)를 갖추었다.
<무변루와 마주보는 정면 팔작지붕 건물이 강당 구인당(求仁堂)이며 좌우로는 유생들의 기숙사격인 동재, 서재가 대칭으로 바라보며 서 있는 ㅁ자형 공간이 서원의 핵심인 강학 공간이다. 마당에는 야간행사시 불을 밝히는 정료대가 있다.>
강학(講學) 공간
구인당(求仁堂)
옥산서원의 강당 구인당(求仁堂)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가운데 3칸 대청마루는 탁 트인 구조이며, 좌우 한 칸씩 온돌방은 정면으로는 출입문이나 창문없이 벽체로 마감하였는데 바른 층 쌓기의 돌 기단 위 조금 높은 위치에 자리잡아 엄숙 단정한 모습이다.
<정면에 걸린 玉山書院(옥산서원) 현판은 추사 김정희가 제주도로 유배가기전 54세때 쓴 글씨이다. 왼쪽 여백에 쓰인 액찬(額贊)을 보면 萬曆甲戌 賜額後二百六十六年 己亥失火改書 宣賜(만력갑술 사액후 266년 기해실화개서 선사)라고 적혀있는데 만력 갑술년에 사액 된 후 266년이 되는 기해년 헌종 5년(1839년)에 화재로 인해 다시 고쳐 썼다는 말이다.>
<강당 구인당 처마 안쪽에는 화재로 소실된, 처음 사액 때 걸렸던 영의정 이산해(李山海)의 글씨를 다시 되살린 현판을 걸었는데 여백에 舊額摹揭(구액모게, 옛날 글씨를 베껴 쓰다)라고 적었다.>
<강당 마루 안쪽에 걸린 求仁堂(구인당) 현판은 한석봉 글씨로 이곳 강당에만 대단한 명필 글씨 석 점이 걸려있는 것이다.>
<강당 구인당 좌우 온돌방은 각각 원장과 선생들이 쓰는 방으로 양진재(兩進齋), 해립재(偕立齋) 현판이 걸려 있다.>
동재 민구재(敏求齋), 서재 암수재(闇修齋)
강당 구인당 앞에는 유생들 기숙사인 동재와 서재가 마주보고 있는데 각각 민구재(敏求齋)·암수재(闇修齋) 현판을 걸었다.
<강당 구인당에서 바라본 모습. 정면은 누각 무변루이고 왼쪽에 동재, 오른쪽에 서재가 ㅁ자 형태로 마주보고 있다.>
<동재 민구재(敏求齋)>
<서재 암수재(闇修齋).>
제향(祭享) 공간
사당 체인묘(體仁廟)
회재 이언적을 모신 옥산서원의 사당은 체인묘(體仁廟)이다. ‘체인(體仁)’은 ‘어질고 착한 마음을 실천에 옮긴다’는 뜻으로, 온건적 합리주의자로 인(仁)을 중요시하고 강조하던 이언적 선생의 실천철학을 담은 명칭이다.
대개의 경우 서원의 사당은 祠(사)로 칭하는데 왕실 등에서 쓰는 廟(묘)를 써 회재 선생에 대한 높은 존경심을 나타낸 것으로 보인다.
<내삼문 체인문(體仁門) 안쪽에 사당 체인묘(體仁廟)와 제기를 보관하는 전사청(典祀廳)이 있지만 제향 때 외에 평소에는 굳게 닫혀 있어 들어가 볼 수 없다. 외삼문에는 서쪽에 계단이 없이 중앙과 동쪽만 계단이 있더니 내삼문에는 중앙에 계단이 없고 동, 서쪽만 계단이 있다.>
경각(經閣)
<사당 체인묘(體仁廟) 동쪽으로는 서원의 강학 활동과 관련된 교재, 성적표 등을 보관하는 경각(經閣)이 있고, 울타리 밖으로 서원에서 만든 목판 등을 보관하는 문집판각(文集板閣)이 보인다. 그 아래로는 서원 관리인이 거주하는 고직사이다.>
회재(晦齋) 신도비(神道碑)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376-1, 2호)
사당 체인묘 서쪽 담장 밖 비각에는 문원공 이언적의 신도비가 있다.
신도비는 묘소로 가는 길 초입에 세우는 것인데 어떻게 이곳 서원에 세워져 있을까? 회재 선생의 묘소가 있는 포항시 연일읍에도 또 다른 신도비가 있다니 회재 선생의 신도비는 2개인것이다.
신도비가 2개가 된 까닭을 정리해보면, 1577년(선조 10) 기대승이 짓고 영의정 이산해의 글씨를 새긴 처음 신도비가 지금 서원에 있는 것(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376-1호)이고, 9년뒤인 1586년에 관찰사 박소림이 신도비 훼손을 우려하여 손엽이 쓴 비석을 하나 더 만들었는데 포항 묘소 앞에 서 있는 것(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376-2호)이라고 한다.
<옥산서원 회재 이언적 신도비각. 1577년 처음 세운 신도비인데 서원 밖 계류(溪流) 옆에 있었으나 훼손이 우려되어 서원 내부로 옮겨왔다고 하는데, 처음부터 이곳 서원 옆에 세운 것인지, 아니면 묘소에서부터 옮겨온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신도비는 비신이 2m, 전체 높이는 3.2m에 달하는데 귀부와 이수의 조각이 훌륭하다는 평이다. 특히 이수 부분은 채색 흔적이 남아있어 비석 등 석물(石物)도 색을 칠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포항시 연일읍 회재 선생 묘소에 세워진 신도비는 1586년 손엽(孫曄)의 글씨를 새겨 추가로 만든 것이다. (경주신문 사진)>
< 계속 >
[출처] 경주 옥산서원 답사기 (3편)|작성자 김신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