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를 처음 만난 건 초등학교 1학년 때다. 어찌나 공부를 잘하던지 초등학교 때 그 사람 성적을 앞선 적이 없다. 어린 마음에 ‘저 애와 결혼하면 좋겠다’란 생각을 했다. 이 생각은 고등학교에 입학해서도 변하지 않았다. 고교 졸업 직후 육군3사관학교에 입교했을 때는 연애할 시간이 전혀 없었다. 그럼에도 고1 때부터 펜팔 친구로 지낸 우리는 편지를 엄청나게 주고받으면서 지고지순한 사랑을 키웠다.
그러던 어느 날, 육군 소위로 임관한 지 얼마 안돼 오른손을 잃고 병원 신세를 지게 됐다. 입원해 있는데 그 사람이 너무나 그리웠다. 그렇지만 머리와 팔에 붕대를 칭칭 감은 모습을 보이려니 덜컥 겁이 났다. 한 손이 없는 상태로 그녀를 어떻게 만날지 걱정이 태산이었다.
머릿속에 세 가지 시나리오가 그려졌다. 첫째, 나를 본 순간 놀라 도망칠 것이다. 둘째, 이게 웬 날벼락이냐며 엉엉 울 것이다. 셋째, 기가 막혀 멍하니서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반응을 보이든 내 가슴이 미어질 것만은 확실했다. 연락하자니 두렵고, 안 하자니 보고 싶고. 하지만 보고 싶어서 미칠 지경인지라 힘들게 연락을 했다. 그녀가 왔을 때 내 왼손엔 링거가 꽂혀 있고, 오른팔은 붕대로 감겨 있었다. 양손을 쓸 수 없어 어머니가 떠주는 밥을 먹고 있었다. 고향 뒷산에 흐드러지게 핀 산도라지꽃색의 코트를 입은 하얀 얼굴의 그녀가 통합병원 문을 열고 들어섰는데 그 모습이 눈부시게 예뻤다. 그런 그녀가 날 본 뒤 아무 말 못하고 우두커니 서 있는데 가슴이 미어졌다.
세 번째 시나리오가 맞았다. 병실 안 분위기가 갑자기 어색해졌다. 어머니는 밥을 먹여주다 멈췄고, 병실에 있던 사람들도 모두 이야기하라며 자리를 피했다. 아직도 나를 사랑하는지 묻고 싶었다. 하지만 자존심 탓에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자존심보다 더한 것은 두려움이었다. 만일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하면 어쩌나. 나는 아무 말 못하고 그저 입을 굳게 다문 채 그녀를 쳐다보고만 있었다. 그 사람은 여전히 우두커니 바라보기만 했다. 불쌍해 보일 내 처지보다 저 사람이 왜 그렇게 안타깝고 딱해 보이는지, 마음이 너무나 아팠다. 짧은 시간에 별별 생각이 머릿속을 오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