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마로니에 풍경 -황라현
황사 현상과 함께 찾아온 바람이 귀 부리를 후려 갈기는 초봄, 따사로운 봄이 왔어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 아니 정작 느끼고는 있지만 마음이 추워 외면하고 있는지도 모를 그런 사람들을 본다. 이른바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다. 자존심 따위는 오래 전에 벗어 버렸는지. 쾌적한 환경과 공간을 잃어버린 홈 리스들이 모여 있는 이곳... 오고가는 사람들이 흘금흘금 곁눈질로 바라보는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낯 두꺼움도 어느새 터득을 했는지, 길바닥을 제 집처럼 편안해 하는 사람들이 있다. 빈곤으로 비참하게 떠돌면서 지난날들의 괜찮았던 삶 만을 껴안고 허무와 슬픔의 시간들은 기억 밖으로 씻어내려는 것일까? 판지상자(板紙箱子)에 앉아 초점 잃은 눈을 허공에 매단 채 길 바닥에 넝마의 모습으로 앉아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기 편에 서 주지 않는 세상과는 타협하지 않겠다는 듯 두 눈 질끈 감고 벤치에 누워 있는 사람도 있다. 어디서 넘어졌는지 상처 투성이인 얼굴을 신문에 파묻고 모든 시름 잊은 채 잠들어 있는 사람도 있고, 막걸리 한 병을 앞에 두고 삼삼오오 모여 앉아 파란만장한 삶을 반추하기도 하고 서로의 이야기에 귀기울이는 모습도 눈에 띈다. 때 절은 몸에 누더기 걸친 추레한 모습과는 달리 마로니에 나무를 등받이 삼아 앉아 독서삼매경에 빠져있는 저 사람은, 전에는 남부럽지 않는 직장과 가정을 갖고 목표를 향해 도전했었던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디서 한숨 내뱉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려보니 신문 구인란을 바라보던 중년남자의 축 쳐진 어깨와 고뇌의 모습이 내 발길을 멈추게 하고, 가슴 속으로 무거운 돌덩이가 짓누르면서 묵직한 통증이 들어왔다 나간다. 상실감과 무력감에 빠진 그들을 부초처럼 떠돌게 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가정에서 사회에서 등 떠밀려나와 노숙자가 된 사람들도 더러는 있겠지만, 지친 삶을 포기하고 스스로 자괴감에 빠져있거나 아니면 신이 인간에게 특허한 노동을 거부한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거리의 행려자로 내 몰았는지 어떤 이유로든 나는 저 사람들이 처해 있는 상황을 이해 하려한다. 고통과 좌절을 겪어 보지 않는 사람은 남의 고통을 알리 없을 것이다. 그래서 더욱 외면하고 지나치는 지도 모를 일이다. 먹고 마시고 배설하는 근원적인 본능만 남아있는 저들에게 인간이 가져야 할 가치나 의미를 부여시켜 주고, 상실감에서 헤어 나와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참다운 삶인지 일깨워주는 이도 없는 것 같다. 건강한 정신과 육체를 가진 사람이라면 노동의 신성함도 맛보고, 그에 맞는 댓가를 허락 받아 진취적인 삶을 향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권유 해주면 좋으련만, 그들과의 접촉을 시도하는 사람들은 눈에 뜨이지 않고 서둘러 발걸음을 재촉하는 행인들만 눈에 띤다. 그 그들의 내면에는 어떤 본질이 숨겨있는지 꿰뚫어 보지도 않고 고정관념과 편견의 잣대로 눈금을 긋는, 삭막하게 메말라 가는 냉혹한 사회를 안타까워 할 수밖에...... 가속화되어 가는 과학의 발전, 그리고 물질 만능 시대에 살고 있는데 실직자와 노숙자들의 행렬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는 무엇을 말하는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왜 그들이 거리로 떠밀려 왔는지 우리는 알고 있다. 가난은 나라님도 구제 못한다던가! 정부에서는 남북과의 교류에만 신경 쓰고있고 민생이 먼저고 경제회복이 먼저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있지 않나 보다.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는 불안하고 도시의 귀퉁이에는 아직도 어둡고 습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증폭되어 가는데, 나라의 녹을 먹고 있는 사회 사업가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 중이며 이 현실에 대해서 어떻게 해명할지 궁금하다. 햇살이 비켜 가는 곳 만을 좇아 옮겨다니면서 옹기종기 앉아 햇볕을 쪼이는 행려자들, 그 옆에서 비둘기 떼를 좇으며 먹이를 주는 아이의 모습이 어여쁘기만 하다. 천진난만한 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한낮의 권태로움과 시름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을 것이다. 그들 앞을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오는 내 양심은 또 어디에 저당 잡혀 있는 걸까? 누군가가 자꾸 목덜미를 잡아당기는 것 같아 숨이 막혀 오는데, 나 저들에게 길 위에 뒹구는 희망하나 주워 주고 싶다. 봄 햇볕을 오려 마음 춥지 않도록 이불 삼아 덮어 주고 싶다. ★2001년 9-10월 한국수필 당선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