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공(文貞公) 어세겸(魚世謙)이 일찍이 서사가(徐四佳)를 방문하자, 사가가 말하기를, “지난번에 이파(李坡)가 찾아와서 문형(文衡)에 대한 일을 이야기하다가 묻기를, ‘누가 선생을 대신할 만합니까.’ 하기에, 내가 대답하기를, ‘지금에 있어서 학문과 문장이 자네보다 나은 사람이 없으니, 자네가 의당 대신해야 하지.’ 하였더니, 이파가 비록 외면으로는 사양하나 그 얼굴 빛을 보니 만족해 하더라.” 하였다. 문정(文貞)이 묻기를, “과연 누가 대신할 것입니까.” 하기에, 대답하기를, “자네가 아니면 맡을 사람이 없지.” 하였다. 문정은 웃으며 말하기를, “이파(李坡)를 속이던 것으로 나를 속이지 마시오.” 하였다. 사가(四佳)가 말하기를, “이파는 속일지언정 자네는 속이지 않는다.” 하였다. 뒤에 문정이 과연 대신하여 문형(文衡)을 맡았다.
《연주시격(聯珠詩格)》에 송(宋) 나라 조원복(趙元福)이 이화시(梨花詩)에,
옥으로 정신을 삼고 눈으로 살을 삼았으니 / 玉作精神雪作膚
비 속의 아리따운 운치가 더욱 맑게 야위었다 / 雨中嬌䪨越淸癯
하였는데, 서서가(徐四佳)가 주석(註釋)하기를, “월(越)은 어(於)의 뜻이고, 또 발어사(發語詞)이다.” 하였다. 나는 상고하건대 중국 사람들에게 월호(越好)라는 말이 있어서 유호(愈好)라는 말과 같은데, 이는 속어(俗語)가 이와 같다. 서사가가 비록 널리 들었으나 중국 말을 통하지 못하기 때문에 잘못 주석하는 것을 면치 못한 것이다.
동국에는 소설이 적고, 오직 고려(高麗)의 대간(大諫) 이인로(李仁老)의 《파한집(破閑集)》, 졸옹(拙翁) 최자(崔滋)의 《보한집(補閑集)》, 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의 《역옹패설(櫟翁稗說)》, 본조(本朝)의 인재(仁齋) 강희안(姜希顔)의 《양화소록(養花小錄)》, 사가(四佳) 서거정(徐居正)의 《태평한화(太平閑花)》 《필원잡기(筆苑雜記)》 《동인시화(東人詩話)》, 진산(晉山) 강희맹(姜希孟)의 《촌담해이(寸談解頤)》, 동봉(東峯) 김시습(金時習)의 《금오신화(金鰲新話)》, 이육(李陸)의 《청파극담(靑坡劇談)》, 허백당(虛白堂) 성현(成俔)의 《용재총화(慵齋叢話)》, 추강(秋江) 남효온(南孝溫)의 《육신전(六臣傳)》 《추강냉어(秋江冷語)》, 매계(梅溪) 조위(曹偉)의 《매계총화(梅溪叢話)》, 교리(校理) 최부(崔溥)의 《표해기(漂海記)》, 해평(海平) 정미수(鄭眉壽)의 《한중계치(閑中啓齒)》, 충암(沖庵) 김정(金淨)의 《제주풍토기(濟州風土記)》, 적암(適庵) 조신(曹伸)의 《소문쇄록(謏聞鎖錄)》이 세상에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