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자 김정득 옥중추상(推想) - 물 건너가다
“그들을 버려두신 채 다시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가셨다.”(마르 8,13).
처서가 가까워지니 밤이면 옥 안으로 서늘한 기운이 감돈다.
어젯밤에는 삭신이 쑤시는 것도 잊고 깊은 잠을 잤다.
지난밤 내 고향 무한천을 건너는 섭수몽(涉水夢)을 꾸었다.
내가 타고 가야 할 배는 빈 배인 채 홀로 바람 따라 건너편으로 가고 있었다.
나는 상투를 풀어헤치고 머리칼을 날리며 가슴까지 차는 냇물을 건너야 했다.
오랜만에 몸을 씻는 개운함이 정수리까지 치밀었다.
내를 건너다 뒤를 돌아보니 광옥이 손을 흔들고 있었다.
나도 손을 흔들어 작별 인사를 하였다.
내는 점점 깊어져 목까지 물이 차올라 숨이 찼다.
하지만 푸른 하늘은 여전히 높고 드넓었다.
옥 밖은 아직도 어두운데 형조에서 나온 관리가 결안문(結案文)을 들고 나를 깨웠다.
“호서의 김정득과 김광옥은 천주교를 버리느니 한 번 죽음을 달갑게 받는다며 국법을 어겼으니 해군(該郡) 대흥과 예산에서 참수토록 하라.”[1]
“아아, 이제 고향으로 가는구나! 간밤에 섭수몽(涉水夢)이 그토록 바라던 치명의 날을 알렸구나! 천주님, 감사합니다!”
나와 광옥은 다리가 부러져 무릎을 꿇지는 못했지만 두 손을 모으고 감읍하며 ‘시므온의 노래’[2]를 바쳤다.
“낮 동안 우리를 활기 있게 하신 주여, 그리스도와 함께 있으리니, 자는 동안도 지켜 주시어 편히 쉬게 하소서.
주여 말씀하신 대로 이제는 주의 종을 평안히 떠나가게 하소서.
만민 앞에 마련하신 주의 구원을 이미 내 눈으로 보았나이다.
이교 백성들에게는 계시의 빛이시오, 주의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이 되시는 구원을 보았나이다.”
[1] 김정득과 김광옥은 마침내 1801년 8월 21일 ‘압송해도정법’(押送該道正法:관할지로 보내 참수형에 처함) 선고를 받는다.
▶순조실록 2권, 순조 1년 4월 23일(양력 1801년 6월 4일) : “형조에서 아뢰기를, ‘충청도의 사학 죄인인 공주의 백성 김정득·예산의 백성 김광옥은 사학에 고혹되어 공주의 무성산 속에 숨어 살면서 요서를 상자에 숨겨 두고 더러운 물건을 주머니에 싸서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사는 무익한 것이라고 말하여 윤리를 패몰시켰으며, 어리석은 백성들을 속여서 유혹하는 등 정절이 몹시 패악하였는데, 이미 지만(遲晩:자복)하였습니다. 청컨대, 본도(該道:관할지)로 하여금 결안을 받아 정법(正法:사형)하게 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刑曹啓言 忠淸道邪學罪人公州民金丁得·禮山民金廣玉等, 蠱惑邪學, 匿處於公州 茂城山中, 篋藏妖書, 囊裹穢物. 謂祭無益, 倫理都沒, 誑誘愚氓, 情節絶悖, 而旣已遲晩. 請令本道, 捧結案正法. 從之.)
▶순조실록 3권, 순조 1년 7월 13일(양력 1801년 8월 21일) : “형조에서 아뢰기를, ‘사학죄인 김종교는 사교를 강습한 지 이미 여러 해가 되었습니다. 갑인년(1794년)에 포청에 붙잡히게 되었는데, 감화하는 뜻으로 공초를 받고 방면하였습니다. 그런데 옛 습성을 고치지 않고는 주문모를 찾아가서 세례를 받고 호를 받았으므로, 엄히 형신을 가하였으나, 조금도 뉘우치고 깨닫는 뜻이 없습니다. 죄인 홍필주는 곧 강파(姜婆) 완숙의 아들로서, 그의 어미가 사교에 몹시 빠져서 그 지아비에게 쫓겨나게 되자, 홍필주는 아비를 배반하고 어미를 따라서 미혹시키는 데에 점점 물들어 그 어미가 주문모를 맞아들여 6, 7년을 한집에서 동거하는 것을 눈으로 보고도 양학의 예사로운 일로 인정하여 보통으로 보아 넘기고 미혹함을 굳게 지켜 돌이키지 않으므로 세상의 지목이 되었으니, 아울러 지만(遲晩:자복)을 받아서 정법(正法)하소서. 호서의 김정득·김광옥 등과 호남의 한정흠·최여겸·노복(奴僕) 천애 등은 터무니없는 거짓말을 하여 그릇된 방면으로 인도하고 독실하게 믿으며 따라붙어 익혀서 ′십계명은 버리기 곤란하고 한 번 죽음을 달갑게 받는다.′고 말하고 있으니, 아울러 지만(遲晩:자복)을 받은 뒤 각각 해도(該道:관할지)로 압송(押送)하여 정법하소서.’ 하였다.”(刑曹啓言 邪學罪人金宗敎, 講習邪敎, 已多年所。 而甲寅被逮於捕廳, 以感化之意, 納招蒙放矣. 不悛舊習, 尋訪周文謨, 受洗受號, 嚴加刑訊, 少無悔悟之意. 罪人洪弼周, 卽姜婆完淑之子, 而厥母沈惑邪敎, 被逐於夫, 弼周背父隨母, 浸染蠱惑, 目見厥母邀致周文謨, 與之六七年同居一室, 認以洋學之例事, 尋常看過, 執迷不返, 爲世指目, 竝捧遲晩正法. 湖西之金丁得·金廣玉等, 湖南之韓正欽·崔汝謙·奴千愛等, 譸張詿誤, 篤信隷習, 謂以難捨十戒, 甘受一死, 竝捧遲晩後, 押送各該道, 正法.)
[2] 루카 2,29-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