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제12. 경계) 비록 영어의 몸일지라도
곽선희
꽉 찬 내일이 기다려지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다. 내가 해야 할 일이 있고 나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 내가 나인 것만은 아닌 또 다른 나임을 느끼는 순간이다. 왜냐하면 우리 사람들 안에 당신 거처를 마련하신다고 하셨다. 그것이 예수님의 탄생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느님의 성전이다. 그래 그래서 우리는 늘 행복하다. 자녀를 내 기쁨으로 생각하고 살듯이 그보다 더 하느님은 우리를 사랑하신다. 가장 작게 오시는 주님을 만나러 가야한다. 나를 통해 하느님의 사랑을 전해야 한다. 내가 예수님이 될 수 있는 성사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하느님이 주시는 성사가 되어야 한다. 이것이 나의 정체성이다.
꾸리아 간부들의 모임인 꼬미시움에서 우리 성당 레지오 간부들의 모임인 꾸리아에 지시가 내려졌다. 대구교도소에 수감 중인 교우가 하는 주회(레지오)에 참관하라는 지시였다. 몇 년 전 그때도 목련이 막 피어날 때였다. 교도소 방문은 교정사목 활동 중 일부다. 꾸리아 간부가 아니더라도 레지오 단원 중 희망하는 몇 명의 단원들과 함께 대구교도소로 향했다. 꾸리아 단장이 안 가서 그랬을까? 단장 대신 운전해 가는 교우가 내비게이션에 ''대구교도소''를 ''화원교도소'' 로 목적지 입력을 해서일까? 엉뚱한 길로 들어섰다. 가기 전에 화원교도소를 집에서 아무리 검색해도 나오지 않았다. 교도소라서 안 나오는 걸가라고 생각하기까지 했다. 왜 우리는 대구교도소를 화원교도소로 알고 있었을까? 아마도 화원에 있다고 화원교도소라 얘기를 했던 것 같다. 출발을 일찍 한 덕분에 그나마 제 시간에 도착할 수 있었다. 가는 중에 묵주기도도 하고 평소 서로 못 나누었던 신앙체험도 얘기하며 자매가 정성껏 마련한 떡으로 아침을 대신했다.
첫 번째 문을 들어서며 ''천주교회에서 레지오 참관 왔습니다.'' 하니 문을 열어 주었다. 비 온 뒤의 따사로운 햇살이, 아름드리 백목련이 눈부시게 우리를 반겨주었다. 유난히 햇볕이 따스한 이곳은 어릴 때 살던 동네 입구에 들어서는 듯 자연스러웠다. 그곳에서 오랜 기간 봉사 했다는 자매의 안내에 따라 접견실에 들어섰다. 인솔하는 수녀님께서 유의 사항 몇 가지를 당부한다. 절대 질문을 하지 말 것, 며칠 전에 신부님께서 묵주를 선물하고 갔으니 달라고 해도 절대 주지 말 것 등이었다. 유일하게 교도소에 성당이 있는 곳은 이곳 대구교도소뿐이라고 한다. 성당의 역사가 30년은 넘었고 마태오라는 교우가 기증을 해 성당 이름을 ''마태오성당'' 이라고 지었단다. 이처럼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의미 있는 존재로 만들어 줌이다.
그물망이 쳐진 운동장을 지나는 순간, 어릴 때 초등학교 국어 책에서 읽은 거인과 어린이 얘기가 떠올랐다. 꽃피는 계절에 아이들이 거인을 보자 모두 잘 달아났다. 그 꼬마는 무서워 오돌 오돌 떨고 있었다. 그러나 무섭게만 다가왔던 그 거인은 따뜻하게 안아 올려줬다는 그 스토리, 찐하게 남아 있었는데 이곳에서 떠오름은 왜일까? 감히 범접 할 수 없는 하느님이시다. 하느님은 인간을 통해, 어떨 땐 꽃피는 우주만물을 통해 무서움에 떨고 있는 영혼을 자비로 돌보신다는 확신이 저쪽 그물망이 쳐진 경계선에서 축구 하는 그들을 보며 느꼈음일까? 쌀쌀한데 춥지는 않은지 짧은 티셔츠를 입고 축구 하며 우리를 바라보곤 하는 그들의 모습이 나의 아버지요. 오빠요. 남동생 같았다.
꽃이 핀 싱싱한 정원 같은 곳을 지나 2층 좁은 계단에 올랐다. 성모찬송 한 곡을 부르고 형제들 4팀(4개의 쁘레시디움)으로 구성된 테이블에 2명씩 짝을 이뤄 가서 앉았다. 육하원칙에 의해 지난주에 지시받은 활동과 성경읽기 자유 활동을 또렷또렷 하게들 보고하였다. 오히려 밖에서 활동하는 우리들보다 더 살뜰히 감옥의 아픈 교우들을 챙기고 돌보았다. 성경읽기도 묵주기도도 정성껏 바쳤다. 그들의 갈망이 진하게 배어 있어서일까 싱싱한 장미송이 한 송이 한 송이를 바치듯 정성되고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경건하게 진행되었다. 하느님은 아니 계신 곳 없이 어디에도 계신다는 것을 체험하는 순간이다.
참관소감을 얘기해 달라 부탁해서 ''이렇게 정성 되이 묵주기도를 바치고 활동하는데 하느님께서 어여삐 여기지 않으시겠습니까? 꿈은 꼭 이뤄지니 절대 희망을 버리지 마십시오. 여러분들을 뵈오니 은총이 가득히 흘러넘치는 것 같습니다.'' 라고 했다. 회계가 영치금으로 몇 십만 원을 넣었다고 살짝 얘기해 주었다. 나와 함께 앉은 자매는 감기가 들린 것인지 우는 것인지 계속 훌쩍거렸다. 나도 정성스럽게 바치는 묵주기도 소리에 하마터면 왈칵 울음을 토할 번했지 않았던가?
이들은 어찌하여 이곳에 와 지금 이러고들 살아가는가. 나는 뜻하지 않게 남편이 직장에서 뇌출혈을 일으켜 2년 3개월이라는 세월을 병원에 갇혀 지냈을까. 언제 끝이 날지 모를 길을 가고 있는 것일까?
그래, 관점을 바꾸는 수 밖에 없다. 실패한 사람은 창문을 보고 ''저 사람 때문에 내가'' 라고 말하지만 성공한 사람은 거울을 보고 ''내 탓이오.'' 라고 말한다고 하지 않는가. 긍정적인 선택을 해야 한다. 후회 원망하지 말고 선택한데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비록 영어의 몸일지라도. (20230307)
첫댓글 수고 하셨습니다. 카페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