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현 숙
오랜만에 대중 사우나를 다녀왔다. 집 안에 들어가려고 현관문의 지문인식 센서를 눌렀다. 인식이 안된다. 손가락이 물에 불어 지문이 정확하게 잡히지 않았다.
내가 사는 아파트는 특화된 보안시스템과 여러 가지 유용한 시설로 인기가 있었다. 현관문은 디지털 스마트 키와 지문 센서 겸용으로 설치되었는데 지문만 믿고 스마트 키는 가지고 나오지 않았다. 오롯이 지문이 살아날 때까지 집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참 난감했다. 외지에 나가 있는 남편과 딸에게 비밀번호를 물었더니 본인들도 지문만으로 통과해서 모른다고 한다.
몇 가지 번호를 유추해서 눌렀지만, 인증 초과로 5분 대기 후 다시 시도하란다. 두어 번 시도해도 열리지 않는 현관문이 괜히 원망스러웠다. 주말에는 밀린 집안일로 마음이 급했지만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현관 앞에 우두커니 있으니 막막했다. 아무리 최첨단 보안시스템이 좋다 한들 내 집을 마음대로 드나들지 못하니 무용지물일 수밖에 없다. 비상계단에 앉았다.
‘열쇠’ 하면 떠오르는 일이다. 지금도 생각하면 먼저 가슴이 아려온다.
작은딸이 유치원 다닐 때 일이었다. 왕복 120킬로 장거리 통근 중이었다. 이른 아침에 초등 1학년과 유치원생인 두 딸의 식사와 출근 준비로 늘 바빴다. 월요일 출근길은 다른 날보다 차량 지체가 심하기 때문에 좀 더 일찍 서둘러야 했다.
점심시간 즈음에 큰딸에게 전화가 왔다.
‘엄마, 지현이 오늘 유치원 못 갔어요.’
‘왜?’
‘현관 열쇠가 없어서......’
‘아뿔사’ 그제야 나도 열쇠를 성당 가방에 넣어둔 것이 생각났다. 전날 성당을 다녀오면서 현관 열쇠를 성당 가방에 넣어둔 채로 출근을 했다. 비상 열쇠는 한 묶음으로 따로 보관하고, 현관 열쇠 하나만 장소를 정해 놔두고 가족 공용으로 사용하였다.
우리 부부가 먼저 출근하고 큰딸이 등교한 후, 작은딸이 유치원에 가게 되었다.
그런데 작은딸은 늘 있던 곳에 열쇠가 없으니 현관문을 못 잠그고 유치원에 못 가게 되었다.
얼마나 목놓아 울었든지 이웃집 아주머니가 와서 문을 열어 보라 해도 안 열어 주었단다.
‘모르는 사람 따라가지 마라’ ‘아는 체한다고 문 함부로 열어 주면 안된다.’라는 말을 기억하고 열쇠가 없으니 현관문을 그대로 두고 유치원에 갈 수도 없었다.
초등 1학년생 언니가 하교하고 나서야 현관문을 열게 되었다. 학교에서 돌아온 큰딸이 유치원에 못 간 동생이 걱정되어 내게 전화를 한 것이다.
나는 작은 열쇠 하나로 작은딸을 반나절 동안 세상과 단절시키고 집안에 가둔 못난 엄마가 되었다.
어린 마음에 얼마나 두렵고 힘들었을지 생각하면 아직도 마음이 아프다. 작은딸에게 ‘엄마가 깜박하고 열쇠를 가방에 넣고 와서 미안하다’라고 통화를 했다. 작은딸은 마음이 진정되었든지 유치원 입학 전까지 두 딸을 돌보아 주신 친정어머니께 전화해서
‘할머니, 엄마 혼 좀 내주세요. 엄마가 열쇠를 제 자리에 안 두고 가서 내가 오늘 유치원에 결석했어요. 엄마 혼 좀 나야 해요,’ 하며 울먹였다고 하였다.
‘그래, 엄마 퇴근해 오면 왜 열쇠를 제자리에 안 두고 가서 지현이 유치원에도 못 가게 했냐고 혼내 줄게. 울지 말고 점심 먹고 피아노 학원 가거라’고 달래주셨다.
아이들만 두고 장거리 출퇴근을 하다 보니 마음이 늘 불편했다. 친정어머니는 결혼하고도 교직 생활을 하는 내게 시대가 달라졌다며 기꺼이 우리 두 딸을 돌봐 주셨다.
내게 닫힌 문을 열어 주는 세상의 열쇠였다. 매사를 긍정적으로 생각하시며 좀처럼 남을 탓하지 않으셨다.
‘아무리 딸자식이라도 지 재주 있으면 무슨 일을 해서라도 공부는 시켜 줘야지.’
‘남에게 해 끼치는 나쁜 일 말고는 뭐든 할 수 있다.’라며 그저 자식들에 대한 희망이 있고 사랑이 있었으니까 ‘힘든 줄 모르고 지냈다’라고 하시던 말씀들. 이젠 더 들을 수 없지만 어려운 가정 형편에 육남매 등록금이 줄줄이 나올 때면 기한 내 등록금을 마련하느라 얼마나 애태우셨을까?......가끔 지칠 때면 추운 겨울날 따뜻한 아랫목에 밥그릇을 묻어놓고 저녁 늦은 우리를 기다려 주신 사랑과 함께 ‘이 고생은 아무것도 아니지.’ 하고 마음을 추슬렀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엄마는 그동안의 경험과 상식을 바탕으로 내게 지혜로운 선택을 하게 하셨다.
친정어머니의 자식 교육이 내 인생의 열쇠가 되었듯이 우리 딸들에게도 스스로 삶을 지탱 할 수 있는 단단한 인생의 열쇠를 만들어 주고 싶었다. 가족과 떨어져 더 넓은 세상에서 스스로의 힘으로 단단한 열쇠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 과정이 어렵고 외로워 보였지만 두려움 없이 세상의 문을 열어가는 두 눈은 빛났다.
내 인생의 열쇠, 친정어머니!! 천국의 열쇠는 어디 있나요?
어느덧 손가락 지문이 살아났다. 지문이 읽히고 나니 ‘츠르륵’ 기계음을 내면서 현관문이 열린다.
첫댓글 차근차근 글을 잘 풀었습니다. 좀더 읽어보면서 퇴고를 조금 더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