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자니아 동쪽 해안에 위치한 다르에스 살람. 아랍어로 ‘평화의 항구’다. 이곳은 탕가니카와 잔지바르가 통합하여 탄자니아 공화국이 된 후에도 계속 수도였다. 1973년 법적인 수도는 도도마로 이전하였지만 실질적인 수도 기능을 유지하고 있단다. 버스에서 내리기가 무섭게 툭툭이 기사들이 호객행위를 하고 있다. 행선지를 먼저 묻는 것이 아니라 우선 탈 것을 강요하지만 가격을 흥정하고 호텔로 이동했다. 호텔 프론터에 도착해서 수속을 밟으려니 잘못 왔다. 같은 중국인이 운영하는 호텔인데 직원의 안내를 받아 인근에 있는 호텔로 찾아 들어갔다. 킬리만자로 등산을 위해 산장에서 잠잤던 곳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고급스럽다. 저녁을 먹기 위해 시내를 한 바퀴 돌았다. 도심의 거리지만 깨끗하지 않다. 종교시설 앞에는 구걸하는 사람들, 장애자들, 음식을 배달하는 사람들 천태만상이다.
길모퉁이를 돌아서니 음식점 거리가 나온다. 불야성을 이루고 음식 태우는 냄새가 코를 진동한다. 훨훨 타오르는 불꽃에 양념 가득한 닭을 요리하고 있다. 음식을 주문하고 야자수를 한 통 시켰다. 단 돈 천 원의 야자수는 자연의 맛을 그대로 들이마시는 기분이다. 닭요리와 망고 쥬스를 마시고 이미 포화상태지만 추가하여 누들 국수를 주문했다. 대접으로 한 그릇 나와 한 젓가락만 손대고 그대로 남겨두고 나왔다.
우리가 머문 방은 고층이라 인접지역 가옥들 옥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서민들의 삶을 그대로 볼 수 있다. 노출되고 드러난 장소만 깨끗하게 정돈되고 뒷골목과 은밀한 곳은 혐오스럽다. 옥상에 닭과 개를 키우는 집들도 있고 커다란 물탱크는 빛이 바랜 만큼 위생상태가 불량하게 보인다.
호텔의 아침식사는 깔끔하게 차려져 있다. 포커와 나이프를 들고 근사하게 맛을 보며 여유를 즐긴다. 여행은 참으로 아름답고 삶의 가치를 느끼게 해준다. 잔지바르 행 배표를 구입하기 위해 선착장으로 이동했다. 많은 사람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허리에 찬 여권과 지갑에 손을 올려놓고 틈새로 들어가 표를 구입하는데 암표상으로 보이는 인원들이 접근한다. 흥정할 일 없다고 물리치고 재빨리 벗어나 항구 쪽에 있는 허름한 까페를 지나 도심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종교시설이 유난히 많다. 경전을 앞에 두고 자리를 깔고 기도하는 사람들이 보이고 종교시설은 좁고 작은데 사람들이 수용된 듯 표정이 밝지 않다. 무슨 염원을 하는지 모르겠다. 내세를 믿지 않는 나의 입장에서는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가 떠올랐다. 동굴 벽면에 사물의 그림자가 비친다. 동굴에 갇힌 죄수들은 앞만 볼 수 있었기에 그림자들을 실제의 사물이라고 생각한다. 이 죄수들 가운데 한 사람이 사슬에서 풀려나 그림자가 실제 사물이 아니라 이미지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어 풀려난 죄수는 동굴을 나와 태양 아래 빛나는 만물을 본다. 풀려나 실제를 확인한 죄수는 동굴에 갇힌 죄수들을 해방시키려고 동굴 안으로 다시 들어간다. 하지만 바깥세상의 진실을 알게 된 해방되었던 죄수는 동굴 안 죄수들의 웃음거리가 되고 말았다는 이야기다. 현실에 손과 발로 부딪히면서 노력하는 것이 간절한 염원보다는 나은 삶이 되지 않을까?
도심의 거리를 걸으면서 한 쪽 다리가 없는 툭툭이 운전기사, 눈이 멀어도 좌대에 앉아 같은 동작을 반복하는 사람, 한 쪽 팔이 없이 빵을 이고 가는 사람들과 마주친다. 거리에는 왜 이렇게도 장애자가 많지. 선천적인 것일까? 전쟁의 참상은 아닐 테고? 이유야 알 필요 없지만 나름대로 열심히 사는 모습이 아름답다. 장자에 등장하는 지리소支離疏의 이야기다. 턱이 배꼽 아래에 있고, 어깨가 이마보다도 높고, 상투는 하늘을 가리키고, 오장이 위에 있으며, 두 넓적다리는 옆구리에 닿아 있다. 이 정도 되면 신체상으로 장애자를 넘어 괴물도 이런 괴물은 없다. 하지만 그는 재주가 있고 국가의 혜택도 받는다.
바느질과 세탁으로 밥벌이를 충분히 했고, 산가지를 흔들고 쌀을 뿌려 족히 열 사람을 먹여 살렸다. 나라에서 군인을 징집하면 지리소는 팔뚝을 걷어붙이고 그사이를 휘젓고 돌아다닌다. 나라에 큰 부역이 있으면 지리소는 일정한 병이 있으므로 일을 받지 않고, 나라에서 병자에게 곡식을 나눠주게 되면 3종(鍾)의 곡식과 열 묶음의 땔나무를 받는다. 무릇 자신의 몸을 불구로 만든 사람조차도 충분히 자기 몸을 기르고 천수를 다하는데 하물며 자신의 덕을 불구로 만든 사람은 말해 무엇하겠나!
挫鍼治繲 足以餬口 鼓筴播精 足以食十人 上徵武士 則支離攘臂而遊於其間 上有大役
則支離以有常疾 不受功 上與病者粟 則受三鍾 與十束薪 夫支離其形者 猶足以養其身
終其天年 又況支離其德者乎
좌침치해 족이호구 고협파정 족이식십인 상징무사 즉지리양비이유어기간 상유대역
즉지리이유상질 불수공 상여병자속 즉수삼종 여십속신 부지리기형자 유족이양기신
종기천년 우황지리기덕자호 <인간세>
장자가 지리소라는 가상의 인물을 설정한 것을 보면 상상력이 뛰어난 이야기꾼이다. 사지支가 이리저리 흩어져離 마음대로疏 작동하는 장애인 지리소. 지리소가 누리는 행복과 자유로운 삶을 보자. 몸은 장애인이지만 능력자다. 세탁소와 점집을 운영하니 조그마한 중소기업 사장인 셈이다. 그는 장애인 연금을 받고 전쟁이 일어나더라도 징집을 받지 않는다. 정상인과 지리소. 전쟁이 일어나면 운명이 엇갈린다.
이렇게 지리소는 사지가 지리하여 천수를 누리게 되었으니 덕德이 지리하다면 참으로 더 깊고 넓은 해방을 누릴 수 있지 않을까?
사지가 지리하여 제각각 놀지만 주위와 연대하여 불편을 이겨낼 수 있다. 자신의 불구를 결여나 부족으로 여기지 않고 강건한 의지로 극복해 허드렛일은 물론 주역점을 칠 수 있는 선지자의 능력까지 갖췄다. 신체의 장애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사는 다르에스 사람의 사람들이 어쩜 지리소의 삶이겠다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