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14-03)
믿음과 불평이 들린 대로 역사하신 하나님
민수기 14장 26-45절
성경은 혀에 대해서 쉬지 않는 악이요 생명과 죽음이 공존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입으로 무슨 말을 하느냐에 따라서 그 다음 순간 생명의 길로 나아 가느냐 아니면 사망의 길로 나아 가느냐로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우리의 입에서 나오는 불평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심각한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우리가 불평의 말을 내뱉는 순간 하나님께 대한 은혜의 감각은 마비되고 하나님의 은혜가 그쳐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정탐꾼들의 악한 보고에 불신앙을 드러낸 이스라엘 자손에게 하나님께서 심판을 선언하셨습니다. 모세의 간절한 기도가 그 심판을 감하기는 했지만, 그들이 감당해야 할 형벌은 여전히 무거웠습니다. 악한 말로 보고했던 정탐꾼들에게 즉각적인 죽음이 임했고, 불평하며 불신앙을 드러냈던 이스라엘 백성은 약속의 땅인 가나안으로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40년간 광야 생활하다가 광야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 선언(26-28)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입술에 주목하시고, 사람의 말을 들으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말을 들으신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입으로 죄를 범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징계는 철저하시기 때문입니다. 징계는 근거 없이 주어지지 않으며, 죄가 죄인 것을 깨닫도록 합니다.
26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7나를 원망하는 이 악한 회중에게 내가 어느 때까지 참으랴 이스라엘 자손이 나를 향하여 원망하는 바 그 원망하는 말을 내가 들었노라 28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26-28)
하나님의 심판 선언이 계속됩니다. 하나님께서 다시 모세와 아론에게 심판의 내용을 말씀하시는데,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여전히 하나님을 원망하는 악한 회중으로 남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백성들은 지속적으로 하나님을 향해 원망의 말을 쏟아냈습니다. 27절은 ‘원망을 원망하다’라는 뉘앙스로 번역할 수 있는데, 이는 백성들의 원망이 지속적이고 반역적인 것임을 암시합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열 번이나 원망하고 배반했습니다. 그 불평의 목소리가 하나님께 상달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당신의 삶을 두고 맹세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제 당신의 귀에 들린 대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행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앞으로 행하실 일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부르짖으며 기대했던 그들의 소원인 셈입니다.
하나님의 심판 내용(29-38)
하나님의 심판은 즉각적으로 임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악평의 발원지가 된 사람들을 없애셔서 공동체 가운데 더 이상 반역의 죄, 영적 음행의 죄가 퍼지지 않도록 하십니다. 악취는 한 곳에만 있지 않고 사방에 진동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죄에 대한 우리의 반응과 대처 역시 이러해야 합니다. 죄를 방치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즉각적으로 처리해야만 우리의 영혼을 살리는 길입니다.
29너희 시체가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라 너희 중에서 이십 세 이상으로서 계수된 자 곧 나를 원망한 자 전부가 30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 외에는 내가 맹세하여 너희에게 살게 하리라 한 땅에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31너희가 사로잡히겠다고 말하던 너희의 유아들은 내가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들은 너희가 싫어하던 땅을 보려니와 32너희의 시체는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요 33너희의 자녀들은 너희 반역한 죄를 지고 너희의 시체가 광야에서 소멸되기까지 사십 년을 광야에서 방황하는 자가 되리라 34너희는 그 땅을 정탐한 날 수인 사십 일의 하루를 일 년으로 쳐서 그 사십 년간 너희의 죄악을 담당할지니 너희는 그제서야 내가 싫어하면 어떻게 되는지를 알리라 하셨다 하라 35나 여호와가 말하였거니와 모여 나를 거역하는 이 악한 온 회중에게 내가 반드시 이같이 행하리니 그들이 이 광야에서 소멸되어 거기서 죽으리라 36모세의 보냄을 받고 땅을 정탐하고 돌아와서 그 땅을 악평하여 온 회중이 모세를 원망하게 한 사람 37곧 그 땅에 대하여 악평한 자들은 여호와 앞에서 재앙으로 죽었고 38그 땅을 정탐하러 갔던 사람들 중에서 오직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은 생존하니라(29-38)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을 믿는 사람은 원망이 아니라 언제나 소망이 담긴 말을 고백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고백하는 대로 응답하십니다.
(1) 광야에서의 죽음(29-32)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고백을 한 갈렙과 여호수아를 제외한 모든 이스라엘 백성을 심판하십니다. 다만, 출애굽했을 때 이십 세 이상 된 모든 사람이 광야에서 심판을 받아 죽을 것입니다. “너희의 유아들”은 단순히 어린 유아들을 지칭하는 것 같지만, 이십 세 이하의 모든 사람을 지칭하는 단어이기도 합니다.
열 명의 정탐꾼이 악한 말로 보고했을 때 백성들은 모두 스스로 동조하여 하나님을 향하여 온갖 불평과 원망을 쏟아냈습니다. 사실상 그들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을 거절하고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엎드러질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애굽을 떠나왔고, 광야에서 하나님의 돌보심을 철저하게 경험했으나 여전히 불순종과 불신앙 가운데 있는 백성들에게 광야는 축복과 인도하심이 아니라 심판과 죽음의 장소가 될 것입니다. 이 심판에서 예외가 되는 사람은 모세와 아론, 여호수아와 갈렙입니다. 하지만 모세와 아론은 40년의 마지막이 될 때 다른 이유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할 것입니다(민 20:1-13). 아론의 아들 엘르아살은 당시 20세가 넘었겠지만 대제사장 직무를 위해 아론을 대신하여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수 14:1; 17:4).
(2) 광야에서의 방황(33-35)
출애굽 당시 이십 세가 넘은 사람들에게는 광야가 무덤이 되겠지만, 어린 자녀들은 심판이 유예됩니다. 그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겠지만, 그들도 광야에서 사십 년 동안 방황의 시간을 보내야 합니다.
본문에서는 ‘방황하는 자들’이라고 말하지만, 직역하면 광야에서 목자들이 된다는 뜻입니다. 그들이 광야 여러 곳을 다니면서 가축을 먹이는 유목민이 되고, 부모 세대는 광야에서 사십 년 동안 지내다가 모두 죽을 것입니다. 광야 사십 년은 그들 모두가 죽음을 맞이할 때를 기다리는 기간과 같습니다. 광야 사십 년은 심판의 기간인 셈입니다.
(3) 정탐꾼에게 임한 심판(36-38)
심판은 백성의 지도자로 뽑혀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돌아와서 악평을 쏟아냈던 열 명의 정탐꾼에게 가장 먼저 임합니다. 그들은 모두 여호와 앞에서 재앙을 받아 즉각 죽임을 당했습니다. 여호와 앞에서 죽임을 당했지만 어떤 죽음이었는지 명확히 알기는 어렵습니다. 본문의 재앙은 종종 하나님의 심판으로서의 전염병을 뜻하곤 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즉각 죽음에 이른 것으로 보아, 불이 내리는 것과 같은 가시적 수단에 의해 죽음에 처한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반응(39-45)
하나님께서는 진실한 믿음을 통해서 일하십니다. 하나님의 일은 공동체의 규모나 사람들의 머릿수에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믿음의 힘은 막강해서,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만 있다 해도 불가능해 보이는 것을 가능케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분을 끊임없이 인식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생각과 입술을 지켜 주실 것입니다.
39모세가 이 말로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 알리매 백성이 크게 슬퍼하여 40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산 꼭대기로 올라가며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여기 있나이다 우리가 여호와께서 허락하신 곳으로 올라가리니 우리가 범죄하였음이니이다 41모세가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제 여호와의 명령을 범하느냐 이 일이 형통하지 못하리라 42여호와께서 너희 중에 계시지 아니하니 올라가지 말라 너희의 대적 앞에서 패할까 하노라 43아말렉인과 가나안인이 너희 앞에 있으니 너희가 그 칼에 망하리라 너희가 여호와를 배반하였으니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나 44그들이 그래도 산 꼭대기로 올라갔고 여호와의 언약궤와 모세는 진영을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45아말렉인과 산간지대에 거주하는 가나안인이 내려와 그들을 무찌르고 호르마까지 이르렀더라(39-45)
이스라엘의 백성의 불신에 대한 심판이 이루어집니다. 하나님께서는 정탐꾼들이 정탐한 날의 하루를 1년으로 쳐서 40일이므로 40년간 광야에서 방황할 것이라고 하십니다. 광야 40년은 그들의 죗값이었습니다.
(1) 가나안 정복 전쟁에 대한 미련(39-43)
하나님의 심판이 모세를 통해 알려지자, 백성들은 크게 슬퍼합니다.
그들은 광야 40년 방황 기간 동안 모두 죽을 것이라는 말씀을 들었고, 자신들 앞에서 열 명의 정탐꾼이 죽임을 당한 모습을 보면서 문제의 심각성을 충분히 느꼈을 것입니다.
그들은 스스로 범죄했다고 고백합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자신들의 죄악을 고백하며 회개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들이 진정한 회개를 했는지는 의문입니다.
그들은 입술로는 죄를 인정했지만, 광야에서 방황하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즉각적으로 거부하고 가나안 땅으로 올라가려 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홍해 길을 따라 광야로 들어가라고 분명히 명령하셨는데도(25), 백성들이 억지로 가나안으로 올라가려고 한 것은 명백하게 말씀을 거역한 행위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죄악된 습관을 그대로 드러냅니다.
모세는 가나안 땅으로 올라가는 것이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는 것이라고 경고하고, 결국 실패하고 말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그들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들 가운데 함께하지 않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42절에서 모세가 “패할까 하노라”라고 말한 것은 패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패하지 않도록’ 올라가지 말라는 경고입니다. 모세는 더 구체적으로, 올라가서 만날 민족들이 아말렉 인과 가나안 인이라고 특정합니다. 그들의 칼에 망하고 말 것이라고도 말해줍니다. 모세는 아주 구체적으로 올라가지 말도록 명령하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이번에도 순종하지 않습니다.
(2) 불신앙적 정복 전쟁과 실패(44-45)
그들은 담대한 마음을 가지고 산꼭대기로 올라갔습니다. 44절에서 번역된 “그래도”라는 말은 ‘기어코’ 혹은 ‘담대하게’라고 번역해도 좋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지 않으실 것이라는 말을 듣고도 그들은 마치 약속을 받은 사람인 양 담대한 마음을 가지고 올라갑니다. 대단히 고집스러운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언약궤와 모세는 그들을 따르지 않고 진영에 머물렀습니다. 하나님의 함께하심은 마치 도박을 하듯 밀어붙이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함께하심이 기계적으로 주어진다고 생각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발상입니다. 죄악에서 떠나지 않은 채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법궤를 가지고 가면 된다고 착각했던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의 실패와 같은 맥락입니다(삼상 4:1-10).
본문은 심지어 하나님의 언약궤는 물론 모세도 함께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의 헛된 고집이 더 뚜렷하게 부각됩니다. 모두가 예상하는 바와 같이 아말렉 사람들과 산간지대에 거주하는 가나안 사람들이 내려와 이스라엘 백성을 크게 무찌릅니다. 패하여 도망하는 이스라엘은 호르마까지 이르렀습니다. 호르마는 아마도 브엘세바 근처에 위치했을 것입니다(수 19:4; 삿 1:16 대상4:30). 히브리어로 호르마는 진멸을 뜻하는 헤렘과 같은 어근이라는 점이 의미심장합니다.
믿음과 악평은 하늘과 땅, 그 이상의 차이를 가져옵니다. 이처럼 원망과 불평의 말은 하나님의 징계를 불러옵니다. 반면에 소망과 기대의 말은 하나님의 구원을 불러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의 믿음을 저버리거나 죄를 방치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원망했던 사람들은 광야 40년 동안 방황하다가 죽게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약속을 철저히 신뢰했던 여호수아와 갈렙은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오직 하나님의 약속을 온전히 신뢰하고 복된 말씀 위에 굳게 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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